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06)
너희들은 변호됐다-106화(106/641)
“안녕하십니까.”
“네, 차주한 변호사님. 앞서 말씀드린, 이번 사건의 제보자로 알려져 화제가 되셨습니다.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해야겠지요. 검찰에 제보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 대해 제보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해당 동영상의 촬영자가 성상납 피의자인 조현석과, 정영준 씨의 아내이자 양진 F&B의 전무이사인 고진아 씨라는 증거를 검찰에 제보하였습니다.”
프롬프터에는 [변호사님 톤 그대로 유지 좋습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고작 겉으로는 서른다섯 살짜리 변호사겠지만, 이전 삶에선 이미 대국민 브리핑을 여러 차례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어떤 목소리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잘 알고있다.
“아직 어떠한 증거인지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증거인지, 또, 어떻게 그 증거를 입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증거는 동영상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정영준 씨의 법률 대리인으로, 고진아 씨와의 이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정영준 씨는 일관되게 해당 동영상 속 성관계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며, 또 기억에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알려진 바와 같이 정영준 씨는 간음 사실을 부정하고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영준 씨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해당 동영상이 누구에 의해, 무슨 목적으로 촬영된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스 방송 화면에는, 하단에 굵직하게 내가 한 말들의 요약본이 자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증거를 입수하게 되셨습니까?”
“처음 저희가 한 작업은 해당 동영상의 화질을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중에 유포된 동영상을 여러번 돌려 본 결과, 동영상에는 촬영자의 신체 일부가 아주 짧게 등장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체의 일부에서 특징을 잡을 수 있다면, 촬영자를 특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화질 복원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선명하지는 않을 텐데요. 신체의 특징을 잡는 것이 가능했습니까?”
“물론 그 정도까지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희가 동영상을 통해 확보한 사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동영상을 촬영한 기기, 발코니 창에 비친 실루엣으로 알아낸 촬영자의 신장과 체격, 그리고 언뜻 화면에 스쳤던 촬영자의 손이 전부입니다.”
김우진 앵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신장과 체격, 그리고 손. 어떻게 보면 누군가로 특정할 만한 것들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촬영 기기의 크기와 비교하여 알아낸 동영상 촬영자의 신장은 190 이상이었습니다. 또, 거구의 남성이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죠. 남색의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으며, 손에는 맞춤 제작된 디자인의 커플링을 끼고 있었습니다.”
“190 이상의 거구의 남성이라면, 확실히 농구 선수 출신의 조현석과 조건이 부합하는군요. 맞춤 제작된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대상을 특정할 수 있었겠고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동영상 촬영자를 조현석으로 특정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검찰 발표에 의하면 해당 동영상은 조현석이 단독으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정영준씨의 아내인 고진아 씨가 함께 촬영했다고 하는데요. 고진아 씨는 어떻게 특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동영상을 수차례 분석한 결과, 동영상 촬영 당시, 현장에 조현석뿐만이 아니라 같은 반지를 끼고 있는 여성이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성이 고진아 씨였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자, 차 변호사님. 조현석이 끼고있던 반지가 커플링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네.”
“그리고 같은 반지를 끼고 있던 여성이 고진아 양진 F&B 전무이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내연 관계였다는 말씀이십니까?”
김우진의 질문에, 가뜩이나 조용했던 뉴스룸 주변이 순식간에 깊은 적막에 휩싸였다.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재 검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뉴스에 나와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나는 물론 확신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프롬프터에 멘트가 떠올랐다.
[시청률 30% 돌파!!]2018년, 뉴스9는 시청률이 10% 초반대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2009년 이 시점에는 시청률이 평균적으로 더 높았기 때문에, 20%대도 종종 나왔던 것으로 알고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30%는 꽤 높은 수치다.
[정영준 이혼에 관한 입장으로 화제 전환]사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검찰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주민지 비서의 차량에서 발견된 블랙박스나, 그 밖의 것들 말이다.
“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차 변호사님의 끈질긴 추적이 아니었다면, 이런 충격적인 진실은 영영 묻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이제 조금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김우진은 간단한 정리 멘트와 함께 대본을 넘겼다.
“현재 차 변호사님께서는 정영준씨의 이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임된 법률 대리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정영준 씨의 마음고생이 컸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정영준 씨는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낸 상태인데, 지금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문득 그간 고생했던 정영준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도 곧바로 이혼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충격에 휩싸여 망설이던 모습 역시 생생했다.
“정영준 씨는 이러한 사실을 안 이후,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법률 대리인으로서 그간 정영준 씨가 고진아 씨에 대한 애정을 많이 드러냈기 때문에, 저 역시 매우 안타까웠는데요. 정영준 씨는 그간 결혼 중 간음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대중의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한 음해는, 당연히 정영준 씨의 가족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고요.”
“그렇겠군요. 또, 정영준 씨가 원래 고진아 씨와는 달리 재계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산과 관련한 비난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간 고진아 씨 측에서는 협의 이혼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본인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고진아 씨는, 법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높게 책정된 금액의 재산 분할을 제안하며 협의 이혼을 요구했습니다만, 정영준 씨는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정영준 씨가 고진아 씨의 재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재벌의 이혼 소송에서, 대중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역시 재산 분할이다.
