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
너희들은 변호됐다-16화(16/641)
진료실은 아늑한 분위기였다.
원장의 생김새도 깐깐한 전문의보다는 편안한 상담사같이 보였다.
환자들이 경계를 풀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 좋은 인상이다.
여희숙 씨도 그랬기를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아, 예. 안녕하세요. 김연준 씨의 변호를 맡고 계시다고 하셨죠?”
“네. 차주한입니다. 이쪽은 강민재 변호사고요.”
명함을 내밀자, 원장도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진료로 바쁘실 테니, 각설하고 빠르게 몇 가지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여희숙 씨가 처음 이곳에 찾아오신 건 언제입니까?”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입니다.”
“여희숙 씨가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언급하신 적 있나요?”
내 물음에 의사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곧 입을 열었다.
“환자의 건강 정보를 유출하는 건 좀,”
“어차피 검찰에도 진술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뇨, 경찰이나 검찰 쪽에서는 찾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증인 목록에 원장의 이름이 없기는 했지만, 찾아온 적이 없을 줄은.
여희숙 씨 몸에서 항우울제 성분이 검출된 이상, 검찰도 의료 공단에서 그녀가 다닌 병원을 알아봤을 텐데.
그런데 찾아온 적이 없다면…….
“비보험이었나요?”
“네. 워낙 내밀하게 진행하길 바라셔서, 상담 시간도 병원 문 닫고 늦은 시간으로 잡았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매니저는 검찰 측 증인이다.
그리고 여희숙이 정신과를 다니고 있어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검찰이 여희숙이 다녔던 정신과를 찾아온 적이 없다?
검찰이 매니저를 어떤 식으로 활용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현행범을 잡았으니 여유롭다, 이거냐.
“돌아가신 여희숙 씨 부부가 지속적으로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았다는 것도 부검 결과에 나와 있고요. 건강 정보를 유출하는 건 아닙니다.”
“흐음…….”
“무엇보다 선생님의 증언에 따라 용의자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죠.”
“용의자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대답의 결과는 [진실]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용의자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김연준이 정말로 용의자가 맞다고 여기는 걸까.
그렇다면, 여희숙이 원장에게 자신을 폭행한 이는 김연준이라고 말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건 무슨 의미죠?”
“저는 여희숙 씨가 누구에게 폭행을 당했는지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저 두 아들 중 하나라고만 들었죠.”
차라리 다행이었지만, 나의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대답이었다.
“원장님, 여희숙 씨가 상황을 자세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두 아들 중 하나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강민재가 다급하게 묻자,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여희숙 씨는 아직 저에게 마음을 다 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아들로부터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만 했습니다. 자세히 말씀하고 싶지 않아 하셨고, 저는 전체적인 검사 결과와 여희숙 씨의 증상 설명을 기반으로 처방해 드렸습니다.”
“하…….”
강민재는 어떻게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의사의 입에서 김형준의 이름이 나을 거라 기대한 것은 그뿐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른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니, 벌써부터 실망은 금물이다.
“그렇다면, 여희숙 씨와는 어떤 상담을 진행했는지 알려 주시죠.”
“하아……. 여희숙 씨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료도 치료지만, 우선 자제분과 함께 약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해 보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여희숙 씨는 자제분을 데려와 보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데려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아들의 행동은 통제 범위를 벗어나더군요. 저는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더 큰일이 나기 전에 아들을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법적 조치를 취하시라고 말씀드렸고요.”
“여희숙 씨 반응은 어땠습니까.”
“처음엔 아들이니까 신고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또 여희숙 씨 가정이 대외적으로 워낙 화목한 이미지였기 때문에 더욱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후 여희숙 씨의 반응이 달라졌습니까.”
의사는 책장에서 차트를 가지고 왔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은 아니었지만, 주차 별로 정리가 되어 있는 듯했다.
의사는 손으로 하나씩 차트를 짚어보며 잠시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네. 3주 차 정도에는 신고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정도의 폭행도 신고가 되느냐고 물어보셨고……. 그 일에 대해 정상적인 사고가 힘드신 것 같았습니다. 음, 저희 병원에 오신 지 7주 차가 되셨을 땐, 방송 활동을 모두 중단하셨습니다.”
“중단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시 몸에 보이는 상처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지만, 사회생활이 거의 힘들어졌기 때문이죠.”
