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5)
작가귀환-245화(245/250)
“앞으로 평생 그들을 못 보게 될 텐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내 말을 받아 전하는 한중의 경장의 표정도 굳어졌다. 이 질문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사무실에서 살아 본 사람만 느끼는 복잡한 유대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어떻게 자신하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 주기나 할까요? 만난다면? 사죄라도 하면서 용서를 구할 건가요?”
“다시 말하지만, 그 작가들은 내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경황이 없어서 자신들의 처지를 직시하지 못하지만, 곧 내 빈자리를 느끼겠죠. 그곳은 작가들의 요람이었습니다. 더 편하고 포근한 곳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범죄자들이 흔히 하는 패턴대로 말하고 계신다는 거 알죠? 피해자들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특징이 있죠.”
“나는 그들에 대해 잘 압니다. 내가 골랐으니까. 나 없인 그럭저럭 살아갈 순 있어도 작가로 성공하긴 힘들 겁니다.”
그래, 저놈은 이런 자식이었다. 굉장히 이기적이며 주관적이었고 타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시 흔들기 쉽지 않아.’
내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에 한중의 경장이 물었다.
“납치 과정에서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있었지만 모두 무사히 데려왔습니다.”
“여성의 비율도 꽤 높은데 대상을 특정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이었죠?”
“작가로서의 잠재력이죠. 이제 제가 묻죠. 범죄 수익은 환수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작품 활동에 있어선 조력자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좋은 작품도 많았죠. 내 이름이 올라갈 자격이 있습니다.”
“설마 지금 당신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는 건가요?”
“잘 모르시나 본데 편집자는 저작권 없습니다. 그저 이름만 함께하는 거죠. 그것으로 조력자로서의 명예를 지킵니다. 나는 그들의 모든 원고를 단 한 편도 빠짐없이 도왔습니다. 이건 범죄와 무관하죠.”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걸 작가님들이 허락할까요?”
“할 겁니다. 특히 몇 명은 더욱…….”
그가 누굴 떠올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단히 착각하는 거다. 그 안에선 저놈이 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살기 위해서 비위 맞추느라 모두가 굽신거렸지만, 이젠 아니다. 놈은 감옥에 갈 것이고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다.
한중의 경장이 그 점을 지적했다.
“당신이 어떤 도움을 줬는진 모르겠지만 그건 그들이 판단할 일이에요. 속단하지 마세요. 이제 제 차례입니다. 경찰은 당신의 신상 공개 명령을 검토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당신의 얼굴은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게 되겠죠.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었어요. 무려 열세 명이라고요. 그 시설을 봤을 때 지금 멈추지 않았다면 더 늘어났을 거고요. 이건 인정하시죠?”
“뭐, 그랬을 겁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잖아요. 그들도 모두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하루아침에 단절시켜 버린 거예요.”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다 외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게 와서 소속감을 느낀 경우도 꽤 많죠.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세계에 살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연인이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그런 쓸모없고 외로운 사람들을 모아서 위로받게 했습니다. 그게 성장으로 이어지죠.”
“그들이 외로운지 아닌지 어떻게 알죠?”
“관찰했으니까요.”
“미행했나요? 잠복도 하고요?”
“필요하다면요.”
범행을 시인하는 말들을 끌어내며 한중의 경장은 능숙하게 대화를 유도했다. 나와 함께 밖에서 지켜보던 조정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저놈은 이제 끝났어. 이제 살인 사건과 엮기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엮습니까?”
내 질문에 그의 미소가 진해졌다.
“놈이 유류품을 갖다 뒀잖아요. 어떻게든 공범으로 엮어야죠.”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쉬운 일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없던 일도 생기고 있던 일도 없어지죠. 놈의 형기를 늘리려면 무조건 살인이 죄목에 들어가야 해요. 납치 감금만으론 최대 형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 안쪽에 집중했다. 놈의 목소리 하나, 표정과 말투까지 다 내겐 회한이 깊다.
“경장님도 그렇지 않나요? 만약 경장님이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매달린 문제에서 누군가 단기간에 해결책을 준다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잖아요.”
“인간은요. 특히 작가는 무조건 도망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피 기동이 생존에 도움은 되겠지만 성장엔 방해가 되죠. 그래서 내가 한 겁니다.”
“끝까지 당신의 잘못은 없다는 거네요.”
“있긴 하죠. 그러나 본질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없습니다. 저는 그들을 작가로 대했습니다. 모두 평등하고 공평한 기회를 얻었죠. 내게 중요한 건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매일 감시했잖아요.”
“관찰이죠.”
“그러다 보면 없던 감정도 생기고 그럴 것 같은데요.”
“사람을 뭐로 보는 겁니까? 그런 저급한 이유로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알겠어요. 이건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겠죠. 다른 걸 묻죠. 작가들이 소설을 기획할 때 당신이 도왔나요?”
“개인의 창의력을 높이 사는 편입니다. 남이 뭘 쓰라고 해도 그 그림이 작가에게 그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요.”
“그러면 그 작품이 시장에 나가서 잘 팔릴지 아닐지는 어떻게 사전에 알죠?”
“데이터가 있으니까요. 독자가 좋아하는 클리셰, 패턴, 캐릭터, 스토리의 흐름을 어느 정도만 맞추면 기본은 합니다.”
