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5)
작가귀환-25화(25/250)
‘재능충이었지.’
11번은 상상력을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타고난 녀석이었다.
초반엔 다소 거칠었지만 몇 개월 만에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했다.
그때 녀석이 얼마를 벌었는진 모르겠지만, 다른 10명을 압도했다는 건 그만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예진이 말했다.
“계약서 꼼꼼하게 살펴보시고요. 저의와 계약하시면…….”
“하겠습니다! 무조건 할게요!”
11번은 예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계약서를 휘리릭 넘기더니 다 봤단다.
“그러면 저는 이제 뭘 해야 하나요?”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완결입니다. 첫 작은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작가님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세요. 꼭 하루 한 편이 아니라, 더 많이 쓰는 연습도 해 보시고요.”
“그래도 되나요? 그거만 하면 돼요?”
“지금 작가님께 필요한 건 경험입니다. 그건 누군가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요. 쉽게 말해서 작가님의 눈과 머리는 10레벨인데, 손이 1레벨이라서 제대로 구현되질 않는 거니까요.”
“넵! 메모리 작가님만 믿고 미친 듯이 써 볼게요! 감사합니다!”
내가 신경 쓰이는 부분은 11번의 안전이었다.
“오늘이라도 귀가하시면 작가의 말에 꼭 저희와 계약하셨다고 남겨 주세요. 그래야 여러 귀찮은 일을 피하실 수 있을 거예요.”
똥파리 같은 팀장 놈이 보라고 하는 것이지만, 11번이 내 작가가 된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킬 거다.
“그리고…… 필명도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언제 유명해지실지 모르는데, 똥망생은 그렇잖아요. 큰 무대에 서실지도 모르는데.”
“큰 무대요? 제,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될 겁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면요.”
11번이 계약서를 보물처럼 가슴에 안고 떠나갔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예진이 물었다.
“그렇게 잠재력이 큰 작가였어요?”
“지금은 본인도 모를 거야.”
“대표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겪어 봤으니까.”
“그러면 딱 보여요?”
“어느 정도는.”
“와, 저도 어서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래야 대표님 일을 하나라도 덜어 드릴 텐데요.”
“지금도 충분하고 넘쳐.”
빈말이 아니라 예진이 열 사람 몫을 해내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뭐가 그녀의 원동력이 되어 이렇게까지 하는진 모르겠지만, 행시 준비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밝아진 걸 보면 뿌듯하긴 했다.
“아참, 예진아. 계약하신 작가님들, 적어도 3일에 한 번씩은 전화해서 안부 여쭤봐.”
“그럴게요. 남자 작가들은 제가, 여자 작가들은 진성이가 하면 더 좋겠죠?”
“좋은 생각이야.”
작가는 외롭다. 홀로 글을 쓰는 작업도 고되고 방구석에서 모니터로만 이성을 만날 확률이 높다. 그런 작가들에게 목소릴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될 것이었고, ‘안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일은 따로 적어 두고 뭐라도 챙겨 드리고. 월별로 정리하면 좋을 거야.”
“작가님들이 좋아하시겠어요.”
“그 정도 권리는 누릴 자격이 있는 분들이니까.”
아직 시장이 크지 않아서 사회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지만, 10년이면 세상이 바뀐다. 내가 그걸 조금 더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물은 뭐로 할까요? 아무래도 성적이 좋은 분들은 따로 한우라도 보내 드려야겠죠?”
“아니, 일괄적으로 해야지.”
“똑같은 거로요?”
“작가에게 중요한 건 자존감이거든. 100명이 보든 1,000명이 보든 어떤 독자에게는 그 작품이 최고가 될 수도 있는데, 매출로만 가치를 평가하면 안 되는 거잖아.”
“왜 대표님 얘기처럼 들릴까요? 대표님은 처음부터 1등이셨는데요.”
“…….”
나는 그저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세상에서 나는 망생이 아니라 완생으로 보일 테니까.
“1등 했다고 한우 주고 꼴등 했다고 치약 주고 그러진 말자. 모두에겐 똑같이 행복해야 할 날이니까.”
8월 15일.
곤륜귀환과 무한환생의 완결이 있는 달이자 7월의 정산금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144,001,943원.
이제 명실상부 월 1억 작가가 되었다.
‘조폭집 막내아들도 이달 말엔 유료로 넘어갈 수 있겠어.’
한 작품에만 집중하니 비축분은 계속 쌓이고 있었고 이번에도 유료 첫날 10편 정도는 쉽게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타다닥.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내 루틴은 오전 8시부터 시작한다.
어제 쓴 글에 문제가 없는지 훑어본 뒤 한 편쯤 쓰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시 이어서 저녁까지 달린다.
이러면 5~7편이 모이는데, 야간엔 투고 원고도 보고 연재란도 뒤지면서 예전 동료를 찾아다녔다.
‘11번도 찾았으니까 더 꼼꼼하게 훑어야 돼.’
지극히도 단조롭고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회사는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
웹툰 2팀과 3팀 미팅이 오늘 저녁에 잡혔다. 인원이 꽤 많을 예정이라서 호프집을 통째로 빌렸다.
잠깐 시간이 떠서 예진이 보내 준 댓글 모음을 봤다.
-와, 이건 드라마로 봐야 하는데!
-드라마 만들어 주세요!
-드라마 가자!
‘드라마라…….’
그게 이 시대에 가능할까? 웹툰이야 영화가 되고 하겠지만 웹소설은 아직 이를 거다. 무엇보다 영상 쪽에선 아직 우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을 것이다.
