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69)
너희들은 변호됐다-169화(169/641)
“변호사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는 나를 보며, 김찬영과 그 일행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뽐빠이 해도 되는데.”
“학생하고 무슨 뿜빠이야. 그냥 잘 먹었습니다, 해.”
계산은 내가 하는데 강민재가 생색을 냈다.
“이럴 때 보면 꼰대 같다니까요.”
이성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강민재가 인상을 구겼다.
“야, 꼰대라고 하지 마라. 너희한테 형이라고 불릴 정도는 되거든?”
아직 늙은이 취급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겠지만, 40대였던 내가 대학생들에게 형 소리 듣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변호사님들은 어떻게 가세요?”
“변호사님은 차 가져오셨고, 나는 택시 타고 가려고.”
음식점에서 나와 슬슬 흩어지는 분위기가 되었다.
저마다 택시를 잡으려고 큰길 앞으로 나와 팔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사이, 가만히 있던 김찬영이 슬쩍 나에게 다가왔다.
“변호사님, 혹시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내 연락처?”
“네. 혹시 모르잖아요. 저도 법적으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변호사님 찾아가려고요. 하하.”
김찬영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나로서는 이득이었다.
어차피 김찬영과는 인연을 맺어 둘 생각이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연락처를 물어봐 준다면 내가 궁색한 명분을 만들 필요는 없을 테니까.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아, 저 혹시 그리고……. 그 아까 얘기 나눈 명화제약 말인데요.”
명함을 바라보던 김찬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강민재는 하나둘씩 택시를 타기 시작하는 그의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게 왜?”
“만약에 변호사님 말씀대로 문제가 있는 거면, 진짜 매도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저야 그냥 용돈 조금 모아서 조금씩 투자하는 거긴한데, 그래도 손해 보고 싶진 않아서.”
[거짓]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용돈 조금 모아서 하는 수준이 아니라, 고상준이 직접 상당한 양의 주식을 그에게 넘긴 것이다.
명화제약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싶겠지.
지금의 김찬영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2018년의 그처럼, 아버지를 몰락시킬 증거를 공개할 정도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런데?”
“변호사님이 어디서 들으신 게 있는 거면, 혹시 출처를 여쭤봐도 될까 해서요.”
김찬영은 아까 볶음밥이 다 됐다는 말에 급하게 들어가느라 물어보지 못했다며 머쓱하게 덧붙였다.
“글쎄, 이런 거 알려 주면 안 되는데.”
“아, 어떻게 안 될까요?”
“확실한 정보인지 확인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요? 그럼 혹시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진짜 어릴 때부터 모은 세뱃돈 털어서 산 첫 주식이라 잃고 싶지 않거든요.”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그저 평범한 개미 투자자임을 어필하듯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모은 세뱃돈을 다 털어서 이제 막 상장한 바이오주를 샀다?
누가 믿을까 싶긴 하지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휴대폰을 내밀었고, 그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어 주었다.
“확인하시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세요?”
“잘 모르겠네, 일단 알아보기는 할 텐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진짜 감사해요.”
김찬영은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거듭 인사했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꼭 연락 주세요!”
그는 택시에 몸을 실으며 다시 한번 나를 향해 인사했다.
그렇게 모두 간 다음에야, 강민재가 자신이 타고 갈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택시를 함께 기다려 주겠다고 했더니, 강민재가 또다시 예의 그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또 이런 일로 연락하기만 해. 바로 강 실장한테 연락할 테니까.”
“아, 제발 변호사님. 진짜.”
“그게 싫으면 강 변이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 되잖아.”
“하……. 솔직히 할아버지가 변호사님 도와주셨으니까 변호사님이 저희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 건 불만 없는데요. 진짜 지금은 후회가 되네요.”
“택시 왔어. 얼른 가.”
나는 그의 앞에 선 모범택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월요일에 봬요.”
“그래.”
“오늘 진짜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아.”
“알면 얼른 들어가.”
“넵.”
명화제약이 안트로졸 알파를 출시하는 것은 올해 하반기.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 확인해 보니 안트로졸 알파에 대한 허가는 이미 난 상태였다.
허가 정보도 공개되었고, 명화제약에서 이제 제조 단계에 들어선다고 보도 자료를 돌린 것도 확인했다.
