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4)
너희들은 변호됐다-164화(164/641)
얼이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강민재와, 자연스럽게 그가 건넨 가방을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는 가사도우미.
그리고 그가 들어오자마자 했던 ‘할아버지’라는 말.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관웅 전 대통령은 강민재가 그리도 감추고 싶어 했던 그의 할아버지였다.
“왔니? 조금 늦었구나.”
“네, 차가 좀 밀려서. 그런데…….”
강민재는 몹시 어색하게, 게처럼 옆으로 걸으며 내 옆에 슬쩍 와서 앉았다.
그리고 몹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강민재가 강관웅이라는 거물 정치인의 손자라는 사실을 안 내가, 혹시라도 그에게 실망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물론 놀라긴 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그는 전 대통령의 손자라는 후광 때문에 사람들과 솔직한 관계를 맺기 어려웠을 테니까.
흔히들 말하는 ‘특별 대우’를 받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실력으로 부딪치고 싶어서 내가 모르기를 바랐을 것이다.
실제로 태광에서도 윤원형은 그를 번번이 챙겼고, 고작 검사 1년 경력의 신출내기 법조인을 태광 2인자인 김윤희의 어쏘로 앉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실, 나는 그에게 화를 낼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나는 알면서도 눈을 감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집안에 대해 알아보려 했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세연 기자도 그렇고, 몇몇은 그의 정체를 아는 눈치였으니까.
“……변호사님, 좀 어떠세요? 그, 조사 많이 힘드셨죠?”
강민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괜찮았어. 강 변 할아버님 덕분에 일찍 풀려났거든.”
“……아니, 할아버지는 왜 저한테 말씀도 안 하시고 마음대로 막, 어? 막 그러고 그러세요.”
그는 횡설수설하며 강관웅을 흘겨보았다.
강관웅은 손자의 어리광을 허허 웃어넘기며 대꾸했다.
“네가 너희 변호사 걱정돼서 밥도 깨작거리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러지만 않았어도 할애비가 나서는 일도 없었어.”
“제, 제가 언제 밥을 깨작깨작 먹고 잠도 못 자고 그랬어요?!”
강민재가 펄쩍 뛰자, 강 실장이 대신 대답했다.
“그랬잖아. 새벽에도 안 자고 주방 내려와서 혼자 위스키 따던데?”
“……형은 그걸 또 언제 보셨대요.”
유난히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았던 그의 모습도 집안 분위기를 보아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강관웅과 강 실장은 그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었던 강관웅 역시, 손자를 보는 눈빛만은 다정했다.
“철없는 손자를 맡겨 놓고 할애비가 돼서 인사도 안 해서야 되겠냐. 겸사겸사 저녁이나 한 끼 하자고 불렀다.”
“……철없는 손자는 아니지만, 도와주실 거면 진작 도와주시지, 변호사님 조사 받으러 가셔서 엄청 고생하셨을 텐데, 언론에서도 막 별것도 아닌 걸로 변호사님 엄청 모함하고 난리였잖아요.”
“이놈이. 손자 키워도 쓸모가 없어. 할애비보다 지 직장 상사만 챙기고 말이야, 차 변호사, 우리 민재가 저렇다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강관웅은 외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그의 임기 중에 아들의 얼굴은 꽤 알려져 있었지만, 손자인 강민재는 당시 꼬마에 불과했다.
강관웅이 임기를 마친 뒤, 은거를 선택하면서 그의 손자 역시도 베일에 감춰졌다.
강민재가 이진에 미국에서 유학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래서 더욱 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알음알음 아는 사람은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이전 삶에서 우신을 잡으려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닐 때도 강관웅은 연관조차 없었다.
나는 우신과 관련되지 않은 유력 인사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어르신,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
강 실장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저택 안쪽 다이닝룸으로 이동했다.
긴 식탁 위에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 올라와 있었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준비했을까 싶어, 부엌 안쪽을 보았더니 가사도우미가 몇 명 더 있었다.
이런 집에서 나고 자란 강민재가 식당에 가면 고기도 잘 굽고, 수저도 빠릿하게 챙기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들지. 자네 입에 맞을지 모르겠구만.”
“감사히 먹겠습니다.”
“변호사님, 전복 드세요. 전복. 아, 여기 장어도 있다. 장어 먼저 드세요.”
내 옆에 앉은 강민재는 식탁 한가운데 있던 전복과 장어를 내 앞으로 가져와 놓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강 실장이 전복에 손을 대기도 전의 일이었다.
“민재야, 누가 뺏어 먹어?”
“변호사님 고생하셔서 원기 보충하셔야 해요. 형은 다른 거 먹어요.”
어느샌가 메인 요리 대부분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가운데로 돌려놓아도, 강민재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시 내 앞에 가져다 놓기 일쑤였다.
“강 변이나 얼른 먹어.”
