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29)
너희들은 변호됐다-129화(129/641)
“유료 주차장을 선택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강민재가 진입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 법원 정문을 향해 턱짓했다.
주차 공간이 하나도 남지 않은 모양이다.
“이 법원에 볼일 있을 땐 유료 주차장에 차 안 대면 재판 못 들어갈 수도 있어. 차라리 택시 타고 오는게 낫지.”
“그러게 주차장 좀 더 크게 만들어 놓으면 좋잖아요?”
강민재는 늘 하는 불평이 지겹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앞 유리 너머로 꽉 막힌 도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피곤했다.
차가 막히지만 않으면 20분 내로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스트레스다.
물론, 운전은 내가 아닌 강민재의 몫이지만.
가는 동안 서류나 확인할까 싶어 가방을 뒤적이는데, 강 변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왜 같이 오신 거예요?”
“왜냐니. 우리 사무실에서 맡은 사건이니까 같이 왔지.”
“저 혼자 감당 못 할 사건도 아니었고, 변호사님도 그냥 구경만 하셨잖습니까.”
그는 과장을 좋아하지만, 구경만했다는 표현은 아주 적합했다.
나는 파일을 열며 대꾸했다.
“왕따시키지 말라며.”
“예? 설마 제가 왕따시키지 말라고 했다고 따라오신 거예요?”
강민재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경악한 듯했다.
“그렇다니까.”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강민재를 혼자 큰 재판에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모든 재판에 내가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의뢰인은 많아졌고, 출석해야 하는 재판도 함께 늘었으니까.
그래서 전부터 어렵지 않다고 판단되는 케이스에는 강민재를 혼자 내보내곤 했다.
그가 일을 그르친 적은 없었다.
의뢰인들도 상냥하고 공감력 높은 강민재를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오 사무장과 강변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강 변.”
“예?”
“좀 뜬금없긴 한데.”
“네.”
“태광 나온 거 후회 안 해?”
내 물음에 갑자기 강민재가 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태광 나온 거요? 당연히 후회 안하죠.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나쁜 놈들 변호하는 게 제일 싫었는데 변호사님하고 같이 일하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 좋다고요. 보람차기도 하고.”
나는 곧잘 태광을 복마전에 비유하곤 했지만, 그건 대부분 어느 정도 그 안에서 위치가 있는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다.
태광은 사법 연수생들이 판사 임용도 제쳐 두고 생각할 정도의 직장이다.
강민재는 거길 제 발로 나와 나에게 왔으니, 어쨌든 건진 게 있긴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배우겠다는 건 강민재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고, 나는 그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페이 역시도 어쩌다 보니 굵직한 사건을 맡게 되어서, 그가 원래 태광에서 받던 것보다 많이 챙겨 주었다.
그러니 강 변이 성장하지 않았다 해도 그건 알아서 주워 먹지 못한 그의 탓이라고 해도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 보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낼 땐 보내더라도 그가 나와 있었던 2년여의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설령 그게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요? 설마 제가 왕따시키지 말라고 한 게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그래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원했던 것처럼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운 게 있기는 한지.
성장을 했는지.
“그런 의미에서 회포를 풀기 위해 오늘 저녁에 소주 한잔?”
잠시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강 변이 소주잔 꺾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술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나는 당분간 강 변이랑 술 마실 생각 없어.”
“하, 제가 변호사님 댁 바닥에 토하진 않았다면서요. 변기 잡고 토했다면서요.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서 제가 설거지도 다 하고, 변기 청소도 하고, 다 했는데. 뒤끝 작렬이시네, 정말.”
“강 변이 취할 때마다 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누구였더라.”
“…….”
“본인 주량 생각해서 적당히 마시든가.”
“많이 마셔야 주량이 늘고, 그래야 변호사님한테 폐를 안 끼치죠.”
기적의 논리였다.
나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그럼 주량 늘 때까지는 계속 내가 수발들어 주고?”
