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7)
너희들은 변호됐다-167화(167/641)
조금은 술이 깬 것 같은 강민재를 데리고 다시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서류를 읽으며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형사 한 명이, 나에게 문득 말을 걸어왔다.
“차 검사님? 아니, 이제 변호사님이시죠? 이야, 변호사님을 여기서 뵙네요.”
“아, 박 형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아, 예. 그럼요. 되게 오랜만이네요. 3년 만이죠?”
“그렇네요.”
강남서는 중앙지검 관할이라, 그와는 꽤 안면이 있었다.
“변호사님 소식 뉴스로 잘 보고 있있습니다. 대단하시던데요.”
“별말씀을요.”
“그런데 이쪽은……? 아, 이쪽 분도 변호사님이시죠? 뉴스에서 같이 본 것 같네요. 그 최근에 고윤성 재판 끝내시고 법원에서 같이 나오셨던 변호사님이시죠?”
박 형사는 내 옆에 멀뚱히 서 있던 강민재를 보며 아는 체했다.
강민재는 얼굴을 붉히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강민재 변호사입니다. 명함이라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지갑이…….”
강민재가 가죽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주절거리자, 박 형사는 금세 그가 취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취한 사람과 변호사가 이 새벽에 경찰서에 있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겠다는 듯 미묘하게 웃었다.
“싸움 나셨구나.”
“……그렇게 됐습니다.”
“아까 안쪽에 시비 붙어서 들어온 대학생들 무리 있던데. 혹시 걔들하고 문제 있으신 건 아니죠……?”
그는 물으면서도 ‘설마 아니겠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민재는 대단히 부끄러운 듯 내 뒤로 숨었고,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그래도 방금 보니까 조용해졌던데요.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랜만에 됐으니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지금 어딜 좀 가던 길이라서요.”
“네. 고생이 많으시네요. 다음에 기희가 되면 또 뵙겠습니다.”
박 형사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급히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강민재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나를 향해 허리를 푹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저 창피하시죠…….”
그는 조그만 목소리로 사과했다.
하치만 나에게는 새삼스럽기만 했다.
그가 나를 창피하게 만든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그의 할아버지 앞에서 나에게 전복과 장어가 담긴 접시를 몰아주었을 때가 가장 그랬다.
이 정도는 창피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됐으니까 얼른 마무리 짓고 가자. 내일 주말인데 편히 쉬어야지.”
“……네.”
박 형사의 말대로, 다시 그들에게 돌아갔을 땐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널브러져 있던 일행들도 그새 술이 깼는지 똑바로 앉아 있었다.
그것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던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피곤에 절어 있던 경찰관의 안색 역시 밝아진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된 게 아닐까 싶다.
바깥에 30분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상황이 해결된 것은 왜일까.
딱히 경찰관이 나섰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왔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이 우리를 향해 턱짓했다.
“저 사람들이야.”
일행 중 한 명이, 누군가에게 우리를 설명하듯 말했다.
정수기에 가려져 지금 이 각도에서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있다.
“어?”
그쪽이 벌떡 일어나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름 아닌 김찬영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흡연구역에서. 맞죠?”
그는 호감이 가는 미소를 띤 채 나에게 다가왔다.
“저는 얘네 친구예요. 클럽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경찰서에 왔다고 해서 이쪽으로 왔거든요.”
“그렇군요.”
“혹시 제 친구들하고 마찰이 있으셨던 분이…….”
김찬영은 나와 강민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나는 이 친구 변호사고, 이 친구가 당사자입니다.”
“아, 변호사를 부르신 거면……. 혹시 법적 조치하실 의향이 있으신 건가요?”
김찬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강민재를 넘겨다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이야기만 잘된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난 보호자로 온 거라. 지금 서로가 잘못했다고 하는 상황 아닙니까. 말만 잘 맞으면 길게 끌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서로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나는 상대 일행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강민재와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거리던 그들은, 순식간에 목줄 찬 개처럼 얌전해져 있었다.
“얘기 들어 보니까 제 친구들이 먼저 실수한 것 같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도 테이블 잡으려고 했는데, 풀이라고 해서 그냥 갔거든요. 근데 이쪽 분이…….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할까요?”
“강민재 변호사예요.”
“아, 변호사님이셨어요? 자꾸 얘네가 변호사, 변호사 하길래 무슨 이야긴가 했더니 직업이 변호사셨구나. 변호사님이셨으면 더 싸우고 싶지 않으셨을 텐데, 제 친구들 잘못이네요, 아무리 봐도.”
“아니, 저 사람도 우리한테 닥치고 꺼지라고 했다니까…….”
김찬영 뒤에 있던 당사자가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하지만 김찬영은 웃으며 그를 돌아봤았다.
“네가 먼저 시비를 거니까 화가 나서 그러신 거겠지. 네가 먼저 잘못한 거 맞잖아. 그럼 그냥 죄송하다고만 해. 계속 꿍얼거리지 말고.”
