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0)
너희들은 변호됐다-10화(10/641)
“이 아파트 방음이 잘 안 되나 봅니다.”
안내된 거실 테이블 앞에 앉으며 묻자, 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은 지 오래돼서. 가끔은 녹물도 나와요. 재건축 바라보고 사는 거지, 뭐. 어차피 안쪽은 인테리어 싹 하니까.”
“방음이 안 됐기 때문에 더욱 옆집 소음이 잘 들렸던 거고요?”
“그렇죠. 문 앞에서 얘기하면 윗집 아랫집까지 다 들리거든요.”
“그렇군요. 아, 이거 주스인데. 시원하게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아유, 뭘 이런 걸 다.”
주부는 주스 세트를 부엌으로 가져갔고, 곧 유리잔에 따라 가지고 나왔다.
기본적으로 친절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니 신고도 해 줬던 것이겠지.
“옆집 신고하던 날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한 3개월 전쯤인가? 그때부터 난리였죠, 아마.”
“난리요?”
“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난리도 아니었어요, 정말. 점점 뜸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최소 한 달에 한두 번은 난리였던 것 같아. 여희숙 씨 우는 소리 들리고, 젊은 남자가 소리 지르고, 김철환 씨는 말리다가 어구구, 어구구 죽는소리 내고.”
“무슨 내용인지는 들으셨습니까?”
“무슨 말인지까지 선명하게 들리진 않고, 그냥 아 저 집 몸싸움하는가 보다. 뭐, 이런 정도만 알죠.”
수첩에 짤막하게 메모하며, 나는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그럼 3개월 동안은 계속 무시하고 지내셨던 겁니까?”
“그랬죠.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 일이고. 그 집에 유명인 사는 거 다 아는데 섣불리 나설 수가 없잖아.”
“그렇겠죠. 그런데 그날은 왜 신고하셨습니까?”
“아이고, 사람 하나 죽겠다 싶더라고. 난장판이었어요. 아주 그냥. 깨지는 소리 나고, 그 집 부부 울고 하는 소리가 평소랑은 달랐어요. 그래서 큰일 나기 전에 신고해야겠다 싶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진실]이라는 글자를 보며, 김연준의 진술과 퍼즐을 맞춰 보았다.
김형준이 김연준이 올 때마다 부모를 폭행해서, 점점 집에 가지 않게 됐다는 말.
“그럼 3개월 전에는 어떠셨습니까?”
“그 전에는 막 죽는소리는 안 났지. 젊은 남자가 소리 지르는 것만 있었고. 그때가 전조였나 싶어요, 이제 와서 생각하면.”
주부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젊은 남자가 소리 지르는 건 언제부터였습니까?”
“그건 잘 기억 안 나지만, 옛날에는 막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자주 그랬어요. 새벽에도 그래서 우리 아저씨가 한마디 하고 온다고 씩씩댄 적도 있었다니까.”
정리해 보자.
김형준은 왜 김연준에게 헛돈을 쓰느냐며 윽박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김연준은 고시원으로 나가서 살았다.
그 이후, 김연준은 집에 들를 때마다 김형준이 부모를 폭행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김형준의 만행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것이다.
가정 폭력이라는 것이 원래 폭언으로 시작해서 폭행으로 이어진다고는 하지만, 이번 일의 경우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왜 하필 김연준이 들를 때마다 그랬을까.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이었다.
김연준을 입양한 게 가뜩이나 못마땅한 상태인데 김연준을 보니 더 열 받아서?
아니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김연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표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지만…….
“에휴, 참 이상한 일이죠. <행복한 우리 집>에 네 가족이 나와서 하하호호 웃은 게 며칠 전의 일인데.”
“행복한 우리 집이요?”
“네. 그 프로그램 모르세요? 그 왜, 연예인들 집 촬영하고 가족끼리 어떻게 하루 보내는지 나오고 그러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그게 며칠 전에 방영됐었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세상을 더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요인이 바로 그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행복한 우리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화목한 집안인 것처럼 웃던 그들이 며칠 뒤 존속 살해로 다시 전파를 탔으니…….
“아, 그랬죠.”
