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39)
너희들은 변호됐다-139화(139/641)
VIP 병동 입구의 모습은 마치 호텔 리셉션을 방불케 했다.
다른 층과는 달리 대리석과 고급원목을 이용한 인테리어는 그렇다 치고, 지나다니는 간호사들의 복장 디자인마저 달랐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데스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일어서며 말했다.
“1803호 고윤성 씨하고 4시 반에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내선 전화를 들어 올렸다.
우리의 말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신분증 주시겠습니까. 방문증으로 바꾸셨다가, 가실 때 다시 바꿔 가시면 됩니다.”
여기가 검찰청도 아니고.
불만은 있었지만, 순순히 신분증을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아니, 괜찮습니다.”
강민재가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 생각이라. 흡연 구역이 어딘지만 알려 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아, 그러십니까. 저기 정면 복도 끝으로 가시면, 외부 휴게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쪽에 재떨이가 비치되어 있으니, 그곳에서 흡연하시면 됩니다.”
직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휴게공원을 안내해 주고는 다시 데스크로 돌아갔다.
강민재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올라오기 전에 피웠잖아요.”
“직원이 따라오면 내부 구조 파악을 못 하잖아.”
예컨대 직원 휴게실의 위치라든지.
아니면 청소 용역들이 모여 있는 공간도 좋다.
고윤성은 한 달 반이나 이곳에서 지냈다.
남들 눈을 피해 집에 다녀왔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고윤성 성격에 여기서 매너를 지키며 얌전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입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심심하기만 한 VIP 병동에서, 성격 파탄 환자의 등장은 그들에게 24시간 씹을 거리를 제공할 터.
“…….”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데, 휴게공원 입구 왼쪽에 난 작은 복도를 발견했다.
VIP 환자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일부러 배려한 것인지, 조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커다란 화분이 놓여 있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장기 입원 환자들도 이곳의 존재를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복도 안쪽에, 빛이 새어나오는 방이 있었다.
[여직원 휴게실]이라는 펫말이 달려 있었다.“간호사 휴게실 같은데.”
그 안쪽에서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서 뭐 물어보시게요? 절대 말 안 할 것 같은데.”
강민재가 여직원 휴게실을 주시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대놓고 물으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냈다.
원래는 고윤성과의 대화를 녹음할 생각으로 가져온 것인데, 그 정도 대화는 휴대폰으로 해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녹음기를 화분 안에 넣어 놓았다.
방금 내가 고윤성의 방문객으로 리셉션을 통과했으니 직원들은 필연적으로 잠깐이라도 고윤성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가뜩이나 직원 휴게실은 뒷말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인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면 백 퍼센트다.
적어도, ‘고윤성 병실에 방문객 왔더라?’라는 말 정도는 하지 않을까.
운이 좋으면, 고윤성의 평소 행실이 어땠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헉. 도청?”
강민재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음, 도청은 불법이긴 한데.
재판에서만 안 쓰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무슨 소리야?”
“여기 녹음기,”
“그냥 떨어트린 건데. 짐이 무거워서.”
“…….”
“이따가 가져가려고.”
나는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고윤성이 기다리는 1803호로 향했다.
주의 깊게 문에 적힌 호수를 읽지 않아도, 가드들이 문 주변에 도열하고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문 앞에 서자, 가드가 우리의 앞을 막았다.
“오상현 씨 변호인입니다. 미리 약속했는데요.”
강민재가 방문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가드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하나 만나는데 대체 몇 번의 검사를 받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대단한 VIP 나셨다.
“들어가십시오.”
병실 안은 조용했다.
여러 대의 가습기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고, 소독용 알코올 냄새가 감돌았다.
병실 한가운데 놓인 침대에는, 고윤성이 누워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를 감았고, 팔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그 외에는 환자복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몇 주간의 입원 생활로 혈색이 나빠지고 헬쑥해졌던 오상현과는 달리, 굉장히 생기 있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강민재가 인사를 건네자, 고윤성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변호사가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간단하게 악수하고 명함을 교환한 뒤, 그는 우리를 병실 한쪽의 소파 주변으로 안내하려 했다.
“고윤성 씨가 괜찮으신지 인사드리는 게 먼저 같은데요. 어쨌든, 피해 자시고.”
고윤성은 우리를 흘긋 보기만 했을뿐, 말 한 마디 건네지도 않았다.
변호사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윤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소리를 낮춰 무어라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변호사가 우리를 간병인 의자로 안내했다.
“본부장님. 이쪽은 오상현 씨 측 변호인입니다.”
변호사의 말에, 고윤성이 우리를 바라보며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변호사가 바뀌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고윤성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많이 다치셨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많이 편찮으신 것 같군요.”
“그렇게 맞았는데 빨리 낫겠습니까.”
고윤성은 가슴팍을 짚으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고통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고윤성의 아픈 척은 조금 과하긴 했다.
전치 8주는 크게 다친 것이지만, 6주가 된 지금쯤에는 많이 호전되었어야 한다.