이번 일은 어떻게 스타트를 끊어볼까.
* * *
“주한아! 여기야!”
오늘도 성업 중인 대박집에 오랜만에 왔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나서, 생각보다 시간이 나지 않아 동진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전에는 분기에 한 번씩은 봤던 것 같은데, 작년에는 얼굴 한 번 보고 가끔 전화한 게 전부였다.
얼마 전 서혜진 간호사와 한영선 간호사의 이직 건으로 도움을 받았으니, 시간을 내서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오늘은 네가 사는 거냐?”
“당연하지.”
“아, 역시 그럴 줄 알고 아침부터 굶었다. 하하. 근데 오늘 술은 못 먹을 것 같아.”
“왜, 또 이따가 들어가 봐야 해?”
“엉. 빽 없는 내가 조교수 달려면 몸빵 해야지.”
“고생이 많다.”
나는 고기를 굽던 그의 손에서 집게를 빼앗아 들었다.
“내가 구울 테니까 넌 먹기나 해.”
“야, 됐어. 너 고기 드럽게 못 굽잖아.”
……다시 뺏기긴 했지만 말이다.
“어머님, 아버님은 잘 계시지?”
“그럼. 너희 부모님은? 제수씨랑 애들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네.”
“잘 계시지, 당연히. 얼마 전에 와이프랑 같이 태국도 다녀오셨어.”
“제수씨만 간 거야?”
“와이프랑 애들이랑, 우리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님, 이렇게 간 거지. 나는 갑자기 수술이 생겨서 못 갔고.”
나도 바쁘게 살지만, 동진은 나와 비교할 바도 되지 못했다.
나야 큰 사건 끝나면 자잘한 사건들 맡으면서 편히 지낼 수 있고, 그조차도 되지 못하면 잠시 수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사정이 다르지 않은가.
특히나 조교수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문득 이전 삶에서의 그가 생각나서 나는 쓰게 웃었다.
“병원 일은 좀 어때. 그때 말한 그 원장 아들, 지금도 짜증 나게 굴어?”
“야, 말도 마라. 진짜 미친놈이라니까. 누가 보면 그 자식이 내 선배인줄 알겠어. 동기면서.”
“또 뭐 때문에 그러는데?”
“얼마 전에 그 네가 소개해 준 간호사들 있잖냐. 그분들 들어오고 나서 우리 병원이 모처럼 평가에서 우신 병원 이긴 거 알지?”
“알지.”
“그것 때문에 원장하고 과장이 날 좀 좋게 봐주거든. 생각해 보니까 네 덕분이네. 야, 오늘 밥은 내가 사야겠다.”
동진이 내 앞 불판으로 익은 고기들을 밀어 주며 말했다.
“됐어. 그래서, 그게 왜.”
“과장이 자기가 맡던 VIP 하나를 나한테 소개해 준 거야.”
“VIP?”
“응. 한영그룹 셋째. 엄청난 VIP지. 거기도 우리 명대 병원처럼 늘 우신에 밀려서 만년 2등이잖냐. 그래서 뭔가 연대 의식 같은 게 있어, 우리랑. 흐흐.”
한영그룹은 우리나라 재계 서열 2위의 대기업이다.
VIP를 맡게 되었다는 것은, 동진에게 꽤 좋은 일이다.
병원 생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동진에게 들으니 밀어주는 펠로우들에게 주로 그런 유력 인사들을 소개해 준다고 하던데.
“잘됐네.”
“잘됐는데, 그러고 나니까 원장 아들이 더 견제해. 아, 에이스라 견제 받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참아야지. 으휴.”
동진은 킹콩처럼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하더니, 고기가 탄다며 계속 내 앞으로 고기를 밀어 주기 시작했다.
“너나 든든히 먹어라, 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마른 것 같은데.”
“아이고, 차 변호사님. 저는 잘 챙겨 먹네요. 난 홍삼도 먹어. 네가 걱정이다, 인마. 혼자 살면서 밥 제대로 챙겨 먹긴 하냐?”
“너도 장가가란 소리 하려고 그러냐. 혼자도 안 먹는 사람이 장가 간다고 많이 먹겠어?”
“내가 참한 아가씨 하나 알아봐 줘? 대체 너 같은 스펙으로 왜 여태 장가를 못 가는 거냐. 너 결혼 정보 회사 이런 데 등록하면 100점일 거다. 시간 날 때 상담이나 받아 봐.”
