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6)
작가귀환-246화(24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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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과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겐 언제나처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놈의 세계는 끝났다. 뉴스에서는 반복해서 이 사건을 다뤘고 풀려난 작가들은 모두의 관심을 모았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했고 그것이 실제로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죄의 대부분을 인정했으니 절대 가벼운 형량으로 빠져나오진 못할 거에요.”
다음 날 한중의 경장이 회사로 찾아왔다.
“그래야죠.”
“경찰에선 모방 범죄에 대해 주의를 하고 있어요.”
“모방 범죄요? 설마 그런 미친 짓을 또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돈이 되잖아요. 그걸 모두가 알아 버렸고요. 작가들은 순한 성향이 많고 혼자 살아서 없어져도 모른다는 것까지 공유되었으니 저도 걱정이 되는데요.”
“사람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네. 그래서 출판사나 플랫폼에 주의를 당부했어요. 사실 어느 곳이든 시장이 커지면 돈이 쏠리게 되고 그 돈을 노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나잖아요. 이번 케이스는 돈이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웹소설과 웹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란 확신이 알려진 거니까.”
“그건 착각입니다. 뭐든 상위 1%는 부를 독식하죠. 그 1%에 들어야 웹소설이나 웹툰도 돈을 벌고요. 이게 쉽지 않습니다.”
“알죠. 저도 몇 건 방송 출연 요청이 왔는데 나가면 꼭 그 점을 상기시키려고 해요.”
괜히 이 사건을 보고 너도나도 돈 때문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덤벼들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강의 가서도 누누이 말하지만 작가의 삶이란 건 장기전이다. 첫 페이지는 아무나 쓸 수 있어도 100페이지는 다른 영역이고 1,000페이지는 고도의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잖아요. 혹시 사람들에게 해 줄 덕담이 있을까요? 재능 있는 친구들도 있을 테고 순수하게 작가의 길에 도전하는 학생들도 있을 거니까.”
음.
“덕담이라……. 꿈은 크게 가지되 너무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은 흥행할 수도 있고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어요. 모두가 다 1위를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2등도 하고 20등도 하는 거죠. 그런데 기대가 크다 보니까 실패를 하게 되면 다시 일어서질 못해요. 작품을 완결하는 그 시점에 이미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는 건데도 우리 사회는 돈을 벌지 못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니까 그게 안타깝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그거죠?”
“모두가 실패합니다. 성공하다가도 또 고꾸라지죠. 그러나 이건 흥행만으로 판단하는 거고 작품 자체를 남길 수 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죠. 다수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해당 소설이나 웹툰이 최고일 수도 있으니까. 취향이란 건 다르잖아요. 그래야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새로운 시도도 계속되어 시장이 넓어져요.”
“좋은 말씀이네요. 좀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만, 다시 들어가 봐야 해서. 또 뵐게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 일인 걸요.”
그녀가 떠나고 나는 잠시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그놈에게 큰소리친 게 있었다.
-강제하지 않아도 작가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 반드시 생길 겁니다.
놈은 코웃음 쳤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봤다. 관심과 돈이 있으면 못할 게 없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나는 조만간 큰돈을 벌 것이다. 미래가 틀어지지 않았다면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 돈을 과감하게 사회에 환원하는 용도로 작가를 육성할 생각이다.
이런 건 혼자서 못한다. 지자체가 협력하면 좋고 정부가 함께하면 베스트였다.
이걸 준비하기 위해 예진을 불렀다.
“네? 그렇게까지 아카데미를 확장하시겠다고요?”
역시 깜짝 놀란다.
“할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10년 안엔 시작할 수 있을 거고.”
“이거 직접 그리신 거예요?”
어젯밤에 대충 그린 건물 조감도였다.
“그냥 알아볼 수 있기만 하면 되잖아? 지하는 도서관이야. 웹소설과 웹툰, 만화책으로 가득한 천국이지. 1층은 각종 행사와 카페, 식당이나 편의점이고. 2층부터 진짜인데 층별로 크고 작은 작업실을 50개 정도씩 마련하고 10층부터는 기존 콘텐츠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게 해서 아래에서 작업하던 신인들이 곧장 취업도 가능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좋죠. 좋은데, 이만한 건물을 올리려면 부지부터 시작해서 굉장한 돈이 들 거에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드나들려면 대중교통도 발달한 곳이어야 할 텐데 그런 곳은 땅값만으로 입이 떡 벌어지잖아요.”
“그래서 정부와 협상을 해 보자는 거야. 공공부지들이 있잖아. 문화 체육 시설 같은 걸 지어야만 하는 땅들. 의외로 아직 빈 곳 많던데?”
“그러면 여기 5층까지는 웹소설이고 6층부터는 웹툰 작가들 작업실인 거예요?”
“그건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장비가 비용이 많이 들 거니까 대략적으로 산출만 해 둔 거야.”
“이렇게만 되면 참 이상적이겠네요. 그런데 교육실은요?”
“내가 해 보니까 강의 정도로 작가들 실력이 오르진 않더라고. 그건 우리 아카데미에서도 이미 확인했잖아. 결국 의지와 반복인데 이건 강의실이 아니라 개별 지도로 가야 해. 그래서 조금 골치 아파도 학생들을 일일이 돌볼 교수진이 필요하지. 분명히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학생도 있을 테니까 그걸 걸러 낼 필요도 있고.”
