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20)
너희들은 변호됐다-120화(120/641)
찬 바람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김정우는 내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고, 그 바람에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나는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김정우 씨! 내려오세요!”
그가 나를 돌아본 것은 확실하지만,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벽을 더듬거리다, 옥상에 딸린 조명을 켰다.
낡은 전구 두어 개였지만, 김정우의 표정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잡았다.
119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만일 신고하려는 것을 그가 알면, 자살하지 못할까 봐 바로 몸을 던져버릴 수도 있으니 주머니 속에서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더듬더듬 키패드의 위치를 확인하고 119 버튼을 눌렀다.
내가 굳이 신고 내역을 말하지 않더라도, 계속 통화가 이어지면 119에서도 대화 내용을 듣고 출동할 것이다.
“더 오지 마세요!”
“……김정우 씨.”
“변호사님, 그냥…… 그냥 못 본 척해 주세요. 저, 저…….”
정영준 때처럼 목을 매려는 것도 아니라, 달려가 붙잡을 수도 없었다.
더 다가가면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그에게, 나는 더는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김정우 씨. 김정우 씨는 지금 굉장히 흥분 상태입니다. 본인도 알고있을 겁니다. 그렇죠?”
“……아뇨. 전 어느 때보다 정신 멀쩡해요.”
아예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라, 계속 말을 붙이면서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다.
“방금까지 울고 있지 않았습니까. 흥분한 상태로 가족과 통화도 했고요. 마음을 진정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김정우 씨,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지금 당장 죽어야 할 이유는 없잖습니까.”
자살 위기자에게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살을 미루자고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웬만해선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정우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반응했다.
“제, 제 전화 엿들으신 겁니까?”
“엿들은 게 아닙니다. 기억하죠? 김정우 씨 통화할 때 이웃 주민이 항의한 것 말입니다. 저도 그래서 알았습니다. 집 안까지 소리가 들렸어요.”
“…….”
김정우는 가장 친했던 최종현에게도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가 왔을 때도 사적인 일이라고 하며 밖으로 나가서 받았다.
자신의 전화를 엿들었다고 하면 반발할 것이다.
“지금은 새벽입니다. 김정우 씨도 알겠지만, 새벽은 무언가를 결정 내리기에는 부적절한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한숨 자고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생각해요. 정말 죽어야 하는지.”
“제발……. 변호사님, 제발 방해 하지 마세요!”
김정우가 꽥 소리 질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는 여전히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듯,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죽으려는 거 아닙니다. 이미…… 이미 옛날부터 생각해 왔던 거예요.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김정우 씨. 스스로 인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정우 씨는 몇 달 동안 졸피뎀 과다 복용으로 부작용에 시달려 왔습니다. 하루 먹지 않는다고 그 부작용에서 해방되는 건 아닙니다. 김정우 씨가 자살을 결심한 게, 정말로…… 김정우 씨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였습니까?”
김정우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치아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이 거리에서도 어렴풋이 들릴 정도였다.
그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눈물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이렇게는 못 삽니다……. 정말, 더는 감당 못 하겠다고요!”
“최 기자님한테도 어제 막 털어 놨잖습니까. 상의하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일단…… 내려 와요. 일단 내려 와서 최 기자님하고 같이 얘기해 봅시다. 최 기자님 믿잖습니까.”
“아무리 최 기자님이어도, 의사가 못 한 걸 어떻게 합니까. 제발! 제발 좀 그냥 가세요! 변호사님 저 하루 봤잖아요. 하루밖에 안 본 당신이, 대체 뭘 안다고 이렇게 끼어들어서 난리야!”
그는 명백히 죽음을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조금의 미련도 없이 몸을 던지지 않았다는 점일까.
점점 감정이 격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말 죽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면, 내가 계속 말을 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전 삶에서 김정우가 죽음을 선택했을 때, 누군가 말리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런 비극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정우 씨는 하루 봤지만, 최 기자님하고 하루 보진 않았습니다. 저는 최 기자님을 잘 알아요.”
“…….”
“김정우 씨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남겨진 최 기자님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는 흐느꼈다.
김정우의 생명줄을 잡고 있었던 것은, 조현병을 앓는 어머니를 홀로 떠맡을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최종현인 모양이었다.
“선배는…… 차라리 제가 사라지는게 나을 거예요. 어차피 저는 선배한테 도움도 되지 못하고, ”
“최 기자가 김정우 씨한테 도움을 많이 받아서 김정우 씨를 아낀다고 생각합니까?”
“…….”
“김정우 씨가 죽고 나면, 최 기자님은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겁니다. 김정우 씨도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태까지 집안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최 기자님이 걱정할까 봐?”
“그 약봉지를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냥, 그냥……. 그리고 어차피, 제 가정사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김정우 씨가 최 기자님이 우신과 이정찬을 파는 것 때문에 국장한테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김정우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 때문에 그간 김정우 씨가 승진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는 것도, 국장한테 계속 협박 문자를 받아 왔다는 것도!”
