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1)
너희들은 변호됐다-11화(11/641)
이건 계획범죄다.
처음부터 김연준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된 범죄.
계획범죄라면 해결되는 의문들이 있다.
김연준이 집에 갈 때만 부모를 폭행한 이유.
김연준이 그 집에 있을 때만 이웃에 비명이 들려야, 김연준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으니까.
장갑을 낀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지문으로 책잡히지 않으려고 장갑을 꼈을 테니까.
생각보다 알아볼 것이 많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에 올라탔다.
라디오를 켜고 큰길로 접어들었을 즈음.
[검찰은 부검 결과에 따라, 고 김철환 여희숙 씨의 사망 원인은 후두부 파열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외에도 전신에 폭행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모두 현장에서 압수한 흉기 야구 배트로 인한 것입니다. 용의자를 말리던 친아들 김형준 씨는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입양된 아들이 부모를 폭행, 살해하는 끔찍한……]뉴스가 흘러나왔다.
‘사망 원인은 야구 배트로 인한 후두부 파열. 전신에 폭행 흔적이 있고, 그게 전부 야구 배트로 일어난 것.’
김형준은 장갑을 끼고 야구 배트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김형준을 말리느라 야구 배트에 김연준의 지문이 잔뜩 묻었다.
이후 경찰에 도착했을 때 야구 배트를 얼떨결에 받아 들면서 또 묻었을 테고.
그런데, 김형준의 진술대로 김형준이 김연준을 말렸다면?
김형준도 야구 배트를 빼앗으려 했어야 한다.
따라서, 김형준의 지문이 묻어 있지 않다는 건 충분히 수상한 일이다.
이걸 검찰이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과거에야 김연준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백해서 일이 일사천리로 흘러갔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이 정도는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수상함이지. 팔을 붙잡았다고 하거나 뭐, 다른 소리 할 수도 있고.’
[현재, 용의자 김연준은 김형준이 진범이라고 주장하며 그 이상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습니다.]부검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
내가 검사였다면 그쯤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 변호사가 되니 애로 사항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나는 전화번호부 형사부 폴더를 열어 번호를 찾아냈다.
-어,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김연준 사건 담당 검사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도 형사 3부 소속이었기에 꽤 자주 만나던 사람이다.
“오랜만이네. 양 검사, 한 가지 부탁 좀 하자.”
-선배님 지금 피고인 변호인 신분 아니십니까? 그런데 담당 검사한테 부탁을 하시다니요.
꽤 장난스러운 말투라, 거절할 것 같진 않은데.
-제 선에서 가능하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뭡니까?
“피해자 2차 부검 결과 좀 보고 싶은데.”
-…….
“양 검사.”
-그건 좀 곤란합니다. 법정에서 확인하시죠.
“용의자도 피해자 직계 비속이야. 적당히 융통성 있게 하지.”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직계 비속이기 전에 용의자잖습니까. 하, 저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음, 힘들 것 같아요.
황영찬이 미리 약 쳐 놨나 본데.
부장이 엄포를 놨다면, 나도 더 우기기는 힘들다.
“알겠다. 그럼 수고해.”
-선배님!
나는 전화를 끊었다.
황영찬이 이렇게까지 나왔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조금 쉽게 가려고 했더니, 역시 이쯤에서 장애물 하나 정도는 나와 줘야지.
나는 다시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윤세연 기자님. 접니다, 차주한.”
-오, 차 검사님! 아니, 변호사님이시죠. 웬일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좀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검사 땐 절대 도움 안 주시던 분이, 도움 달라고 하는 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조만간 제 쪽에서 도와 드릴 일이 있을 겁니다.”
-어머, 엄청 기대되네요.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김형준 씨 입원한 병원하고 병실 아시죠?”
-푸흐흐. 겨우 그 정도로 도움이라고 하신 거예요? 검사님 너무 FM이다. 문자로 쏴 드릴게요. 나중에 밥이나 사세요.
“아뇨. 조만간 좋은 소스 하나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 기자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예인 대학병원 외과 병동 903호.]예인 대학병원. 생전 여희숙이 몸담았던 곳.
자신이 살해한 어머니의 직장에서 뻔뻔하게 입원이라니.
웬만하면 이런 곳에 방문할 때 주스나 과일이라도 사들고 가지만, 김형준은 괘씸해서 그럴 생각 조차나지 않는다.
“누구세요?”
별로 다친 것 같지도 않은 김형준이 나를 흘긋 보며 물었다.
얼굴은 멀쩡하고, 병원복 너머로 어깨와 쇄골 부근에 검붉은 멍이 보인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많이 괜찮아졌습니다만……. 누구시죠?”
김형준은 나를 극도로 경계했다.
시선을 굴려 그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역시, 지문이 없는 건 아니다.
“부검 결과 받으셨죠?”
“……당신 김연준 그 새끼 변호사지?”
