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18)
너희들은 변호됐다-118화(118/641)
최종현은 김정우가 여전히 깊게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베란다로 나왔다.
그는 김정우의 휴대폰을 쥔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다가도, 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허공에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했다.
당장이라도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 같았다.
자신의 휴대폰에 편집국장의 번호를 띄웠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정우가 왜 계속 승진 시험에서 떨어지는지 의문이었어요.”
그는 괴로운 듯 인상을 찡그리며 떡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번번이 공부 제대로 안 할 거냐고 다그치기도 했는데,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 나 때문에 이런 압박을 받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일부러 말하지 않았겠죠.”
“그랬을 겁니다. 정우는 내가 우신하고 이정찬 캐는 일에 사활 걸었다는 거 알고 있었으니까…….”
“김정우 기자가 마음을 털어놓았을만한 동료는 있습니까?”
내 물음에 최종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연이랑 친합니다. 입사 동기라서. 그래서 더 의문이긴 했어요. 세연이는 평기자 된 지 벌써 2년도 더 됐는데, 왜 정우는 번번이 물을 먹는지.”
“윤세연 기자 말입니까?”
“네.”
둘이 입사 동기일 줄은 몰랐다.
어느 조직이든, 입사 동기는 서로의 고민을 터놓기 가장 좋은 상대다.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자살을 하는 경우는 수두룩하지만, 그 전에 어느정도 징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의 가정사를 고려했을 때, 부모에게 말했을 것 같진 않다.
일중일보에서 가장 친한 사이라던 최종현 기자도 전혀 짚이는 구석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윤세연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다 주시네요. 제가 자고 있었으면 어쩌시려고?
그녀는 역시, 연결음이 몇 번 지속되기도 전에 칼같이 전화를 받았다.
“여줘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말씀하세요. 어제 최종현 선배하고 연락 안 되신 거예요? 최 선배가 연락 닿았다고 하시던데?
“아뇨, 연락 닿았습니다. 이번엔 김정우 기자님에 대해 여쭤보려고 전화 드린 겁니다.”
-우리 기자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게 굉장히 많으시네요. 김정우 기자는 음……. 정우 오빠에 대해서는 저보다 최 선배한테 물어보시는 게 나을 텐데?
“윤 기자님한테 여쭤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뭔데요?
그녀에게 상황을 전부 설명할 순 없었다.
어차피 직접적으로 물을 것이기에 듣기만 해도 대충 예상은 할 것이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김정우 기자가 힘들어 보였다거나, 죽고 싶다고 한다거나. 그런 적 없습니까?”
-……정우 오빠한테 무슨 일 있어요?
윤세연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뇨, 아직은.”
-아직은, 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단 대답부터 해 주시죠. 좀 급박한 상황이라.”
-……힘들다는 말은 밥 먹듯이 하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윤세연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 세 달 전인가. 그런 얘기는 했어요. 자살하는 방법 중에서 뭐가 제일 무서울 것 같냐는……. 하지만 그건 자살 관련 이슈가 있어서 그냥 해 본 얘기일 수도 있어서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스위스에서 안락사 하는 게 제일 안 아플 것 같다고 했죠.
딱히 김정우가 선택할 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이전 삶에서도, 그가 스위스에 갔다는 소리는 못 들었고.
“그밖에는요.”
-그냥 죽는다는 게 어떤 기분일지,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할지, 그런 얘기도 한 적 있었어요.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누구나 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한 번쯤 해 보니까.
하지만 김정우는 달랐다.
-아! 그러고 보니, 자기 죽으면 부조할 필요 없다고 했었어요. 어차피 상주도 없을 거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죽으면 부조 많이 하라고 했거든요. 그냥 정말…… 농담으로 한 말인데.
“또 다른 건요?”
-퇴사 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정말 다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고, 그 뒤론 그런 말 한 적도 없고요. 그리고 정우 오빠는 밝은 사람이라…….
윤세연 역시 나에게 말을 하다 보니 하나씩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 있게 김정우가 그럴 리 없다고 말하는가 싶더니, 말끝을 흐렸다.
-정우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죠? 변호사님, 심각한 문제예요? 설마 정우 오빠가 자살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최 기자님하고 가장 먼저 상의하겠습니다.”
-……네, 그래 주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면 저도 돕고 싶어요.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윤세연과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최종현에게 대화 내용을 공유했다.
“정말 몰랐어요. 나한텐 그런 말한 적도 없었고……. 죽음에 대한 대화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언제나 내가 먼저 했습니다. 이렇게 우신 캐다가 죽는 거 아닐까 싶어서요.”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듯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면서도 그의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막아야죠.”
“…….”
“김정우 기자한테 이야기하고, 졸피뎀 과다 복용부터 막는 게 좋겠습니다. 부작용이 심각하니까요. 그리고 적절한 방법이 생길 때까지 당분간은 계속 함께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럽시다. 하지만 같이 지낸다고 정우가 괜찮아질지……. 오히려 나한테 숨기느라 더 악화되진 않을까 걱정 되는데.”
“어쨌든 졸피뎀 중독이 가장 심각하니까요.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딱히 뾰족한 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생각할 수있는 방법이라곤 이것뿐이었다.
적어도 계속 붙어 있으면 정신과 여러 군데에서 약을 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졸피템은 최대 권고량인 10mg을 초과하는 경우, 복용량을 늘린다고 해서 수면 장애 치료 효과가 증대되지는 않는다.
만일 김정우가 수면 장애 핑계를 댄다면 얼마든지 차단할 방법은 있었다.
“아, 평일이 되면 함께 병원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졸피템 중독이라는 사실은 의사한테도 말하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요. 그걸 알리고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 보죠.”
