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01)
너희들은 변호됐다-101화(101/641)
“……진짜 험한 말 하고 싶진 않은데요.”
강민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책상 모서리를 쥐었다.
“고진아, 정말……. 어마어마한 미친년이네요.”
처음 주민지의 가방에서 반지가 발견된 순간, 비디오 촬영을 지시한 것이 고진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하지만 그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지운 까닭은,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고상경이 짓이라고 생각했던 이유……. 아니, 정확히는 고상경이 이 일을 했어도 피해를 입지 않는 이유. 그리고 고진아가 정영준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그냥 이혼을 강행하려는 이유. 전부 여기에 끼워 맞춰도 말이 돼요.”
비디오 문제가 터지면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양진 그룹의 이미지와 주가 하락.
그것을 염려할 사람은 고상경 회장뿐만이 아니다.
고상경의 하나뿐인 자식, 양진 그룹의 상속녀 고진아에게도 충분히 고려할 만한 문제였다.
하지만 양진 그룹의 이미지는 정영준과 완전히 유리되어 희화화되지 않았다.
주가 하락 역시 실제로 발생하긴했지만, 24/7 편의점을 인수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상승세에 올랐다.
그렇다면, 그녀가 정영준이 억울하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협의 이혼으로 빠르게 사건을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이유.
그 역시, 사건이 길어지면 고상경 회장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탄로 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다.
본인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강민재의 말대로, 고상경의 짓이라고 생각했을 때 아귀가 맞는 것은 고진아의 짓이라고 해도 아귀가 맞는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 이유가 무엇인지만 알아낸다면 더 좋겠지만.
“정영준 씨는 처음부터 고진아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고 했어. 믿어 볼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고.”
“네. 당연히…… 본인이 짠 판이니까 그랬겠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지금쯤 한창 조사를 받고 있을 주민지는, 아마도 고진아를 감싸기 위해 자신과 조현석이 연인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예진이 그쪽에선 끝까지 부인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남은 증거가 있다면 당장 내놓으라고 전화가 왔어도 모자랐다.
그리고 내가 이예진에게 정보를 넘길 때도 주민지와 조현석이 연인 관계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한 주민지의 진술을 믿고 있을 것이고.
블랙박스 영상과 휴대폰, 디스크 따위를 분석하는 데에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헛다리를 더 짚기 전에, 우선 내가 파악한 진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고진아에게 모든 포커스를 몰아야 했다.
아마, 검찰에서 그토록 원하는 조현석 리스트 역시도 고진아에게 있을 공산이 높았다.
“이예진 선배하고 전화 연결 좀 해 봐.”
“지금 취조 들어가셨을 것 같은데…….”
“그럼 오 계장님이라도 받겠지.”
강민재는 다이얼을 누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거, 정영준 씨한테는 어떻게 알리죠……? 이거, 검찰에서 터트리기 전에 먼저 알게 되면 정영준 씨는 그냥 묻어 달라고 할지도 몰라요.”
나는 전화 연결을 기다리며 강민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의 말이 맞다.
정영준은 고진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함도 뒤로 하고 그녀가 원하는 조건으로 이혼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돌린 것은, 가족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 계기 중에는 분명 고상경 회장에 대한 미움도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고상경 회장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고진아라는 사람 그 자체다.
정영준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충격받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범을 덮는다?
그건 곤란하다.
애초부터 내가 이 사건을 맡은 것은, 정영준이 양진 그룹 유일한 상속녀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내 목표로 나아감에 있어 얻을 만한 게 존재할 거라 여겼기 때문에 이 복잡한 사건을 맡은 것이다.
고진아와 조현석의 내연 관계는, 어쩌면 거대한 부정의 속내를 드러낼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정영준의 그 ‘사랑’ 때문에 묻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정영준에게 이 사실을 알릴 방법은 더 강구해 봐야겠지만, 사건의 전모는 반드시 세상에 밝혀져야만 한다.
낙관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어쩌면 정영준도 고진아의 만행을 알고 나면 정이 떨어져 더는 감싸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
-차 변호사님, 저 오 계장입니다. 지금 이예진 검사님이 취조 들어가셨습니다.
