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eturn RAW novel - Chapter (70)
작가귀환-70화(70/250)
사람의 꿈은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자신이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기도 가 보자! 으와! 대박 사건! 도서관이 있어!”
“야! 안 돼! 늦었다고!”
버스터미널 지하도. 여고생들은 정신이 없었다. 특히 혜리는 서울이 처음이어서 모든 것이 신기했다.
“히잉, 이것만 보고! 응?”
“늦었다니까!”
둘은 교복을 입었고 등에 기타를 멨다. 일요일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건 여고생임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방송국에 도착했는데, 이미 예선을 보기 위한 장사진이 그녀들 앞에 펼쳐지고 있었고. 갑자기 위축되는 걸 피할 순 없었다.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 마. 촌에서 온 거 티 나잖아.”
“뭐 어때?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저 사람, 노래 정말 잘한다. 그치?”
혜리와 미애는 초등학생 때부터 단짝이었다. 전교생이 얼마 안 되어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도 했지만, 음악이란 취미가 같아서 곧잘 어울렸다.
고1.
공부에 한창일 나이였지만 그녀들의 관심사는 오직 음악이었다. 성격이 정반대라서 항상 티격태격하긴 했어도 음악엔 늘 진지했다.
“응, 성량이 좋다. 저 사람이 내 곡 후렴 코러스 해 주면 딱이겠는걸.”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맞아! 그거!”
“예뻐서 더 분위기 나겠다.”
“전혀 아닌데? 어디가 예뻐?”
“왜? 저 정도면 좋지.”
“객관적으로 우리가 더 나아.”
백발로 탈색한 여자를 보며 두 사람이 키득거렸다.
더 퀸의 예선전은 이틀간 진행했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서 각 팀에 주어진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삼천 명 넘게 지원했다면서?
-우린 그 경쟁을 뚫은 거네?
-이제 진짜 시작이지.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더 퀸’ 공개 오디션은 시작도 하기 전에 광고부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금 1억 원!
무조건 데뷔!
-당신의 꿈에 도전하세요.
메멘토모리와 JJ엔터가 공동으로 투자하는 걸 그룹 프로젝트는 모든 소녀들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다들 장난 아니다. 우리 꼴찌 하는 거 아니야?”
혜리는 늘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애였다. 눈치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해서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전자인 것 같다고 생각한 미애가 말했다.
“탑200 안에 든 거잖아. 꼴찌면 어때, 여기까지 왔다는 게 중요한 거지.”
“맞아. 맞아! 연습하자!”
“갑자기?”
“응!”
그녀들의 차례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한 팀에 5분이어도 1시간이면 10팀 언저리다. 하루 100팀을 심사하려면 방송국 사람들도 고생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들이 기타를 조율했다.
“너, 가수 되면 뭐 할 거야?”
미애가 물었다.
“너는?”
혜리가 되물었다.
“엄마한테 아파트 사 줄 거야. 허리도 안 좋으면서 마당 풀 뽑는 거 보기 싫어.”
“그럼 나도 그럴래.”
“따라 하기 없기면?”
“미국 가서 노래 부르기?”
“엥? 그게 뭐야?”
“우리 말 안 쓰는 사람들 앞에서도 내가 노래할 때 좋은지 알아보고 싶어.”
“팝송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
“다르거든!”
뭐가 다른진 모르겠지만 미애는 가사를 점검했다. 이미 수천, 수만 번 확인했지만 이런 큰 무대는 처음이라서 자꾸만 긴장됐다.
그래서 또 혜리에게 말했다.
“한 시간 정도면 우리야.”
“응.”
“안 떨려?”
“왜 떨어?”
“그게 정상이거든!”
“내가 정상일 수도?”
“어휴.”
혜리는 강심장이다. 반대로 미애는 생각이 많았다.
“우리 두 사람 중에 한 명만 붙으면 어떡하지?”
미애의 질문에 혜리는 거침없었다.
“네가 그 상황이라면 꼭 해. 너라도 잘돼야지. 둘 다 망하는 건 슬퍼.”
“혜리, 니가 붙으면?”
“난 안 해.”
“왜!”
“너 없으면 재미없어.”
“하…….”
