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54)
너희들은 변호됐다-154화(154/641)
휴정이 끝나고, 재판은 다시 속행되었다.
휴정 전 배심원들이 제출한 문서가 신문 요청서인 듯했다.
“음, 배심원 여러분들께서 한영선 증인에게 신문을 요청하셨습니다.”
양한석의 반대 심문이 끝났으니, 배심원에게는 신문을 요청할 권한이 생긴다.
내가 이번 재판에서 가장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전에,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피고인 오상현의, 피해자 고윤성에 대한 상해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입니다. 한영선 증인의 증언은 다소 본 사건과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을 본 재판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의 시선은 잠시 양한석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번번이 본 건과 상관이 없다며 반발하던 양한석을 납득시키려는 의지가 읽혔다.
배심원이 합법적인 선에서 요청하는 것들을 재판장은 결코 무시할 수없다.
배심원이 주체가 되어 직접 참여한다는 국민 참여 재판의 취지에 어긋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법 지식이 부족한 국민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 속성이 완전히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법 감정은 실무와 확실한 괴리가 있고, 그로 인해 부적절한 신문으로 재판의 진행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부정적인 면마저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 재판의 피고인, 즉 주인공은 오상현이지만, 내가 포커스를 맞추고자 하는 것은 고윤성이었다.
나에게는 고윤성의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 재판의 본질이다.
재판장도, 양한석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재판의 일부를 잘라 듣는다면 피고인이 오상현이 아니라 고윤성이라 생각할 정도로 이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게다가 오상현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고윤성의 범죄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이니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했다는 비판도 피해 갈 수있다.
무엇보다 배심원들이 원하고 있지 않은가.
“한영선 증인. 우리 주심 판사님이 배심원 여러분 대신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마음은 좀 추스르셨나요.”
“……네.”
휴정 시간 동안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한영선은, 조금은 초췌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 재판의 쟁점이 피고인 오상현이 정말로 피해자 고윤성 씨를 폭행했느냐입니다. 피고인 측이 공소 사실을 전부 부인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전치 8주에 달하는 부상을 입은 피해자 고윤성 씨가 입원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제압할 수 있는 컨디션이었다면 검사 측이 주장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피고인에게는 상해죄가 아닌 폭행죄가 성립되는 것이죠. 그래서 한영선 증인에게 추가로 신문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네.”
“질문해도 괜찮죠?”
“네, 판사님.”
한영선은 목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심 판사라면, 이 재판부의 우배석인 박상은 판사다.
그녀는 일전에 신문에 성범죄에 관련된 칼럼을 10회에 걸쳐 연재한 적이 있다.
또한, 그녀가 주심 판사였던 성범죄 사건에서는 양형이 평균보다 낮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결코 한영선의 증언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영선 증인, 피해자 고윤성에게 강간을 당할 뻔했다고 했죠?”
아직 고윤성의 강간 미수에 대해서는 한영선의 증언 외에 다른 확인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강제로 성관계를 맺을 뻔했다’ 정도로 순화해서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박상은 판사는 정확하게 ‘강간’이라는 단어를 썼다.
“네.”
“그날의 일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주심 판사의 말에 따라, 한영선은 그간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양한석의 도발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아까와는 달리, 진정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피해자 고윤성이 깁스를 한 팔로 손가락을 움직여 단추를 풀었단 말인가요?”
“네. 흐흑, 그리고, 다리로, 다리로 제 하반신을 짓눌렀어요. 손으로는 제 속옷을…….”
“증인, 충분합니다. 그만해도 좋습니다.”
한영선이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하자, 주심 판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강간당할 뻔했던 사실을 감추고 싶어 했던 그녀이기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도 백번 이해가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가 퇴정한 뒤, 나는 증인 목록 가장 마지막에 배치해 두었던 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증인,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인 센트레 아파트 건설 현장 관리 소장 추정욱입니다.”
“당시 건설 현장에 있던 근로자의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과 피해자 고윤성이 함께 사건이 발생했던 건물 뒤쪽 골목으로 향했을 때 증인이 현장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왜입니까?”