“어렵네요. 그 힘든 일을 누가 하려고 할까요? 아시다시피 작가들은 우리 아카데미에서도 그랬지만 뜨고 나면 자기 생각만 해요.”
“괜찮아. 그렇게 해서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면 그걸로 된 거니까.”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는 이 단순한 작업이 혼자 하기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단체로 조성되면 안 할 수 없을 거다. 팀장 그놈은 이걸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는데 놈이 사용했던 방법 중에서 좋은 것들은 벤치마킹하고 나쁜 것들은 버리자.
“이제 세상은 소설이 웹툰이 되고 게임이 되면서 더 많은 콘텐츠로 뻗어 나갈 거야. 이건 지금까지의 산업 중에서 가장 고효율을 보일 수 있는 거고 우리가 선도하면 국가적으로도 뿌리가 될 수 있지. 내가 애국자는 아니지만 이 정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강경한 입장을 예진도 보았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기관? 아카데미? 시설에서 수익은 어떻게 내나요?”
“못 내지. 돈을 받으면 그건 학원이 되어 버리니까 취지에 어긋나고.”
“그러면…… 그냥 만드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유지 비용이 발생하겠네요.”
“아마도?”
“돈…… 어떻게 조달하시게요? 현시점의 우리 회사 능력으론 유지비만으로도 불가능해요.”
“지금이라면 그렇지. 근데 기다려 봐. 되게 할 테니까.”
“네?”
“오래 걸리지 않아. 찬 바람 불면 기적이 일어날 거야.”
이때까지 예진은 반신반의했다. 내 말이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최측근이었지만 이번 건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수백억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이게 되면 세계 최초로 작가들만의 요람이 탄생하는 거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공간.
‘벌면 써야지.’
돈은 돌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순환하며 누군가의 꿈을 응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가치 있는 소비일 것이다. 복수와 사랑을 다 이룬 내가 이제 할 수 있는 건 이것이 아닐까? 나 혼자만의 영달을 누리라고 이런 기적이 일어난 건 분명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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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납치 사건의 항소심이 오늘 오후 1시에 열립니다. 이전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20년을 구형했지만, 과연 어떻게 결정될지 사람들의 관심이…….
50만 원 살인사건과 별개로 진행되었고 13명을 납치 감금했지만 죽거나 치명적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기에 20년도 억지로 올려 잡은 거다.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 극도로 조심했지만 이미 몇몇 작가가 TV나 너튜브에 나와서 떠들기 시작해 버리는 통에 3번 작가, 4번 작가, 7번 작가. 이런 형태로 숫자가 붙었다. 이 중에서 4번 작가는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받아서 장기 치료가 필요했고 이것이 놈의 형량을 가중했다.
그런데 가장 재미있는 건 놈이 20년이나 구형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게 여자 작가들을 24시간 CCTV로 감시했다는 거였다. 이게 여성 단체의 공분을 샀고, 성범죄로 엮여 약 1년간의 녹화 영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참으로 자극적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런 가십을 좋아한다.
-7번 작가는 진짜 예뻤죠. 저도 가끔 멍하니 보고 있었을 정도였다니까요. 그런 여자를 24시간 지켜봤다는 게 끔찍하지 않나요? 먹고 자고 싸고 씻고 잘 때도 말이죠.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좁았거든요. 숨을 곳이 없었어요.
3번 작가란 놈은 가장 활발하게 떠들고 다녔다. 그걸로 먹고사나 싶을 정도였는데 본인이 관심 종자인 성향도 컸다. 그 안에서 1년이면 사람이 어떤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없겠지만 이상한 쪽을 증폭해 버린 것 같다.
-뭐, 제가 다른 작가들을 보살펴 주고 응원도 해 주면서 정신적인 리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든 곳이었어요.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좋지 않나요? 시나리오 쓸 때 제가 자문하면 되겠네요. 아무튼 다른 작가들도 저를 믿고 의지하고 그랬는데, 이게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죠. 저 없었으면 절대 대박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걸요. 아직도 기존 작품들에 대해 제 저작권이 인정되고 있지 않은데 이건 빨리 해결되길 바랍니다. 제 아이디어가 많았다고요.
팀장 그놈의 모든 범죄 수익이나 저작권은 환수되었지만, 작가들끼리의 분쟁도 몇 건 있었다. 그중에서 3번은 자기 스토리를 다른 작가들이 갖다 썼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작가들은 입을 다물어 버려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몇 사람은 신작을 시작했다.
-이거 6번 작가님이 쓴 거?
-맞을 거임. 브라키오 작품이었던 게 이 작가님 필명으로 바뀌어 있었음.
-오오오! 지옥에서 살아온 작가의 소설이다!
-역시 재미있는데!
-응원합니다!
웹툰계에서도 7번 작가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몇 달간 1위를 고수했다. 기구하게도 그녀의 번호 역시 7번이었고 가장 많은 호기심을 끌어냈다. 예쁘고 능력 있고 사연까지 첨부되면 세상이 가만두질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오직 작품으로만 소통했고, 그래서인지 팬은 웹툰으로 쏠렸다.
‘다 제자릴 찾아가는 거지.’
15년이든 20년이든 이제 그놈은 세상과 격리된다. 밖에 나오면 손발이 잘린 상태일 거고 평생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살아야 한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어서 그때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 시들해지면?
‘그때는…….’
내가 나설 수도.
작가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