그들의 속사정도 많이들 궁금해하지만, 역시 돈 문제만큼의 화제성은 없다.
두 앵커도 그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법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책정된 금액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천문학적 액수가 아니었을까 예상됩니다.”
“천문학적 액수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만……. 고진아 씨의 자산 대부분은 부친인 고상경 회장으로부터 상속, 증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특유 재산으로 분류됩니다. 물론, 결혼 기간이 10년 이상이라면 그 특유 재산을 유지하거나 불리는 데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분할 대상이 됩니다만, 정영준 씨와 고진아씨의 결혼 기간이 10년 미만이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진아 씨 측이 제안한 재산 분할 금액이 특유 재산을 배제한, 공동 재산으로 산출한 금액을 넘어섰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거기서 의심을 품은 것도 사실입니다. 고진아 씨는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왜 재산 분할을 그렇게 많이 해 주려 하는가. 그러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황금 시간대 뉴스 채널에서 재산 분할 금액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는 것이 썩 보기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뉴스에서 재벌들의 재산 분할 금액의 정확한 액수를 언급하는 일도 잦긴 하지만, 자세한 액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영준 씨는 이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실지도 궁금한데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간 고진아씨 측에서는 협의 이혼을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정영준 씨의 무고함을 밝히기 전날인 지난 15일, 고진아 씨 측에서는 이혼 소장을 가정 법원에 접수했다는 통보를 해 왔습니다.”
뉴스룸을 둘러싼 채 서 있던 PD와 작가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몹시 즐거운 모양이었다.
미리 주고받았던 질의서에 오늘 언급할 이야기를 전부 적진 않았기 때문에, 두 앵커 역시도 몹시 놀란 눈치였다.
“그런데 고진아 씨가 검찰에 피의자로 출석한 이상,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진아 씨 측에서 소송을 취하할 수도 있고, 계속 이어 갈 수도 있겠죠. 어찌 됐든, 정영준 씨는 고진아 씨가 본인을 음해했다는 사실을 안 뒤로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입니다. 어떤 방식의 이혼을 하든, 저희는 상황에 맞추어 대비할 생각입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본래 이 인터뷰에 할당되었던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PD들은 딱히 본래 할당된 시간을 넘겨도 상관없는 눈치였지만, 나는 내 약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시간을 넘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뉴스에 나온 것 자체가 유명세를 위한 행보라는 시각은 당연히 있겠지만, 그것을 너무 드러내고 싶진 않았다.
“차 변호사님은 재작년 검사로 재직하실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연쇄 살인마 조진태를 검거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끝내도 상관없는데, 어떻게든 남은 시간에 내 약력을 욱여넣어 보겠다는 진혜경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또, 작년 초에 있었던 배우 김철환 씨와 유명 의사 여희숙 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던 김연준 씨를 변호하여, 김형준 씨가 진범임을 밝혀내셨죠. 그때, 법정에서 검찰의 수사가 미흡했음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셨는데요. 검찰을 떠난 직후에 맡은 첫 재판에서 해당 발언을 하셔서, 일각에서는 다소 논란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랬습니다.”
“검찰을 나오신 직후에 검찰의 수사력을 비판하셨기 때문에,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 변호사라는 인상이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직접 검찰에 제보를 하셨습니다.”
“저를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제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신뢰한 것은 이예진뿐이었다.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하지만 김연준 씨가 억울하게 존속 살해 피의자로 몰렸던 사건에서는, 확실히 검찰의 수사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무고한 김연준 씨가 큰 고통을 받았고요. 저는 의뢰인을 대변하는 변호사입니다. 따라서, 의뢰인이 느꼈을 고통을 생각하여 발언했을 뿐,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각에서 그런 비판이 있었을 때는 조금 억울했죠.”
이제 인터뷰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으니, 시종일관 진지한 것보다는 적당히 유연한 분위기로 넘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진혜경과 김우진도 작게 웃었다.
“그밖에, 화제가 되었던 정혜진 작가의 드라마 <당신과 나의 거리>의 표절 사건에서, 유명 작가가 작가 지망생의 원고를 도용하는 드라마계의 악습을 지적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신데요. 또, 지난해 교육계를 뜨겁게 달꿨던 사건에도 발 벗고 나서셨죠. 장명 고등학교 이혁민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던 피해 학생들의 민사재판을 진행하셨습니다. 대한민국에 뿌리박힌 사회적 문제에 앞장서시는 차주한 변호사님의 모습이, 법조인이 귀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정말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건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뒤, 카메라가 두 앵커를 향해 줌인되었다.
나는 조연출이 미리 말해 준 동선을 따라 퇴장했다.
온갖 조명이 직격하는 뉴스룸에서 나오자, 이제야 등에 땀이 고여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연출은 나에게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변호사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표정과 목소리 톤까지 생각하면서 쉴 새 없이 떠들었더니 정말로 피로가 몰려 왔다.
“PD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