추정욱은 목까지 끌어 올렸던 점퍼 지퍼를 내리며 심호흡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장 사무실에는 공사 현장 곳곳을 담은 CCTV 통제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CCTV 통제실이라.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고윤성 본부장이 오 대리에게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따로 불러 골목으로 갈 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자,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확인해 보러 간 겁니다.”
“이상하군요. 그렇게 두 사람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일반적으로는 그냥 이야기가 길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CCTV를 확인하려고 하신 겁니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불안하셨습니까?”
“고윤성 본부장이 정말로 오 대리와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부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오 대리가 고윤성 본부장에게 무례를 지적했을 때, 고윤성 본부장의 반응이 아주 과격했기 때문입니다.”
양한석은 침착하게 증언을 이어 가는 추정욱을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펜을 잡은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방청석에 자리한 황영찬을 흘끔거리는 시선 역시도.
나는 이전까지는 소장이 법정에 나오지 못하도록 사람을 보낸 주체가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양한석인지, 고윤성 쪽인지.
황영찬은 언젠가 발각되면 빠져나가기 위해 양한석에게 떠넘겼을 작자라 제외하고.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양한석의 짓이 분명하다.
그래도 아직 그는 황영찬처럼 완전한 철면피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미수에 그치긴 했어도, 자신이 상해를 입히려 했던 상대방이 눈앞에 있으니 확실히 동요가 커졌다.
주심 판사가 한영선의 증언을 의미있게 받아들였고, 이제 소장의 증언까지 합쳐지면 이 재판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황영찬의 눈치를 보는 빈도도 확연히 늘어났다.
재판에서 물 먹은 전적이 있어서 트라우마가 된 걸까.
아무래도 공판부로 가서 재판 경험을 더 쌓는 게 좋겠다.
“피해자 고윤성이 피고인을 부른 이유가 단순히 대화를 위해서가 아닐 거라 생각하셨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 사라졌을 때, 그럼 증인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고윤성 본부장이…… 어쩌면 오 대리를 폭행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사무실로 들어간 증인은 CCTV를 확인하셨습니까?”
내 물음에 소장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은 방청석에 앉아 있는, 고윤성의 변호사를 향해 있었다.
“증인?”
“……봤습니다.”
“보셨다면, 사건 현장이 담긴 CCTV를 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신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 대리가, 피고인이…… 고윤성 본부장과 수행원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반대가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고윤성 본부장은 코피를 흘리고 있긴 했지만, 아주 자유롭게 움직였습니다. 수행원들이 오 대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고윤성 본부장이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질을 했습니다, 오 대리가 그러다 죽을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증인은 CCTV를 끝까지 보셨습니까?”
“네.”
“피해자는 수행원들에게 업혀 나갈 정도로 많이 다친 상태였습니다. CCTV에서 보신 모습은 어떠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CCTV 영상 증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곧 검사의 반대 심문이 있을 것이다.
CCTV 공개는, 그 이후여야 한다.
양한석은 소장의 말을 위증으로 몰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설득되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CCTV가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이 여러모로 깔끔했다.
사전에 제출하지 않았던 CCTV를 법정에서 틀기 위해서는, 검사의 말을 반박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증인.”
양한석이 마이크를 쥐며 반대 심문을 시작했다.
“증인은 수사 당시, CCTV를 보기 위해 달려갔지만 현장에는 CCTV가 없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소장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증인, 증인은 본 법정이 열리기 한 달 정도 전 퇴근길에 괴한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양한석의 물음에, 강민재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우리 쪽에서 사용하기 위해 준비했던 패였다.
그러기 위해 일부러 경찰에 신고해서 기록을 만들어 놓고, 경찰에 출석해서 아주 자세하게 진술까지 해놓았다.
게다가 괴한을 산 것은 양한석 본인이 아니던가.
대체, 왜 이 이야기를 스스로 꺼내서 자신을 얽맨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