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8)
너희들은 변호됐다-138화(138/641)
“강 변 아까 전에 갔습니다.”
양한석 검사실 문을 열자, 안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양한석이 말했다.
“그랬겠지.”
나는 검사실 안으로 들어서며 대꾸해다.
“기록 다 복사해 갔는데, 선배님은 왜 다시 오신 겁니까.”
“강 변한테 CCTV 기록은 안 주지 않았나?”
“그건 개인 정보 문제 때문에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부장님하고 얘기 끝냈으니까 확인해 봐.”
내 말에 양한석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전화를 들어 올렸다.
통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몇 초 뒤, 양한석은 알겠다고 대답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담당 검사는 접니다. 증거 기록 확인하는 건 저랑 얘기하셔야죠? 왜 이걸 부장님하고 두 분이 쇼부 보시고 담당 검사인 저한테 통보하시는 겁니까?”
“양 검사도 부장님한테 사건 정보 받아쓰면서, 왜 나는 양 검사하고만 얘기해야 하지?”
양한석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야?”
“누가 부장님에게 사건 정보를 받아썼다는 겁니까? 경찰에서 넘어온 자료 토대로 제가 수사한 겁니다. 마음대로 추측하지 마시죠.”
“그래. 자료는 여기에.”
나는 그의 책상 위에 USB를 올려놓았다.
양한석은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 듯 여전히 나를 노려보았다.
굳이 그에게 대단히 예의를 지키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욕감을 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의미 없는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빨리 해 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
양한석은 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먹을 바들바들 떨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장에게 내가 건넨 USB를 넘기며, 나에게 넘겨야 할 CCTV가 무엇무엇인지 일러 주었다.
“변호사님, 여기 있습니다.”
얼마 뒤, 계장에 나에게 다가와 USB를 건넸다.
이미 부장과 쇼부까지 본 마당이니, 괜히 파일 누락시키며 여러 번 오가게 하진 않겠지 싶어 확인하지 않고 안주머니에 넣었다.
“피해자 측과 연락을 좀 하고 싶습니다.”
“……아. 저, 검사님?”
계장에게 말하자, 그는 눈치를 보며 양한석을 불렀다.
양한석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변호인에게 무슨 일로 피해자와 연락하고 싶으신 거냐고 한번 물어 봐 주시죠.”
“……무슨 일로 연락을 하시려고,”
“피해자가 얼마나 상해를 입었는지 확인하고, 합의가 가능하다면 합의를 해 볼 생각입니다.”
내 목소리가 양한석에게 들리지 않았을 리 없지만, 양한석은 못 들은 체했다.
계장은 또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양한석을 향해 내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피해자 측에 의사 확인하고 알려드린다고, 변호인에게 전해 주세요.”
“피해자 측에 의사,”
“감사합니다.”
나는 서류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양한석은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지만, 나는 양한석의 목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굳이 계장을 통해서 전해 받지 않아도 된다.
검사실 문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양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조심하세요. 뒤에서 선배님 벼르고 있는 사람 정말 많습니다.”
결국, 할 말이 이것뿐인가.
“그래.”
나의 대답이 종종 사람들을 더욱 열 받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가뜩이나 양한석은 나에게 많이 화가 난 것 같아서 길게 대꾸하는 것 보단 나을 것 같았다.
“…….”
그런데 왜 더 열 받아 하는 것처럼 보이는지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변호사님.”
복도를 가로질러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재였다.
먼저 가라고 했더니 여태껏 기다린 모양이었다.
“먼저 가라고 했잖아.”
“어떻게 그럽니까. 가뜩이나 부장하고 사이도 안 좋다고 하셨는데, 걱정되잖아요.”
나는 그를 흘긋 바라보았다.
사이가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황영찬이 나를 부장실에 가둬놓고 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무슨 얘기 하셨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강민재가 물었다.
“CCTV를 달라고 했어.”
“그게 다예요?”
그 밖에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강민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황영찬 본인도 내가 왜 갑자기 자신을 떠났는지 오랜 시간 사유한 뒤에야 결론을 내렸다.
나의 이 행동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 사건은 우신의 지령을 받고 황영찬이 양한석을 통해 은페하려는 사건이다.
그리고 나는 재작년까지 황영찬의 새끼였다.
어차피 눈치가 있다면 이 사건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대충 견적이 나올 것 아닌가.
“……음, 그래서 CCTV는 받으셨어요?”
내가 좀처럼 대답하지 않자, 강민재는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물었다.
나는 품 안에서 USB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 현장에 있던 모든 CCTV가 들어 있는 건 아니고, 고윤성이 업혀 나오는 모습이랑 공사 현장 빠져나가는 장면은 있어.”
“알겠습니다. 흠, 국정원 씨한테 연락해야 할까요? 영상 분석이 필요할 수도 있고.”
“일단 보고. 조작 여부는 확인해야겠지.”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우리는 CCTV 영상을 확인했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폭행이 일어났던 그 골목 안쪽은 확실히 어두워서 그 내부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수행원들에게 업혀 나오는 고윤성의 모습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현장에서 진술을 들은 대로, 옷에 덮여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축 처진 손과 얼핏 보이는 얼굴에 피가 많이 묻어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여러 대의 CCTV가 그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화면에 담아냈다.
수행원들은 고윤성을 호위하듯 둘러싸, 그렇게 공사 현장 바깥까지 나갔다.
놀란 듯이 바라보는 인부들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그중에는, 오늘 만났던 소장도 있었다.
“지하 주차장 쪽 CCTV는 없는 것 같네요.”
오 사무장이 파일을 뒤적거리다 말했다.