포기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즈음, 오 계장이 전화를 받았다.
-취조 끝나시면 바로 연락 주시라고 말씀드릴까요?
“아뇨, 지금 당장 만나야겠습니다. 지금 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급한 일입니까? 저희 쪽에서는 새롭게 발견된 건 아직 없는데요. 아직 기계들도 분석 중이고…….
“급합니다. 지금 주민지 취조 들어가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잠깐 다른 검사한테 토스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많이 급하신 모양이군요. 우선 바로 말씀 전달드리겠습니다. 변호사님이 지금 청으로 들어오신다는 얘기도 같이요.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옷걸이에 걸려있던 재킷을 입었다.
강민재는 자신은 어떻게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강 변. 나 이 선배 좀 만나고 올 테니까, 우선 그 가방 말이야.”
“네. 고진아 가방 말씀이시죠?”
“그래. 그거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가방 맞는지 확실하게 확인해 봐.”
“안 그래도 제가 명품 쪽으로 빠삭한 사람이 있어서요. 그 친구한테 전화를 좀 걸어 볼까 합니다.”
“빠삭한 사람? 전문가야?”
전문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 가방에 대한 답변은 검찰이 H사에 문의를 넣어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H사에서 답변을 거부할 경우인데, 사안이 중대한 만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도 같이 가요. 전화는 가면서 걸면 되니까요.”
강민재는 재빨리 차 키를 챙기며 사무실을 앞서 나갔다.
“키 줘. 운전 내가 할 테니까.”
“제가 해도 됩니다.”
“그 통화에나 집중해.”
“넵. 영광입니다. 변호사님이 모는 차에도 타 보고요.”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수석에 을탔다.
내가 중앙지검을 향해 차를 모는 동안, 강 변은 통화를 이어 갔다.
“재은아. 나야, 강민재. 어, 그동안 잘 지냈어? 아, 그래. 오랜만이다. 연락 못 해서 미안. 그동안 너무 바빴어.”
잠시간은 서로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 틈이 생겼는지 강 변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오늘 고진아 기사 사진 봤어? 아, 그래? 봤어?”
대화가 잘 풀리고 있는지, 그는 미소를 띠며 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나는 청 안으로 들어서며 주차 자리를 찾았다.
차가 빽빽하게 들어서 얼핏 봐서는 주차할 곳이 없을 듯했다.
청사 내 주차 공간이 부족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안내 문구가 검찰이 피의자와 참고인에게 보내는 소환장마다 적혀 있지만, 나는 남는 자리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그래? 어, 어. 그렇구나. 응. 아, 그냥 댓글에 난리가 났길래 궁금해서. 어, 그래. 다음에 한번 보자. 그래.”
주차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민재는 전화를 끊었다.
“확실합니다. 커스텀 메이드 맞대요. 일반적으로 주문 제작을 맡기면 진짜 빠르게 오는 게 두 달 걸린다고 하네요? 그럼 그 태슬 디자인이 처음 공개된 패션쇼가 3월 2일이었고, 그 전후로 바로 맡겼다고 하면 고객한테는 이르면 4월 말, 아마도 5월 초에는 도착했을 거라고 합니다. ”
강민재가 빠르게 정보를 읊었다.
조현석이 H사 매장에서 가방을 수령한 것이 4월 말이었으니, 시기는 딱 떨어진다.
“믿을 만한 정보 맞지? 지금 이 선배하고 공유할 거야.”
“확실합니다. 지금 통화한 애 H사에서 신상 나올 때마다 하나씩 집으로 받아 보는 애예요. 걔도 정말 처음 보는 가방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도 너무 예뻐서 기사 사진 뜨자마자 H사 매니저한테 전화 걸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커스텀 메이드라고 답변받았다고 하고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기지개를 켰다.
명품 중에서도 고가 브랜드로 유명한 H사에서 신상 나올 때마다 받아본다라.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산 규모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래?”
“네. 아, 아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강민재는 문득 내가 신경 쓰였는지, 짧게 덧붙였다.
“그래.”
“그리고 저랑 별로 안 친해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했다고 타박받은 모양인데, 그게 별로 안 친한 걸까.
