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7)
너희들은 변호됐다-137화(137/641)
황영찬은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듯했지만, 금세 표정을 가다듬었다.
“차 변호사. 오랜만이군.”
나는 저 표정을 알고 있다.
그는 여유롭지 않을 때, 여유로운 척하기 위해 미세하게 턱을 들고 입꼬리를 올리는 버릇이 있다.
“오랜만입니다, 부장님.”
“옆에는…… 강민재 변호사구만.”
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내 뒤에 서 있던 강민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자네 얘기는 많이 들었어. 아주 실력이 좋다더군.”
“부족함이 많은 신출내기 변호사일뿐입니다. 아직 배우고 있습니다.”
검사실 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바쁘게 서류를 넘기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수사관들도 전부 행동을 멈춘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영찬을 대면하는 게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굳이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얘기할 거리를 던져 줄 생각은 없었다.
“사건 때문에 양 검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두 분 얘기 중이셨다면 기다릴 테니 마저 말씀 나누시죠.”
“아냐. 우린 얘기 끝났어. 흐음, 차 변.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나 잠깐 하다 가지. 용건은 강 변이 봐도 되잖아.”
황영찬이 강 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강 변은 티 나지 않게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강 변. 용무 보고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
“……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들어가.”
강민재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의 등을 두드린 뒤, 황영찬을 따라 양한석 방에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고생이 많아.”
황영찬의 뒤를 따라 그의 방으로 가는 길목에서, 몇몇 검사들이 황영찬을 보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황영찬은 옅게 웃으며 인사를 전부 받아 주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넸던 검사들은 그 뒤를 따르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따금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는 어딘가로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자신이 목격한 놀라운 뉴스를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람들 시선 너무 신경 쓰지 마.”
복도를 가로지르며 황영찬이 말했다.
나를 돌아보지는 않은 채 앞만 보고하는 소리는 딱히 진심으로 위해 주는 것처럼 들리진 않는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 하긴, 자네가 좀 얼굴이 두꺼운 편이긴 했지.”
“부장님께서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자네에게 그런 것도 가르쳤던가?”
황영찬은 작게 웃으며 부장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앉은 부장실 소파는, 예전만큼 푹신하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 달라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묘하게 불편해하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차를 한 잔 주었다.
“얼마 전에 집사람이 영국에 다녀왔어. 거기서 홍차를 사 왔는데, 맛이 좋더라고”
나는 잔을 받아 두기만 했다.
황영찬은 찻잔을 잡지 않는 내 손끝을 주시하더니,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 우리가 언제부터 차 한 잔 마음 편히 못 마시는 사이가 됐지?”
황영찬은 대단히 화나지 않고서야 후배라고 해도 적절히 예의를 지키며 말하는 편이다.
평소에 야, 야 하고 불러 대는 부장들이 많다 보니 그런 황영찬을 좋아하는 후배들이 꽤 많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다.
“전 불편하지 않은데, 부장님은 불편하십니까?”
황영찬은 내 물음에 작게 웃었다.
“그럴 리가.”
그는 김이 오르는 찻잔으로 입술을 축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를 변호사라고 부르려니 좀 어색하군. 이따금 기사를 볼 때도, 기사에선 자꾸 차주한 변호사, 변호사, 하는데. 나는 계속 저 친구는 검사인데, 검사인데.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
“제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십니까?”
내가 묻자, 황영찬은 대답 없이 나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생각은 있어?”
“글쎄요.”
“내가 보기엔 없어 보여. 차주한, 자네는 이미 반골분자로 찍혔어. 그리고 난 이렇게 될 거란 걸 자네가 몰랐을 것 같지 않아. 아니, 내가 아는 차주한은 차라리 일부러 계산을 했다고 보는 게 맞아.”
황영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아니라곤 못 하겠다.
법정에서 김연준의 무죄를 밝혀내면서 검찰의 졸속 수사를 비판했던 것은, 일종의 ‘어그로’였다.
나는 처음부터 내 이름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유명 인사가 아니고서는 우신과 관련된 사건에서 영향력을 미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바닥 사람들이 나에게 명예만을 좇는다고 비난할 때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민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참 궁금했지. 대체 왜? 자네가 갑자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누구보다 검찰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던 자네가, 왜 갑자기 검찰을 떠났을까. 왜,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던 자네가 이렇게 유명해지지 못해서 안달이 났을까. 고분고분하게 굴던 차주한이 왜, 나를 떠났을까.”
그의 말은 점점 빨라졌고, 온화하던 어조에도 감정이 실렸다.
“그래서 난 한 가지 결론을 내렸지.”
“무엇입니까.”
“아, 차주한이 뭘 알아냈구나. 그래서 그 정의롭고도 알량한 자존심에 금이 가서, 더는 나도 검찰도 믿지 못하게 됐구나.”
그는 날카롭게 대꾸하며 나와 다시 한번 눈을 마주쳤다.
소파에 깊숙이 기대고 있던 허리는 어느새 꼿꼿하게 곧추세워져, 나에게 조금 치우쳐 있었다.
“밀해 봐 아니야?”
황영찬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을 채근했다.
“처음 김형준 사건을 맡은 건 우연이라고 했지? 그래, 나도 그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일부러 친정을 저격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말이야. 너는 외골수니까 남들이 모양새가 나쁘다고 하든 말든, 김연준이 무죄라는 걸 알았다면 그냥은 못 넘어갈 놈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오상현?”
