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50)
너희들은 변호됐다-150화(150/641)
오상현은 재판을 약 한 달 정도 앞두고 퇴원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가 본래 선임했던 변호사가 하지 않았던 작업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부상으로 타이핑을 하지 못하게 된 탓에, 오 사무장과 강민재는 두 배로 고생했고 말이다.
나 혼자 놀고 있기가 뭣해서 뭐라도 해 볼까 했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기도 했다.
“……좀 많이 떨리네요.”
여태까지 내가 맡았던 의뢰인 중 가장 성격이 드센 축에 속했던 오상현 역시, 재판정에 설 생각을 하니 두려운 모양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법정은 두려운 존재다.
주변에서 법정에 서 봤다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법원은 천부 인권에 허하는 자유를 제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매분 매초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법정에 서는 게 두려우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CCTV 증거를 제시해서 재판 자체가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일반적인 방향이다.
증거들은 웬만해서는 재판 전에 제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소 사실 자체를 완벽하게 부인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제출해서 증거 능력만 인정받는다면 번거롭게 재판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윤성 측에서도, 우리가 이런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합의를 보려고 할 게 뻔했다.
오상현이 단순 폭행을 넘어서 상해 혐의를 쓰게 된 것처럼 고윤성에게도 상해죄가 적용될 테니까.
비밀을 엄수한다는 조건을 걸고,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제안할 수도 있다.
어쩌면 오상현은 그것을 원할 수도 있다.
까놓고 평범한 서민에게 배금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돈 이상의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아닙니다. 고윤성 그 자식이 어떻게든 개망신을 당하는 꼴을 봐야겠어요. 재판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다면, 저는 합의 보는 것보다 이게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제가 어디서 찾아보니, 변호사님이 찾으신 그 CCTV 말입니다. 소장님이 따로 보관해 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그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러면 CCTV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든, 그건 완전히 없는 셈 치게 되는 거 아닙니까?”
CCTV 사본에는 당연히 증거 능력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본을 저장한 주체가 해당 폭행 사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3자라는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소장이라는 직함이 있고, CCTV를 관리하는 것이 업무이지만 그것을 개인적으로 저장 및 보관하는 것은 팍팍하게 따지면 위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파트 입주민이 주차장에서 접촉사고가 일어나서 CCTV를 보려고 해도, 경비실에서 경찰을 대동하고 오라며 거절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검찰 측에서는 CCTV 증거수집 방법의 적법성을 계속 물고 늘어질 겁니다. 어차피 저희는 첫 공판이 시작된 이후에 CCTV를 제출하게 될 겁니다. 재판 도중에 제출하든, 아니면 두 번째 기일에 제출하든. 그 증거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다음 기일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그다음 기일 전까지 증거 능력을 심사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검찰 측에서 증거 능력을 바로 인정해 준다면 뭐, 상관없겠지만 말입니다.”
“하, 조금 겁나는군요. 만일 그 CCTV가 위법 증거라고 판명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거 잖습니까.”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이런 결정적인 증거를 허무하게 버리게 두는 변호사라면, 면허 반납해야죠.”
그의 불안감이 기우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CCTV를 저장한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현장 소장이니, 웬만해서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만한 자료다.
내가 처음에 소장에게 영상을 건네받았을 때, 이걸로 다 됐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황영찬과 우신이라는 점이었다.
어떻게든 온갖 판례를 뒤져서 위법성으로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판사까지 매수당했을 경우다.
“오상현 씨.”
“예?”
“다소 갑작스러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번 재판을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합니다.”
“국민 참여 재판이요?”
내 말에 놀란 것은 오상현뿐만이 아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강민재도, 책상 앞에 앉아 문서 작업을 하던 오 사무장도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국민 참여 재판은 이 시점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2008년 1월이었고, 2009년인 지금은 고작 시행 2년 차일 뿐이다.
국민 참여 재판 경험이 있는 법조인이 그리 많지 않은 시점이다.
“국민 참여 재판이면, 배심원이 나오고 그러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합니다.”
“그럼, 판결도 배심원의 의견대로 가는 겁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물론 판사는 배심원의 평결을 존중해야 하지만, 배심원의 결정과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죠.”
우리는 무죄라는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만일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국민 참여 재판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형량 싸움이 아닌 유무죄 싸움에서는 국민 참여 재판이 유리하기도 하다.
배심원들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 재판에 비해 법 지식이 부족한 배심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건 변호사가 더 고생하면 되는 일이다.
“고윤성 측은 수사 기관을 매수해서 증거를 묻었습니다. 소장님이 미리 백업해 두신 CCTV만 봐도, 분변히 저장소에 CCTV가 있었을 텐데 없었다고 거짓말하고 고윤성 측의 의지대로 끝끝내 오상현 씨를 기소했습니다.”
“……그렇죠.”
“게다가 이번 사건은 형사 단독부로 배정됐습니다. 즉, 판사가 한 명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고윤성에서 판사도 매수했다면 쉽게 끝날 상황도 어렵게 끝날 겁니다.”
