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3)
너희들은 변호됐다-163화(163/641)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는데, 정신을 차리니 오후 4시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약속 시간인 7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오랫동안 조사실에 처박혀 있느라 씻지 못했으니, 일단 샤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내내 나를 꺼내 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 삶에서 알던 고위 관료들을 모두 떠올려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머릿속에 스친 사람은 많았지만, 이 상황에 적합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2010년에는 전부 만나지 못했던 사람이다.
어차피 3시간 뒤에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대비하고 싶었다.
이번 삶을 시작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나를 구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뭐, 설령 그가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검찰에서 꺼내 줬다고 해도 거래가 성립하려면 상호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나는 그저 검찰 조사에서 잠시 풀려났을 뿐, 모든 의혹이 소명된 상태는 아니다.
그 사람과 합의가 원활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조사를 받으러 가야겠지.
그러니 부담 없이 만나는 게 좋겠다.
“…….”
어느덧 약속한 7시가 되었다.
베란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출입구 앞에 오늘 새벽 내가 타고 왔던 세단이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문을 열어 주었다.
의전은 고맙지만, 나에게는 썩 익숙한 일이 아니다.
차는 부드럽게 미끄러져, 어느덧 한강 다리를 건넜다.
출발한 지 40분이 지났을 무렵, 차는 평창동의 고급 주택가로 들어섰다.
평창동이라.
좋은 동네다.
직접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압수수색하러 갔던 동네 중에 가장 많은 빈도로 방문한 곳이다.
차는 때맞추어 열린 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차주한 변호사님.”
내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기도 전에, 차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분명히, 내가 검찰청에서 나오자마자 통화했던 그 남자일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떻게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아직 누구신지 알 수 없어서.”
뾰족하게 말했더니, 그 남자는 예의 그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강 실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활약이 대단하시더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만, 누가 강실장님께 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했는지 궁금하군요.”
강 실장은 대답 대신 나를 저택 내부로 안내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너른 잔디밭이 드러났다.
조경이 잘된 정원이었다.
담벼락을 따라 정원사의 손길을 탄 것이 분명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었다.
수목원에 온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큰 느티나무 아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그 너머에는 작은 인공연못까지 있었으니 이 정도면 정원이라는 말로는 이 규모를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유명한 현대미술가의 작품일 법한 조각상도 하나 놓여 있었다.
내 기억에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정원이 참 멋지죠?”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듯, 강 실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네요.”
“어르신께서는 언제나 전원생활을 꿈꿔 오셨죠, 안타깝게도 아직 그 꿈을 이루진 못하셨지만.”
“왜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아직 지켜야 할 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르신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짐작하겠습니까마는.”
잔디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길을 따라 걸으니, 정원에 설치된 간접 조명을 받으며 저택의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연배의 사람이 살기에는 꽤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집이었다.
널따란 거실이 한눈에 보이는 통창으로, 혹시 집주인의 정체를 미리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흘긋거렸다.
안타깝게도 바쁘게 움직이는 가사도우미 모습만 보였다.
“들어가시죠.”
어느덧 입구에 다다라, 강 실장이 문을 열어 주었다.
벽 곳곳에 설치된 캔버스 속 그림이 멋지다는 것이 나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이 저택에 대한 감탄에 묻혀, 집주인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더더욱 궁금해졌다.
이 집의 주인이 대체 누구인지.
“잠깐 여기서 기다리시죠.”
그는 나를 거실 소파로 안내했고, 내가 착석하기가 무섭게 가사도우미는 내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강 실장은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발걸음이 점점 1층으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을 주시했다.
“…….”
“오래 기다렸나? 차주한 변호사.”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 사람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차 변호사가 많이 놀란 모양인데.”
분명한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3시간 동안 열심히 떠올려 보았던 수많은 유력 인사 중에 그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강관웅 전 대통령님. 차주한이라고 합니다.”
“대통령님은 무슨. 이제 뒷방 늙은이 신세지. 그냥 편하게 부르게.”
“뭐라고 불러 드리면 좋으시겠습니까?”
“흐음, 글쎄. 일단은 어르신이라고 불러. 저 친구도 그렇게 부르니까.”
강관웅 전 대통령은 곁에 있던 강 실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앉게.”
그리고 여전히 서 있는 나에게 손짓했다.
소파에 다시 하체를 붙이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것이 꿈인지 생신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관웅 전 대통령이라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고상준 형제와 태광에게 집중 포격을 받고 있던 나를 간단하게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정체를 확인한 지금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강관웅이 나를 왜.
그는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난 몸이었다.