“절대 안 주겠죠. 그쪽으로 오상현 씨를 빼돌렸으면, 거기 CCTV에 많이 다친 오상현 씨 모습이 잡혔을 거고. 그럼 쌍방 상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나쁜 놈들. 그 골목에 있던 CCTV, 지들이 떼 간 거. 그것도 영상 갖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강민재가 씩씩거렸다.
“빨리 고윤성 주변 상황을 좀 알아봐야겠어. 일단 만나려고 검찰에 연락처 요청해 놨으니까, 내일이면 답이 올 거야.”
나는 어느덧 6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며 코트를 걸쳤다.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합의라도 보시려고요?”
“검찰에 그렇게 말해 두긴 했지만, 합의는 볼 생각 없고. 고윤성이 안 아프다는 증거를 확보해야지.”
오상현이 그 정도 때렸다고 전치 8주는 말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윤성에게는 피해자인 척하기 위해서 자해했을 맷집도 없다.
마침 우신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니, 의사와 적당히 짜고 진단서를 발급받았겠지.
“사건 기록 보니까 찢어지고 멍든 신체 사진이 있던데.”
코트 단추를 잠그며 말을 잇자, 오 사무장이 대답했다.
“심각하게 다쳤더라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런 증거 사진은 경찰이 직접 찍을 텐데, 고윤성이 아픈 척 드러누운 거라면 그 사진은 어떻게 된 건지 의문이긴 합니다.”
“경찰도 한편이거나, 경찰이 편의를 봐줘서 사진은 본인들이 찍어서 제출했을 겁니다. 두 경우 모두, 그 몸은 고윤성 몸이 아니겠죠.”
내 추측이 맞다면, 이것까지 전부 밝혀낼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고윤성은 혼자 외로이 돌을 맞지 않아도 될 것이다.
포돌이가 길동무라니, 그것 참 든든하지 않은가?
* * *
사흘 뒤, 양한석 검사실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은 것은 오 사무장이있는데, 고윤성 측 변호사가 연락처를 알려 주어도 된다고 한 모양이었다.
아직 민사 소장은 받기 전이라 몰랐는데, 법조인 대관에 변호사 이름을 검색해 보니 태광 소속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태광이라니.
정말이지 징글징글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잡힌 것은 형사 재판이니, 당장의 적은 검찰이다.
우선은 그쪽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형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사는 그저 고윤성의 대변인에 불과하니까.
민사 재판은 그 결과에 따라 좌우 될 테니 그쪽 변호사와 법정에서 싸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라야 하고.
“제가 연락 넣겠습니다.”
오 사무장에게 연락처를 전해 받은 강민재가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고윤성 병실에서 보자고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서 봐야 해.”
고윤성 병실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그쪽 변호사하고만 접촉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어차피 합의할 생각도 없는데, 굳이 피차 번거롭게 시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변호사가 고윤성에게 한 마디도 뻥긋하지 말라고 교육시켜 놓았을 테니, 그의 입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 것이고.
처음부터 내 목적은 그가 입원한 병동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고윤성이 아픈 척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부에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가 지내는 병동에 들어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가 VIP 병동에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VIP 병동은 엄격하게 출입을 제한하니, 고윤성과 약속을 잡고 병동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주변 인물들에게서 진술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고윤성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그의 병실에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의 입막음이 잘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말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샐 수 있는 것이고.
“고윤성을 순순히 보여 주려고 할지 모르겠네요.”
“합의할 것처럼, 직접 찾아가서 사과드릴 것처럼 말하면 보여 줄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고윤성 만나는것 외엔 그 병동에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까.”
노조에서 오상현의 일로 본격적으로 고윤성을 문제 삼으려고 준비하던 차에, 눈치를 챈 고윤성 쪽에서 본인이 맞았다며 선수를 친 상황이다.
가뜩이나 이미지가 나쁜데 직원을 폭행했다고 하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계산 때문이겠지.
우리가 합의하겠다고 말하면, 고윤성 쪽에서도 이미지 제고를 위해 직접 사과를 받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그림으로 마무리 짓고 싶을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오상현이 이전에 선임했던 변호사가 계속 합의 쪽으로 유도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윤성 쪽에서 합의하면 어느 정도 편의를 봐 주겠다는 시그널을 보냈고, 해당 변호사는 떡밥을 덥석 문 것이다.
상해로 넘어가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게 되었다고 해도, 합의를 보고 처벌 불원서를 받으면 확실히 참작이 많이 되니까.
“끝까지 직접 만나는 건 안 된다고 하면요?”
“꾀병이라 못 보여 주는 거냐고 해.”
“……그렇게 대놓고 약 올려도 돼요?”
“되겠어?”
“변호사님 농담은 조금도 농담 같지 않다는 걸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재는 투덜거리며 휴대폰에 고윤성 측 변호사 이름을 옮겨 적었다.
“밖에서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강민재는 하얗게 마른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며 사무실 안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어요?”
강민재는 결과를 궁금해하는 오 사무장에게 대답하지 않고 정수기에서 물부터 뽑아 마셨다.
“아,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혀가 말랐습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서류 위에 그림자가 졌다.
흘긋 고개를 들어 올렸더니, 강민재가 책상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말하면 될 텐데, 내가 ‘어떻게 됐어?’ 하고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그를 쳐다보고 있었더니, 결국 강민재는 내 앞에 포스트잇을 내려 놓았다.
“우신 병원 본관 1803호. 내일 오후 4시 반. VIP 병동이라 리셉션 데스크에 신분증 맡기고 들어오면 안내해 줄 거랍니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따고 귀환한 선수처럼 의기양양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