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48)
작가귀환-248화(248/250)
‘이순신, 세종……. 허구와 실존의 경계를 꼭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홍길동이나 춘향도 가능하단 얘기야.’
캐릭터가 확실히 집힌 조연을 서넛 정도 배치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해결은 언제나 주인공이 담당한다. 이것이 남성향의 기본 틀. 인물 간의 케미와 뚜렷한 성향을 보여 준다면 최소 기본은 할 것이다.
이 정도만 해 놓고 스킬 트리를 만들면서 세부적인 스토리를 구상한다.
신인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작품을 100%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다. 웹소설이라도 통칭하지만, 그 안엔 수많은 장르가 있고 작가도 취향과 특기가 있어서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통 시작하는 작가들이 가장 많이 헤매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잘하는 걸 찾아서 써야 하는데 좋아하는 걸 먼저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뭘 잘하는지 아는 것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일단 써 보면 알겠지.’
나조차도 그래야 한다.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면 다 잘될 것 같지만 실제로 풀어 보면 전혀 다른 것들이 있다. 그래서 장기간 스토리 구상만 하는 게 위험한 거다. 점차 매몰되어 가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끊어 낼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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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는 지금 디엠의 컷 쇼케이스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디엠의 여동생 그룹이 데뷔 무대를 가지기도 하는 날이라서 더 관심이 가는데요! 보이세요? 빈자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황당한 건 외국인이 훨씬 많아요! 제가 오래도록 국내 아이돌을 덕질 하면서 여러분의 소식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아무리 일본이라지만 국내 팬보다 해외 팬이 더 많다니요! 심지어 일본 사람은 별로 보이지도 않아요! 여기가 지금 미국이나 유럽인가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전부터 전업 너튜버로 활동 중인 그녀는 디엠의 인기를 실감하면서 매우 흥분했다.
“제가 다 뿌듯하네요! 1군도 아니고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디엠이 이렇게 많은 팬을 동원할 수 있다니!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원래 더 많은 티켓이 팔릴 수 없었지만, 순식간에 매진되어 버려서 현지인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인지 암표가 100만 원에 팔린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고 뉴스에도 나왔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디엠이 누군데?
-몰라. 근데 되게 유명한가 봐.
정작 한국에선 1군이 아닌데도 해외 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이건 고도의 마케팅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너튜버나 SNS 인플루언서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 또한 주최 측에서 다 허락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이들이 전하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고, 관심 없던 사람도 커뮤니티의 게시글 같은 걸 보면서 ‘이게 뭔데?’ 하고 흘러들었다.
공연 30분 전.
대기실엔 수십 명의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리허설을 했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심장을 괴롭혔고 밖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용광로 같았다.
“괜찮아요, 형?”
영웅이 진성에게 물었다.
“그럼. 안 괜찮을 이유가 없잖아.”
진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큰 무대는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그 부담감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이럴수록 진성은 알았다. 누군가 한 명쯤은 흔들리지 않고 버텨 주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이고 가장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든든하네요.”
영웅도 그걸 느꼈기에 웃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모두 이런 자리에 올 거라곤 꿈조차 꿔 본 적 없었다. 나도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겠지만 그게 실제로 이뤄질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커 버린 거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한 사람 덕분이란 걸 모두가 알았다.
“전에 형님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어.”
진성이 다들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실패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잖아. 1등은 한 자리뿐이니까. 상위권이라고 해도 10자리쯤 있으려나? 근데 그 밑으론 수천수만이 깔려 있어. 그렇다고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거지. 오늘 이후로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나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뭐, 어쩌겠어? 여기까지 왔는데.”
살다 보면 쉬운 길도 있고 가시밭길도 있다. 그런데 그 험난한 길도 일단 걸어 봐야 내겐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요! 주저앉을 순 없잖아요!”
영웅이 맞춰 주자 진성이 씨익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모여 봐. 이럴 때일수록 파이팅하자!”
“아자! 아자!”
“그래! 하자! 해!”
“으아아아!”
부담을 털어 내려는 듯 소릴 치는 동생들을 보면서 진성이 옆을 보는데 민 팀장이 다가왔다. 그녀도 감정이 격한지 눈시울이 붉었다. 내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렇겠지?
“가서 다 쏟아 내고 와.”
대답 없이 웃는 진성을 민 팀장이 꼭 안아 주었다.
-10분 전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디엠이 문으로 향했다. 둥둥둥! 멀리서 북소리 같은 게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만 낼 수 있는 진동이었다.
무대 뒤에서 진성이 뒤를 돌아봤다. 같이 고생해 온 동생들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이제 곧 조명이 꺼지면 첫 곡을 시작으로 쇼케이스가 시작된다. 팬들과의 인사는 노래가 끝난 직후다.
‘이상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얼핏 보이는 붉은 커튼 밖으론 수많은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떨리지 않았다. 마치 오늘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즐겁다.
파앗-!
불이 꺼졌다.
“가자.”
진성이 나지막이 말하곤 앞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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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눈 깜빡할 새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디엠의 쇼케이스는 거짓말처럼 큰 반응을 보였고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관심이 많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계속 행사가 밀려들었지만 그걸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굵직한 북미 행사가 잡히고 있었고 ‘어쩌면 이러다가 빌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 갔다.