전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는 정치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도 있지 않은가.
강관웅은 1980년대, 그가 집권하던시기 이후로 청와대 행사가 아니고서야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해 왔듯, 임기가 끝난 뒤에는 조용히 은거하며 지냈다.
냉정하게 말해, 그가 새로운 비리에 연루되지 않는 한 사망 전까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떠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식사는 했나?”
“아직입니다.”
“배가 많이 고픈가?”
“아닙니다.”
“잘됐군. 올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
올 사람?
나는 잠시 미간을 좁히며 추측해 보려 했지만, 관두었다.
이미 이곳에 오면서 강관웅의 정체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다.
굳이 생각해 봤자, 맞힐 수 없을 것이다.
“15시간이나 조사를 받았다지? 많이 피곤하겠군.”
“아닙니다. 충분히 쉬고 왔습니다.”
“그래?”
그는 작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야. 왜 아니겠나. 나라도 넋이 나갔을 거야. 전혀 상관도, 일면식도 없는 내가 갑자기 자네를 검찰청에서 빼냈으니.”
“말씀하신 대로, 어르신께서 왜 저를 조사에서 빼내 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말에 강관웅은 끌끌 웃음을 흘렸다.
“보통은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데, 질문부터라니. 순서가 좀 안맞는다는 생각은 안 드나?”
“감사할 일인지, 아닌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어째서?”
“어르신께서 어떤 목적으로 저를 검찰 조사에서 빼 주신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에게 바라시는 게 제 지향점과 맞지 않는다면 제가 어르신의 호의를 받아서는 안될 테니까요.”
강관웅은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미소지었다.
“섣부른 감사 인사는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아주 인색하구만. 내 목적이 무엇이 뭐 든지, 어쨌든 내가 꺼내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야.”
“조사가 더 길게 이어졌다면 확실히 피곤하긴 했을 겁니다. 덕분에 끊어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강 실장. 이 친구 참 모르겠구만. 자존심이 센 건지, 아니면 예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신중한 건지.”
강관응은 강 실장을 바라보며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 대통령 앞에서 내가 제법 뻣뻣하게 굴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지금, 그 어떤 말이든 섣불리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빼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면, 그것을 빌미로 잡아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알 수 없으니까.
지금 내 조사는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여지가 남을 말을 안 하고 싶은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르신.”
“무례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섣부르게 아무 말이나 입에 올릴 상황은 아닌 듯해서.”
“맞아. 자네 말대로, 아직 고맙다는 인사를 하긴 이르지. 그런 인사는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 받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럼 묻겠네.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생각인가? 만일 내가 아니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강관응은 나에게 똑바로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들이 준비한 패는 이제 하나 나왔을 뿐이다.
조작된 이중장부.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나에게 걸린 혐의는 부동산 투기와 과다 수임료다.
과다 수임료 문제야, 범죄라고 할 순 없으니 지탄받고 끝날 일인 데다 처음부터 과도하게 받은 것은 아니었으니 넘어간다 치고.
경기 북부 토지 매입 건이 관건이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내가 투기했다는 사실을 확정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 신도시 개발 정보를 흘린 관계자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우신이라면 분명 그 관계자를 어떻게든 만들어 낼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스탠바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당장 계획은 없었습니다.”
“계획이 없었다? 그럼, 이대로 고상준이 마련한 처형대에 누워서 목이 잘릴 생각이었다는 말인가?”
“그쪽에서 어디까지 준비했는지 파악할 때까지는 지금 당장 드러난 자료들을 검토하며 잠자코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섣불리 대응했다가, 앞뒤가 맞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테니까요.”
“자네가 그걸 기다리는 동안 있을 이미지 소비는?”
이미지 소비라.
정치인인 그에게서 나올 법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변호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이미지를 중시하지만.
“일개 변호사인 제게 이미지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래?”
그는 안경을 콧대 쪽으로 내리며 맨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언제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의 눈빛치고는 생명력이 넘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어르신.”
그때였다.
강관웅의 뒤를 조용히 지키고 있던 강 실장이 그에게 다가와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강관웅은 나를 향했던 시선을 거두며 현관 쪽을 흘긋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이제 굳은 표정 풀게. 자네를 몰아세웠다고 혼나고 싶진 않거든.”
그때, 현관 쪽에 센서등이 들어왔다.
누군가 도착한 듯했다.
가사도우미는 현관 쪽으로 향했고, 아직 중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서 코트와 가방을 받아 들었다.
“할아버지, 저 왔…… 어? 벼, 변호사님?”
그리고 거기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민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