“왜입니까?”
“밖에서 혹시나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각종 매체에서 욕하는 장면이 연출되면 마치 자신의 아들에게 폭언을 듣는 그 상황이 된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셨거든요. 평소 취미로 영화를 자주 보셨는데, 그래서 영화도 못 보게 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여희숙의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과 각종 매체 속의 인물들이 자신을 향해 욕하는 게 아닌 것을 알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되었다면.
“음, 방금 그 정도 폭행도 신고가 되느냐고 물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여희숙 씨가 결국 신고하기로 하신 겁니까?”
“그건 확실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혹시나 신고하시고 싶어질지도 모르니 증거를 확보하시라고 조언을 드렸습니다.”
“증거라면…….”
“늘 폭언 이후 폭행으로 이어졌다고 하셨으니, 폭언을 시작할 때부터 상황을 녹화해 두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녹화!
어쩌면, 사건 당일의 모습이 담긴 녹화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원장님도 그 녹화본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여희숙 씨는 아들을 감싸주고 싶은 모성과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이 혼재하는 상태였습니다. 상담하실 때에도 은연중에 아들을 감싸거나 아들의 행동을 합리화하셨습니다. 녹화본도 보여 주신 적 없고요.”
“……그럼, 녹화본이 어디에 있다거나, 어떻게 보관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으셨습니까.”
녹화본 이야기는 수사를 진행하는 며칠 내내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김연준도, 외조모도, 김형준도. 그 누구도 녹화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하셨습니다. 아들이 폭언을 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녹화를 하다 보니까, 이제는 어디서 쌍욕하는 소리만 들려도 자기도 모르게 녹화 버튼을 누르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녹화를 끄시고. 그러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카메라에 사건 당시의 모습이 담겨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만일 그렇다면, 이상한 점이 많다.
하지만 사건 현장은 경찰이 싹 쓸어갔을 텐데, 만일 경찰의 손에 카메라가 들어갔다면 김연준은 기소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카메라 안에는 분명히 김형준이 부모를 살해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김형준에게 야구 배트를 넘기는 장면까지 담겨 있었을 테니까.
“여희숙 씨는 언제까지 외래를 오셨습니까?”
“돌아가시기 1주 정도 전이 마지막 진료네요.”
“그때까지 여희숙 씨는 계속 녹화하는 습관은 갖고 계셨고요?”
“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거의 강박적인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카메라를 찾아야 한다.
그게 단 하나뿐인 물증일 것이다.
“혹시 내일 오전 10시 법정에서 증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떤 걸 증언해야 하는 거죠?”
“오늘 나누었던 대화와 같은 내용입니다.”
“알겠습니다. 증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지금 급해서, 일어나 보겠습니다. 관련 서류는 팩스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내가 겉옷을 챙겨 달려 나가자, 강민재도 내 뒤를 쫓았다.
시간이 없다. 얼른 비디오를 찾아야 한다.
“변호사님, 여희숙 씨 집으로 가시죠?”
“강 변은 먼저 가 있어. 나는 구치소 가서 김연준 씨 만나고 올 테니까.”
“김연준 씨는 왜……. 아, 사건 당시에도 여희숙 씨가 카메라를 켜러 갔다면 김연준 씨가 그 모습을 봤을 수도 있겠네요.”
“여희숙 씨가 뭘 하는 건지 몰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어.”
“맞아요. 후우, 영상이라니……. 이것만 있으면 무조건입니다.”
샅샅이 집 안을 다 뒤졌을 경찰도 찾지 못한 그 카메라를,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난 사무실에 내려 줘. 강 변은 바로 사건 현장으로 가서 카메라 찾아보고.”
“네. 뭐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촬영이요?”
김연준은 눈에 띄게 반색했다.
“당일의 상황이 녹화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녹화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사건 당일을 자세히 떠올려 보십시오. 김형준 씨가 부부에게 폭언을 시작할 때, 여희숙 씨가 갑자기 어딘가를 향했다든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김연준이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날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녁 먹고 나서, 과일 먹다가……. 형이 갑자기 아버지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쌍욕이 나오니까…….”
김연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모르겠어요.”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눈앞에 있던 희망을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금세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모르겠어요, 변호사님……. 기억이 안 나요.”
“김형준 씨가 주로 두 분을 폭행하던 곳이 어딥니까?”
