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15)
너희들은 변호됐다-115화(115/641)
최종현은 단숨에 나를 알아봤다.
뉴스9 출연으로 얻은 이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런 장점도 있었다.
굳이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 합니다.”
최종현은 노골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에게는 동료인 사람의 몇 년이라도 더 젊은 시절을 보는 것이라 반갑고, 흥미롭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3년 뒤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호의적이었는데.
오늘은 내가 너무 갑자기 들이댄 만큼 그런 반응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만큼 급한 사안이었으니까.
“김정우 기자 위치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지금 사무실이랍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목소리도 아주 밝더군요.”
그는 여전히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뾰족하게 굴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그러십시오.”
“차 변, 혹시 신내림 같은 거 받았어요? 투잡?”
최종현의 물음은 퍽 진지했지만,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무속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장군신이 붙어 있지는 않다.
“아닙니다.”
“근데 왜 그런 말을 그렇게 확신에 차서 하는 겁니까?”
그냥 신 받았다고 할 걸 그랬나.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차 변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아주 단정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그의 시선은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는 보육원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그는 보물처럼 크로스백을 붙잡은 채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내 후배가 자살할 거고, 내가 그 누명을 쓸 거라고 말한다는 게……. 나참, 정말 평소 같았으면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무시했을 텐데.”
“오늘은 왜 무시하지 않으신 겁니까.”
“일단 상대방이 차 변 당신이니까. 법조인들은 일부는 뭐, 안하무인에 명예만 좇는다고, 어디 한 번만 잘못 걸려 보라고 이를 득득 가는 모양이지만.”
“그럼 안하무인에 명예만 좇는 저를 왜 만나러 나오신 겁니까.”
“윤 기자 알죠? 당신하고 기획 기사 몇 번 냈잖습니까. 윤 기자한테 평소 들은 말도 있고, 차 변 당신이 보이는 행보가 어쨌든 내 지향점과 어느 정도 공통점도 있어 보이고.”
“그렇습니까.”
“하지만 오늘 나한테 한 말이 개소리라는 게 밝혀지면, 당신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지겠지.”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전 닥칠 불행을 막고 싶었을 뿐입니다. 김정우 기자의 죽음도, 그리고 최 기자님이 불명예스럽게 해고당하는 것도.”
“그런 누명 쓴다고 해서 내가 얌전히 해고당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내서 붙어 있을 겁니다. 일중일보의 사상이 나랑 안 맞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아직까진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
사실, 일중일보의 지향점은 최종현과 안 맞는다는 정도로 표현될 것이 아니었다.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애초에 일중일보는 우신 그룹과 혼맥으로 이어져 있었고, 대표적인 친재벌 언론이었으니까.
일중일보에 속해 있으면서 우신 그룹을 판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외줄타기나 다름없었다.
“차 변, 당신이 나를 알고 있다는 건, 그래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윤 기자한테 들은 게 있을 수도 있지.”
“윤 기자님한테 들은 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위에서 저지당했을 때 책으로 써서라도 터트리겠다고 했던 것도. 당신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아는진 모르겠지만. 그래요.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쳤습니다.”
최종현은 혼란스럽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가 줄곧 보고있던 보육원 아이들을 눈으로 좇았다.
“그런데 대체 여기. 천사의 집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나, 솔직히 그거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내가 만남의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나, 단 한 번도 천사의 집 건 다른 사람하고 공유한 적 없습니다. 여기를 수상하게 여긴 사람도 나 하나고요.”
김정우 기자의 죽음은, 이전 삶의 최종현에게 삶의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그는 어찌 됐든 대형 신문사에 발 붙이고 있어야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자신이 안으로부터의 변혁을 꾀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김정우가 죽었을 땐, 누명을 벗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얌전히 해고당했다.
그 뒤로 죄책감으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나를 만나기 얼마 전부터 겨우겨우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전 천사의 집보다는 김정우 기자의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하겠지만, 사람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최종현 같은 인재가 그렇게 헛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손실이었다.
“확신합니다. 제가 천사의 집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지금 최 기자님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래서요.”
“김정우 기자 구하고 나면, 그때 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천사의 집을 어떻게 아는지.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최 기자님한테 공유할 수도 있겠죠.”
최종현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좋습니다. 그럼 내가 차 변호사, 당신 말대로 정우가…… 젠장, 말도 안 되지만 자살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죠. 차 변 말대로, 정말로 정우가 우울증 환자인지. 그리고 정말로 자살을 하는지. 참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김정우는 그가 목포에 취재를 떠난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계속 그 사람을 지키고 있다가, 자살을 하려 하면 저지하는 것.
