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21)
너희들은 변호됐다-121화(121/641)
옥상으로 올라온 구급대원들은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돌아갔다.
비좁은 골목에 사이렌 소리가 울린 탓에, 동네 주민들이 잠옷 바람으로 나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1층에서 그가 통화할 때도 소리가 다 들렸으니, 옥상에서 죽겠다며 소리치는 것도 온 동네에 들렸을 것이다.
옥상에 놓인 평상에 김정우를 앉히고, 나는 대충 내 겉옷을 덮어 주었다.
김정우는 퉁퉁 부은 얼굴로 말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런닝 바람의 최종현이 옥상으로 뛰어 올라올 때까지는.
“……정우야.”
최종현은 얼이 빠진 얼굴로 천천히 김정우를 향해 다가왔다.
슬리퍼 한 짝 주워 신을 겨를이 없었는지, 그는 맨발이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최종현은 김정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어렵게 울음을 그쳤던 그는, 최종현의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최종현은 여전히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김정우를 끌어안았다.
“야, 인마 이게…… 이게……. 이게 뭐야, 이 새끼야! 이게!”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죄송해요, 선배님. 흑흑.”
최종현의 가슴팍에 얼굴이 눌려 뭉개진 발음으로 김정우가 말했다.
최종현은 그를 나무라기도 하고, 그에게 사과하기도 하며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났음에도 저렇게까지 충격에 빠지는데, 이전 삶에서 김정우의 주검을 확인한 그는 어땠을까.
내가 최종현을 만난 것은 그 모든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뒤였기에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몇 년을 페인으로 지낸 것도 이해가 되었다.
“차 변. 고맙습니다.”
최종현은 김정우를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옅게 웃었다.
“아닙니다.”
“……내가 더 아닙니다. 만약 내가 끝까지 차 변 말을 듣지 않았으면, 그랬으면 정말로 정우를 잃을 뻔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데……. 차 변 덕에 정우가 살았습니다. 정말로 내가 차 변이 아니었으면…….”
그는 생각나는 말들을 아무렇게나 주워섬겼다.
날이 너무 추웠다.
나는 그만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제 벌써 8시다.
일중일보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하는 때였다.
이런 날에 굳이 출근을 해야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김정우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최종현은 출근해야 한다.
* * *
“정우 오늘 지각이네?”
김정우의 맞은편에 자리를 둔 기자 한 명이 문득 말했다.
그 말에 최종현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게. 오늘 늦는다는 말 없었는데? 노트북은 켜져 있는데, 잠깐 자리 비운 거 아냐?”
최종현이 김정우의 자리를 슬쩍 들어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윤세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제가 사무실 불 켜고 들어왔는데 그때부터 노트북에 불 들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한 번도 못 봤고요.”
“그래?”
윤세연이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지나가는 말로 덧붙였다.
“얘가 잘 늦는 애가 아닌데, 웬일이지? 월차 쓴다는 소리도 없었는데.”
“전화 한번 해 볼까요?”
최종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윤세연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최종현은 잠시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내가 할게.”
처음 김정우의 지각을 인식했던 경력 기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워드 프로그램을 켰다.
어제 취재한 것들을 빠르게 기사로 옮기는 데에 집중한 그는, 최종현이 ‘이 자식 전화를 안 받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말도 듣지 못했다.
그렇게 10시, 11시가 지났다.
김정우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은 채였다.
시계만 바라보고 있던 최종현은 사회부장에게 다가갔다.
“부장님, 혹시 정우 월차 썼습니까?”
“월차? 안 썼는데?”
부장은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반차 써야 할 것 같단 연락도 없었어요?”
“없었어. 김정우 아직도 안 왔어? 내가 시킨 일 있는데?”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티션 너머로 말단에 위치한 김정우의 자리를 훑어보았다.
“가방도 없네?”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제가 다시 한번 전화해 보겠습니다.”
“이 자식이 늦을 것 같으면 반차 낸다고 말을 하든가. 빠져 가지고.”
“원래 그러던 놈 아니잖아요. 제가 따끔하게 혼낼 테니까 적당히 반차 처리 해 주시죠.”
“너는 김정우를 너무 싸고 돌아.”
부장은 최종현에게 한마디 쏘아붙였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달리 화난 기색 없이, 얼른 들어오라고 전하라는 말만을 남겼다.
최종현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김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시각이 11시 30분.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여보세요, 정우냐?”
그때, 드디어 통화가 연결된 듯 최종현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유독 오늘따라 목소리가 크다고 생각하며, 주변에 앉아 있던 기자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원치 않게도 통화를 엿듣던 이들은 빨리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타박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넋이 나간 듯, 최종현이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앵무새처럼 ‘예?’ 하고 되묻기만 했다.
“최 기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사회부 부장이 최종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장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지, 곧 빠르게 소리쳤다.
“멀쩡하던 애가 왜 갑자기 옥상에서 뛰어내립니까?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애는요. 애는 살아 있는 겁니까? 숨은 붙어 있어요? 예?”
