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59)
너희들은 변호됐다-159화(159/641)
고윤성에게 징역이 구형되자, 우신 그룹은 발 빠르게 이미지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른 계열사는 몰라도, 우신 물산만큼은 질질 끌던 노사 분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내 게시판에 대표 이사 사장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윤성은 일시직무 정지 상태에서 완전한 해고 절차를 밟았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로열 패밀리’가 아닌, 샐러리맨 출신 사원이었다.
사원들의 오너 일가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한 인사였다.
“변호사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요. 저는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한영선은 함박눈이 쏟아지는 카페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재판도 얼마 안 남았네요. 이제 두 번째인데도 많이 떨려요.”
한영선의 민사 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상현 씨는 합의 보셨다고 하던데…….”
생각에 잠겨 있던 한영선이 슬쩍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고윤성 쪽에서는 오상현이 결국 민사 소송을 취하했다는 것으로 대대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했으니까.
피해자도 합의를 봤고, 이제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살고 싶을 텐데, 그만 들춰야 한다는 식의 댓글 공작도 이어졌다.
온갖 방송 채널에는 피해자들의 잊힐 권리를 메시지로 담은 시사 프로그램이 몇 번이나 편성되었다.
같잖은 술수였다.
내 눈에는 ‘피해자가 괜찮다는데 왜 니들이 지랄이냐’라는 진의가 읽힌다.
“서울 우신 병원으로 복직시켜 주고, 합의금도 줄 테니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연락은 지금도 계속 와요.”
한영선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집으며 말했다.
고윤성은 지난 1심 판결 이후, 항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가 기자들에게 패악을 부리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심 때까지는 텀이 있으니 잊히기를 기다렸다가 제대로 반성하는 척해서 감형받으려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뭐, 어차피 중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5년을 다 살기도 전에 빼낼 수 있을 테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해도, 고상준은 지금쯤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다른 재벌가에 비해 망나니의 출현 빈도가 현저히 낮았던 우신에서, 다른 집안 망나니 10명은 합쳐 놓은 것 같은 또라이가 막내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늘그막에 사고뭉치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라니, 대한민국을 다 가졌다는 고상준도 자식은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고윤성은 항소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합의를 보신다고 해도 고윤성의 형량이 줄어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 소송은 정말 어디까지나 보상을 위한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법정 공방 없이 원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얻어낼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그래서 오상현 씨도 그 방법을 선택하셨겠죠?”
그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딸린 입은 홀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어린 자식까지 셋이나 된다.
오상현에게는 민사 소송으로 힘겹게 소액을 얻어 내는 것보다는, 고윤성의 이미지 제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거액을 받아내는 것이 낫다.
어차피 고윤성의 이미지는 좋아져 봤자 거기서 거기다.
그럴 바에는 헛돈 쓰게 만드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는 1억 5천의 합의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전세 자금 대출을 전부 상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대로 딸을 영어 유치원에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예쁜 옷도 사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 면더 좋았겠지만, 지금 오상현에게 그 이상의 보상은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고윤성에게 굉장한 적의를 품고 있고 나름대로 민사 재판을 진행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긴 했지만…….
뭐, 그를 교도소에 넣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기에 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영선의 의지를 존중해서였다.
“하지만 전 싫어요.”
한영선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전 돈 필요 없어요. 그냥 걔들이 하자는 대로 해 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언플에 사용되고 싶지도 않고요. 어차피 남자친구랑도 헤어졌는데 두려울 것도 없죠. …….서울 우신 병원 복직은 조금 땡기긴 하지만요. 그래도 게네가 바라는 대로 해 주는 게 더 싫네요.”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까 두려워 증언을 하지 못하겠다던 그녀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염려했던 대로 애인에게 차인 것은 아니었다.
이별을 선택한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절망의 순간에, 기댈 곳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헤어질 거라 생각하게 만든 그 남자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정말 믿을 만한 남자였다면, 한영선을 처음부터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였다.