저렇게 곧 죽을 것처럼 연기할 필요는 없는데.
“얼굴이 차이셨다고 들었는데, 잘못 맞으면 큰일이 나죠. 그래도 이만하시길 다행입니다.”
내 말에, 고윤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자식이 인정한 겁니까? 끝까지 한 대도 안 때렸다고 우기더니!”
“본부장님. 흥분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화 나누겠습니다.”
고윤성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소리치자, 변호사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막아섰다.
몸도 벌떡벌떡 잘 일으키고.
역시 건강해 보인다.
“오상현 씨가 드디어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면, 아실 것 아닙니까. 오상현 씨가 본부장님을 발로 차는 바람에 벽에 머리를 부딪치셨습니다. 수행원들에게 들으니 소리가 아주 크게 났다던데. 뇌진탕에서 끝난 게 다행이죠.”
변호사는 고윤성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오상현 씨가 진심 어린 사과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합의할 생각이 있습니다. 금전적인 보상도 저희 쪽에선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치료비가 부족한 건 아니니까요.”
예상대로다.
역시 사과를 받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는 그림을 원하는구나.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현 씨가 사기를 치는 건지, 아니면 어디서 다쳐 온 것을 본부장님에게 뒤집어씌우려는 건지.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친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자비를 베풀 생각입니다.”
자비를 베푼다라.
얼마든지 다른 표현이 있는데도, 저런 시혜적인 표현을 사용하다니.
이래서 재벌이라는 족속들은 나와 태생부터 맞지 않다.
“그렇군요. 저희도 아직 사건을 맡은 지 오래되지 않아서, 사태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오상현 씨가 고윤성 씨에게 다소간의 터치를 한 것은 인정하셨지만, 그렇다고 폭행을 인정하신 건 아니어서요.”
내 말에 변호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희도 고윤성 씨가 저희 의뢰인에게 집단 폭행을 가했다는 걸 인정하실 때가 된 것도 같아서 찾아뵌 건데. 안타깝게도 아니군요.”
나는 붕대에 싸인 고윤성의 몰골을 훑어보며 말했다.
저 깁스 아래 팔이 정말로 다친 건지 확인하기 위해, 큰 몽둥이 같은 걸로 한번 때려 봤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사건 기록 사진을 보니 온몸에 멍이 가득하던데, 침대를 짚고 일어나는 척하면서 슬쩍 고윤성의 가슴팍이라도 한번 눌러 본다거나.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합의를 위해 만나자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이런, 조금의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강 변이 아직 신출내기라.”
나는 강민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희가 아니라, 고윤성 씨 쪽에서 합의를 원하시지 않을까 싶어서 뵙자고 한 겁니다. 고윤성 씨는 집단폭행을 저지르셨고, 그로 인해 저희 의뢰인은 전치 7주의 상해를 입었으니까요. 저희 의뢰인은 고윤성 씨와 달리 치료비가 필요하거든요.”
“차 변호사. 지금 장난합니까? 지금 피해자는 고윤성 본부장이고, 상해로 기소된 건 오상현 대리 쪽입니다. 우리가 왜 그쪽에 합의를 요청합니까?”
변호사가 언성을 높였고, 병실 안에 서 있던 가드들이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꽤 위협적인걸.
“고윤성 씨는 여전히 폭행을 인정할 생각이 없으신 거군요.”
나는 서류 가방을 챙기며 외투를 집어 들었다.
그들에게 묵례하고 병실을 나서려다,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사실 아까부터 눈에 띄는 게 있어서 꼭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뭡니까.”
“저거 플레이스테이션 아닙니까? 고윤성 본부장님이 철권 매니아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팔도 부러지셨는데.”
내가 텔레비전 셋업 박스 뒤쪽에 놓인 조이스틱을 가리키자, 고윤성이 눈을 크게 떴다.
변호사도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변호사는 이 병실에 게임기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고.
고윤성은 본인이 철권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전 삶에서도 고윤성은 검찰 출두를 앞두고 아픈 척하다가, 병실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철권을 플레이하는 모습이 찍혀 망신을 당한 적이있었다.
고상준 자식들에 대해서는 스토커처럼 정보를 수집하던 내가, 좋아하는 게임 하나 몰라서야 되겠는가.
“철권을 너무 좋아해서, 현실에서도 기술이 통하는지 오상현 씨한테 테스트해 본 건가.”
“푸흡!”
내가 중얼거리자, 강민재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눈치를 보며 입을 가렸지만, 이미 상대 변호사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괜히 불똥이 튀기 전에 얼른 가는게 좋겠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혹시 합의 의사가 생기시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나가는 길은 이쪽입니다.”
우리가 반대편으로 길을 잡자, 문앞에 서 있던 가드들이 팔을 뻗어 진로를 막으며 말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가려고요.”
나는 휴게공원 쪽을 가리켰다.
가드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시죠.”
휴게공원으로 나가면서, 나는 슬쩍 화분 쪽으로 팔을 뻗어 녹음기를 집어 들었다.
녹음 시간은 약 30분 정도.
재미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