정신과에 가면 적어도 자살 충동을 막는 약물을 처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종현은 착잡한 얼굴로 알겠다고 말했다.
이미 파탄 상태에 이른 듯한 그의 가정사는 어떻게 해 줄 수 없지만, 적어도 편집국장이 그에게 가하는 압력은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큰 스트레스 요인이 하나 줄어들면 호전되지 않을까.
물론 내 바람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김정우는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깨어났다.
늦은 새벽에 잠들었으니 약 때문에 수면 시간이 과도하게 길어졌다고 할 순 없었다.
게다가 졸피템은 4시간이 지나면 약 효과가 사라져서, 수면을 지속하는 용도로 쓰이는 약물은 아니니까.
“제가 너무 늦게 일어났죠?”
김정우는 나와 최종현을 바라보며 머쓱한 듯 웃었다.
“얼른 씻고 나와. 밥 먹게. 배고파 죽겠다, 인마.”
“넵.”
어제 소주를 3병이나 마신 그를 위해 해장국을 배달시켰다.
김정우가 새벽동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정말 해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최종현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릇을 싹 비운 김정우가 그런 최종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왜 이렇게 못 드세요?”
최종현은 김정우의 그릇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나에게 눈짓했다.
식사를 다 하고 나면 이야기하기로 했긴 했지만, 소화도 되기 전에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야.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할 말이요? 없는데요?”
김정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플라스틱 용기를 싱크대로 가져가 물로 행궜다.
최종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아까 너 일어나기 전에, 쓰레기 봉투 정리하다가 우연히 봤어.”
최종현의 말에, 김정우의 어깨가 한 번 움찔했다.
“너, 우울증 약을 왜 이렇게 많이 먹어?”
김정우는 최종현을 돌아보았다.
눈빛이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관련 지식이 없다고 해도, 하루에 여덟 봉지나 먹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아. 네 거 아니라고 하지 마라. 그거 내 것도 아니고, 차 변한테도 확인했으니까.”
단호한 목소리에 김정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심지어 스틸녹스를 8알이나 먹는 것 같은데. 그거 졸피템이잖아? 찾아 보니까 하루에 10mg이 최대 용량이고 그 이상 먹으면 안 된다고, 그거 마약성이라고 인터넷에 떡하니 적혀 있더라. 어떻게 된 거야.”
다그치는 듯한 투였지만, 충분히 애정이 묻어 났다.
김정우도 느꼈는지, 달리 반발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입술을 깨물고만 있었다.
“나한테 말 안 할 거냐?”
“…….”
“너 인마, 네가 부작용 겪고 있다는 건 알아?”
최종현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너 네가 새벽에 소주 세 병이나 마신 건 아냐고! 주량이 고작 1병 반인 새끼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호흡에서 울음이 묻어났다.
부르쥔 주먹이 덜덜 떨렸고, 그는 결국 눈물을 비쳤다.
“어떻게 된 거야, 인마……. 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언제부터 이랬어, 어?”
최종현이 울부짖듯이 소리치자, 김정우 역시 눈가를 붉혔다.
김정우는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결심을 굳힌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 년 정도 됐어요.”
“일 년? 일 년이나 졸피뎀을 8알씩이나 먹었단 말야?”
최종현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눈물이 낭자한 얼굴을 들어올렸다.
“아뇨, 아뇨……. 그건 아니고요. 이렇게 많이 먹게 된 건 3개월 정도 됐습니다…….”
“뭐 때문에 그런 거야. 대체 뭐가 문제라서……. 나한테 말해 봐.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아니에요. 제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냥, 가정사 때문이에요. 정말 개인적인……. 그리고 해결도 할 수 없는 문제고요.”
그리고 그는 간단하게 부모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어머니를 폭행하던 아버지, 조현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어머니는 지금 여동생하고 살고계세요. 동생이 혼자 고생한다는 건 알지만, 정말 저도 못 견디겠어서…….”
그의 휴대폰에서 본 문자에는, 어머니가 김정우를 ‘하나 있는 자식’이라고 표현했다.
어차피 문자함을 통해서 진실을 확인한 마당이라, 굳이 능력을 쓰지 않았는데 사용할 것을 그랬나.
그에게 문자함을 확인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는데.
“어머님이 김정우 기자를 찾진 않으십니까?”
나는 에둘러 물었다.
김정우는 나를 흘긋 올려다보았다.
“……찾으세요. 어머니는 동생이 아버지한테 맞아 죽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동생을 아버지가 고용한 킬러라고 생각해요. 참 말도 안 되지만, 조현병으로 인한 망상 장애 때문이죠.”
“아이고…….”
최종현은 탄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돌봐주는 자식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녀 역시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동생도 많이 힘들어 해요. 그런데 제가 이 모양이라는 걸 아니까 최대한 자기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죠. 면목이 없어요, 저도.”
김정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최종현은 길게 한숨을 쉬며 김정우의 손을 움켜 잡았다.
“왜 말을 안 했어, 이 자식아.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런 걸 왜 말해요. 괜히 불편해지게. 그리고 선배님 걱정하게 하고싶지도 않았고요…….”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사실, 처음 입사했을 때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척 거짓말을 했는데 나중에 와서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하기도 좀 그랬어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은 셈이죠…….”
김정우는 식탁에 놓인 티슈를 뽑아 최종현에게 건넸다.
그리고 억지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예요. 이제 다른 이야기 할까요? 하하……. 아, 그 전에 저 화장실 좀 잠깐 다녀올게요.”
김정우는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것 같았다.
그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갔고, 최종현은 눈물을 닦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차 변. 저거 국장 얘기 끝까지 안할 모양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