“음, 그래도 몇 년 내로 늘지 않을까요?”
“몇 년 동안 수발을 들어라?”
“제가 평소에 변호사님 운전해 드리고, 커피 사다 드리고, 전화도 다 받고, 저도 평소에 변호사님 수발드는데!”
“운전은 강 변이 날 쫓아다니려고 자처한 거고, 커피는 요즘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사러 가잖아? 전화는 이제 사무장님이 받으시고.”
“제가 자처하지 않을 때도 운전하라고 하시잖아요.”
“그럼 앞으로 하지 마. 내가 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혼자 다니면 되지, 뭐. 어차피 내가 강 변보다 운전 잘해.”
“하, 진짜.”
어이가 없었는지 강민재는 입을 다 물었다.
떠드는 사이 정체 구간이 지났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에라도 조용히 갈까 싶어 다시 서류철을 들어올렸다.
“변호사님.”
“또 왜.”
“저거 우신 물산 본사 아닙니까?”
저 앞으로 보이는 커다란 빌딩을 향해 턱짓하며 강민재가 말했다.
“누가 1인 시위 하는 것 같네요.”
그의 말대로, 누군가 붉은 글씨가 가뜩 적힌 널빤지를 목에 걸고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게.”
“대기업 본사와 법원과 검찰청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언제나 누군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민재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차는 점점 시위자에 가까워졌고, 나는 그가 걸고 있는 널빤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사람 패는 조폭 재벌 고윤성 본부장]하지만 차가 지나가는 속도 때문에 가장 윗줄밖에 읽지 못했다.
사람 패는 조폭 재벌 고윤성 본부장이라.
고윤성이라면 분명, 고상준의 골칫거리 막내아들인데.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사람 패는 조폭 재벌 고윤성 본부장.”
“조폭 재벌? 살벌하네요. 고윤성한테 폭행이라도 당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비유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잠깐 차를 세우고 시위자와 대화를 나눠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보는 눈이 많은 본사 앞이기도 하고.
[우신 물산 본사 앞 1인 시위자 있는데 사연 좀 알아 봐 <사람 패는 조폭 재벌 고윤성 본부장>이라고 적힌 널빤지 메고 있어]대신, 태식에게 간단히 문자를 남겼다.
[저도 변호사님 사무실 앞에서 시위 하나 할랍니다 오랜만에 연락해 놓고 잘 지냈냐는 인사도 안 하는 인성 파탄 변호사 차주한]답장은 칼같이 왔다.
요즘 왜 이렇게 주변에 삐친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게 성격적 결함이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잘 지냈냐] [ㅋㅋ너무 성의 없는데요?] [MOU 파기?] [죄송합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키우는 개가 보낸 겁니다 바로 직원 보내서 알아볼게요]나는 사무실로 가는 내내 고윤성에 관한 사건이 이맘때에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아무리 내가 본격적으로 우신을 파기 전이었다고 해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특검이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우신에 대해 털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자식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나는 고상준 자식들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대기업의 특검을 시작하려면 국민을 움직여야만 가능하고, 자식과 관련된 비리는 민심을 움직이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다.
불법 상속 및 증여, 군 복무, 대학 입학 등.
모든 것이 대한민국 부모라면 가장 열을 올리는 사안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이 사건을 모른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입막음이 너무 완벽하게 잘됐거나, 아니면 이전 삶에선 일어나지 않은 일이거나.
“수고하셨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오 사무장이 반겼다.
강 변과 외근하고 돌아을 때면 언제나 문을 잠그고 나갔어야 했는데, 오 사무장이 있으니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강민재 역시도 바로 오 사무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사무장님, 오늘 저랑 소주 한잔 안 하실래요? 위스키도 좋은데.”
나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왜요, 강 변 오늘 힘든 일 있었어요?”
“변호사님이 괴롭히는 거 말곤 힘든 일 없죠.”