“저도 잘 먹고 있어요. 아, 근데 오늘 불고기 좀 별로다. 그쵸? 변호사님 어머님이 만드신 게 더 맛있는것 같아요.”
강민재는 앞접시에 한 입 먹은 불고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우리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긴 하지만, 저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강민재의 온갖 오바에도 조용히 식사를 하는 강관웅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자의 행동이 그리 놀랍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조금은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변호사님, 저 없는 동안에 할아버지가 변호사님 괴롭히신 건 아니죠? 변호사님 오실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왔을 텐데.”
식사가 끝난 뒤,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강민재의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디저트로 나온 양과자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내 앞에 놓아 주기 시작했다.
강민재는 평소에도 이러긴 하지만,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내가 들어왔기 때문인지 더욱 열과 성을 다해 오바하고 있었다.
“그냥 좋은 말씀해 주셨어.”
“그러셨을 리가 없는데.”
강민재는 강관웅을 흘겨보며 말했다.
“어르신이 차 변호사 잡아먹니?”
강 실장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강민재가 툴툴거렸다.
“저번에 변호사님 어머님이 밥도 해 주시고, 제가 취할 때마다 변호사님이 집으로 데려가서 재워 주시고, 저 정말 많이 도와주신단 말이에요. 저 변호사님 밑에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근데 그런 변호사님을 홀대하면 제가 너무 죄송하잖아요.”
“너 차 변호사한테 세뇌당했어? 종교야?”
갈수록 가관이었다.
강 실장과 강민재는 티격태격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
강민재가 없었을 때는 강관웅이 시종일관 나를 시험하는 듯한 눈빛이라 그리 편치는 않았는데,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면서 뉴스 확인해 보니까, 아직 혐의가 다 풀린 것 같진 않던데. 그냥 조사가 끝났다는 말만 있더라고요, 형.”
계속해서 내가 얼마나 잘해 주는지 역설하던 강민재가, 순식간에 화제를 돌렸다.
강 실장은 차를 한 모금 삼키며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변호사님을 집까지 부르셨다는 건, 제 눈에는 도와주시기로 마음 굳히신 걸로 보여요. 그렇죠, 할아버지?”
“강 변.”
나는 강민재의 말을 막아섰다.
강민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나와 일면식도 없던 강관웅이 나를 도운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문이 모두 풀렸다.
그의 금지옥엽 손자가 나를 걱정해서, 그래서 여태까지 행사하지 않았던 영향력을 직접 발휘한 것이다.
물론 전 대통령에게 고작 나 같은 조무래기 변호사에게 걸린 약소한 혐의를 풀어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그가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자신이 세운 불문율을 깨고 나선다면, 전 대통령인 강관웅이 나를 비호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것이다.
이번에 타깃이 나에게만 한정된 까닭 역시, 고상준 형제와 태광은 이미 강민재가 강관웅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터.
만일 강관웅이 나를 비호하는 것은, 그들과 척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 변호사님은 이 할애비의 도움이 벌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솔직히, 할아버지가 안 도와주셔도 변호사님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차 변호사는 다른 계획이 없다는 것 같던데.”
강관웅의 말에, 강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당장은 없더라도, 어쨌든 방법을 찾을 겁니다. 항상 그랬어요. 여태까지 맡아 왔던 수많은 사건, 처음부터 답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국 찾았어요.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할애비가 차 변호사를 도와줄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전화 한 통이면 모든 것을 끝내실 수 있는 할아버지와는 다르죠. 사람들은 결과에 관심이 없어요. 변호사님이 결과를 내는 동안, 이미지 소모는 필연적이고요.”
“일개 변호사에게 이미지가 뭐가 중요하다고?”
강관웅은 손자에게 대답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까 그에게 했던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왔던 게 아깝잖아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차 변호사님 모처럼 눈에 띄는 물건이라고 하셨으면서. 그런 눈에 띄는 물건이, 이까짓 일로, 그러면 안 되잖아요…….”
강민재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관웅은 그런 손자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강민재가 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부터, 강관웅은 나를 끈질기게 관찰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정보를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손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뚝뚝 흐르는 그는, 나에게 정말로 손자를 맡겨도 될지 판단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평가했을 터.
오늘 나를 직접 보기 전에도, 나를 도울지 말지 이미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나에게 강관웅에게 도움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강민재의 말이 모두 맞다.
강관웅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그가 나를 비호하고 나서면 그에게는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기적으로 따지면, 강관웅이 내 뒤를 봐준다면 나는 날개를 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고상준이라고 하더라도, 강관응이 비호하는 나를 쉽게 건드릴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
“차 변호사의 생각은 어떤가. 아까는 내 꿍꿍이 속을 알 수 없으니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고 했지.”
강관웅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젠 알았을 테니 말해 보게. 내 손자를 봐서라도, 내가 자네를 도와줘야 할 것 같은가?”
강관웅은 예의 그 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강민재 역시 애타게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그냥 도와 달라고 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강 변 말고 저를 봐서 도와주십시오,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