[빠빠라 빠빠라 빠~ 삐삐리 빠삐찍지 마, 이 XX놈아! 여름철에 시원한 맛 징역 5년을 선고한다. 올여름 더위는 우리에게 맡겨 마약~ 마약~ 마약~ 마약~ 마약 빠빠라고윤성!]……익숙한 음악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건 강민재의 알람 소리인데, 대체 어떤 사람이 이걸 또…….
“변호사님, 전화 오는데요?”
한영선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놀랍게도, 내 휴대폰이 고윤성 빠삐코 리믹스를 우렁차게 뿜어 대며 울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잠깐 전화 좀 받겠습니다. 여보세요.”
-변호사님! 언제 들어오세요? 저희 오늘 회식하기로 했는데!
“회식? 누구 마음대로 회식을 잡아.”
-저랑 사무장님 마음대로요. 하하.
“뭐, 그건 됐고……. 혹시 강 변이 내 휴대폰 벨소리 바꿔 놨어?”
-아, 그거요? 네. 하하. 어제 바꿨는데 이제야 아시네요? 변호사님 그간 전화 안 왔었어요?
“진동이었어.”
-크크. 벨소리 너무 좋죠.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장난하기만 해.”
-알았으니까 빨리 오세요. 저희 변호사님 기다리는 중이에요.
“금방 들어갈게.”
전화를 끊고 나니, 한영선은 이미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강 변호사님이 장난을 치셨나 봐요.”
“……강 변은 요즘 짤 찾는데 푹 빠져 있습니다.”
“변호사님 찾는 전화인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들어갈까요? 저도 버스 시간 다 돼서요.”
음료 트레이를 대충 정리해 놓고, 터미널 앞 카페에서 나왔다.
그녀가 플랫폼까지 들어가는 것은 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그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주기로 하고 나란히 걸었다.
“버스 시간이 얼마나 남으셨죠?”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타러 가면 돼요.”
한영선이 터미널 전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흘긋 바라보았다.
지금 시각이 4시 반.
분명히 4시 정도에 회의가 끝날 거라고 말했는데, 왜 아직 연락이 없을까.
“변호사님, 기다리시는 연락 있으신 거면 먼저 가셔도 돼요, 정말.”
[빠빠라 빠빠라 빠~]그녀에게 괜찮다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다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분명히 다른 걸로 바꿔 놨는데, 왜 아직도 고윤성 리믹스란 말인가.
나는 괜히 헛기침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 동진아.”
-주한아. 미안, 미안. 많이 기다렸냐? 회의가 좀 길어졌다고 하시네.
“괜찮아. 어떻게 됐어?”
-우리 병원에서 서혜진 간호사하고 한영선 간호사 두 명 다 채용 가능하대. 페이도 이전에 받던 것과 비슷하게 맞춰 드리겠다고 하고. 분위기 보니까 직급도 맞춰 줄 것 같더라.
내 오랜 친구인 동진이 적을 둔 명운 대학 병원은, 오래전부터 서울 우신 병원과 라이벌 관계였다.
서로 인력을 뺏고 뺏는 것은 물론이고, 광고 매체를 통한 유치한 저격을 불사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근소한 차이로 우신 병원이 앞서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명운 대학 병원은 고윤성이 우신 병원에서 저지른 강간 미수 사건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진 틈을 타, 5년 만에 병원 신뢰도 1위를 기록했다.
나는 만일 그들이 우신 병원에서 부당하게 좌천시킨 두 사람을 스카웃한 뒤, 언론 플레이를 잘만 하면 아마 그 상태로 알 박기도 가능할 거라고 전망했다.
이는 명운 대학 병원의 분위기를 잘 아는 동진도 같은 의견이었고 말이다.
명운 대학 병원으로서도 이득이고, 한영선과 서혜진으로서도 눈총을 받으며 우신 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명운 대학 병원 역시도 우리나라에서 빅5 안에 드는 유명 병원이니까.
그래서 동진을 통해 그 의견을 병원 측에 전달했는데, 다행히 상황이 잘 풀렸다.
“잘됐네. 고맙다, 동진아.”
