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49)
너희들은 변호됐다-149화(149/641)
운이 좋았다.
겨울에는 빙판길 사고가 많아서 정형외과에 사람이 붐비는데, 다행히 오늘 아침 시간에 예약이 비어 있었다.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곧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단단히 깁스를 해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제 응급실에서 찍은 X-ray에 오류가 있었고, 내 뼈는 멀쩡하다는 진단 결과를 바랐는데 조금 실망스러웠다.
새벽동안 팔이 아파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으니, 사실 내 기대는 말도 안 되는 것이기는 했다.
“변호사님, 팔이 왜 그러세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 사무장이 기겁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강민재가 출근하자마자 미주알 고주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민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강 변은 출근 안 했습니까?”
“아, 그 사기 사건 의뢰인이 아침에 좀 보자고 했다나 봐요. 그래서 거기 들렀다가 출근한다고……. 그런데 팔은 왜 그러신 겁니까?”
“금이 좀 가서요.”
“넘어지기라도 하셨어요?”
“그건 아니고…….”
강민재가 미리 공유해 주었다면 어제 일을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평소에 치대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이럴 땐 강민재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오 사무장은 내 왼손에 들린 서류가방을 받아 내 책상 앞에 놔두고, 상담 소파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다리 다친 것도 아니고, 보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다친 사람 보듯 안절부절못하다니.
어째, 우리 사무실에는 걱정이 과한 사람들만 모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어제 소장 만나러 가셨잖습니까. 궁금해서 연락을 드릴까 하다가 피곤하실 것 같아서 오늘 출근해서 얘기 듣자 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예요?”
그는 내가 소파에 앉기도 전에 질문을 해 댔다.
“아, 고윤성 쪽에서 소장한테 사람 붙여 뒀을 수도 있다고 급히 나가셨잖습니까. 혹시 거기서 무슨 일이…….”
“사무장님, 제가 말할 틈은 주셔야죠.”
“헛,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쉴새 없이 질문 세례를 퍼붓는 중에도 그의 시선이 내 깁스를 향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팔을 다치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서, 소장이 나에게 현장이 담긴 CCTV를 주었다는 것, 그리고 태식에게 소장의 안위를 부탁해 두었다는 것.
오 사무장은 괴한이 소장의 뒤통수로 각목으로 내리치려 했다는 대목에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당연히 그럴 만하지 않은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그 괴한을 매수한 것이 검찰이든, 고윤성 쪽이든.
“그럼 그 CCTV는 지금 어디 있는겁니까? 받으신 겁니까?”
“네.”
“지금 어디 있습니까?”
“……강 변이 가지고 있습니다.”
난 어제 반깁스를 하느라 슈트 재킷과 코트에 팔도 끼우지 못하고 어깨에 걸치고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주머니에서 USB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강민재에게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사무실로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CCTV를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상황이 따라 주지 않아서 오늘 사무실에서 함께 확인하기로 했는데.
“빨리 오라고 하겠습니다.”
오 사무장은 어지간히도 CCTV 내용이 궁금했는지, 강민재에게 빨리 사무실로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그가 돌아을 때까지 손가락 빨고 있을 수는 없으니, 나와 오 사무장은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더니, 이제야 오른손을 쓸 수 없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마우스의 위치부터가 오른쪽이니, 이것 참.
지이이잉.
그때, 한쪽에 놓아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반가운 이름이었다.
“차주한입니다.”
-아, 변호사님. 바로 받으시네요. 저 서혜진이에요.
영월 별마 병원에서 그녀를 만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벌써부터 그녀에게 연락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꽤 놀랐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변호사님도 잘 지내셨죠?
“덕분에요.”
-아, 다름이 아니라…….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요.
“말씀하십시오.”
-변호사님 뵙고 나서 영선이하고 얘기를 많이 해 봤어요.
습관적으로 메모지를 찾다가, 오른손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네.”
-영선이도 마음을 굳혔어요. 고윤성 신고하겠다고 하네요. 그래서, 변호사님을 뵈었으면 해서요.
반가운 소식이다.
본래 한영선의 사건은 고윤성이 꾀병을 부린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필요했었다.
물론, CCTV가 나온 지금은 그녀의 증언이 없더라도 고윤성이 오상현에게 맞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오상현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고윤성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울 생각이었다.
나 역시 이전 삶에서는 우신 그룹의 안면몰수적인 행태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였다.
그리고 한영선 역시, 고윤성에게 피해를 입었음에도 합의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유로 지방으로 좌천까지 당한 피해자다.
이제 내 사건에서 긴히 쓰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않은가.
아주 차갑고 계산적으로 생각하더라도, 고윤성의 사건을 키우려면 오상현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기도 했고.
“그러십니까. 그럼 조만간 저희가 영월로 가겠습니다. 언제가 좋으시겠습니까?”
-아, 아니에요. 제가 갑작스럽다고 한 게, 사실 저랑 영선이가 오늘 오프라서요. 변호사님만 괜찮다고 하시면 제일 빠른 고속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갈까 하거든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나는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달력을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 다른 일정은 없었다.
사실, 있다고 하더라도 미뤄야 하지 않겠는가?