“거실하고 안방이요. 거실에서 싸움이 나면, 엄마가 안방으로 도망가셨는데……. 형이 그런 엄마를 붙잡고 자기를 보고 똑바로 얘기하라면서 윽박지르고 그랬거든요. 엄마가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하면 거실에서 폭행을 시작했고, 엄마가 뿌리치고 안방으로 들어가면 안방에서……. 아빠도 말리다가 같이 맞으셨고요…….”
“그럼 사건 당일에, 김형준 씨가 폭언을 시작했을 때를 기점으로 여희숙 씨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거실에서 싸움이 났고요, 엄마가 안방으로 도망가셨어요. 그때 아버지도 안방에 계셨고……. 문을 잠갔더니 형이 문을 열라고 패악을 부렸어요. 결국 엄마가 문을 열어 줬고, 형이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제 야구 배트를 들고요. 그래서 저도 따라갔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카메라는 거실과 안방에 설치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건 당일 모습이 담긴 카메라는 안방에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김형준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 거실에 있는 카메라를 켜진못했을 테니까.
“저, 변호사님.”
“네.”
“……그 카메라 못 찾으면, 저 감옥 가는 건가요?”
공판이 당장 내일인데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다.
김연준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내일 법정에서 잘하면 됩니다. 굳이 연기하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김연준 씨의 솔직한 감정, 솔직한 이야기. 그대로 털어놓으시면 됩니다. 애써 담담할 필요도, 애써 오열할 필요도 없습니다.”
“……네.”
구치소에서 나와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강 변으로부터 도착한 연락은 없었다.
나는 도곡동을 향해 차를 몰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김연준 씨가 카메라 위치 안답니까?
“모른대. 하지만 안방하고 거실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사건 현장이 안방이라, 일단 안방 쫙 봤는데요. 아직은 못 찾았어요. 거실도 한번 보겠습니다.
안방 카메라를 찾지 못했다면, 거실에 있는 거라도 찾아야 한다.
사건 당의 영상은 없어도, 평소 폭행을 자행한 것이 김형준이라는 걸 입증하면 되니까.
“변호사님!”
40분 후 여희숙의 집에 도착했을 때, 강 변은 소파에 비닐을 깔고 앉아 있었다.
“돌아 버리겠네, 정말. 오늘 안에 찾아야 증거 등록하는데…….”
“정 안 되면 재판 직전까지 찾아도 상관없어. 너무 조급해하지 마.”
“어떻게 안 조급해합니까! 변호사님 로봇입니까? 아니, 진짜 로봇 맞는 것 같은데? 충전은 언제 하십니까? 자기 전에 코드 꽃고 잠드는 거죠?”
그는 꽤 격앙되어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폴리스 라인을 걷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신에서 흐른 혈액이 검게 굳은 채 바닥에 낭자했다.
김철환과 여희숙 부부의 마지막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두 개의 현장보존선.
그날의 참상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이 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장면을 담으려면 각 천장 모서리에 설치해야 하는데.’
모서리에는 모두 깨끗하게 흰 벽지가 발라져 있을 뿐이다.
나는 위치를 바꾸어 가며 내부를 눈에 담았다.
여희숙은 증거로 삼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으니, 당연히 방 내부가 한 번에 잡히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했을 텐데.
‘여기에 설치하면 스피커 때문에 잘 안 보이고.’
2018년에는 몰카 범죄가 급증하면서, 민간에서도 쉽게 카메라 탐지기를 구할 수 있었다.
그거라도 있었다면 수월하게 찾았을 텐데.
“거실에서도 못 찾겠습니다. 대체 얼마나 꽁꽁 숨겨 놓은 걸까요.”
“김형준이 알아채면 안 되니까 더 확실하게 숨겼겠지.”
“혹시 경찰들이 가져간 거 아닐까요?”
“가져갔으면 영상 틀어 보고 김형준 구속했겠지.”
“김형준한테 돈 먹어서…… 휴, 그건 좀 아니네요. 김형준이 재벌도 아니고.”
강민재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거실로 나가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몇 번째일지 모르는 안방 수색을 다시 한번 개시했다.
베란다를 통해 햇볕이 들어오던 한낮부터 시작한 수색은, 해가 뉘엿뉘엿 진 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했어.”
“……네.”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강민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재판은 14시간 남았고, 나는 결국 카메라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