최종현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었음에도 아직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있던 기자 몇몇이 깜짝 놀라 최종현을 바라보았다.
“살아 있냐고 물어봤잖아요! 애가 살아 있냐고! 목숨은 붙어 있냐고요!”
최종현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사무실 바깥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윤세연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가렸다.
최종현이 들고 있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청자 모두가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배, 무슨 일이에요?”
윤세연이 떨리는 눈으로 최종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최종현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연이어 소리쳤다.
“제, 제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정우가 자살했을 리가……. 거기 병원 어딥니까? 지금 가겠습니다. 기다려요!”
자살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정우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부장 역시도 패닉에 빠진 듯 어쩔 줄을 모르고 최종현의 옆에 서서 무슨 일이냐고 계속해서 묻기만 했다.
“대체 언제 발견된 겁니까? 언제 병원에 실려 온 거냐고요! 그걸 왜 나는 이제야 안 겁니까, 대체…….”
최종현은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얼굴이 검붉게 달아올랐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최종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성진 병원……. 장산구에 있는 성진 병원 말입니까?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한 40분 걸릴 겁니다!”
최종현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고 사무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윤세연과 부장, 그리고 기자들은 저마다 눈빛을 주고받았다.
차마 입으로 김정우가 자살한 게 맞느냐는 말을 꺼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부장이었다.
“정우 이 근방에 살지 않았어? 대체 왜 성진 병원에…….”
“글쎄요…….”
기자가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윤세연은 숨을 몰아쉬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무실 내부에 전화 소리가 울렸지만, 순식간에 얼어붙은 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때, 사무실 안쪽에 위치한 개인 오피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편집국장이었다.
“전화 안 받아?”
국장의 지적에, 울리는 전화기의 주인이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때부터 얼어붙었던 사무실이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국장은 사회부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직도 패닉에 빠진 듯한 부장의 책상 앞에 멈춘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국장님, 김정우 기자가…….”
“김정우? 너희 부서 수습 기자 말야?”
국장이 물었다.
부장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걔가 왜?”
“……자살했답니다.”
그 말에 국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서 들어 온 정보야?”
부장은 그에게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국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최종현이 병원으로 간 거야?”
“예, 그렇습니다.”
“알았어.”
김정우가 최종현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는 것은 국장이 가장 잘 알았다.
마치 오리 새끼가 어미를 따르듯이 졸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최종현의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예의주시했을 때부터, 국장은 두 사람 사이에 직장 선후배 이상의 유대 관계가 쌓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런 김정우가 하필이면 최종현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는 사실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최종현처럼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자에게 우신과 이정찬을 파지말라고 대놓고 협박했다가는 그가 언제 어떻게 폭로하겠다고 나설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게 가할 수 있는 것은 충고를 가장한 간접적인 압박뿐이었다.
하지만, 김정우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간이 작다.
애초에 일중일보라는 거대 집단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최종현과 달리 폭로 따위는 꿈도 꾸지 않을 성격이었다.
그리고, 최종현에게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최종현의 성격을 뻔히 아는데, 그걸 말했다가는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김정우를 뒷조사해 본 결과,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가정사에 큰 문제가 있었으며, 가정형편마저 어려웠다.
그런 김정우라면, 작은 협박에도 벌벌 떨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국장은 협박 대상을 김정우로 설정했다.
그리고 최종현도 김정우를 마치 친동생처럼 아끼니, 김정우에게라면 조사한 내용을 공유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
‘하지만 김정우 그게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지…….’
국장은 개인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갖 불이익을 가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불이익을 주어 겁을 먹게 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김정우는 최종현이 무엇을 파고 있는지 보고 한 번을 올린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살이라니.’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니,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어디서 괜한 소리를 떠들고 죽은 건 아닌지 염려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국장은 잠시 망설이다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들어와 봐.”
잠시 뒤, 사회부 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최종현한테 전화 온 거 없어?”
“안 그래도 방금 전화해 봤습니다.”
“어떻게 된 거래? 정말 자살 맞대?”
“네. 시신이 발견된 건 3시간 전이랍니다. 경찰은 자살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일단은 더 조사해 볼 예정이라고…….”
“유서는?”
“아직 경찰 조사가 끝난 건 아니라서, 유서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가족하곤 연락된 거야?”
“그게, 가족하고 연락이 안 돼서 일단은 최 기자가 장례식장 알아보고 부고 띄울 거라고 합니다.”
국장이 참담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부장 역시 침울한 표정이었다.
다른 얘기는 없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괜히 말을 꺼냈다간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지 알 수 없었다.
국장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김정우 기자에 대해서는 계속 나한테 보고해.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찾아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부장이 사무실을 나간 뒤, 국장은 이마를 짚었다.
김정우 기자가 유명인도 아니고, 자살 이후 자택 조사를 한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텀이 있을 것이다.
국장은 산만하게 책상을 두드리다,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예, 접니다. 주필님. 김정우 기자가 오늘 자살했다고 합니다. 지금 올라가서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