최종현이 목포에 취재를 간 사이에 그가 자살했다고 했으니, 그는 분명 김정우의 부고를 듣고 중간에 올라갔을 것이다.
목포에 얼마 동안 진을 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우리의 감시를 받다보면 김정우가 목숨을 끊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최종현이 김정우가 받고 있는 압력과 우울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기회는 생길 것이다.
운이 좋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집중 마크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어차피 최 기자님 광화문 근처에서 혼자 사시잖습니까.”
내 말을 들은 최종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 뒷조사를 상당히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대단한 정보는 아니잖습니까.”
“하, 뭐 좋습니다. 이것저것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마당에 그런 정보쯤은 별거 아니죠. 그래서요. 내가 혼자 사는데, 그래서 뭐요.”
“한동안 김정우 기자를 댁으로 불러서 같이 지내시죠. 그리고, 김정우 기자와 24시간 밀착 동행하시고요.”
“하…….”
그는 나의 궤변에 어울려 주는 스스로가 우스운지, 자꾸 피식피식 웃었다.
“최 기자님도 주무셔야 하니, 저와 교대로 하시죠. 회사에서는 최 기자님이 감시하시고, 그 이후 시간은 제가 하겠습니다.”
“……차 변도 우리 집에 있겠다는 말입니까?”
“투룸 아닙니까? 제가 거실에 있겠습니다.”
“스토커야, 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종현은 그런 나를 흘긋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또 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오늘이 금요일이죠? 주말에도 출근하십니까?”
“이번 주에는 안 합니다.”
“그럼 잘됐습니다. 김정우 기자를 댁으로 부르시죠. 핑계야, 알아서 만드시면 될 것 같군요.”
결국 최종현은 마지못해 나를 따라나섰다.
계단을 내려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군데군데 찌그러진 SUV 앞으로 다가갔다.
초면인 차는 아니었다.
이 차가 3년 전부터 이 상태였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차 갖고 왔습니까?”
“네. 주소 알려 주시면 따라가겠습니다.”
웬만하면 최종현 차로 가고 싶었지만, 저 차가 왠지 중간에 주저앉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 * *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경복궁역 인근에 위치한 그의 투룸에 도착했다.
그 대문 앞에는 벌써 도착한 김정우가 서성이고 있었다.
“선배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는 피우던 담배를 재빨리 끄고 최종현에게 다가왔다.
김정우는 선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나이대는 나와 같거나 한두 살 정도 어릴 것 같았다.
이전 삶에선 최종현에게 전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는데도 그가 묘사하던 그대로였다.
최종현을 진심으로 따르는 것 같았다.
말투나 표정만 봐도 느껴졌다.
곧 무너질 것 같은 그의 SUV 옆에 차를 댄 내가 그들에게 가까이가자, 김정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 차주한 변호사님 맞죠?”
“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뉴스에 나왔다고 해도 이렇게 다 알아볼 정도는 아닐 텐데.
“아, 네. 김정우 기자입니다. 윤세연 선배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대체 내 얘기를 얼마나 하고 다닌거지.
“변호사님도 여기 사세요?”
김정우의 물음에 최종현은 하! 하고 소리치며 그에게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니, 저 양반이 글쎄……. 됐다. 지켜보면 알겠지. 어쨌든 저 양반도 한 며칠 우리 집에 같이 있을 거다.”
그는 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함께 올라온 그의 집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바닥과 책상에 책과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 밖의 집기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최종현은 길을 막는 책들을 발로 슥슥 밀며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아니, 저희 집도 코앞인데 왜 선배님 집에서 지내자고 하는 거예요?”
소파에 우두커니 앉은 김정우가 물었다.
“그냥, 인마. 혼자 지내려니까 심심해서. 네 재롱이나 좀 보면 덜 심심할 것 같고.”
“하하, 재롱이라뇨. 근데 차 변호사님은요?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저 양반은,”
“같이 일할 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습니다.”
최종현이 괜한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 그럼 저도 도와 드릴까요?”
그러자 김정우가 환히 웃으며 물었다.
“됐다. 밥은 먹었냐?”
“아뇨, 아직. 선배님이랑 먹으려고요. 하하.”
“그럼 라면이나 먹자. 차 변도 라면 이의 없죠?”
“어, 그럼 제가 파 좀 썰겠습니다. 냉장고에 파 있으십니까? 사 올까요?”
“됐다. 가서 앉아 있어.”
최종현이 그가 죽은지 3년이나 지났음에도 계속 그를 기억에 담아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엌에서 라면 끓일 준비를 하는 최종현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의 모습이, 왜인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강 변을 보는 듯했다.
만일 강 변이 나 때문에 상부에서 압력을 받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나는 어떨까.
잠시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