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250)
작가귀환-250화 (완결)(250/250)
250화 완결
서울로 돌아와서 사무실 건물을 보니 평온이 찾아왔다.
그래, 무려 이 건물이 내 거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건물주이자 메멘토모리라는 이름도 널리 알렸다. 나는 행복하고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삶의 질을 올리는 데 좋다. 내가 불행할 이유가 없지 않나?
“안녕하세요.”
“어이쿠, 대표님! 안녕하세요!”
경비 아저씨와도 곧잘 인사를 나눈다. 로비에 들어서자 데스크에서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들은 모두 내 사람이다.
-거기 서! 서란 말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떠나는 나를 보며 미친 사람처럼 굴던 그놈의 모습이 생각났다.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 내 복수극은 끝났지만, 인생은 시작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국내에서 끝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최소 7년의 미래를 알고 있는데 그 정도도 안 하면 직무 유기다.
“잘 다녀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는지 예진이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응.”
“뭐래요, 그 사람이?”
“그냥 별일 아니었어.”
그렇다. 이제 내게 그놈은 딱 별거 아닌 정도였다. 후련하게 털어 버리고 나니 묵은 때라도 벗겨 낸 것처럼 시원했다.
“작가님들 와 계세요.”
“왜?”
“새해라고 인사드리고 싶었나 봐요.”
“아.”
사무실로 올라가니 애착 작가들이 전부 와 있었다. 과일 바구니도 보이고 꽃도 있었다.
“뭘 이런 걸 다.”
웃으며 말하자 그들도 저 꽃처럼 환하게 미소 지었는데 하나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그놈과 겹쳐 보였다.
-그 여자지? 그 여자!
그놈의 7번과 내 7번이 똑같았던 것 같다. 반응을 보면 그놈 역시 그 여자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이건 우연이겠지만 운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연락도 없이.”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어요!”
다른 작가들도 실실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이들은 각자의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당장 올해는 아니어도 몇 년이면 모두 상위권에 오를 것이다. 소설을 써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건 꿈을 이룬 것과 같았다. 그 만족도는 일반 직업군과 사뭇 달랐다.
예진이 옆에서 과일 바구니를 잡았다.
“깎아 올게요.”
“고마워.”
“의자도 더 필요하겠네요.”
예진이 밖으로 나가자 작가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서 떠들었다.
“대표님, 차기작은 언제 나와요?”
이명한이 물었다. 사실 《작가귀환》을 끝으로 신작은 안 하고 있었다. 끝낼 작품이 많기도 했었고 회사 일도 바빴으며 팀장 그놈의 결말을 보느라 그랬다. 쓸 건 많은데 ‘이거다!’ 하고 확 당기는 게 없었던 것도 미룬 이유 중 하나였다.
대답 대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참 많기도 하다. 2년도 안 된 시간에 나는 이들을 찾았고 응원했으며 교류했다. 새삼스럽게 뿌듯해도 되나?
내가 말없이 보자 신도림 작가가 말했다.
“대표님.”
그녀가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옆에서 김철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 올가을에 결혼할 건데 주례 서 주시겠어요?”
“헉…….”
“결혼이라고요?”
“어머나! 축하해요!”
“이렇게 일찍?”
마지막 말은 내가 했다.
“네, 할머니가…… 원하세요. 당신 가기 전에 손주는 보고 싶다고.”
“아…….”
그런데 이렇게 젊은 사람이 주례를 서도 되나?
“제가 살면서 가족 빼면 가장 고마운 사람이 대표님이거든요. 대표님이 꼭 해 주셨으면 해서요.”
“나야…… 영광인데…….”
김철수를 보니까 이미 얘긴 끝난 것 같다.
“학교는?”
저 녀석은 아직 대학생 아니었나?
“휴학하려고요. 별 의미 없잖아요. 학벌은…….”
