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0)
너희들은 변호됐다-130화(130/641)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 것은 강민재였는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나와 오 사무장이었다.
우리는 식사와 반주로 마실 만한 술을 추천받아 주문했다.
최종현은 메뉴판에 적힌 가격대를 보고 기함했지만, 내가 사겠다고 다시 한번 말하자 신나게 먹고 싶은 것을 주문했다.
이것도 주문해도 되냐, 저것도 주문해도 되냐 묻는 것을 보면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아, 배부르다.”
최종현은 식전보다 눈에 띄게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담배를 꺼냈다.
“오 사무장님, 혹시 담배 안 태우십니까?”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듯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를 슬쩍 끌어당다.
“피우세요.”
“저만 피우려니 왠지 좀 그래서.”
잠시 담배를 피우러 바깥에 나갔다 오려던 나는, 최종현의 손에 들린 재떨이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주점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이곳으로 돌아온 지도 거의 2년이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예전의 버릇이 남았나 보다.
“그래서, 최 기자님. 알아보시라고 한 건 잘 알아보셨습니까.”
우리가 만난 지도 어느덧 한 시간 가까이 흘렀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때였다.
최종현은 재떨이에 물을 조금 붓고 그 위에 담배를 비벼 끄며 대꾸했다.
“그랬으니까 차 변에게 연락했겠죠?”
최종현의 대답에 오 사무장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그냥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데, 묘하게 꼬아서 말하는 게 무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야 이전 삶에서와 달리, 그에게 첫인상부터 찍혀 버려서 틱틱대는 말투에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조사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최종현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어떤 점에서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데, 먼지가 너무 안 나서.”
나는 웃음을 흘렸다.
“먼지 많이 났을 텐데요. 특히, 이쪽 업계 사람들에게 물으셨다면 욕밖에 안 나왔을 텐데.”
“너무 나댄다고들 하긴 합디다. 돈과 명예에 눈이 뒤집혔다고.”
최종현이 웃으며 대꾸하자, 시종일관 조용히 있던 오 사무장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최 기자. 말씀 좀 가려서 해요.”
계속 경계하는 듯하더니, 역시 최종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 나에게 그의 연락처를 주었을 때부터 차단할 목적으로 저장해 두었다고 했으니, 첫인상이 나빴던 탓일까.
이럴 때 보면 FM 로봇이라고 불렀던 나보다 오 사무장이 더 FM인 것 같다.
물론, 검찰을 박차고 나오면서 나에게 FM 로봇이라는 별명은 사라진 것 같지만 말이다.
“이런. 나름 반전을 주려고 나쁜 말 먼저 꺼낸 건데, 사무장님 기분을 상하게 했군요.”
최종현은 여전히 굳은 표정의 오 사무장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저도 압니다. 차 변한테 나댄다고 하는 놈들이 창자 꼬인 놈들이라는 거. 돈 밝힌다는 비난도, 사실 자기소개죠. 욕하는 것들 대부분이 제일 돈 밝혀서 태광, 장영 간 놈들 아닙니까. 차 변이 정말 돈을 밝혔다면 콧대 높은 태광에서 심심하면 뻐꾸기 날리는 수준이었다던데, 진작 거기로 갔겠죠.”
최종현은 허허 웃으며 조금은 변명하듯 덧붙였다.
“명예를 좇는다는 것도, 뭐. 비슷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디 가서 저 개업한 변호사입니다. 하는 것보다, 저 태광 소속 변호사입니다. 하는 게 더 알아주는데. 차 변이 맡은 사건들이 굵직한 게 많긴 했지만, 사실 그 사건 처음 맡았을 땐 계란으로 바위 친다고 욕도 많이 먹었잖습니까.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빈번이 이기니까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 거겠죠.”
이 갑작스러운 용비어천가는 뭐란 말인가.
오 사무장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고 해도, 최종현은 그 눈치를 보느라 할 말 못 할 타입은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씹는 사람들이 있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별로 나한텐 결점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들한테는 늘 따라다니는 거니까. 그런 점에선 나랑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고.”
“그렇습니까.”
“더 읊어 볼까요. 수능 만점.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법연수원 수석 졸업. 재판에선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심지어 키 크고 잘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정말이지 징그러울 정도로 미담투성이였죠.”
최종현은 질린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나 역시 듣고 있자니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차라리 아까처럼 나를 씹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 사무장의 굳은 표정은 조금 풀려 있었다.
……이런 걸 바랐던 건가.
“아, 물론 성격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건 논외로 치고.”
“변호사님 정도면 성격도 좋은 편이죠.”
오 사무장이 반박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를 오랫동안 본 나에게는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그의 얼굴엔 마치 아들의 칭찬을 들은 아버지처럼 뿌듯한 기색이 비쳤다.
“그런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최종현의 입에서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접속부사가 나오자, 오 사무장은 미세하게 눈썹을 추어올렸다.
“그래서 뭔가 인간미가 없습니다. 더 못 믿겠어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기꾼 달변가한테 속는 기분입니다.”
근래 내가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슬쩍 그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진실이라는 글자가 반짝이는 것을 보니, 비싸게 굴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그의 말은 전체적으로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었다.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나,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나 같은 소리 아닌가.
