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5)
너희들은 변호됐다-165화(165/641)
“허허. 내가 자네의 어디를 봐서 도와야 하지?”
강관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르신의 취임사가 문득 생각납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짓밟히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죠.”
“그랬지.”
“어르신의 임기가 끝난 뒤, 3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어르신이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지금 약자인 제가 강자인 고상준 형제와 태광에게 중상모략을 당하고 있고, 제가 변호했던 의뢰인들 역시 강자에게 짓밟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강관웅은 마저 하라는 듯 턱을 조금 들어 올렸다.
“제가 고상준 형제의 타깃이 된 까닭은 단순합니다. 강자인 그들이 약자를 짓밟으려는 것을 저지하고 그 모든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밟으면 밟혔던 사람들을 상대해 왔던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일지는 굳이 직접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렇게까지 품을 들여 나를 입건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정석적인 이야기지만, 법조인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법조인 집단인 태광은 강자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에 앞장 서고 있습니다. 제가 법정에서 상대했던 변호사들의 대부분이 다 태광 소속이었으니,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한 해에도 수십 명의 특출난 법조인이 태광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살아남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계속하게.”
“제가 검찰을 나온 까닭은, 검찰이라는 집단에서는 약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검찰까지 안쪽부터 썩어 버렸습니다. 누군가는 이 환부의 고름을 짜내고, 작금의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그게 자네라는 말인가?”
강관웅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물었다.
그는 내 오만함을 경계하는 듯했다.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저 같은 사람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미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짓밟혔거나,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이전 삶의 나 역시 그렇게 짓밟혔던 사람 중 하나였다.
뒷배가 없던 내가, 내 능력 하나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강 변이 태광을 뛰쳐나온 이유는 더 이상 나쁜 사람들을 변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다짜고짜 찾아와서 배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땐 저도 많이 당황스럽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강 변이 그랬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강관웅 역시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이다.
판사로 처음 임관했고, 30대부터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그도 잠시도 쉬지 않고 정치 바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첫 대선 낙선 이후, 정계에서 물러나 대학에서 법을 가르쳤다.
나 역시 그가 저술한 책으로 공부했던 세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대개 실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품은 이상은 존재하는 법이다.
강관웅이 그랬다.
일각에서는 그의 목표가 너무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그의 꿈이 싫지만은 않았다.
살아남는 데에 급급한 이 세상에서, 누군가 한 명쯤은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더라도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밟는다고 그렇게 쉽게 밟히지만은 않는다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어르신이 말씀하신 그 이미지라는 게 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강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찻잔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자네 생각은 잘 알겠네.”
한참 뒤, 강관웅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식탁을 짚고 일어섰다.
나와 강민재, 그리고 강 실장이 동시에 기립했다.
강관웅이 나에게 할애한 시간은 이제 끝난 듯했다.
그는 강 실장의 시중을 받으며 2층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강민재는 아쉬운 듯 그를 부르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계단에 한쪽 발을 올린 그가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니 좋군. 아까는 좀, 얄미웠거든.”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살펴 가게.”
그리고 미련 없이 층계를 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강민재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변호사님.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우리 할아버지지만, 가끔 참 정 없다니까요.”
강민재는 소파로 다가가 그대로 쓰러지듯 앉았다.
“아냐. 냉정하게 말해서, 어르신이 나를 도와주실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까 감사해요, 아,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올 때 보니까 차고에 변호사님 차 없던데. 차 안 가지고 오셨죠?”
강민재는 가사도우미에게 말해, 자신의 차 키를 가져오게 했다.
“아, 원래 밥 먹고 나면 담배 한 대 딱 피워 줘야 하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못 피웠네요. 한 대 피우고 가시죠.”
그리고 그는 정원 한쪽의 테라스로 나를 안내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곳인데, 테이블 위에 법과 관련된 책이 몇 개 쌓여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자주 찾는 곳인 듯했다.
그는 능숙하게 테이블 아래서 재떨이를 꺼내 내려놓았다.
재떨이가 무슨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사기그릇 같다.
“음, 그런데 변호사님 혹시 화나신 건 아니죠?”
“내가 왜 화가 나?”
“……제가 할아버지 손자인 거 숨겨서요.”
“강 변. 내가 정말 몰라서 몰랐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 변이 강관응 전 대통령 손자인걸 아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정말 알려고 했다면 이미 알아냈겠지. 강 변이 알리고 싶지 않아 하니까 그냥 모른 채로 있있던 거야.”
“그럼, 아시고 난 다음인 지금은요?”
“뭐가.”
“혹시 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거나, 그런 건 없으세요?”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전 대통령의 손자라는 것을 안 뒤로, 태도가 바뀐 사람들을 많이 접했던 듯하다.
“없어. 아, 할아버님 앞에서도 오바를 감추지 못하는 게 좀 신기하긴 했다.”
“오바라뇨.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인데요?”
“제발, 징그러우니까 오바 좀 그만해.”
“아, 제 마음을 이렇게 몰라 주시네. 할아버지가 혹시 변호사님한테 무섭게 굴고 그러실까 봐 일부러 그런 건데.”
