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
너희들은 변호됐다-13화(13/641)
“요청했어요. 몇 번 도와주기는 했지만, 큰 금액은 아니었어요. 남편이 나한테 남겨놓은 재산이 좀 있어서.”
“그 시기가 언제인지, 김형준 씨 의사 업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안해요. 그건 대답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몹시 착잡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한동안 거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곧 그녀가 다시 말했다.
“변호사님은 우리 형준이를 의심하고 있는 모양인데, 맞아요?”
“…….”
“변호사님이 뭐 때문에 그렇게 단정적으로 형준이가 진범이라고 생각하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나한테는 형준이도 연준이도 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들이에요. 형준이가 범인이든, 연준이가 범인이든. 똑같이 가슴 아파요. 둘 다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그녀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니 죄 없는 김연준 씨가 김형준 씨 대신 그 누명을 뒤집어 쓰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변호사님의 말이 맞다면, 막아야 하지요.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요. 형준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연준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쪽을 두둔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요.”
[진실]그녀의 머리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친척들이 전부 김연준을 덮어놓고 욕하는 이 상황에서, 아마 표면적으로나마 유일하게 중립을 지키고 있는 것이 그녀일 것이다.
그녀는 내게 김형준의 사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자세히 알려 주면 결국 ‘김형준이 사업상 돈을 융통하기 위해 부모를 죽였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라 판단했다.
그 정도까지 생각했다는 것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김형준을 의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스로 김형준의 범행 동기를 추측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그게 과연 두 손자를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는 게 맞는 걸까?’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오른 [진실]이라는 글자는, 어쩌면 두 손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착각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내 능력은 절대적인 참과 거짓을 가리는 게 아닌, 발화자의 기준에서의 참과 거짓을 가리기 때문이다.
외조모는 김형준의 허물을 덮어 주려 한다.
하지만 김형준의 허물이 덮이는 순간, 김연준이 살인자가 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
결국, 그녀는 이미 김형준을 두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겠습니다. 여사님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두 손자를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시는군요.”
“어허흑.”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강민재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위로했다.
“진정되셨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네.”
“돌아가신 따님의 부검 결과서. 혹시 받으셨나요?”
“아니요. 형준이하고 우리 큰애가 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연준 씨는 부검 결과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현재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저희는 김연준 씨의 무죄 입증을 위해, 부검 결과서가 필요합니다. 여사님은 돌아가신 여희숙 씨의 어머니잖습니까. 부검 결과를 열람할 권한이 있으십니다. 저희가 부검 결과를 볼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김형준 씨와 같이, 김연준 씨도 여희숙 씨의 아들입니다. 부검 결과를 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강민재가 놀란 듯 작게 입을 벌렸고, 나는 그를 외면하며 주스를 마셨다.
김연준의 외조모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는 듯했다.
두 손자 중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되죠?”
생각을 마친 그녀가 물었고, 나는 서류 가방에서 위임장을 꺼냈다.
그녀는 위임장에 스스로 이름을 적고 서명했다.
부검 결과. 드디어 손에 들어온다.
“감사합니다.”
“네.”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뭐죠?”
“혹시, 재판에서 김형준 씨가 여사님께 돈을 빌린 것을 증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변호사님!”
강민재가 소리쳤다.
알고 있다. 외조모가 중립을 지키고 싶다고 줄곧 주장해 왔던 것을.
그러나 그녀는 편을 든다는 것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다.
미묘한 방법으로 김형준의 편을 들고 있다.
그런 그녀가 김연준을 위한 증언을 할 리가 없다.
분명히 거절할 것이다.
“미안해요. 아까 말했듯이, 그건 힘들겠어요.”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가꿔진 정원을 다시 통과 하면서, 강민재는 흘긋 현관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그가 말했다.
“변호사님 대단하시네요.”
“뭐가?”
“처음부터 여기에 부검 결과 하나 때문에 오신 거잖습니까. 어차피 김형준 사업 상태야 직접 공장 가서 알아보면 되는 건데 굳이 마음 아프다는 할머니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상관없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재는 한 번 연 지퍼를 닫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처음에 우리한테 부검 결과를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할머니가 입 열기 싫어하니까, 그 얘기 꺼내서 공평성이니 중립이니 그 할머니가 직접 얘기하게 만들고. 그럼 부검 결과도 공평하게 형제가 다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게임 셋. 자가당착에 빠트린 거죠.”
“가는 길 운전은 강 변이 해.”
그에게 차 키를 건네자, 강민재가 웃으며 받아 들었다.
“네. 그리고 저, 이번 사건에 끼워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공동 변론은 안 돼.”
“네? 제가 페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강 변은 소속이 있고. 무엇보다 의뢰인이 의아하게 여길 거야.”
“김연준 씨는 제가 설득,”
“김연준 씨 찾아가지 마.”
“……하.”
“조사는 끼워 줄게. 대신 이번 사건 한 번뿐이고. 내 지시에 따르는 조건이야. 페이는 태광에 겸업 금지 조항이 없으면 시간으로 따져서 지급할게.”
어차피 사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점이다.
앞으로 계속 쓸 순 없겠지만, 이번 한 번이라도 그게 어딘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사무장처럼 쓸 수 있다면 오히려 내게는 이득이다.
“정말 페이는 상관없습니다. 겸업금지 조항 있을 거고요. 어쨌든,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내일은 강 변이 라이린 패션 공장에 다녀와 줬으면 좋겠는데.”
“저 혼자요?”