재미있는 건 아직도 한국 차트를 점령하거나 음방 1위를 한 게 아니었지만, SNS나 여러 경로를 통해 퍼져 나가서 이제 디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경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투자했던 게임들이 출시할 때마다 홈런을 때리고 있고 영화도 개봉되자마자 30개국 이상에 판매가 되었다. 이 시점부터 나는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를 정도로 바빠졌는데 갑자기 사무실 불이 꺼지자 반사적으로 문을 봤고 거기엔 예진과 진성, 민 팀장과 모두가 모여 케이크를 들고 나를 봤다.
“해피 뉴 이어!”
“축하합니다! 대표님!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
빵- 빵-!
작은 폭죽도 터졌다.
“허얼…… 진짜야?”
TV라도 봤으면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말해 줬겠지만, 원고 작업 때문에 며칠 집중했더니 해가 바뀐 줄도 몰랐다.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세요.”
예진의 말에 나는 일어나서 촛불부터 껐다.
“와아아아아!”
“모두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진성이 포크를 건네줬다.
“드셔보세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케이크도 만들 줄 알아?”
하긴 얘가 뭔들.
“맛있네.”
조금 떠서 먹고 엄지를 척 올려 줬다. 빈말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그 맛있는 생크림 맛이었다.
“그간 저희가 뭐라도 해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도 없고 시간도 없었잖아요.”
예진이 품에서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그냥 마음을 조금씩 담았어요.”
“엥? 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얇은데?”
“돈은 이미 많으시잖아요!”
농담을 주고받으며 봉투를 받았다.
“지금 봐도 돼?”
“네…….”
부끄러운지 몇 사람이 얼굴을 돌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었다. 학교 다닐 때 학년 바꾸기 전에 이런 걸 했던 것 같은데…….
“고마워, 내가 더.”
직접 한 마디씩 쓴 건지 필체가 모두 달랐다. 그렇지만 그 짤막한 글자들 속엔 말로 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형님, 설마 우는 거 아니죠?”
진성의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실망해서 그래. 돈인 줄 알았거든. 백지수표라도 든 줄.”
“와, 형님 진짜 욕심 많으시네. 며칠 전에 보고받으셨잖아요! 몇 년 안에 형님이 얼마나 큰돈을 버실지! 그 게임들! 초대박 조짐이라면서요!”
“너희가 더 대박이지. 요즘 누가 음반을 100만 장 팔아.”
그랬다. 다 음원으로 대체되어서 CD는 사장되고 있는 시장이었는데 어이없게도 아직 북미나 유럽에선 CD를 사 준다. 그 덕분에 디엠은 몇십 년 만에 한국에서 100만 장 이상 음반을 판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는데 이건 현재진행형이라서 얼마나 더 기록을 갱신할지 아무도 몰랐다.
“자 자, 우리 다 부자 되고 있다는 건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만하시고요.”
민 팀장이 웃으며 중재했다.
“내일 일정 지장 가지 않게 가볍게 파티하고 흩어집시다!”
맥주와 음료가 테이블에 깔리자 다들 하나씩 집어 들었다.
“후…….”
예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진성이 물었다.
“왜 그래, 좋은 날에?”
“바로 엊그제 너희 쇼케이스를 본 것 같은데 벌써 또 일 년이 이렇게 가는 게 믿기지 않아서.”
“원래 좋을 땐 시간 금방 가. 내가 군대에 있을 때가 딱 그랬거든. 한두 달 있었나? 체감상 그랬는데 벌써 전역이야.”
허, 저게 뭔 말이야. 쟤는 진짜 국방부에서 상 줘야 한다.
“그런 건가.”
“그런 거야. 그러니까 그냥 즐겨.”
예진을 보는 진성의 눈가엔 한없이 따듯함만 감돌았다. 예진도 그걸 안다.
“이 대표님도 같이했으면 좋았을 건데.”
예진과 이사라는 부쩍 친해졌다. 하지만 이사라는 공멸의 칼이 한국과 일본도 모자라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칠 조짐이 보이자 각국을 돌며 홍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오늘도 어딘가에서 나처럼 해가 바뀌는 줄도 모르고 일하고 있을 거다.
‘아차.’
그러고 보니 내 여자 친구를 깜빡 잊고 있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연락했었지? 이러다 차여도 할 말 없겠는데?
“나, 잠깐만.”
복도에 나가서 10분쯤 통화를 하고 돌아왔는데 민 팀장이 외쳤다.
“자 자! 이제 막잔하고 해산! 너희, 4시간 후에 비행기 타야 하는 거 아는 거지?”
“와, 오랜만에 푹 잘 수 있겠네!”
“그러게.”
“난 비행기 좋아.”
얼마나 바빴으면 비행기 쪽잠을 반가워할까. 그러나 얘들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올해도 미쳐 보자!”
“안녕히 주무세요!”
“잘 다녀오고!”
“도착하면 전화해!”
다들 우르르 흩어지고 팀장들만 남았다. 내가 먼저 민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도 들어가세요. 같이 미국 가셔야 하는데.”
“그래야죠.”
조금 남은 맥주를 마저 비울 생각인 것 같아서 더 말하진 않았다.
“어?”
그러다가 예진이 내 책상에 수북이 쌓인 우편물과 서류를 보았다.
“이거 다 확인하셨어야 하는 것들인데요.”
“알아. 하던 것만 끝나면 보려고 했지.”
미안한 표정으로 목을 움츠리며 몇 개를 뒤적거려 보았다. 하지만 소설이 우선이었으니 이건 며칠 후에나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랬는데…….
“어? 이게 뭐야?”
다른 것들과 다른 봉투가 하나 눈에 띄었다.
‘경북북부……교도소?’
작가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