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27)
너희들은 변호됐다-127화(127/641)
나는 최 기자에게 나를 알아볼 시간을 주었고, 그는 좋든 나쁘든 확신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충분한 잠을 자고, 출근하고, 의뢰인의 사건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필요로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강 변과 오 사무장과 회의하고.
그런데 강 변은 이런 내 노력에도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왜.”
틈만 나면 그의 시선이 온종일 나를 향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노골적인지, 그의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에 구멍이라도 뚫릴것 같았다.
“네? 아무것도 아닌데요.”
내가 한 번씩 지적하면, 강민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본인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원래 실없는 놈이긴 했지만,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을 숨기는 눈치였다.
“저 의뢰인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사무실에서 안 만나고?”
코트를 걸치는 강민재를 향해 묻자, 강민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밖에서 보고 싶으시대요.”
“그래, 그럼. 많이 늦나?”
“퇴근 시간 전에는 복귀할 것 같아요.”
그렇게 강민재가 사무실을 비우고, 이곳에는 나와 오 사무장만 남았다.
가장 수다 떨기 좋아하는 놈이 사라지면, 분위기는 축 처지기 마련이다.
지금이 그랬다.
순식간에 명상실보다 조용해진 사무실에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말고는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런 여유 좋은데.
“변호사님.”
그 여유를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오 사무장이 상담 소파를 향해 턱짓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라, 나는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오 사무장은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은 뒤, 맞은편에 자리했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이번에 난리 났던 일중일보 건. 그거 변호사님이 디자인하신 거죠?”
직구로 날아오긴 했지만,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역시 그렇군요. 그때 최 기자 주변인에 대해 제보 받으시고부터 쭉 같이 진행하신 것 같은데.”
“네. 그런데 법적인 싸움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그냥, 그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좋아하는 기자를 계속 보고 싶어서 참견한 수준이었죠. 그래서 사무실엔 공유하지 않은 거고요.”
오 사무장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사실 검사 시절에도 가장 가까웠던 오 사무장이라 한들 모든 것을 전부 공유하지는 않았던 터라, 그는 자연스럽게 느끼는 듯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런데, 강 변이 좀 삐친 것 같습니다.”
본론이었다.
뭐, 전혀 예상 못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 역시 강 변이 삐친 것 같다고 생각한 지 어언 2주가 지나갔다.
물론 그가 엄청 티 나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캐묻고도 남을 놈이 그러지 않았고, 괜히 장난을 걸 만한 일에도 얌전하게 굴었다.
이번 일중일보 사건이 내 디자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은데, 그랬다면 진작 관련 기사에서 내 이름 석 자를 찾아보기 위해 가위를 들고 신문을 몽땅 뒤져 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여태 모든 사건을 다 함께했는데, 이번에는 알려 주지도 않으시고 변호사님 독자적으로 행동하셨잖습니까. 그게 되게 서운한가 봐요.”
“수임 들어온 사건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강 변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본인도 그건 아는데, 뭐랄까……. 본인이 변호사님한테 아직 믿음을 못 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 봐요.”
아무래도 두 사람, 내가 바쁜 사이에 사석에서 나에 대해 굉장히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모양인데.
“처음에 변호사님한테 채용해 달라고 한 것도 본인이고, 싫다는 변호사님한테 졸라서 어떻게든 일원이 됐는데. 계속 본인이 이렇다 할 활약도 하지 못하고 꼽사리 끼어 있는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본인 PR을 굉장히 당당하게 했는데, 변호사님한테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느껴졌을지 잘 모르겠다고도 하고요.”
“그렇게까지 땅을 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렇죠? 하하. 강 변은 누구보다도 변호사님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오 사무장과 마주 앉아 이렇게 강민재를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왠지 학부모 상담을 진행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학부형, 오 사무장은 교사, 그리고 강민재는 아들.
“저는 강 변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하하, 저도 변호사님 성격에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까지 데리고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해 두긴 했습니다. 아니었으면 진작 자르셨을 거라고요.”
오 사무장은 허허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강 변은 변호사님이 하시는 일에 언제나 도움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사적인 일이어도, 뭐랄까. 변호사님이 고민이 많으실 땐 털어놓으시고, 그러면 강 변도 같이 고민하고. 그런 관계가 되고 싶은 것 같아요.”
이번 사건으로 소외감을 많이 느꼈던가.
최종현 기자가 그들과 마주친 적이있었는데, 달리 소개해 주지 않았던 것이 문득 생각난다.
“변호사님 성격 자체가, 좀 벽이 느껴지는 분이잖아요. 그게 서운한 거겠죠, 강 변은.”
“강 변 성격에 벽을 치게 두겠습니까? 저도 대체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지만, 강 변이 언제 여기까지 침투했나 싶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붙임성이 워낙 좋으니까.”
“그렇긴 하죠. 하하.”
“강 변에게는 많이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강 변과 제가 잘 맞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놀란 적이 있을 정돕니다.”
“저도 알죠. 두 분이 같이 일하시게 됐다는 말을 듣고 제일 놀란 게 저하고 이예진 검사님인데요. 하하.”
내가 칭찬에 인색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성격이 마냥 다정하지 못해서?
뭐가 됐든, 같은 사무실 쓰면서 괜한 일로 분위기 흐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쨌든, 서운한 일이 있으면 풀어야죠.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날,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강민재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 왔습니다. 아우, 너무 춥네요.”