덕분에 긴장이 풀렸는지 미애는 다른 참가자를 둘러보았다. 모두 경쟁자이자 동료였다. 오디션이 어떻게 진행될진 모르겠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혜리를 보았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도 여기선 무조건 잘하자.”
“당근이지!”
이윽고 두 사람 차례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복도에서 방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카메라가 먼저 보였고, 반대편에 앉은 열댓 명이 있었다.
“우와! 우와!”
미애가 허리를 꼬집지 않았으면 ‘연예인이다!’ 외쳤을지도 모를 혜리였다.
심사석의 다섯은 유명한 가수들이었다.
‘꿈이 아니야.’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연예인은 TV로만 봐 왔다.
나른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심사석 그들을 향해 미애가 외쳤다.
“잘 부탁합니다!”
혜리가 옆에서 외쳤다.
“저도요!”
귀여웠나? 저쪽에서 웃음기 밴 저음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읍에서 오셨다고요?”
“네!”
“정읍에 삽니다!”
말을 한 남자는 무척 젊었지만 미애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자작곡으로 출전하셨고요.”
“네! 제가 작사, 작곡했습니다!”
“저는 노래합니다!”
혜리는 기이한 매력이 있었다. 미애는 그게 늘 부러우면서도 부끄러웠다. 지금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있을 땐 혜리를 이상한 애로 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밝고 맑아서 좋네요.”
좋다고? 미애가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보았다. 그의 말에 옆에서 호응했다.
“순수함과 여고생 이미지는 늘 통하죠.”
“대표님 안목이 또 우릴 놀라게 하나요?”
“기대해도 좋다는 뜻이죠?”
마치 저 대표란 사람에게 여러 번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심사석 사람들이 말했다.
그게 신기하면서도 대표란 사람이 누구길래 저렇게 젊은데 존재감을 뿜어낼까 호기심이 생겼다.
“들어 보죠.”
대표의 말에 주변이 고요해졌고, 미애는 옆을 보며 혜리와 눈을 맞췄다.
‘할게.’
‘응!’
미애의 기타가 완벽한 박자로 음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미애도 노랠 곧잘 하지만 언제 자신이 나서야 할 타이밍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혜리다.
“왜 그럴까 봄이 설레는 건.”
이미 ‘왜’에서 심사석 사람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혜리의 목소리는 단연코 100만에 하나다.
“네가 있어서겠지만.”
여고생의 풋풋한 감성과 혜리의 목소리는 입가에 단맛이 팍! 들어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제 미애의 차례다.
“아냐. 너무 빠른 건 싫어.”
미애의 음색은 평범했다. 그래서 더 혜리에게 필요했다. 밥이 있어야 김치도 계속 먹을 수 있다.
다시 혜리.
“왜 그럴까 여름이 설레는 건.”
여고생의 짝사랑을 표현한 가사와 그에 어울리는 멜로디는 그 시절의 싱그러움과 미숙함, 거기에서 오는 불완전한 감정을 소환했다.
“왜 그럴까 가을이 설레는 건.”
혜리는 고음도 잘한다. 그런데 음색이 워낙 특이해서 그게 고음인지도 잘 구분이 가질 않았다.
혜리는 어떤 노래도 부를 수 있지만, 그 어떤 사람도 혜리처럼은 부르지 못한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혜리가 클라이맥스로 고음을 길게 뽑자 미애가 저음으로 보조했다.
이 곡을 2년 내내 불렀다. 계속 다듬었고 자면서도 흥얼거렸다. 그렇게 완벽한 화음이 둘에게서 터져 나왔을 때, 사방에서 감탄하는 신음이 들려왔다.
그러다 문득 아까 그 대표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그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빙긋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 노랠 알고 있다는 듯한 저 표정은 뭐람? 보통 사람은 생소한 음악을 처음 들으면 반드시 나타나는 표정이 있는데 그조차 없었다.
아무튼 무대를 마무리해야 했다.
“왜 그럴까. 지금 우리는.”
“왜 그럴까. 지금 우리는.”
두 사람이 동시에 노랠 마쳤다.
오늘은 예선이라서 별도의 심사평은 없었다. 5분 안에 노래부터 교대까지 다 이뤄져야 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모두 대표 쪽을 바라보았다.