황영찬은 안경을 고쳐 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백 퍼센트 네 의도야 틀렸어?”
“제가 일부러 형사 3부 사건을 또다시 저격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형사 3부를 저격한 게 아니라면 타깃이 우신이라는 뜻인데?”
나와 찢어진 이후 생각을 꽤 많이 한 티가 났다.
그의 추론은 완벽에 가까웠다.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발상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하지 못할 것이기에, 내가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추측이 이시점에서는 가장 타당했다.
하지만 그 미래를 경험한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사실은, 황영찬이 대체 언제부터 우신에 줄이 닿아 있었냐는 것이다.
지금으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그는 최소 2009년, 어쩌면 더 전부터 우신의 개였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해 주자 너는 평생을 후회할 만한 실수를 했어.”
“어떤 실수 말씀이십니까?”
“네가 알아낸 게 뭐든, 그건 진실이 아니야. 너는 제대로 진실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어. 나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고 네가 나에게, 혹은 검찰에게 가진 오해를 소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건 오만이야. 독선이고”
한마디로, 본인에게 오해한 게 있다면 자신에게 그게 팩트인지 확인해 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말을 이렇게까지 돌려 말하는 것도 재주다.
“제가 뭘 알아냈다고 생각하시기에, 그게 아니라고 단정하시는 겁니까?”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검찰을 나갈 만큼 자존심이 다칠 만한 일은 애초에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잊었어? 너는 대한민국 법정의를 수호하고 싶다고 말했고, 나 역시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 여기, 이 검찰청에 있는 거라고 대답해 줬어. 그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코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조금은 솔직한 모습을 보일 줄 알았더니, 결국에는 또다시 위선인가.
어찌나 진실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예전의 나라면 그를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검찰총장 영전을 앞에 두고 나를 버리던 그를 보지 않았더라면.
“누가 너에게 무슨 말을 흘렸는지 모르겠어. 아니면 네가 혼자서 어떻게 움직여서 뭘 추리한 건지, 나는 모르지. 하지만 넌 실수한 거야.”
황영찬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우리나라 재벌이 범죄의 온상이고, 검찰은 그런 재벌의 스폰을 받아 움직이는 기관이니 당연히 재벌의 손을 들어 줄 거다? 그런 생각으로, 너를 실망시킨 검찰한테 통쾌한 한 방을 먹여 주려고 이번 사건을 맡은 건가? 그래? 너마저도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 사로잡힌 거야?”
“제가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 이 사건을 맡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게 아니라면 네가 약자의 탈을 쓴 가해자들이 흘리는 악어의 눈물에 흔들려 감정적으로 넘어갔다는 뜻인데. 차주한, 너 그렇게 멍청한 놈 아니잖아?”
악어의 눈물이라.
그 눈물을 홀린 건 오상현이 아니라 고윤성이겠지.
“우리의 수사는 빈틈없었고, 아무리 우신 그룹의 막내아들이라도 편의를 봐주지 않았어. 오로지 법에 입각해서 판단했어. 고윤성이 오상현을 폭행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없었고, 오상현이 고윤성을 폭행했다는 상당한 증거는 있었지. 그게 쌍방 상해가 성립되지 않은 이유야.”
“그건 법정에서 밝혀질 겁니다. 지금 부장님이 단정하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정하신다고 해도 제가 믿을 만한 조금의 근거도 되지 않습니다.”
황영찬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검찰의 수사는 공정했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아무리 고상준 회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조금도 편의를 봐주지 않으셨을 겁니다.”
“…….”
“법정에서 그걸 확인시켜 주십시오. 그럼 저도, 더는 검찰에 덤비지 않을 겁니다.”
“그건, 네가 형사 3부를 일부러 저격한 게 맞다고 시인하는 걸로 들리는데?”
우신을 저격한 거라고 하기에는, 아직 내 몸집이 너무 작다.
지금의 나는 우신이 작정하고 밟으면 밟힐 것이다.
뭐, 우신 입장에선 나 같은 조무래기를 굳이 밟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가소롭게 보긴 할 테지만.
내 속내를 벌써부터 드러낼 순 없지.
“편하신 대로 생각하십시오 제가 알아낸 것, 그래서 제가 이 검찰을 떠나게 만든 ‘그것’이 오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부장님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이미 무언가를 알아냈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해한 거라는 생각은 지금으로서는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장님이 이번 일로 확실하게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신다면, 저는 저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겠죠.”
형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라는 말은 황영찬을 옥죌 것이다.
나는 그가 우신과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결탁했는지 알지 못한다.
먼 미래에 검찰총장 자리를 두고 거래한 것 외에, 그들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고, 지금 당장 어쭙잖게 추측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황영찬은 내가 알아낸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증거가 있는지 불안하기 시작할 것이다.
끝까지 내가 알아낸 ‘무언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대체 내가 어디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부정을 알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몇 번이나 검열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보여 주십시오. 검찰이 조금도 이 사건에 대해 숨긴 게 없다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우선 보유하신 CCTV 자료를 공유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마침 저희가 검찰청에 온 목적도 사건 기록 열람 등사를 위해서였으니까요. 개인 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한에서는, CCTV도 정보 공개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까. 부장님의 말씀대로, 모든 수사 과정이 공정하고 법정의에 어긋나지 않았다면, 저희가 CCTV를 봐도 상관없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