“나는 부검 결과 처리해야 하고. 두 명인데 분업해야지.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네. 라이린 패션 공장……. 라이린 패션이 김형준 사업체예요?”
“응.”
“질문해야 하는 것들 정리해서 메일 주세요. 저도 질문해야 하는 것들 추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한테 정보 공유해 주시죠.”
“일단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
“네. 그럼 출발할게요.”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지고 휘영청 달이 걸려 있었다.
시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빨리 가는 기분이다.
오늘이 끝나 가고 있다.
이제 재판은 실질적으로 이틀 남았다.
이틀 안에,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
“변호사님.”
“말해.”
“올라가는 길에 우리 저녁 먹고 갈까요? 여기 인근에 감자탕 기가 막히게 하는 곳 있는데.”
“여유롭네. 시간 얼마 안 남았다니까.”
“페이 대신으로 생각하시고 한턱 내십시오. 좋잖아요?”
* * *
“태광에 출근 안 해도 돼?”
나는 상담 테이블에 자신의 노트북까지 갖다 놓고 마우스 휠을 굴리고 있는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어제 사건 얘기하면서 감자탕에 소주까지 걸쳤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강민재 혼자서 1병 반은 마신 것 같았는데, 술이 센 모양이다.
“지들이 뭐 어쩌겠습니까. 꼬우면 자르겠죠.”
“잘려도 상관없나 보지?”
“뭐, 그럼 변호사님이 저 받아 주시겠죠. 자잘한 사건이면 모를까, 사무장도 없는데 큰 사건은 혼자 해결하시기 힘드실 거 아닙니까.”
“난 강 변이 태광에서 받던 연봉 못 맞춰 주는데.”
태광에서는 신입 어쏘 변호사에게 세후 1억 5천의 연봉을 지급한다.
물론 개인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강민재는 검사 1년의 경력을 인정받아 신입 때부터 2년 차의 연봉을 받았을 것이다.
당장 사무실 수입이 어떨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변호사까지 데려올 자금력은 없다.
오 계장님한테 검찰에 사표 쓰고 이쪽으로 오라는 말조차도 던져 보지 못한 실정 아니던가?
“저 돈 필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직성이 풀려서. 그래도 안 받아 주신다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급여 조정만 잘하면 왠지 저 받아 주실 것 같은 느낌인데요?”
“에두른 거절이라고는 생각 안 해?”
강민재는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마디도 안 져 주냐는 식이었다.
“10시 반쯤 라이린 패션 쪽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냥 전화로 해결 보려고 했는데, 공장장 연결이 더럽게 힘드네요. 직접 가서 공장 굴러가는 상황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이번 재판 끝나면 저 받아 주고 싶어 지실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네. 앞으로 태광에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야. 파트너 변호사도 되고, 윤원형 대표한테 인정도 받고.”
“전 윤원형 대표보단 변호사님한테 인정받고 싶은데요.”
아까부터 강민재의 머리 위에 지속적으로 떠 있는 [진실]이라는 글자가 거슬린다.
돈 필요 없단 이야기도, 윤 대표보단 나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실례지만, 강 변 금수저야?”
“금수저요? 아, 금수저 물고 태어났냐고요?”
아, 2008년엔 금수저, 흙수저 같은 시쳇말이 유행하기 전이었던가.
2018년엔 40대 중후반이었던 나도 자주 쓰던 유행어였는데.
“뭐, 그렇다고 봐야 하나요. 제가 일 안 해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순 있어요. 왜, 변호사 사무실에 투자 필요하세요? 그럼 저 고용 형태 말고 공동 대표 형태로 갈까요? 사무실 이름도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 말고 차앤강 이런 식으로 바꾸고요. 물론, 변호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상태로 강민재가 빠르게 읊어 내렸다.
왠지 고용보다는 처음부터 이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강 변이랑 대단한 인연을 맺었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시보 시절은 잘 기억나지 않고, 이제 하루 같이 움직였고.”
“아, 거절이시군요?”
“응.”
“그럼 역시 고용 형태로 어필하는 게 좋겠네요. 흐흐.”
벽창호가 따로 없었다.
“그럼 라이린 패션 갔다 옵니다.”
“내 차 가져가.”
“저도 차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님 서초동 가실 거 아닙니까? 변호사님은 어떻게 움직이시려고요.”
“난 가까우니까 택시 타도 상관없는데, 라이린 패션은 머니까.”
“음, 오늘 복권을 사야겠어요.”
“왜?”
“변호사님이 절 배려해 주시는 날이 다 오다니. 보통 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배려라고 할 것까지야.”
“라이린 공장 가는 길에 감동의 눈물 뚝뚝 흘리느라 시야가 뿌예져서 운전 실수하면 어쩝니까?”
강민재가 장난스레 응수했다.
내가 그 정도로 강민재에게 쌀쌀맞았던가?
잘 모르겠다.
“참.”
프린터기에서 갓 나온 문서들을 챙기며 강민재가 멈춰 섰다.
“인터넷 뉴스에 조그맣게 변호사님 기사 났던데. 시간 남으시면 구경 한번 하시죠. 하하하.”
그는 고급 외제차 엠블럼이 새겨진 차 키를 빙빙 돌리며 사무실을 나섰다.
강민재가 서울로 돌아오면 오후쯤일 테고.
시간을 아끼려면 그가 돌아오기 전에 검찰청에 들러서 부검 결과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그전에 그 기사인지 뭔지나 좀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