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5)
너희들은 변호됐다-15화(15/641)
여희숙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10통째 걸고 있을 즈음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오전에 라이린 패션 공장으로 출발했던 강민재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아, 부검 결과 받으셨네요? 에스시탈로프람옥살산염, 브로마제팜, 프로프라놀롤 염산염……. 무슨 성분이죠?”
“항우울제하고 항불안제. 진정제 성분도 있고.”
“여희숙 씨 정신과 다녔던 겁니까?”
“그런 것 같아.”
“예인 대학 병원으로 다녔을까요.”
“아마 개인 병원 섭외해서 다녔을 거야. 거길 알아내려는데…….”
혹시 몰라 예인 대학 병원에도 문의했지만, 아니라는 대답을 받았다.
매니저가 내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김형준에게 나와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게 분명했다.
그가 내 휴대폰과 사무실 번호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고.
“강 변, 휴대폰 좀 줘 봐.”
“왜요?”
왜냐고 물으면서도 순순히 휴대폰을 내민다.
불쑥 내 앞에 내밀어진 슬라이딩폰.
피처폰은 스마트폰을 쓰던 내가 아직도 적응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어디에 거는 겁니까?”
“쉿.”
뚜르르- 뚜르르-
연결음이 몇 번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여보세요?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등기 받으실 게 있어서요. 댁에 계십니까?”
-아, 지금 밖인데요. 어디서 오는 등기죠?
“서울지방법원이요.”
-법원이요? 아, 그건가?
매니저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여희숙의 측근이었으니 분명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설 것 같아서 던져 봤는데, 역시나.
-저 집에 가려면 좀 걸릴 것 같은데. 혹시 이따 6시 조금 너머서 오실 수 있으세요?
“아, 그땐 다른 구역에 가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위치가 어디시죠? 담당 구역이면 지나가는 길에 찾아뵙죠, 뭐.”
-아, 지금 예인 대학 병원 쪽인데. 힘드시면 그냥 내일이나 모레 받을게요.
“예인 대학 병원이요? 지금 근처입니다. 이게 당일 특급이라서 내일로 미루기가 좀. 다 돌고 가면 30분쯤 걸리겠는데요?”
예인 대학 병원이라.
이런 상황에서 여희숙도 없는 그곳에 간 이유는 뻔하다.
입원한 김형준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그러시면 거기 예인 대학 병원 입구 쪽에서 수령할게요. 4시 30분 맞죠?
“네. 이따 뵙겠습니다.”
나는 겉옷을 챙겼다.
전화를 엿듣던 강민재도 벌떡 일어났다.
“누굽니까?”
“여희숙 씨 매니저.”
“여희숙 씨 매니저가 어디가 찔려서 변호사님을 안 만나 주는 겁니까?”
강민재는 눈치가 빠르다.
집배원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내가 시보 시절에 많이 혼냈다는 걸 보면, 그 당시엔 굼떴던 모양인데.
2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했다면 꽤 쓸 만한 인재다.
“김형준이 입단속했겠지. 다녀올게.”
“같이 가요.”
“강 변은 공장 다녀온 거 내용 정리하고 있어.”
“다 머릿속에 있습니다. 어차피 변호사님한테 보고도 드려야 하는데. 가면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매니저랑 만나려면 어차피 제 전화로 연락해야 하잖아요.”
주차장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기가 무섭게 강민재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은회색 BMW가 그의 리모컨 키에 반응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예인 대학 병원 정문이죠?”
강민재가 잽싸게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고작 1년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검찰 밥을 먹어서인지, 행동거지에 각이 잡혀 있었다.
“차 좋네.”
내가 안전벨트를 매며 말하자, 강민재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할아버지가 사시 붙은 거 축하한다고 사 주셨습니다. 그나저나, 공장에서 얘기 들어온 거나 좀 말씀드릴게요. 김형준이 공장장도 입단속 좀 힘들게 한 것 같더라고요. 변호사님이 가셨으면 아무것도 못 건졌을 겁니다. 분위기 보니까 변호사님 사진까지 보여 주면서 주의 준 것 같던데.”
20분 동안 강민재의 보고를 들으니, 어느새 예인 대학 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도심에 위치한 데다, 한창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닐 시간이라 주변이 꽤 붐볐다.
하지만 좌우를 살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남자는 한 명뿐이다.
“전화 줘 봐.”
“여기요.”
다시 전화를 걸자, 주시하던 남자가 휴대폰을 꺼냈다.
-네, 어디쯤이세요?
“거의 다 왔습니다. 검은 티 입은 신 분이죠?”
-네네.
나는 차에서 내리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 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엉뚱한 곳을 기웃거렸다.
“청바지 입으셨고. 머리 염색하셨고.”
-네. 저는 안 보이는데. 어느 방향에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내가 매니저의 앞에 멈춰 서자, 그가 귀에서 전화기를 떼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집배원입니다.”
그는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순식간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에이씨!”
그리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 역시 곧바로 그의 뒤를 쫓았다.
매니저는 인파 사이를 헤집으며 도둑질하다 걸린 놈처럼 우악스럽게 달렸다.
대학 병원 뒤쪽 골목으로 빠지려는 듯 놈이 방향을 틀었고, 나는 쉬지 않고 추격했다.