강 변은 한숨을 쉬었다.
“다 강 변을 아껴서 그러시는 겁니다.”
오 사무장은 강 변을 위로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아무래도 오 사무장이 다 받아 주니 괜히 칭얼대고 싶은 모양이다.
“변호사님, 저번에 또 술 마시고 외박하면 할아버지한테 혼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랬죠. 하지만 이번엔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고 집에 갈 겁니다.”
“조절도 못 하면서 기분 좋을 만큼만 마시기는.”
내가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가는 길에 한마디 보태자, 강민재가 한숨을 쉬었다.
“사무장님, 변호사님이 이렇게 절 갈굽니다.”
“일찍 퇴근해서 할아버지 어깨라도 주물러 드려요.”
“……네.”
어느덧 시간이 흘러, 6시가 되었다.
강민재가 가장 먼저 퇴근 준비를 하고 일어났다.
“퇴근들 안 하십니까?”
“전 아직 서류 작업이 조금 남아서요.”
오 사무장이 대답했다.
“나도.”
혹시 작게라도 오늘 목격한 시위자에 대해 인터넷 뉴스가 뜬 건 없는지 확인하는 중이었다.
딱히 나오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태식의 연락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오늘 최종현과 약속이 있었다.
그가 건물 1층으로 오겠다고 해서, 그때까지는 사무실에 있을 작정이었고.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강 변이 퇴근하고, 30분쯤 지나서 최종현에게 문자가 왔다.
거의 다 왔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슬슬 가 봐야 할 듯해서 짐을 챙기고 일어났는데, 오 사무장은 아직도 타이핑 삼매경이었다.
“사무장님, 퇴근하셔야죠.”
“아주 조금 남았습니다. 5분만 더하고 가려고요.”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무리는요. 검찰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한데요.”
그가 웃으며 대꾸했다.
일을 열심히 해 주는 것은 좋지만, 그는 이따금 내가 월급을 많이 주니 그 몫을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곤한다.
하긴,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긴 하다.
“차 변.”
건물 바깥으로 나오자, 최종현이 손을 들어 보였다.
차도 없고, 얼굴이 빨갛게 얼어 있는 것을 보면 지하철을 타고 온 모양이었다.
“일단 타시죠.”
나는 리모컨 키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날도 추우니 밖에서 얘기할 순 없고, 어차피 어디로든 가야 한다.
그가 조수석에 앉자 히터를 올렸다.
“저녁 먹었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뭐, 식사도 되고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데로 가죠. 조용히 얘기할 만한 데 어디 없나?”
“아는 데 있습니다.”
“너무 비싸면 좀 그런데?”
최종현이 농담조로 말했다.
“제가 사겠습니다.”
“뿜빠이 해도 되는데.”
“실직자한테 뿜빠이 하자고 하려니 조금 양심이 찔려서.”
“실직자라니. 프리랜서라고 불러요.”
그렇게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오 사무장이었다.
“지금 퇴근하십니까?”
창문을 반쯤 내리자, 오 사무장의 시선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최종현에게 머물렀다.
“네. 대충 마무리 지었습니다. 최 기자, 자주 보네요. 잘 지냈습니까?”
오 사무장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자, 최종현도 슬쩍 고개를 숙였다.
“네, 덕분에요.”
최종현을 바라보는 오 계장의 눈빛은, 그를 탐색하는 듯했다.
내가 최종현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고 언질을 주었으니, 오 사무장도 그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최 기자님, 오 사무장님도 동석해도 괜찮겠습니까?”
최 기자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난 상관없는데, 차 변은 괜찮아요?”
오늘 대화할 내용을 그가 알아도 괜찮은지 묻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정말 믿을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 같으니, 차라리 자리를 만드는 게 나을 듯했다.
사실, 이전 삶에서 가장 죽이 잘 맞았던 것은 두 사람이었으니까.
“사무장님, 뒤에 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