“그걸 당신은 회사를 다니며 터득했고요?”
“이 정돈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도 파악합니다. 많이 보다 보면 알게 되죠.”
“새로 작가를 데려오려면 그 많은 소설을 계속 모니터하고 있어야 하겠어요.”
“그렇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나요?”
“잠을 줄이죠. 취미 활동도 없애고요.”
“그런 의지력으로 왜 직접 쓰지 않았죠?”
이건 내가 한 질문이었다. 그게 놈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저는 재능이 없습니다.”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서요.”
“애초에 0이면 뭘 더 끌어낼 수도 없는 겁니다. 나는 그래요. 많은 사람이 그럴 거고요. 하지만 세상엔 50 이상 품고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90을 넘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노력하면 100을 쓸 수 있고요. 안 하니까 문제지. 게으른 새끼들.”
“작가에게 원한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원한은 없습니다. 그저 안타까워서 사무실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잘할 수 있는데 손가락만 빨고 있잖아요. 경장님이 제 상황이라면 똑같이 했을 겁니다.”
대화를 하면서 그녀는 매우 특이한 가해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그건 흔히 일어나는 강력 범죄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였다. 이자는 피해자들을 위해 모든 걸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성범죄자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그 여자가 야하게 입고 다녔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더 끔찍한 일을 당했을걸.’
‘그녀도 날 사랑했어!’
한결같이 주장하는 그들의 말속엔 자기들이 뭐라도 된 양 주장하는데,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그저 끔찍한 순간들이었을 뿐이었다.
이 경우엔 어떨까?
“당신은 선생님인가요? 교수? 그런 위치나 지위를 얻고 싶었던 거죠?”
“교육자 정도로 하죠.”
“답답해서 일을 계획했다. 작가를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까.”
“네.”
“그런데 왜 갈취했죠? 그들을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수익이나 저작권을 그들에게 줘야 하지 않았나요?”
“케어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너무 많은 돈이던데요? 작가들이 열악하게 지냈잖아요. 단무지, 된장국, 콩밥 이런 것들이 전부 아니었나요?”
“특식도 나갔습니다.”
“햄버거가 수억씩 하진 않아요. 당신은 아니어도 세상은 돈이 목적이라도 볼 수도 있어요.”
“돈은 그냥 수단입니다. 없으면 불편하지만 그래도 살 순 있죠.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됩니다.”
“이 일을 준비하는 데 얼마 들었죠?”
“2억쯤 됩니다. 돈보단 시간이 더 걸렸어요.”
“그러면 지난 1년간 번 수익은요?”
“이달까지 하면 9억을 넘기겠죠.”
“대단한 수익률인데요?”
“제 노동력은 뺀 겁니다. 작가들의 원고와 그들을 돌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그거에 비하면 푼돈이에요.”
“얼마를 벌어야 목돈이라고 여기실 생각이었나요?”
“돈은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100포인트를 모아서 작가로서 완성형이 되는 걸 보고 싶었어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부와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모든 걸 다 가지잖아요. 명성, 돈, 작가로서의 인지도.”
“제 몫일 뿐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셨네요. 10억에 가까운 돈을 1년 만에 벌었는데요.”
“내가 아니면 못하는 일이니까.”
기분이 나빴는지 무뚝뚝하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한중의 경장이 생긋 웃었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알았어요.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 왔어요. 프로파일러는 중립에 가치를 두고 왜 범행이 발생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한답니다. 이게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나요?”
“진짜 객관적이라면 그렇겠죠. 나는 큰 잘못을 한 게 아니니까. 정신병원 간호사들이 다소 과격하게 환자를 돌봤다고 해서 무거운 벌을 받진 않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모두가 아니까.”
“그들은 환자를 돌봤어요.”
“작가도 환자입니다. 특히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누가 도와야 하죠. 경장님도 그렇지 않나요? 수많은 범죄자들을 보다 보면 공통점이 있겠죠. 그들이 스스로 고치질 못하니까 사회가 시스템을 만들어서 교화하는 거고요. 그런데 어떤가요? 감옥에 갔다 온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나요? 아니죠.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근본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자격을 줬나요?”
“이 사회가요. 물이 고여 더러워지면 비가 와야 하는 것처럼 저도 자연스럽게 생겨난 빗물 같은 겁니다. 가만뒀으면 썩어 문드러질 것들을 제가 깨끗하게 만들어서 세상에 이롭게 했잖아요. 이걸 이해하면 제게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나도 저놈 덕분에 성장한 것 맞다. 작가가 대부분 게으르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그게 실패란 의미는 아니다.
꼭 꿈을 이뤄야 하나? 꼭 꿈을 꿔야 하나?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은 가치 있는 거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이 아름다운 사회에서의 위협은 저놈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이다. 보통 그런 악독한 병균들은 자기가 뭘 잘못 한지 모른다. 태생이 그러니까.
그래서 알려 주고 싶었다. 너는 잘못했다고. 그런 방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 성장할 작가의 산실을 만들 수 있다고.
“……그런 건 없습니다.”
내가 한 말을 전해 들은 놈이 비웃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놈이 개화시켜 준 능력으로 놈이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내기할래요?”
작가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