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1)
너희들은 변호됐다-131화(131/641)
“인성 파탄 변호사님 계십니…….”
오늘도 우렁차게 사무실 문을 열어젖힌 태식은, 오 사무장을 발견하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변호사님. 저분 계장님 아니에요?”
그리고 슬쩍 소리를 죽인 채 내 책상까지 다가와 소곤거렸다.
“맞아.”
“……계장님이 여기 왜?”
그가 위협을 느낀 듯 내 뒤로 숨으며 오 사무장을 주시했다.
태식과 오 사무장 역시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내가 검사로 태식을 처음 만났을때, 오 계장도 내 방에 있었으니까.
나와의 첫 만남이 곧 오 계장과의 첫 만남인 셈이다.
그때 태식은 검사에게 몹시 불손하게 구는 피의자 중 하나였다.
반말은 물론이고, 욕설에 고성방가까지.
그때의 나는 피의자들에게 친절한 편이 아니었고, 태식 역시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태식에게 몇 마디 할 심산으로 벌떡 일어났는데, 그때 오 계장이 나타났다.
그는 태식의 귓바퀴를 세게 잡아당기며,
-사람 죽이고 들어온 새끼가 어디서 검사님한테 반말이야, 반말이. 하루에 한 번씩 재판 직전까지 세 달동안 매일같이 불러 줄까? 그럼 너는 몇 시간 동안 용건 없이 그냥 검사실 구석에 앉아 있다가 그냥 가는 거야. 처음에는 구치소에 있는 거 심심하니까 외출하는 거 재밌을거야. 근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죽을 맛일걸? 그렇게 해 줘, 이 새끼야?
……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때는 2000년대 초반, 검사실에서 욕설이 오갈 시기라 가능한 일이긴 했다.
오 계장은 골치 아픈 피의자들이 생기면 꽤 터프하게 나가곤 했고 말이다.
나중에 들은 말이었지만, 태식은 당시 자신이 사람을 죽인 놈이 되어있으니 웬만해서는 모두 자신 앞에서 쫄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같은 방을 쓰는 미결수들도 자신이 살인 혐의로 왔다고 하니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 놓았다고.
그런데 웬 인상 좋고 서글서글한, 만만해 보이는 아저씨가 자신의 귀때기를 잡아당기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오 사무장과 태식의 일화는 더 있지만, 모두 생각지도 못한 오 사무장의 박력이 태식을 겁먹게 한 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태식이 오 사무장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겼을 때, 오 사무장 역시 나와 함께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 사람이니까.
쫄기는 해도, 내심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태식이 아니야? 장태식!”
오 사무장은 내 등 뒤에 숨은 그가 반가운지,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태식은 내 어깨를 세게 붙잡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오 사무장에게서 점점 멀어지려 했다.
그 바람에 바퀴 달린 내 의자까지 함께 딸려 갔지만 말이다.
“뭐 하는 거야? 놔.”
내가 내 어깨를 세게 쥔 그의 손을 떼 내려 하자, 장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태식아. 얼굴 좀 보자. 이게 몇 년 만이야?”
강민재는 저 등치가 내 앞에서 순한 양이 된다는 것을 매우 신기해했지만, 사실 나는 중간 보스에 불과하다.
오 사무장이 진정한 장태식 조련사였으니까.
“계, 계장님! 오랜만입니다. 아, 정말 그때 됐을 때보다 한결 더 늙으, 아니, 더 젊어지셨네요. 하하.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더는 숨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태식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접으며 오 계장에게 인사했다.
오 사무장은 태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야, 자식. 너 많이 컸다.”
오 사무장은 태식의 팔뚝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쇠파이프도 녹은 엿가락처럼 꺾어버릴 것 같은 그의 근육이 신기한듯,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으헤헤, 만지지 마세요! 크크큭, 간지러워.”
간지럼에 취약한 태식은 몸을 꼬아댔고 말이다.
등치는 산만 한 게 정말 꼴값이었다.
내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자, 태식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흠흠. 많이 크긴요. 키는 똑같은데요.”
“검사실에서 봤을 땐 애기였는데, 이제 보니까 아저씨 다 됐네. 하하.”
“예? 아저씨는 계장님이고요. 머리도 희끗희끗한 게 완전 할배 직전이구만. 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곧 서른이 되니까 아저씨라고 하면 뭐, 아저씨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하.”
작고 빠르게 말하면 앞의 말이 안들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오 사무장은 태식의 그런 면도 귀여운지 그의 볼을 꼬집었다.
“짜식.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냐?”
“변호사님이 시킨 일이 있어서요.”
“변호사님이?”
이번에는 오 사무장도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태식이가 흥신소를 하고 있길래, 조사원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나름 일 잘합니다.”
“그렇습니까? 이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태식이가 적성을 찾았구나. 흥신소라고 뭐, 나쁜 일 하는 건 아니지?”
“하하, 그럴 리가요.”
“불법 섯다 빼면 나쁜 짓은 안 할 겁니다.”