‘OTT가 시작되기 전엔 위험하긴 하지.’
무엇보다 제작비 회수가 부담으로 작용할 거라서 모험을 할 제작사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웹툰부터 집중하고…….’
혹시 알아? 나중에 코인 터져서 돈이 철철 흘러넘치면 내가 직접 제작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이렇게 몰입감 있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재미만 이어 가 주세요! 끝까지 따라갑니다!
-자네, 신작 또 해 볼 생각 없나? 내, 돈은 기꺼이 준비했다네!
-작가님! 사랑합니다!
호프집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만화가 이대수입니다.”
“만화가 장호민입니다.”
10명의 작가가 한 사람씩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댕댕이에요.”
“기뉴84입니다.”
여성 작가도 절반이나 되었다.
‘예쁘다.’
‘저렇게 예쁜 작가도 있구나.’
남자들의 시선이 댕댕이에게로 쏠릴 때, 정작 여자들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었다.
“진성 씨, 진국 씨……. 왜 거기 서 계시는 거예요? 사람 불편하게.”
예진이 애써 웃으며 최대한 좋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진성은 뒷짐을 지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경호 업무 중입니다. 중요한 회의 자료가 유출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진지할 거면 슬리퍼 대신 운동화라도 신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머리는 감고 온 거지?
“……진국 씨, 보드판 이쪽으로 옮겨 주세요.”
“네! 맡겨 주십시오!”
TV를 보드판이 가리며 모두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서 예진이 설명했다.
우리야 이제 웹툰 팀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대강 알지만, 이들은 생소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아직은 작가 혼자서 어시 몇 명 직접 고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주간 연재를 혼자 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희 메멘토모리는 작가님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철저한 분업화로 작가님의 물리적인 고통과 시간을 줄여 드리고자 합니다. 무한환생과 조폭집 막내아들의 웹툰화에 참여하시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웹툰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이 흥행하지 못해도 선인세는 계속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합니다.”
“마감 기한을 못 지키면 어떻게 되나요?”
“천재지변이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그것은 작가님이 책임지셔야 할 부분입니다.”
“작품 퀄리티는 누가 판단하나요?”
“일차적으론 작가님들의 프라이드에 맡기긴 하나, 심하게 날림으로 했다고 여겨지면 팀장이 개입합니다.”
이렇게 1시간쯤 지났나? 궁금한 것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지 분위기가 풀어졌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시고, 마음껏 드시길 바랍니다!”
작가님들 모두 작품 참여에 긍정적이었기에 맥주 파티로 이어졌다.
처음엔 눈치만 보던 작가들도 술이 들어가니 용기도 생기고 웃음도 자주 터졌다.
‘혹시나 했었는데…….’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웹툰 팀이라고 해서 모른 척할 생각은 없었다. 10년간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36명은 모두 작가였고, 그게 글이든 그림이든 상관없이 동료였다.
아, 13번은 빼고.
“전 조폭집 막내아들 매일 챙겨 보고 있었어요. 판타지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니까요?”
“무한환생도 재미있어요! 제가 원작을 잘 살릴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하고요.”
작가들을 모아 놨더니 작품 이야기만 하고 있다.
작화가 이대수가 맥주잔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댕댕이 작가가 그 뒤를 수줍은 얼굴로 따르고 있었다.
“작가님, 아니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앉아도 되겠습니까?”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당연하죠.”
진성과 진국이 여성 작가들 테이블로 끌려가 버려서 나는 예진과 둘이 앉아 있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네요. 만화만 20년을 했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팀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은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내가 알던 그 시대에도 웹툰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측정조차 안 됐다.
“오늘 보면서, 재미있는 원작을 쓰시는 작가님으로서도, 추진력 있게 사업을 진행하시는 대표님으로서도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저…… 혹시요.”
댕댕이 작가가 물었다.
“작업실도 있다고 하던데, 입주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거 아닙니다. 그냥 단칸방이에요, 하하!”
“괜찮아요! 제가 사정이 있어서 다음 달까지 이사를 해야 했거든요. 당분간만 머물 수 있게 해 주시면…….”
대답은 예진이 했다.
“지금은 여성 호실 공실이 없긴 한데, 이달 말에 하나 나오거든요. 그때라면 괜찮아요.”
302호 아주머니가 고향으로 내려가신단 말은 얼핏 들었다.
“와! 감사합니다! 오래 신세 지진 않을게요!”
일본에서 드래곤 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대작을 남긴 만화가들은 큰돈을 벌어서 떵떵거리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만화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고, 다수는 꿈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 응어리가 터지기까지 앞으로 10년.
‘그렇게까지 걸리진 않을 거야.’
내가 해서 성공하면 남들도 따라 할 거다. 지금도 곤륜귀환의 회귀가, 무한환생의 코드가, 조폭집 막내아들의 클리셰가 여러 작가들의 손에서 재창조되고 있었다.
회빙환이 익숙해지면? 바야흐로 웹소설 격변의 시대가 온다.
‘가끔은 이렇게 작가들하고 모이니까 좋네.’
예진이와 진성이도 가족이나 다름없지만, 작가니까 이해할 수 있는 말과 공감대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치킨도 먹고 맥주도 하니 7번 작가 얼굴이 아른거렸다.
‘취했나.’
이제 슬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예진에게 눈짓을 했다.
‘마무리 부탁해.’
‘네! 대표님! 쉬세요! 제가 잘 정리할게요!’
천군만마 따위 없어도 난 예진이만 있으면 된다.
슬쩍 일어나서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목소리가 오싹하게 들려왔다.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