“굉장한데요?”
“이번에도 대표님이 맞히셨네요.”
“지금까지 본 참가자 중에선 최고였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할 때 다음 참가자가 준비하고 있었고 대표는 한마디 더 했다.
“이번에도 놀라실 것 같네요.”
***
이틀을 통째로 비워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연재분을 미리 써 두고 회사 일은 이동 간에 해결했다.
이틀 차 공개 오디션 예선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보세요. 다들 대표님 안목에 홀딱 반했죠?”
이사라가 동석했다.
“그저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200팀 중에서 대여섯 명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오늘이 아니었어도 몇 년 안에 어떤 팀에서든 데뷔했을 것이다.
“겸손하셔라. 그냥 저랑 강남에 돗자리 펼래요? 그게 더 쉽게 벌 것 같은데요.”
그건 진짜였지만 그러다간 제명에 못 죽지 않을까? 당장 대선부터 코로나 같은 사건까지 모든 걸 다 맞혀 버리면, 노스트라다무스의 현신이라 할 거다.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종교 단체까지 생길지도.
“몇몇 참가자 수준이 높아서 방송 자체론 흥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눈여겨본 참가자들 성향이 전혀 다르던데, 팀으로 합칠 수 있을까요?”
1등 뽑기 오디션이 아니라 걸 그룹을 염두에 두고 하는 거라서 이사라의 걱정이 이해는 가지만, 본래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하게 되어 있다.
“3주 후 본방이죠?”
말을 돌렸다.
“네. 어제오늘 것만으로도 분량은 충분할 것 같아요. 예능감 있는 친구들이 많았잖아요.”
연차가 쌓이면 예능도 하고 그러겠지만, 우리의 걸 그룹은 철저하게 동 세대의 우상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말했다.
“부탁드렸던 광고 건, 잘 좀 봐주십시오. 싸게 해 드리겠습니다.”
장난처럼 두 손 모아 빌었다. 이틀간 보고 나니까 벌써 우리 애들같이 느껴졌다. 특히 혜리는 가만히 놔둬도 내년쯤 혼자 오디션에 나가서 1등 할 애였다.
“이미지부터 쌓아 올리겠다, 이거죠?”
“무조건요.”
“우선 그 전에 저부터 살고요. 범죄의 도시, 제작 들어간다고 해요. 되겠죠?”
“무조건요.”
“손익분기점 넘으면 광고 줄게요.”
“얼마나 들어야 합니까?”
“마케팅 비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만은 들어야죠.”
100만이라. 범죄의 도시 1편이 정확히 얼마나 많은 관객이 찾았는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넘겠지?
하지만 그건 내년 일인데.
“다른 거 없습니까? 블랙잉크 데뷔가 올해 안엔 이뤄져야 하는데요.”
“서둘지 마요. 그러다가 죽도 밥도 안 돼요. 그렇게 뚝딱 걸 그룹 만들 수 있으면, 다른 엔터들이 왜 안 하겠어요?”
정확히 말하면 나처럼 못 하는 거다.
“오디션 열기가 식기 전에 해야 해서 그러는 겁니다. 대중은 금방 잊습니다.”
“쉽게 비난하기도 하죠.”
“바이럴도 노이즈도 마케팅이고요.”
“어휴, 무슨 남자가 한마디를 안 져요?”
“그게 제 매력입니다.”
“말이나 못하면!”
이사라가 웃더니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그 곡, 바로 써도 되겠던데요?”
미애, 혜리의 노래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 곡은 몇 년이나 차트에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히트곡이 된다.
더 놀라운 건 그 한 곡만이 아니라 혜리가 부르는 모든 곡이 그랬다는 거다.
“녹화는 2주에 한 번이라고 했죠?”
“벌써 지쳐요?”
“저는 방구석이 가장 편한 남자입니다.”
“누가 작가님 아니랄까 봐.”
“아시면 살려 주십시오.”
너스레에 이사라가 크게 웃었다.
“…….”
문득 생각나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일은 괜찮았습니까?”
“오빠요?”
“네.”
“아버지 귀에 들어갔대요.”
“허억……. 그래서요?”
이사라가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한번 데려오라시던데요.”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