김형준이 얼마나 겁을 줬기에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달리기가 꽤 빠르다.
형사 3부에서 현장 경험이 가장 많은 검사가 바로 나다.
심지어는 이제는 쌩쌩한 30대의 육체까지 가졌으니.
“으악!”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던 그가 나를 홱 쏘아보았다.
“아오씨!”
“등기받으셔야죠.”
“헉, 헉, 돌겠네, 진짜. 아오, 진짜.”
내 말에, 매니저는 계속 숨을 고르며 시근덕거렸다.
그러다가, 나를 있는 힘껏 뿌리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향은…….
“음, 좋지 않은데.”
끼이이이익-
자동차 한 대가 순식간에 골목 입구를 가로막는다.
매니저가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멈추었고, 나는 느긋하게 걸어가 그를 다시 붙잡았다.
그러자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니저 형님, 어디 가는데 그렇게 바빠?”
한마디 거든 강민재는 ‘나 고용해줘’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병원 영업 끝났네요. 전화 안 받고.”
강민재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결국 내게 붙들린 매니저는, 여희숙이 다니던 신경정신과가 어디인지 토설했다.
김형준에게는 절대로 자신이 알려줬다고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까지 하면서.
“김형준한테서 진범 냄새가 진동을 해서 코가 다 아프네요. 그래도 내일 의사 만나서 증언 확보하면 되겠습니다. 물증도 건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강민재가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문서들을 정리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희숙이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간 이유는 김형준 때문일 것이다.
매니저 말하고 맞춰 봐도, 여희숙이 정신과에 처음 간 시기도 김형준이 부부를 폭행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확실한 진단을 받으려면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는 걸 의사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한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놨을 터.
“서류 작성 좀 도와 드릴까요? 증인이랑 참고 자료 신청이네요. 이래서 공판일 다 돼서 의뢰 들어오면 힘들죠. 태광에도 여기저기 돌다가 뒤늦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사무장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강민재가 노트북을 펼치며 앉으려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혼자 해도 돼.”
“저도 도와 드리겠습니다. 집에 가도 할 것도 없는데.”
“퇴근해.”
“음,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의사 만나러 갈 때 제가 필요하실 테니까 혼자 가지 마시고요.”
“왜?”
“그야, 변호사님은 또 로봇처럼 뻣뻣하게 증언하라고 말씀하실 거고. 그럼 분위기 엄청 싸해질 거고. 그런 설득은 저처럼 성격 좋은 사람이 해야죠.”
지금 날 돌려서 깐 것 같은데.
“하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내 시선을 받던 강민재가 잽싸게 퇴근했다.
서류 정리를 마친 나는, 사무실 구석에 딸린 작은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일모레가 재판이다.
의사를 만나 지속적인 폭행의 주체가 김형준이었다는 증언을 확보한다고 해도, 아직은 물증이 없다.
의사와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실마리를 찾아 물증을 건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베스트겠지.
시간이 너무 없다.
내일이 체크 포인트다.
* * *
이튿날, 영업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찾아갔다.
내일이 재판이라 오늘 하루는 초단위로 나눠 써도 모자랐다.
여희숙 씨가 다녔다는 병원은 그녀의 생활 반경에서 꽤 멀리 떨어져있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늘 물증 건질 수 있을까요.”
오늘이 지나면 남은 시간은 내일뿐이었다.
내일 안에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 재판에서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법정에서 진범을 대령하지 않으면, 김연준은 잘해 봐야 감형이었다.
물론, 물증 없이도 재판부가 김형준을 의심하게 만들 수는 있다.
김형준에게 수상한 점들은 많았고, 강력한 살해 동기도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재판부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범죄자를 원하고, 이 상태로는 그건 김연준이니까.
“건져야지.”
“재판이 내일 오전 열 시였던가요.”
“응.”
“공판 기일 연기 신청서……. 미리 써둘까요.”
“기소된 다음에 사건을 맡은 거라, 변론 준비 사유로는 연기 안 돼.”
“그러니까 변호사님이 해외라도 다녀오셔야죠, 뭐. 급하게 일정 잡혔다고 하고…….”
그 말을 끝으로 강민재는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그 역시도 의사에게서 물증을 바로 얻는 게 아니라면, 이번 재판에서 승리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의사에게서 실마리를 얻어 또 다른 조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이 촉박하니까.
“변호사님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십니까?”
내가 그를 바라보자, 강민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시간 없다, 시간 없다 말씀은 하시지만, 엄청 불안해 보이지는 않으셔서요. 저는 변호인도 아닌데도 이렇게 돌겠는데.”
불안하지 않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시간이 촉박해서 마음이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마음가짐이 재판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검찰에서 먹은 짬이 얼만데.’
……라는 말은, 5년 차가 하기에는 좀 웃기겠지.
실제로는 15년 차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런 일 부지기수일 텐데. 그럴 때마다 그렇게 벌벌 떨 건 아니잖아?”
“……역시 선배님이시네요. 존경합니다.”
[진실]아, 습관적으로 능력을 써 버렸다.
하지만 강민재가 날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건 좀 의외인데?
“원장님 진료 끝나셨어요. 들어가 보세요.”
기다린 지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강민재는 그새 내 말을 듣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 것인지, 원래의 생기 도는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