오상현은 ‘판사 매수’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나 역시 그런 일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
실제로도 이번에 배정된 판사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았고, 그녀에게서 딱히 비리의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뒤에서 어떻게 호박씨를 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만약의 상황에 전부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니, 돌아가서 나쁠 건 없다.
“국민 참여 재판으로 가면, 형사합의부로 배정됩니다. 부장 판사 한명과 배석 판사 두 사람이 나오는데……. 적어도 한 명일 때보다는 매수 가능성이 확 떨어지죠.”
뭐, 우신이 셋 다 매수하지 못할 놈들은 아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춰보자는 것이다.
“저는 이번 사건 같은 경우, 판사 한 명보다는 판사 셋과 배심원 여러명에게 호소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긴 하지만, 평범한 국민이라면 평사원이 고상준 막내아들을 전치 8주가 나오도록 폭행했다는 이야기를 무의식 중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처음부터 오상현 씨가 억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재판에 임하는 배심원들이 꽤 있을 겁니다.”
배심원들의 객관성을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런 배심원들마저도 인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또 국민 참여 재판의 장점은, 판결까지 오래 걸리는 일반 재판과는 달리 그날 판결까지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CCTV 증거 능력을 심사할 시간이 없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면 CCTV를 미리 제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현장에서 채택이 된다면,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오상현은 아무래도 그 증거 능력 인정 부분에 불안감이 큰 모양이었다.
“오상현 씨. 증거 능력에 대한 불안감은 국민 참여 재판이든, 일반 재판이든 똑같이 작용할 겁니다. 국민 참여 재판이 특별히 불리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유리한 측면이요?”
“판사는 국민 참여 재판에서……뭐라고 해야 할까요. 진행자 같은 느낌입니다.”
“진행자요?”
“그렇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원칙을 설명하고,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 전까지는 배심원들에 의해 재판이 진행되도록 돕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배심원들이 요청하기 전까지 판사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지 않습니다.”
내 말에 오상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증거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저희는 저희 입장에서 적법성을 충분히 설명하게 될 겁니다. 검사 쪽에서는 반발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럴 때, 그 증거를 볼지 말지 정하는 건 판사입니다. 인정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증거를 볼 수는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면, 국민 참여 재판에서는 그 결정을 배심원이 하게 되는 겁니까?”
“배심원이 결정한다고 볼 순 없지만, 배심원들이 보고 싶어 하면 판사도 볼 겁니다.”
설령 그 CCTV가 끝끝내 수집 경로가 위법적이라는 결론이 난다고 해도, 배심원의 머릿속에는 오상현이 고윤성과 그 수행원들에게 구타 당하는 장면이 맴돌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는 결코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변호사님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국민 참여 재판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국민 참여 재판은 저희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유명한 라틴어 법언에도 나와 있듯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을 좇아야 한다.
국민 참여 재판을 요청할 때 강력히 필요성을 서술할 작정이다.
게다가 지금은 국민 참여 재판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단계고, 홍보가 잘 되지 않은 제도다.
국가 입장에선 한 건이라도 사례를 늘리는 것이 이득이다.
또한 배제 원칙에 해당하는 것은 없으니, 아마 그대로 통과될 것이다.
무엇보다 상대는 양한석 아닌가.
국민 참여 재판을 검사가 거절하면, 그것은 검사가 자신은 배심원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할 터였다.
“배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오상현 역시도 곧 얼굴에서 불안한 기색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2009년 12월 31일.
을해의 마지막 날이다.
일에 치여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던 우리는, 송년회를 해야 한다는 강민재의 강력한 주장 하에 인근 고깃집에서 모였다.
다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고깃집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게 문제다.
오죽하면, 이 작은 테이블에 세 명이 둘러앉아 있는데 바로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변호사님, 휴대폰에 부재중 5통 들어와 있는데요?”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강민재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내 휴대폰을 건넸다.
“양한석 선배던데요.”
“양한석?”
12월 31일, 심지어 지금은 7시 반이다.
검사들이 걸핏하면 야근 신세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런 때에 나에게 전화를 다섯 통이나 했다니.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통화 좀 하고 올게.”
그냥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양한석이 의미 없는 수다나 떨려고 전화하는 타입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바쁘신가 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그렇네.”
-국민 참여 재판 신청하셨던데요.
“그랬지.”
-선배님, 국민 참여 재판이 새로운 제도라서 잘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국민 참여 재판은 공소장을 받은 뒤 7일 내에 신청해야 합니다. 너무 많이 늦으셨습니다.
이걸로 꼬투리를 잡아 볼 생각이었던 건가.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꾸했다.
“지금 사무실이야?”
-네.
“컴퓨터 쓸 수 있겠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럼 내가 불러 주는 대로 검색해봐.”
-그게 무슨…….
“대법원 2009. 10. 23 자 2009모 1032 결정.”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짧게 들리는가 싶더니, 한숨소리가 이어졌다.
“2달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판례라서 잘 몰랐던 모양인데. 7일이 지났어도 첫 공판 기일 전이라면 신청할 수 있어.”
-…….
“그럼 법정에서 보자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양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