“정말 안 됐어요. 좋은 분들인데. 그리고 정말, 자기 배로 낳지는 않아도 키워 준 은혜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텔레비전에서 봤을 땐 인상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일단 말씀 감사합니다. 혹시 더 여쭤볼 게 있으면 한 번 더 방문드려도 될까요?”
“호호, 그럼요. 그런데 변호사님…….”
“네?”
“혹시 결혼은 아직이신가?”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한숨을 쉴 뻔했다.
“아니, 내가 딸이 있는데. 변호사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소개를 좀 해 주면 어떨까 하고.”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에이,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나. 우리 딸 사진 보여 줄까요? 되게 예뻐.”
기본적으로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라 나한테 호감이 있었던 거였다.
나는 그녀가 딸 사진을 가지러 간 사이에,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다.
다시는 이곳에 사건 관련해서 물어볼 게 없기를 바라면서.
‘지금 표면상으로 드러난 김형준의 범행 동기는 김연준에 대한 악감정. 질투 같은 건가?’
주차장으로 가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재판에서 김연준의 무죄를 입증하려면 진범을 가져다줘야 한다.
나는 김연준의 무죄 입증과 동시에, 김형준의 범행 사실을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김형준과 친인척들의 진술에 따라, 세간에는 김연준이 평소 부모가 친아들을 편애해서 부모를 죽였다고 알려져 있다.
즉, 진범이 김연준에게 씌운 프레임이 그것이라는 뜻.
그것은 역으로, 부모가 김연준을 편애하고 있다고 자신이 느꼈던 게 아닐까?
[김철환, 여희숙 부부의 집에서는 모두 함께 식사를 준비한다. 월수금, 평일에 세 번 정도는 저녁을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데. 메뉴는 모든 식구가 돌아가며 정한다고. 공부 때문에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연준 씨도, 사업으로 바쁜 형준 씨도 예외는 아니다.]사무실로 돌아와 <행복한 우리 집-김철환, 여희숙 부부 편>을 보았다.
방영된 것은 사건 발생 3일 전.
환절기인 지금 방영분의 계절감으로 보아서는, 2월 말에서 3월 초쯤 촬영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소 김형준이 지속적으로 부부를 폭행했다면, 촬영이 잦은 두 사람은 멍 같은 것을 가리는 분장을 자주 했을 듯한데…….
[여희숙 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카프. 오늘도 여지없이 착용하고 있다.-목에 스카프를 하고 계시네요?
-아, 이거요? 우리 연준이가 옛날에 처음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월급으로 사 준 거예요. 디자인도 예쁘고, 연준이 생각도 나고 해서 자주 착용해요.
멋들어진 스카프. 연준 씨의 센스가 돋보인다.]
검색해 본 결과, 여희숙이 방송에 스카프를 하고 나오기 시작한 것은 석 달 전부터다.
폴라 티를 입거나, 스카프를 착용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전에는 오히려 브이넥 티나 셔츠, 블라우스 등 넥 라인이 잘 보이는 옷을 주로 입었다.
아마 목에 상처가 나서 가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김연준이 준 스카프가 여희숙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그게 또 하필 김형준이 낸 흉터를 가리기 위한 도구.’
오히려 김형준이 김연준에게 질투를 느낄 만도 한 것 같은데.
일단 촬영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여보세요. 네, KBC죠? <행복한 우리 집> 부서로 연결 부탁드립니다.”
* * *
이틀 뒤 오후, 나는 KBC 방송국으로 향했다.
‘이럴 때 오 계장님이 계시면 좋을 텐데.’
오 계장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무장이라도 있으면 편할 것이다.
아직 사무실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 사람을 쓰기가 버거워서 문제지.
아니, 벌써부터 앓는 소리 하기엔 이르다.
일단 사건 해결부터.
“야, 이 씨발새끼야! 편집 이따위로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이 씹새끼가 방송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야, 이 새끼야! 너 짭밥을 얼마나 더 처먹어야 제대로 할래? 아오, 병신 같은 새끼.”
약속 장소인 편집실로 들어가려는데, 열린 문틈 너머에서 폭언이 들려왔다.