“알았어.”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이예진이었다.
-차 변. 나야. 급하게 할 얘기 있다면서?
“지금 주차장입니다.”
-그래? 방문증 받아서 이리 올라 올래?
“괜히 마주치면 곤란해질 것 같아서요. 저희 차로 들어오시죠. 강 변, 차 번호가 몇이지?”
“8190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예진이 차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달려온 모양인지, 숨을 몰아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바쁘다, 바빠. 뭐야, 무슨 얘긴데 그렇게 급하게 보자고 해?”
강 변은 대답 대신 챙겨 온 기사 프린트를 그녀에게 건넸다.
“뭐야, 이게?”
“주민지는 조현석의 애인이 아닙니다.”
“뭐? 그럼 누군데? 아니, 주민지는 자기가 조현석 애인 맞다고 했는데? 자기는 조현석이 그런 인간인 거 몰랐고, 그냥 정말 사귀기만 하는 사이라고 진술한 상태야. 양진 그룹하고는 조금도 상관없다고, 자기도 기사 보고 조현석이 자기한테 일부러 접근한 것 같아서 엄청 배신감 느끼고 있었다고 펄펄 뛰었거든. 뭐, 그걸 믿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예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강민재가 건넨 프린트를 펼쳤다.
가장 위에 뜬 사진이 고진아의 전신 샷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제대로 기사를 읽기도 전에 우리를 바라보았다.
“……고진아라고?”
한참 동안 기사 사진 밑에 달린 댓글을 훑어보던 그녀는, 입을 가리며 말했다.
“이거 설마 조현석이 취조 때 애인 사 줄 거라면서 맞춤 제작 맡겨 놨다던 그 가방이야?”
“네. 조현석이 풀려난 다음 바로 사람 붙여서 확인했습니다. H사 매장 가서 가방을 가지고 나오는 거 사진으로 확보했고요. 그 가방이 고진아한테 들려 있는 걸 보면 확실합니다.”
“……그렇지. 반지야, 뭐 주민지가 끼고 있는 걸 본 게 아니라 차 변이 부딪치는 바람에 떨어트린 거라고 했으니까.”
“네. 평소에는 그 반지를 끼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비서에게 맡겨두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지는 종일 그녀의 지척에 있는 수행 비서다.
그녀에게 반지를 맡겨 놨다가, 조현석을 만나러 갈 때만 반지를 받아서 끼는 식이었다고 봐야 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보관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 부담이 따르니까.
“잠깐만.”
그때, 이예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계장님. 저 지금 차 변 만나러 나와 있어요. 네. 네, 그렇죠. 네? 정말요?”
차분히 전화를 받던 그녀는, 일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이곳이 차 안이라는 것을 모르고 벌떡 일어났다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기까지 했다.
“아, 아야……. 아니, 괜찮아요. 그러면 일단 지금 들어갈게요. 제가 직접 봐야겠어요. 네, 계장님. 네.”
이예진은 머리를 문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이예진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 진짜 먹튀 미안해서 자꾸 말해 주게 되네. 지금 주민지 차 블랙박스에 조현석 흰색 카니발 9932 찍혔대. 심지어 그 차에서 여자들이 줄줄 내리는 것까지 다.”
“조현석 흰색 카니발이요?”
“조현석이 여자들 데리고 이동할때 쓰던 차야. 대포차에, 추적해 보니까 폐차까지 돼서 그걸로는 뭐 못찾겠다 싶었는데……. 일단 들어가 봐야겠어.”
주민지 차에 조현석의 카니발이 찍혔다라.
그것은 주민지가 조현석의 성상납에 관여했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된다.
그녀의 진술 대로, 조현석이 그런 일을 하는 줄도 몰랐고, 상관도 없었다면 여성들이 가득 타고 있는 그 차량과 주민지가 함께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 또 뭐가 나왔나?”
차에서 내리려 움직이던 이예진은 잠시 그대로 멈춰서 전화를 받았다.
또다시 오 계장인 모양이었다.
“네, 저 지금 올라가려고 하는데요. 네. ……고진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