강 변은 외투를 걸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의 어깨에는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벌써 눈이 오나?”
“네, 그렇더라고요. 차 많이 밀리게 생겼어요.”
강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분주하게 오늘 의뢰인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그를, 나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지,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강 변.”
“예?”
“오랜만에 사무장님하고 셋이 고기나 구워 먹을까.”
내 제안에 강 변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 말이 정말로 내 입에서 나온 게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 오 사무장을 바라보았다.
오 사무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강민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야 좋죠!”
“어디서 먹을까. 그때 갔던 식당 중에서,”
“변호사님 댁에서 구워 먹는 게 어때요?”
“우리 집?”
“사람 버글버글거리는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조용하고. 저도, 사무장님도 변호사님 댁 가 봤었고. 좋잖아요.”
좀 잘해 주려고 했더니 틈이 생기니 대뜸 우리 집에 오겠다는 소리가 나올 줄이야.
“싫어.”
“아, 왜요. 가요.”
“싫어. 뒷정리할 것도 많고 집에 냄새 오래 가.”
“제가 설거지랑 뒷정리 다 하겠습니다. 원래 그런 건 막내의 몫이죠. 냄새는 환기하면 금방 사라지잖아요.”
강 변은 지금 당장이라도 고무장갑을 낄 것처럼 벌떡 일어나며 팔을 걷었다.
“잊었어? 강 변 우리 집 출입 금지잖아.”
내 대답을 들은 강민재는, 자신이 술에 취한 채 우리 집에서 민폐를 끼쳤던 그날을 떠올린 듯했다.
그는 잠시 숙연해진 표정이었지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 그럼 고기 살 때 술은 안사도 되겠네?”
“……어떻게 고기에 술이 빠집니까?”
“그러다가 강 변 꽐라 되면 그건 누가 책임지나?”
“…….”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며,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강민재에게 대체 어떻게 오냐오냐하는 태도를 취하냔 말이다.
나에게 의표를 찔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침울해지는 저 표정을 보면, 누구라도 강 변 놀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강 변 술 못 마시게 하고, 저희끼리 한잔하죠, 변호사님.”
조용히 있던 사무장까지 합세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사건 때문에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강 변이 사무장님과 이 선배하고 대박집 갔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던 게 생각나서 더 괘씸해졌습니다.”
“강 변호사, 정말 그렇게까지 한거예요? 너무했네. 너무했어.”
강민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올려 자신의 문자함에서 나에게 보낸 문자를 지웠다.
“그런다고 나한테 남은 문자가 사라지나?”
“……변호사님,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본인에게 되게 치사한 면이 있다는 거 아시죠?”
“모르겠는데.”
“…….”
나 때문에 삐쳤다는 강민재가 그렇게 우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싶다는데 어쩔 도리 있겠는가.
“퇴근하는 길에 장 봐서 들어가야겠네. 강 변이 좋아하는 이슬하고 맥주도 사서.”
입술을 삐죽이던 강민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회생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화이트보드 가까이로 다가갔다.
최종현에게 화이트보드 뒷면을 보여준 후, 다시 앞으로 돌려놓긴 했지만 왠지 강민재가 저 앞으로 가까이 갈 때면 뜨끔 하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주말을 이용해서 좀 더 제대로 감출 수 있게 시공을 하든가 해야지.
“자, 수요조사가 있겠습니다. 삼겹살파 손들어 주십시오.”
“저요.”
“사무장님 삼겹살파. 그럼 목살파 손들어 주십시오.”
그는 신난 듯이 화이트보드에 오늘 장 봐야 하는 품목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거의 밥을 해 먹지 않는지라, 나는 웬만해서는 장을 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시리얼과 우유를 사서 들어가는 것이 내 장보기의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신나게 카트를 몰고 마트를 누비는 강민재를 따라다니느라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아니, 변호사님 너무하잖아요. 진짜 저랑 사무장님 왕따시키는 것도 아니고. 진짜……. 우리 한 팀인데…….”
그리고, 술에 취해 버린 강민재의 주정을 들어 주느라 남아 있던 진이 또 빠져 버렸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번에 대박집 앞에서 토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집 바닥에 언제 토사물을 쏟아 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우욱, 하는 소리만 나도 나는 그를 끌고 화장실로 갔다.
설거지는 혼자 다 하겠다고 하더니, 부엌에는 남산만큼 설거지거리가 쌓였고.
“아무래도 소파에서 재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와 건배를 하기 위해 잔을 채워놓고 기다리던 오 사무장은, 비틀거리는 강민재를 부축했다.
“변호사님…….”
그를 이고 소파로 가는데, 강민재가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렇게 토를 해 댔으니 힘이 빠질 법도 했다.
“왜.”
“……저 믿으시죠?”
나는 그를 소파 위에 누이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저것이었을 텐데.
대답해 준다고 해서 내일 깼을 때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지만.
“믿어.”
“…진짜죠? 흐흥, 흥.”
강 변은 철없는 아이처럼 웃으며 내가 던져 준 담요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며 잠들었다.
아직 식탁에 남은 음식과 술이 많다.
나는 다시 오 사무장과 함께 마주보고 앉아서 남은 잔을 비웠다.
“변호사님, 전화 오는 것 같은데요?”
한참 실없는 대화를 이어 가던 무렵, 오 사무장이 내 휴대폰을 가리켰다.
[최종현 기자]“잠깐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