“부검 결과를 확인했으면 하는데요.”
“나가! 나가라고, 이 새끼야!”
김형준이 베개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김형준 씨. 진정하세요.”
“진정?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놈이 내 부모님을 내 눈앞에서 죽였어! 그런 새끼를 변호하겠다는 놈을 내가 왜 만나! 왜 만나냐고!”
김형준은 알고 있을까.
내 눈에 자신의 머리 위에 거짓 글자가 유난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한숨을 쉬며 날아오는 베개를 피했다.
“난 그 새끼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었으면 좋겠어! 변호사 나부랭이 고용해서 어떻게든 형량 깎아 보려는 속셈인가 본데! 내가 우리 엄마 아빠, 고통스러워하시던 마지막 모습만 생각하면……. 흐흑, 흐윽…….”
혼자 아주 염병을 떨어라.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어야 자신의 범죄를 대신 뒤집어 써 주고, 부모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혼자서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김연준 씨의 말로는, 범인은 당신이라던데요.”
“미친 새끼……. 어디서 뒤집어씌우려고! 당신 그 말 믿고 김연준 그 새끼 변호하는 거야? 잘 들어.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새끼가, 우리 엄마 아버지…… 죽였어. 내 부모님을 그 새끼가……. 흑, 흐흑…….”
“그런 분이 그렇게 칼같이 보험금 긁어다가 전부 수령하셨습니까?”
“……뭐?”
“아, 그렇지. 당신이 운영하는 회사 문제는 잘 해결됐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 일순 김형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물론 나도 모른다.
블러핑이었다.
뻔하지 않은가? 부모님의 재산을 노린 계획범죄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집 언제 나가느냐고 부동산 전화 받을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던 놈이, 두 부부 죽자마자 나올 보험금에 바로 손대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보험금도 타지 말란 소리야? 엄마 아버지 돌아가신 거 뉴스에 나오고 나서, 보험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 그래서 수령한 것뿐이라고!”
“그렇군요. 모처럼 목돈이 들어와 회사의 문제도 해결해 주고. 참 좋으겠습니다.”
“뭐라고? 나가! 이 새끼야, 당장 나가!”
부검 결과지를 절대 줄 것 같진 않으니, 이쯤에서 물러나야겠다.
그래도 소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라이린 패션 임직원 일동]검색을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던 김형준의 사업체가 무엇인지는 파악했으니까.
* * *
나는 김연준에게 조사에 필요한 것들을 묻기 위해 다시 구치소에 들렀다.
차라리 건물주가 김연준이 기소된 직후에 나를 찾아왔더라면, 조금 더 여유로웠을 것이다.
점점 공판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김연준은 희망과 절망을 사이를 오가며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저, 변호사님.”
“네.”
“……잘될까요?”
김연준이 점점 지쳐 가는 게 보였다.
미결수 수의를 입은 그는 며칠 전보다 수척해져 있었고,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못 보던 멍이 들어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미결수들에게 폭행당한 것 같았다.
“김연준 씨, 혹시 친하게 지내던 사촌이 있습니까? 이모라든지, 고모. 뭐, 사촌들이나.”
“친하다고 생각했던 고모가……. 저한테 불리한 진술을 해서요.”
“김연준 씨가 평소에 김형준 씨를 질투했다거나, 그런 거 말입니까?”
“네.”
“할머니는요?”
“친할머니는 원래 저를 못 마땅해하셨고요……. 외할머니가 저한테 좀 잘해 주셨어요. 검찰에 진술도 안하신 걸로 알고요.”
“외할머니 연락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연락처는 제가 핸드폰을 압수당해서 모르고요. 주소는 알아요.”
나는 그가 말해 준 주소를 받아 적었다.
재판이 사흘 뒤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서류 가방을 챙기며 일어나자, 김연준이 나를 불러 세웠다.
“저, 변호사님…….”
“네?”
“재판에서 지더라도, 저, 변호사님한테 꼭 은혜 갚을 겁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저 믿어 주셔서 또 감사하고요.”
“김연준 씨는 진실만 말하는데, 당연히 믿어야죠.”
“네? 그러니까, 제가 진실만 말하는 걸 믿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었어요.”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김연준이 거짓 자백을 그만둔 이후부터는, 한 번도 그에게서 [거짓]이라는 단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깊게 믿었을 뿐이다.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사무실로 돌아와 대충 끼니를 때우고 김연준의 외할머니가 사는 곳을 검색했다.
지방이면 시간 부담이 컸을 텐데, 다행히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30분 정도만 쉬고 출발할 생각으로,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상념에 잠겨 있었다.
“계십니까?”
겨우 반이나 피웠을까 싶을 무렵,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급히 불을 끄고 바깥으로 나가자, 문 앞에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배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잘생긴 얼굴의 청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무슨 일이시죠?”
“오랜만입니다,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