하긴 녀석의 작품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웹툰까지 잘나가면서 수입이 쭉쭉 늘고 있었다. 둘이 합치면 연 2억은 넘어가니 신혼 생활도 문젠 없겠지.
“와! 뭐 필요한 거 없어?”
이명한이 외치자 김철수가 짓궂게 웃었다.
“정말요?”
“그럼! 형이 딱 하나만 해 줄게!”
“그러면 신혼여행이요.”
“헉…… 그, 그건 좀 비싸지 않나?”
“해 준다면서요!”
“아니, 나는 세탁기나 뭐 그런……. 그리고 네가 나보다 잘 벌잖아! 염치도 없냐!”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하하! 그건 제가 해 드릴게요.”
공식적인 자리에선 존대를 하고 있지만 사석에선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이 우리 회사에 벌어 준 돈이 얼만데 그 정돈 못 할까?
“어디 가고 싶어요?”
두 사람을 보며 묻자 김철수가 크게 웃었다.
“농담이에요. 명한이 형이 떵떵거리니까 그냥 해 본 말이었어요. 그리고 이미 할머니 모시고 제주도 가기로 했어요. 더 멀리 떠나는 건 부담이라서.”
이 두 사람 마음 씀씀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는다.
예진이 접시를 들고 왔다.
“어라? 언제 왔어? 아니, 설마 안 갔어?”
그런데 진성이 의자를 들고 있다.
“아까 아침에요.”
“허얼…… 너만?”
“네, 이따가 다시 나갈 거예요.”
“왜?”
“그냥요.”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하는 디엠이었는데 이놈은 왜 여기 있는 거냐?
내가 황당하게 바라보자 예진도 못 말리겠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떡국 끓이러 왔대요.”
“……그게 무슨…….”
“하하하!”
크게 웃는 진성이를 보는데 예진이 접시를 내려놓고 진성의 팔을 잡고 질질 끌었다.
“형님, 이따가 잠깐 들를게요! 작가님들! 나중에 또 봬요!”
쟨 설마 예진이 보려고 12시간씩 왔다 갔다 하는 거냐? 분명 엊그제 갔잖아!
“무슨 놈의 체력이…….”
분명 그것만으로 될 일은 아닐 거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언젠가 예진에게 닿는 날이 오겠지.
“와…….”
하나가 문가를 보며 멍하니 있자 내가 물었다.
“왜?”
“그냥 신기해서요. 요즘 엄청 잘나가시잖아요.”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뭘.”
“그니까 더 신기해요. 내가 아는 사람이 세계적인 아이돌이라니!”
그러게. 나도 진성이가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다.
과일도 먹고 웃고 떠들다가 모두가 떠났다. 하나와는 내일 따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보냈다.
교도소에 다녀와서일까? 왠지 혼자 있고 싶다.
지이이이잉.
“에잉.”
잠시도 가만두질 않는다.
“정현웁니다.”
-알아요.
“하, 왜 또 삐뚤어졌습니까?”
이사라는 예진이와 다른 쪽으로 편한 여자였다. 진짜 여사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성이기도 했다.
-코가 삐뚤어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요.
“술 좀 줄이세요. 오래 사셔야죠.”
-이 정돈 끄떡없거든요? 그래서 언제 볼 건데요?
“사업으로요? 아니면 닭발이요?”
-둘 다요!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다음 주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한국 들어오셨어요?”
-아니요.
“하, 그러면서 뭘…….”
-그러니까 미리 약속 잡는 거잖아요! 향수병 도졌다고요! 닭발 줘요! 소주도요!
“소주는 일본에도 있을 건데요…….”
-이게 그게 아니라고요! 융프라우에서 컵라면 먹어 봤어요?
“그게 어딥니까.”
-어쨌든 장소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딱 기다리고 계세요! 최대한 금방 갈 테니까!
“아, 네…….”
뭔가 그냥 심심해서 걸었던 건가? 중요한 애기는 아니었나 보다.
‘하긴 이런 게 친구겠지.’