“그걸 대체 어떻게,”
“만일 김정우 씨가 이대로 죽으면 최 기자님은 분명히 본인 탓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본인이 사활을 걸었던 모든 것을 다 접고 몇 년은 페인으로 지낼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어, 어어!”
김정우가 눈을 질끈 감으며 버럭소리 질렀다.
그 바람에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가 휘청일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몇 걸음 더 다가갔고, 김정우는 그 사이에 앞에 놓인 빨래 걸이를 붙잡았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냐고! 최 선배는 금방 회복할 거야. 어차피 나는,”
“아뇨. 최 기자님은 상실감을 쉽게 떨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히 죄책감에 시달릴 거예요. 김정우 씨도 알잖아요. 그래서 협박받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
“국장한테 들어서 알겠죠. 최 기자 님이 조금만 더 사건을 파고들면, 우신은 분명히 최 기자님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김정우는 헛숨을 삼켰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이대로 김정우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국장은 김정우 기자의 자살을 최 기자님 때문인 것처럼 꾸밀 겁니다. 김정우 씨의 유서를 조작할 거라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김정우가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인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정우 씨가 생각하기에, 국장이 그런 짓을 안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김정우 씨, 유서는 썼습니까? 안 썼잖습니까. 일중일보가 유서 하나 조작하지 못하는 집단입니까?”
일중일보는 유서를 남기지 않고 자살한 김정우의 죽음을 마치 최종현의 탓인 것처럼 조작한다.
그의 죽음 직후, 김정우의 자리에 놓인 노트북 메모장에서 최종현이 그간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 발견된다.
그 유서에 적힌 내용에 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최종현은 그것 때문에 크게 평판이 상했고, 결국 일중일보에서도 해고되었다.
컴퓨터 메모장에 적힌 유서가 법적으로는 증거 능력을 크게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최종현에게 징계를 가하는 데 충분한 명분을 제공할 수는 있으니까.
“일중일보 입장에선 가뜩이나 눈엣가시인 최 기자님을 치워 버릴 최고의 기회 아닙니까? 최 기자님을 어떻게든 제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김정우 기자가 최 기자님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위조할 수 있을 거란 생각 안 했습니까?”
“말도 안 돼…….”
김정우는 계속 내 말을 부정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결과를 알고 말하는 것이고, 사실 김정우의 휴대폰에 저장된 문자만 봐서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있을 텐데.
대번에 납득하는 것을 보면 그간 국장에게 받은 압박이 얼마나 강도 높았는지 알 만했다.
“정 자살해야겠으면, 유서를 남기고 죽어요. 자필로 유서를 남기세요. 그러면 내가 공증을 해 주겠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최 기자님이 김정우 씨의 죽음 때문에 곤경에 처할 일은 없을 겁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자살하기 전해야 하는 일들을 알려 주는 상황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하지만, 일단은 그가 난간에서 내려오게 해야 하니 도리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연락을 취했던 구급대가 이제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정우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신고했어요?”
그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김정우의 자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비단 최종현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이 받을 피해, 그로 인한 죄책감일지도 모른다.
“네. 제가 김정우 씨를 죽일 거라고 자수했습니다.”
“뭐라고요?”
“김정우 씨를 옥상에서 밀어 버릴 거라고 자수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김정우 씨가 이대로 뛰어내리면 전 살인자가 될 겁니다.”
“그게 무슨…….”
“김정우 씨의 자살 때문에, 최종현 기자는 불명예스럽게 직장을 잃게 될 거고 난 살인자가 될 겁니다. 하지만, 김정우 씨가 죽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어느덧 저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보는 두 번째 아침 해였다.
밝은 햇볕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김정우의 눈은 명백히, 동요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지금 김정우 씨한테 가겠습니다.”
“…….”
“김정우 씨, 손을 잡아요.”
사이렌 소리가 건물 바로 밑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그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외쳤다.
“손 잡아요!”
나는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김정우는 벌벌 떨리는 손을 나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재빨리 그의 손목을 낚아채고 세게 잡아당겼다.
김정우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내 위로 쓰러졌다.
“하아, 하아…….”
그는 내 옆으로 구르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일어서 옷을 털며 그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잘 생각했어요.”
김정우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 정말 막막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걸 어떻게 견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죽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정말, 정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누운 채로 눈을 가리고 오열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를 반복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를 이곳으로 끌어내리기까지 수많은 말을 했지만, 지금 당장 해 줄 말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다만, 어떤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김정우 씨. 국장에게 압박을 받지 않으면, 그러면 좀 더 살 만하겠습니까?”
그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가정사는 김정우 씨의 말대로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국장에게 받는 압박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려면 최 선배의 취재를 막아야 하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알고 싶으면. 나랑 같이 내려갑시다.”
“…….”
“더는 자살 기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알려 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