나는 그를 바라보며 대충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그래도 강 변한테도 고맙게 생각해. 어르신이 도와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강 변 덕분에 내가 조사에서 풀려난 건 사실이니까.”
“완전히 혐의까지 풀리면 더 좋겠습니다.”
“할아버님께 내 얘기는 이제 그만해. 그리고 난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그만 들어가서 쉬어.”
“아닙니다.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됐어. 내일 사무실에서 보자고.”
나는 넓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변호사님!”
테라스에서 조금 멀어졌을 무렵, 등 뒤에서 강민재가 나를 불렀다.
그를 돌아보자, 강민재가 크게 소리쳤다.
“대문은 반대쪽인데요!”
아, 이렇게 넓은 집은 처음이라.
나는 강민재가 가리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검찰은 차 모 변호사의 조세 포탈혐의와 경기도 북부 신도시 예정지 투기 건에 대하여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세무법인에서 발견된 이중장부 역시, 다른 데이터와 잘못 뒤섞인 파본이 섞여들어 수사에 혼선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고깃집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금요일을 맞아 술을 마시자며 조르는 강민재를 떼어 놓고, 나는 최종현을 만나러 왔다.
아직 그와 내 사이에는 남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강민재는 우리가 놀아 주지 않으면 클럽에 갈 거라며 시근덕거렸는데, 잘 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 나오고 말 것 같은 뉴스 꼭지인데, 생각보다 오래 얘기하네요. 차 변, 생각보다 거물인가 봐요.”
최종현은 연신 화면을 흘긋대며 말했다.
나는 거물이 아니지만, 뉴스에서 내 이야기가 생각보다 크게 다뤄지는 까닭은 강관웅의 화끈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도록 압박을 가한 것은 물론이고, 내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도록 황금 시간대 뉴스 채널에서 나의 무고를 여러 번 보도하도록 조치했다.
한번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제대로 도와준 것이다.
무혐의 처분이 난 것은, 내가 강관웅을 만났던 그날로부터 나흘 뒤의 일이었다.
김동수 검사는 무혐의 처분 사실을 알려 주면서도 끝까지 빈정거리긴 했지만, 앞으로 나와 딱히 볼 일은 없는 사람이기에 적당히 들어 넘겼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좋아했던 것은 다름 아닌 강민재였다.
무혐의 처분 전화를 받았던 그때, 마침 강민재가 옆에 있었는데 그 역시 강관웅으로부터 아무런 언질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부려야겠다며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었다.
[어르신께서 차 변호사님을 조금 더 지켜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강 실장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동안 혼란이 있긴 했지만, 우리는 빠르게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한영선의 민사 재판 역시 무리 없이 잘 끝냈고, 두 간호사가 명대 병원으로 환대 받으며 이직했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사건 하나를 끝낼 때마다, 나는 유수와도 같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새삼 체감하곤 한다.
2009년 마지막을 기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0년의 2/4분기가 시작됐다.
“이제 그 징글징글한 고윤성 사건, 그리고 그 파생 사건까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됐네요.”
최종현은 나에게 소주를 한 잔 따라 주며 말했다.
“차를 가져와서요.”
잔을 받아 두기만 하는 나에게, 최종현이 눈을 흘겼다.
“대리 불러요.”
“오늘은 별로 안 내킵니다. 집에 들어가서 쉬려고요.”
“뭐, 얼마 전까지 고생한 사람에게 강제로 술을 권할 순 없지.”
최종현은 단숨에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마음은 정하셨습니까.”
“무슨 마음 말입니까?”
“고윤성 사건, 기자님이 나한테 준 시험이잖습니까. 나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
내 말에, 최종현은 킬킬 웃었다.
“어떻게 안 믿겠습니까. 이 이상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요. 내가 부탁한 일 때문에 보복당해서 누명 쓰고 검찰 다녀온 사람을 못 믿는다 하면, 내가 너무 개새끼죠.”
“다행이군요.”
“어려운 부탁이었을 텐데, 흔쾌히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고생한 것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하지만 이번 함정은 꽤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았는데, 차 변 생각 이상으로 능력 있는데요?”
그에게 강관웅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차 변 사무실에 있는 강민재 변호사 말입니다.”
“네.”
“차 변을 잘 따르는 것 같던데,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검사 시절 제 시보였습니다.”
“그게 다예요?”
“네.”
최종현은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원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 있습니까?”
“아니, 문제는 없는데. 차 변이 모르는 것 같아서……. 강민재 변호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아요?”
“…….”
강민재의 집안 이야기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나만 몰랐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내가 강관웅의 집에 초대받았던 날 강민재가 내 눈치를 봤던 것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를, 내 앞에서만 말하기 싫은 티를 풀풀 낸 것이 미안한 모양이다.
“뭐, 어쨌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나야, 계속 천사의 집을 파 볼 생각인데.”
“계획은 많죠. 아직 시작도 못 했습니다.”
나는 문득 정면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사건의 시발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