-고맙긴. 우리는 오히려 아직 당사자들이 아직 결정을 못 내렸다고 해서 더 걱정하는 분위기야, 두 분이 오신다고 하면 아주 꽃길이라도 깔아 줄 기세다. 사보에 실으려고 할걸. 두 분한테 말씀 좀 잘 전해줘.
“알았어.”
전화를 끊자, 멀뚱히 기다리고 있던 한영선이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방금 통화 내용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
“한영선 씨.”
“예?”
“이제 바로 댁으로 가십니까?”
“아뇨. 서혜진 간호사님하고 저녁 약속 있어요.”
“잘됐군요. 그럼, 두 분이 함께 명운 대학 병원 본원으로 옮기시는 건 어떨지 상의를 해보셨으면 합니다.”
“……명대 병원이요? 제가 아는, 그 명대 병원이요?”
“네. 그쪽에서 두 분께 관심이 있다고 하네요.”
나는 지갑에서 동진의 명함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여기로 연락하시면 자세히 알려드릴 겁니다. 제 친구니까, 확인하시고 싶으신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하세요. 제가 잘 알려 드리라고 말해놓겠습니다.”
한영선은 눈을 크게 뜨며 나에게서 명함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명함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방금 통화하신 게 그럼, 이 일 때문이셨던 거예요?”
“네.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라, 원장이 혼자 채용을 결정할 수는 없어서 회의에 부쳐보겠다는 대답을 들은 상태였습니다. 방금 회의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네요. 명대 병원은 두 분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님, 저 정말, 이런 건 생각지도 못했어요. 정말, 그냥……. 그냥 이번 민사 재판 끝나면 다른 병원 알아보려고 했는데…….”
어느덧 한영선의 눈가에는 눈물이 비쳤다.
“제 친구는 대학 병원은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아서, 개인 병원으로 가시는 편이 더 나을 거라고 하던데……. 혹시 제가 괜한 일을 한 겁니까?”
그녀가 슬퍼서 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아뇨. 아니에요, 변호사님, 절대 아니에요. 너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흑흑.”
그녀는 고윤성의 죄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많은 것들을 무릅쓰고 용기 내어 법정에 나와 주었다.
어차피 지방 분원으로 좌천된 상태였긴 했지만, 끝까지 합의를 거부한 그녀가 앞으로 어떤 불이익을 겪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변호사는 모든 의뢰인이나 증인을 끝까지 보호해 줄 수 없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을 뿐이다.
“서혜진 간호사님도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우선은 부담 갖지 마시고 한번 연락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좋아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정말…… 감사해요.”
“이제 버스 타셔야겠는데요.”
나는 전광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건넨 명함을 쥔 채 호느끼던 그녀 역시, 그 말에 황급하게 눈물을 닦으며 일어섰다.
“이만 가 볼게요. 변호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다 버스 놓치시겠습니다.”
“앗, 아니에요. 지금 가면 돼요. 저 가 볼게요. 변호사님, 얼른 들어가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변호사님, 정말 감사해요!”
한영선은 터미널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소리친 뒤, 버스를 타러 달려나갔다.
그녀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쯤, 나 역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 회식을 하자던 강민재의 목소리가 떠올라, 걸음을 서둘렀다.
[빠빠라 빠빠라 빠~]“……미치겠네.”
아까 동진과 전화를 끊자마자 소식을 전하느라, 벨소리 설정을 안 했던 게 생각났다. 이번에는 정말 잊지 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차주한입니다.”
-국세청입니다.
국세청?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보이스 피싱인가. 하지만 어설픈 느낌은 없는데.
조금 더 들어 보기로 했다.
“네, 그런데요?”
-차주한 씨 본인 맞으시죠?
“그렇습니다.”
-차주한 씨, 현재 세무 조사 대상자로 분류되셨습니다. 국세청에 소명 자료 제출하셔야 하고요. 오늘 등본상 주소로 등기 나갈 겁니다.
세무 조사?
나는 오히려 전화를 건 곳이 국세청이라길래, 혹시 성실 납세자상이라도 주려는 건가 생각했다.
예상치도 못한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