표정과는 달리 싸늘한 말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희가 테이블을 못 잡았는데 변호사님이 혼자 큰 테이블을 잡았다고 하니까 얘네가 빈정이 상했던 모양이에요. 애들이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찬영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성진. 너도 얼른 사과드려.”
김찬영은 뒤에 앉아 있던, 강민재를 때렸던 당사자를 향해 눈짓했다.
친구 사이에서 딱히 무례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묘한 서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파악한 김찬영이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 삶에서, 김찬영은 고상준을 파면서 알게 된 인물일 뿐 나와 직접 연관된 적은 없었다.
조사에 따르던, 그는 자력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물론 아버지가 고상준인 만큼, 그의 원조를 받아 부유하게 살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상준 본처의 자식들과 교류도 전혀 없었고, 우신에 몸담은 적도 없었다.
처음 김찬영이라는 존재를 인식했을 때, 그가 고상준의 혼외자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 김찬영이 나에게 인상 깊게 남은 까닭은 한 가지였다.
고상준과 그 일가족에 대한 비리문건 중 하나의 출처가, 바로 김찬영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이성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니에요. 나도 미안합니다.”
강민재 역시 까딱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김찬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대충 저희 합의된 것 같은데, 이제 가 봐도 되나요?”
“조서만 쓰면 가도 됩니다. 그런데 합의 보셨다고 해도 집에 뭐 날아가긴 할 거예요.”
“괜찮아요.”
이성진이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강민재는 하나도 괜찮지 않아 보였다.
보통 이런 서류는 등본상의 주소로 발송되기 마련인데, 그의 등본상 주소는 강관웅의 자택일 테니까.
할아버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강 실장이 아닌 나를 불렀다는데, 유감이다.
“회사로 받으면 안 될까요?”
“네. 등록된 주소지로 가는 거라.”
경찰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한창 부모님 눈치를 볼 20대 학생인 이성진보다 그는 더 전전긍긍했다.
“……하, 망했다.”
강민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강민재 씨 먼저 할까요. 두 분 다 서로 때리신 거니까 서로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겁니다. 조서에는 피가해자라고 나올 거예요. 강민재 씨, 주민번호요.”
강민재는 우울한 표정으로 주민번호를 불렀다.
“현재 직업은요?”
“변호사입니다…….”
강민재의 차례가 끝나고, 이성진이 조서 작성에 임했다.
그는 명운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으로, 김찬영과 일행 모두가 대학 동기인 것 같았다.
“잘 합의 봐서 다행이네요. 앞으로는 술 먹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좀 참고 그래요. 학생도, 아무리 화가 나도 어른을 때리면 쓰나.”
경찰이 핀잔을 주자, 김찬영이 이성진의 어깨를 툭특 쳤다.
“변호사님, 죄송합니다.”
이성진은 다시 강민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고, 강민재는 어색하게 거듭된 사과를 받았다.
막무가내로 버릇없이 굴던 그들이 갑자기 순한 양처럼 변하니, 강민재는 어색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어느덧 시간이 지나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나는 자신의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찬영을 가만히 주시했다.
그는 아버지인 고상준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김찬영이 아버지인 고상준과 그 자식들에 대한 비리 문건이 자연스럽게 발견되도록 만들었던 것 역시, 그 반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혼외자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본처 자식들에게도 이어졌으니까.
성 역시, 아버지의 것을 쓰지 못해 어머니의 성을 따르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고상준이라는 것을 숨긴 채로, 호형호제하지 못하고 숨어 사는 삶은 참담했을 터.
하지만 의외로 고상준은 김찬영에게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윤성 같은 망나니도 자식이라고 품는 의외의 부성애를 생각하면, 김찬영을 향한 애정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김찬영에게 일부 주식을 증여한 것도 모자라, 그의 외가 친척 일부를 계열사에 꽂아 주기도 했다.
김찬영 본인은 고상준을 싫어하는데, 고상준은 김찬영을 아끼는 상황.
그리고 아버지의 구속을 바라며 이중 삼중으로 처리해서 출처를 감추고 슬쩍 비리 문건을 흘린 김찬영의 철두철미함까지.
여러모로 나의 계획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김찬영은 내가 이번 삶을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 안에 이미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아직 대학생인 그의 나이를 고려하여, 더 나중에 접촉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우연찮은 기회가 생겼다면 일러도 나쁠 것은 없다.
“아, 저희 해장하러 이 앞에 감자탕집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그때, 김찬영이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 우리는 괜찮,”
“마침 잘됐네요. 이 친구도 해장해야 하는데.”
나는 강민재의 말을 자르고 대꾸했다.
평소 같았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했을 테지만, 상대가 김찬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강민재는 웬일이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강 변이랑 시비 붙었던 애들인데, 혹시 모르잖아. 밥 사 주고 돌려보내면 그나마 뒤탈 없을 것 같아서.”
김찬영에 대해 길게 설명할 수 없어서, 나는 대충 둘러대었다.
나쁘지 않은 구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님, 절 그렇게나 생각해 주시고……. 진짜 번번이 감동입니다, 오늘.”
그가 이런 일로도 감동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