이전 삶에선 그가 스스로 나를 찾아왔었는데, 내가 먼저 시간을 앞당겨 끌어들이려니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만일 차 변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정보를 조금씩 풀면서 나를 이용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꼼짝없이 말려들 것 같다, 이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비우고 차갑게 식은 반찬을 한점 집어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근데. 솔직히 차 변의 정보력이 너무 탐납니다. 그래서 나도 몇 날 며칠 동안 고민을 많이 했는데…….”
최종현은 다시 자신의 잔을 채우고 꿀꺽꿀꺽 술을 넘겼다.
말하는 도중에 술을 연거푸 들이켜는 것은, 조금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말을 할 때 그가 보이는 버릇이었다.
“당분간은 차 변 말대로 한배를 타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이 불안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배에서 내릴 겁니다. 솔직히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욕해도 좋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차 변한테 크게 빚진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거 좀 미안하긴 하거든요.”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일과 이건 별개죠. 사활을 건 일에 믿음 안 가는 놈이 끼어드는 건 저 같아도 싫을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네요. 성격은 잘 모르겠다는 말을 살짝 취소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흐흐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이해해 준 김에, 하나만 더 이해해 줘요. 나, 차 변한테 한 가지 부탁을 해 볼까 합니다.”
“말씀하시죠.”
“고상준한테 죽빵 한 대만 갈겨 줘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비유입니까?”
“설마 정말 죽빵을 갈기라는 뜻이겠습니까?”
“실제로도 죽빵을 갈기고 싶긴 하지만, 비유적으로 갈기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갈기라는 건지 궁금하네요.”
그는 대답 대신 들고 왔던 서류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그 사진을 들어 올리자마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우신 물산 본사 앞에서 시위하는 분이군요.”
“……엉? 이 사건 알고 있었어요?”
“아뇨, 오늘 외근 나갔다가 우연히 봤습니다. 자세한 전말은 아직 모르고요.”
그땐 가장 윗줄밖에 읽지 못했지만, 최종현이 건넨 사진을 통해 내용을 숙지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시위자는 우신 물산 건설 부문 아파트 사업부 직원 가족입니다. 그 직원이 고윤성한테 뒤지게 맞았다는데, 오히려 때린 고윤성이 지금 드러누워서 직원을 고소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직원은 공소장도 받았답니다.”
미친놈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건설사 평직원이 고상준의 막내아들을 드러누울 정도로 때렸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만일 정말 그랬다면 솔직히 그 패기를 칭찬해 주고 싶다.
고윤성과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면, 나는 잘못한 사람은 무조건 고윤성일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검사 줄신이니 무죄 주정 원칙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고윤성한테만큼은 다르다.
설령 고윤성과 싸우는 사람이 사탄이라고 해도, 고윤성의 잘못일 가능성이 컸다.
물론 내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다고는 할 순 없겠지만, 이건 축적된 데이터로 말미암아 도출한 추측이다.
“뭐, 그때 차 변 화이트보드 보니까 고윤성 사진 밑에 망나니라고 적어 놨던데. 감이 오긴 할 겁니다.”
그 화이트보드에 적힌 사람 이름만 해도 수십 명이었고, 그는 천사의 집에 시선을 빼앗긴 상황이라 못 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생각보다 시야각이 넓었다.
“사실, 난 그 피해 직원하고 친하게 지내던 노조 간부한테 얘기를 들어서 알게 된 겁니다. 안 그래도 고윤성 패악질이 너무 심해서 노조가 들썩이는 상황이긴 했는데, 그런 상황에 직원이 폭행까지 당했다니까 이걸 문제 삼자는 의견이 많았더군요. 그런데, 오히려 고윤성이 갑자기 그 직원한테 맞았다면서 드러누우니까. 상황이 이상해진 겁니다.”
고윤성의 패악을 경험했던 노조 간부들은 당연히 직원의 무고함을 믿고 싶었겠지만, 그들이 지지를 받기위해서는 객관성이 필요했다.
그러니 그 상황을 계기로 움직이려고 해도, 백 퍼센트 고윤성의 잘못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쉽사리 들고일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검찰에서 기소까지 했다고 하니까 솔직히 그 정도면 증거 있는 거 아니냐면서, 오히려 직원이 거짓말을 한 거라는 말도 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노조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답니다.”
“그렇군요. 어쩌면 고윤성 쪽에서 이걸 노리고 역으로 쇼를 하는 걸 수도 있겠습니다.”
“내 생각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차 변한테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신 계열사를 툭툭 건드리는 것과 달리, 그의 아들과 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고상준에게 직접 덤비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상준이 고윤성에게 갱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국에 보내지 않고 계속 계열사에 자리를 준다는 것은 그를 완전히 놓지는 못했다는 뜻이니까.
최종현은 나를 시험할 생각이었다.
만일 나에게 우신을 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전면전을 벌이는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일 테니까.
직원이 억울한 게 확실하다면, 내가 거절할 명분이 별로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고상준과의 전면전은 시기상조라며 거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신의 힘에 눌려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겠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최종현은 그런 나를 신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내가 김정우와 그를 구하기 위해 일중일보를 들이받는 것을 직접 봤던 사람이니 더욱.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맡아 주겠다는 말입니까?”
“지금 답해 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사건에 대해 충분히 확인해 봐야 합니다. 최 기자님 말만 믿고 덥석 사건을 수임하겠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더 못 미덥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안 그래도 오늘 시위자를 발견한 직후 저희 쪽에서도 조사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