나는 상담 소파로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태식은 불법 섯다는 끊었다며 계속 투덜댔지만, 자신의 머리 위에 [거짓] 글자가 떠 있다는 것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강 변은 어디 갔습니까?”
“강 변 커피 사러. 아, 태식이 것도 사 오라고 해야겠네.”
“괜찮습니다. 저는 이따가 강 변이 알로에 주스 줄 겁니다.”
우리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그에게 존댓말을 하는 강 변.
어디 가서 꿀린 적 없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장태식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 그런데 상길이가 본인이 기자라고 하면서 그 시위하는 사람한테 사정을 물어봤다고 하는데. 괜찮겠죠?”
“험상궂은 빡빡이가 본인이 기자라고 하는 걸 누가 믿겠어?”
“빡빡이라뇨. 상길이 머리 길렀습니다. 그리고 애가 얼핏 보면 인상이 더럽지만, 눈은 얼마나 순하게 생겼는데요. 소 눈이에요, 소 눈.”
나는 태식이 내민 mp3를 오 사무장에게 건넸다.
대화를 녹음한 것 같았다.
mp3를 스피커에 연결하자, 곧 대화 내용이 흘러나왔다.
[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사건이 벌어진 건 두 달 전인데요……]시위자는 피해자의 형이며, 피해자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말로 진술이 시작됐다.
정리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달 전, 새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에 고윤성 본부장이 시찰을 나갔다.
아파트 사업부 소속 대리인 피해자는 출장 중인 팀장을 대신하여 현장에서 그를 수행했다.
그러던 와중, 아버지뻘의 현장 근로자가 고윤성에게 실수를 저질렀다.
고윤성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현장 근로자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피해자는 이건 아니다 싶어 그를 막았다고 한다.
고윤성은 이에 몹시 분노했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따로 불러 자신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구석에 몰아 놓고 발길질하는 그의 눈빛은 거의 광인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로도 모자라, 고윤성은 수행원들에게도 피해자를 폭행하라고 지시했다.
수행원 일부는 피해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았고, 나머지는 고윤성과 함께 피해자를 폭행했다.
피해자는 고윤성에게,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노조에 찔러 문제 제기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고윤성이 ‘그래? 화나? 그럼 쳐 봐. 쳐 봐.’하며 그를 도발했다.
하지만 이미 곤죽이 된 피해자는 그를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때, 고윤성이 돌발 행동을 보였다.
피해자를 둘러싸고 있던 수행원들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지시한 것이다.
수행원들이 머뭇거리자, 그는 수행원들의 손을 잡고 직접 자신의 뺨을 치기까지 했다.
“상길이도 듣다가 기가 막혔답니다. 무슨 이런 미친놈이 다 있는지.”
중간에 태식이 끼어들어 말했다.
나는 잠시 mp3를 멈췄다.
“고상준 자식들은 대체로 이미지 관리를 잘 하지 않았습니까. 자잘한 사건들은 있었어도, 이 정도 사건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 사무장 역시 대충 최종현에게 설명을 듣긴 했어도, 자세한 내용을 알고 나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사건 자체는 천인공노할 일이긴 했지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고윤성은 원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놈이다.
상습적인 마약 복용으로, 마약이 없으면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수준이었다.
“고윤성은 고상준도 통제 못 하는 놈입니다. 금지옥엽 막내둥이 아닙니까. 일단 마저 들어 보시죠.”
피해자는 현장에서 기절했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고윤성 쪽에서 그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민형사상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 뒤로는 최종현에게 들은 그대로였다.
피해자는 고윤성의 폭행을 문제 삼으려 노조에게 말해 둔 상태였는데, 오히려 고윤성이 그를 고소하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아무리 고윤성이 미친놈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폭행을 당했으니 고소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은 빠르게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 역시 그를 기소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한 듯했다.
첫 재판은 한 달 반 뒤로 잡힌 상태였다.
“지금 진술만 들어서는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이유도, 검찰이 기소한 이유도 전혀 모르겠네요. 아예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까 증거도 없었을 테고, 현행범도 아닌데.”
오 사무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같은 의견이지만, 사실 우신 그룹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힘 없는 직원 한 명에게 없는 죄 뒤집어씌우는 것은 일도 아닐 터였다.
“일단 피해자를 만나서 자세히 진술을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 맡으시려고요?”
오 사무장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피해자와 직접 만나 본 게 아니라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진술이 전부 사실이라면, 맡아야 할 것 같네요.”
내 말에, 태식이 품 안에서 시위자의 연락처가 담긴 메모를 건넸다.
“더 물을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달라고 했습니다.”
“사무장님. 아는 기자한테 사정을 전해 들었는데, 자세히 얘기 듣고 도와 드릴 게 있으면 도와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연락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빡빡이가 기자라는 말 아무도 안 믿을 거라면서요.”
태식이 구시렁거렸다.
나는 전화를 걸러 가는 오 사무장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그에게 간단히 대답했다.
“난 그 기자가 상길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
안타깝지만, 내가 말한 기자는 최종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