딱히 용무가 없어도 전화할 수 있는 사이. 학창 시절엔 당연했던 것이었지만 점차 나이를 먹어갈수록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된다.
“…….”
고요해지자 모니터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나한텐 이게 쉬는 거다. 눈을 감으면 잠들어 버릴 것 같아서 보곤 있지만, 시각 정보는 입력되지 않는다.
-대표님, 차기작은 언제 나와요?
이명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음…….”
이제 소설 써서 버는 수익보다 내 회사가 굴러가며 내는 매출이 더 커 버렸다. 전엔 돈 벌려고 썼다면 이젠 순수하게 내 마음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작가가 경제적으로 해방되면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이제 무얼 써야 할 것인가.
웹소설은 수익과 흥행이 가장 중요한 척도다. 많은 이들이 읽어 줘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그게 웹툰이나 드라마로 뻗어 갈 확률도 높다. 나만 만족해서 쓰는 건 일기나 다름없지 않나? 철학이나 예술을 담아서 노벨문학상 탈 것도 아닌데.
“후…….”
등을 기대고 더 편한 자세를 해 보았다.
똑똑. 소리에 몸을 일으켰는데 차 팀장이 들어왔다.
“오셨단 얘길 들었습니다.”
“네.”
“잠깐 괜찮을까요?”
“그럼요. 앉으세요.”
그가 내 안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피곤하신 것 같으니 짧게 하겠습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괜찮아요. 그냥 생각 중이었어요, 차기작 뭐 할지.”
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전에 업무차 글세상에 들어갔다가 왔습니다. 마침 윤상섭 이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는데 재미있는 얘길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놈에 관한 것이었다.
“시한부로 병원 생활을 하던 작가를 두 사람이 담당했었다고 하는데 한 달에 10권을 쓰면서 죽어 가던 그걸 보고 아무래도 남다른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 생명력을 태워서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하겠는데 반대로 ‘아, 사람이 이 정돈 하는구나. 아픈 사람이 이만큼 하면 건강한 사람은 더 할 수 있겠지?’ 대충 아시겠죠?”
그놈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평소에 작가들에게 많이 시달렸던 모양이에요. 출판사 직원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음.”
“안타깝더라고요, 서로 도와야 할 관계인데 그런 괴물이 태어난 걸 보면. 윤 이사도 무척 놀랐다고 해요. 상상도 못 했던 거겠죠, 그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을 줄은.”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모든 의문마저 풀리자 이젠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차 팀장이 나가자 나는 다시 고요에 삼켜졌다.
“후우…….”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것이 고작 한 인간의 삐뚤어진 마음 때문이었다니.
“…….”
문득 내가 뭘 해야 할지 알았다. 이건 돈도 명예도 예술적인 무언가도 아니었다. 오직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나 혼자 힘을 숨김》
300회를 구상하면서 썼던 소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그마저도 250화로 줄였는데 결국 끝마치지 못했었다.
물론 이걸 다시 써도 그때처럼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작품이라고 해도 5,000글자 한 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쓸 순 없는 일이다.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그러면서 이 소설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놈처럼 엇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거창하게 계몽하려는 것은 아니다. 설교를 늘어놓지도 않을 거다. 그저 권선징악을 뿌리로 해서 가장 멋있는 게 무엇인지,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화끈하게 보여 주자.
‘내 첫 인생작이었던 작품.’
이 소설을 쓰고자 10년이 걸렸고 다시 2년의 세월이 지난 후 잡았다.
나는 그때보다 성숙했을까?
차분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톡톡, 건드리는 손길에 내 분신은 재깍 답해 주었다.
‘시작은 간결하게.’
한번 아홉 권 넘게 썼던 소설이었기에 스토리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캐릭터도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떨어지는 글자들이 여백에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그때 분명히 무슨 소릴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과거로 온 그 순간. 그건 착각이었을까?
[제대로 된 완결을 보게 된 당신의 독자가 흡족해합니다.]《작가귀환》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