한영선의 사건도 물 위로 끌어올릴 거라면 얼른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럼 음, 저희가 변호사님 사무실에 도착하면 한 3시쯤 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네. 좋습니다.”
-저희가 가져가야 하는 것들이 있을까요?
나는 강민재 자리 쪽으로 가서 책장을 뒤졌다.
그가 의뢰인이 오면, 항상 여기서 안내 서류를 꺼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에 적힌 구비 서류들을 불러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서울에서 뵐게요.
전화를 끊었을 때, 언제 들어왔는지 내 옆에 강민재가 서 있었다.
“앉아.”
내가 그의 자리에 있어서 들어오지못한 건가 싶어, 한 걸음 비켜 주었는데 강민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락도 받지 않고 책장을 뒤진 게 화가 나는 건가.
“아, 구비 서류 확인하느라.”
나는 손에 들린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강민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변호사님.”
“왜.”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변호사님 깁스에 낙서 좀 하면 안 될까요?”
나는 그제야 그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얗고 반질반질한 내 깁스에 꽂혀있었던 것이다.
“CCTV나 틀어 봐. 확인하게.”
깁스에 낙서가 덕지덕지 쓰인 채로 의뢰인들을 만나면, 신뢰감이 떨어진다.
강민재는 입술을 삐죽이며 품 안에서 CCTV가 든 USB를 꺼내 노트북에 꽂았다.
“오늘 세 시쯤 서혜진 씨하고 한영선 씨 사무실에 오신다니까, 서둘러서 CCTV 확인하고 오상현 씨한테도 연락드릴 준비하자고.”
“한영선 씨 마음 굳히신 거예요?”
“그렇다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깁스에 낙서를 거절당해 잠시 우울해 보였던 강민재는, 다시 싱글벙글 웃으며 노트북을 상담 테이블로 들고 왔다.
“좀 떨리네요. 이미 안에 든 내용이 뭔지 아는데도.”
강민재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 * *
샤미센 선율이 흐르는 방 안,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끝도 없이 다채로운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곳은 하루에 20 테이블만 받고 장사를 접는다는 유명한 일식집이었다.
이 집은 모든 음식이 전부 수준급이지만, 그중에서도 회가 일품이었다.
가격은 물론 웬만한 특급호텔 레스토랑보다 비싸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다.
회만 40년 동안 썬 장인의 손을 스쳤기 때문이라고는 하는데, 손님들 사이에서는 혹시 몰래 마약을 뿌리는 건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까지 나오곤 했다.
전부 활어회라, 나오자마자 바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
하지만 이 방의 손님들은 좀처럼 회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음식이 나온 지 30분이 지났지만, 테이블 위는 처음 나왔던 그대로였다.
“양 검사님. 말씀을 좀 해 보세요.”
변호사가 정종을 들이켜며 말했다.
“제가 많은 걸 바랐던가요?”
“…….”
“그냥 추정욱 소장, 그 사람이 법정에 안 나오는 것 하나 바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부탁이었던가요?”
목소리는 온화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양한석의 관자놀이에 땀방울이 흘렀다.
변호사는 양한석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 곧 그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굳어 있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황 부장님. 제가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일을 맡을 검사님을 잘못 고르신 듯합니다.”
여전히 예의를 갖춘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말만은 날카로웠다.
황영찬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양한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덤덤히 말했다.
“이번에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으리라 봅니다.”
“큰 문제가 없다? 재판 한 달 남기고, 상대 변호사 만나러 가는 소장을 노렸습니다. 상대 변호사가 그걸 알아채지 못할 천치였습니까?”
“알아채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그 쪽에서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걸로 책 잡을 순 없다는 거. 이 일은, 저희선에서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양 검사님이 맡으신 일이니, 양 검사님이 알아서 잘 처리하리라 봅니다. 우리 황 부장님께서 설마 그런 거마저 처리 못 하는 사람을 우리 고 본부장 일에 붙여 주지는 않으셨을 듯하고.”
“물론입니다.”
“그 변호사가 추 소장 다칠 뻔한 걸 구해 줬으니, 추 소장도 그 변호사한테 은혜를 갚으려고 할 겁니다.”
“…….”
“그러면 추 소장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오겠죠?”
변호사는 정종을 들이켜며 양한석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온다고 해도 문제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양한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요?”
변호사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양한석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네.”
설령 소장이 CCTV를 봤다고 증언하더라도, 그의 증언을 무효화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 소장이 고윤성에게 유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언 몇 개만 있으면, 소장을 순식간에 거짓말쟁이로 몰아갈 수 있다.
“양 검사가 어떤 책략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변호사도 그만큼 준비할 거란 생각을 못 하는 건 아니겠지요?”
변호사가 가늘게 눈을 뜨며 양한석과 시선을 맞췄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설령 그쪽에서 CCTV 증거를 들고 나온다고 해도 증거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래요?”
변호사는 그제야 처음으로 기분 좋게 웃었다.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양한석의 잔에 따라주고, 회 한 점을 집어 그의 앞접시에 놓아 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너무 사설이 길었군요. 우리 고 본부장, 잘 부탁해요.”
양한석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정종을 쭉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