조금 놀라 잡으려던 문고리를 놓고, 창문으로 넘겨다 보았다.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남자의 어깨를 밀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만하시죠. 시정하겠습니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남자가 뒤돌아서자, 중년의 남자가 그의 손목을 비틀어 잡아당겼다.
“나 보고 똑바로 얘기해, 이 새끼야.”
“…….”
“이 부분, 빼라고, 했어, 안, 했어!”
한마디 할 때마다 머리를 툭툭 미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다.
저러다 따귀라도 치겠다 싶어,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크흠! 흠! 누구시죠?”
중년의 남자가 급히 표정을 바꾸며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목소리 톤을 듣자 하니, 나와 통화했던 감독 같다.
“어제 연락드렸던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아, 예. 저희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시다고.”
“네. 김철환 부부 편 촬영 당시에 대해서 자세하게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아, 뭐. 그러시죠. 저보다는 얘가 더 자세히 알 겁니다. 저희 조연출입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시면 이쪽에 물어보시죠.”
감독은 귀찮다는 듯이 나를 조연출에게 토스하며 편집실을 나가 버렸다.
편집실에 남은 조연출이 상기된 얼굴로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바쁘신 것 같으니 짧게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네.”
“촬영 준비하시면서 혹시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않으셨습니까?”
김형준이 미치지 않고서야 스태프들 보는 앞에서 부부를 폭행했을 리는 없으니, 거시적인 질문 먼저 시작해야 했다.
“이상한 점이라……. 이상하다기보단, 뭐, 사소한 건데요.”
“상관없습니다.”
“여희숙 씨가 방송에서는 당당한 여성상으로 비친 않습니까.”
“네, 그렇죠.”
“그런데 촬영 내내 많이 주눅 든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도 당당해 보이지 않았어요. 촬영 끊어 가자는 말씀도 많이 하셨고. 뭔가를 무서워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습이 좀 있었어요.”
“무서워한다고요?”
“네. 뭘 무서워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 테이크 끊을 때마다 촬영본을 보자고 하셨어요. 여희숙 씨가 방송활동을 많이 하시니까, 매니저도 있고 그랬는데. 그 매니저가 아무리 바빠도 꼭 확인해야 한다고 계속 사정해서 엄청 부담스러웠죠.”
자신이 김형준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을 염려한 걸까?
“메이크업하는 사람을 계속 불러다 놓고 쉴 때마다 메이크업을 고치셨는데, 그거야 뭐 그러는 사람 많으니까……. 근데 꼭 남들 없는 곳에서 고치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바쁘니까 그냥 앉은 자리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남은 폭행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계속 긴 팔을 입고 있었으니, 노출되는 부위야 얼굴이나 목, 기껏해야 손목 정도.
“지금 생각해 보면, 김연준이 여희숙 씨를 계속 폭행해 와서, 그것 때문에 흉 진 게 화면에 나올까 봐 그러신 것 같기도 해요.”
“그렇군요. 또 다른 점은요?”
“그리고 이건, 좀 사적인 부분이긴 하는데……. 김철환 씨가 집을 내놓으신 것 같았습니다.”
“집을요?”
“네. 부동산하고 통화하는 걸 얼핏 들었는데, 최대한 빨리 팔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손해 봐도 상관없다면서요. 그리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김형준 씨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길게 얘기를 하고 나오셨고요.”
“파신다는 집 위치가 어디죠?”
“그 본인이 사시는 그 집 같던데요? 도곡동.”
김철환은 연기 활동에만 전념하고, 여희숙은 대학 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다른 사업은 일절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도박에 미치지 않고서야 돈이 샐 일도 없고, 두 사람의 수입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부부가 내놓은 집은 재건축을 앞두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구형 아파트다.
최소한도로 잡더라도 매매가 20억 이상은 될 터.
큰돈이 필요하지 않고서는 급처할 리가 없다.
‘부동산하고 통화한 다음에 김형준과 따로 이야기했다고 했지.’
방송에서 김형준은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형준에게 돈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두 부부의 돈이 전부 김형준의 사업으로 흘러 들어 가고 있었다면?
김형준의 사업체에 문제가 있었고, 부부의 돈을 탐내 살해했다면?
‘범행 동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