“결혼 얘기 할 거면 간다.”
30대 중반 남자들이 저녁에 고깃집에서 모였는데, 소주 한 병 없이 식사가 끝났다.
동진을 병원까지 태워다 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종현이었다.
“네, 차주한입니다.”
-차 변, 뭐 하고 있어요?
“집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혹시 주변에 개발자 아는 사람 있는지 물어보려고.
“개발자요?”
-어, 작은 사이트 좀 만들어 볼까 하는데 어디에 맡겨야 할지 잘 모르겠네.
“기자님 아는 사람 많지 않습니까?”
-많은데, 그중에 개발자 한 명이 없네. 사이트 만든다니까 다 콧방귀나 뀌더라고,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다들 뒤떨어져.
“사이트라면, 인터넷 언론 같은 거 만드시려고요?”
그는 이전 삶에서, 실제로 인터넷 언론사를 만들어 운영했었다.
최종현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만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최종현이 옳았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만 들어가는 사이트였지만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려, 각종 SNS와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통해 크게 유명세를 떨쳤다.
-차 변 진짜 신내림 받은 것 같다니까?
최종현은 일중일보에서 퇴사한 후, 다른 언론사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프리랜서처럼 일하고 있었다.
가끔 칼럼도 쓰고, 소규모 잡지에 기고도 하면서 조사를 이어 나가고 있는 듯했다.
아직은 생각이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인터넷 언론 만들 생각을 했다니 꽤 반가운 소리다.
“기자님이 개발자 찾을 일이 그거 말고 더 있습니까.”
-그래서, 아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소개해 드릴 사람.”
-이야, 잘됐네. 개발비 많이 들려나?
“제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차 변이?
“네. 이왕이면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저기 인터넷 광고 넣으면 사람들도 꽤 모일 것 같고. 게스트는 알아서 섭외하셔야겠지만, 어차피 아는 사람 많으시잖아요.”
-그거 좋은데요? 아, 요즘에 무슨 인터넷 방송 송출하는 사이트도 있던데. 그런 걸 활용해 봐도 될 것 같은데?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최종현과 함께 그가 만들 인터넷 언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생각해 놓은 게 많은 듯,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여럿 늘어놓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조금 있었지만, 그건 차차 조율하면 될 것이고.
-타깃층을 우리 세대 사람들로 잡아서 본격적으로 우신 까는 방송으로 만드는 거지, 방송 이름도, 방송구 놈들이 안 해 주니까 직접 만든 방송. 이런 식으로 좀 유머러스하게 잡고.
“좀 길긴 하지만, 줄여 부르면 되겠네요.”
-아, 그리고 말이야. 우리 세대 사람들이 제일 좋아할 만한 게 뭔가 생각해 봤더니, 역시 재테크 아니겠어? 나 아는 사람 중에 주식 쪽 빠꾸미 하나 있거든? 꽤 알아주는 전문가야. 직장 생활하면서 단타 치다가, 지금은 주식만 하는데. 이 사람한테서 나오는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까지 있다니까? 이 사람한테 한동안 고정 게스트 좀 해 달라고 해서, 주식 얘기로 싸악 시작하는 거야. 이 사람도 우신 진짜 싫어하거든. 나랑 성향도 잘 맞아. 어때.
“좋습니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는 없습니까?”
-있지, 차 변, 당신 있잖아.
“저요?”
-황무지 같았던 경기도 북부에, 신도시가 들어설 걸 미리 알고 땅을 잔뜩 사서 시세 차익만 30억이나 본 차 변 말고 내 주변에 전문가가 어디 있어? 뉴스에서도 광고 대대로 때려 줬는데, 차 변이 나와 줘야지.
“……전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고 했잖습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한 번 나와줘.
“일단 개발부터 마치고 다시 얘기 하시죠.”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주차장이었다.
시동을 끄고 이만 전화를 끊으려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기자님.”
-엉?
“아까 아는 분 중에 주식 쪽 전문가분 있다고 하셨죠?”
-그랬죠?
“저 소개 좀 해 주십시오.”
-아, 이거 왜 이러시나. 주식 쪽으로는 차 변도 일가견 있잖아. 뭘 또 욕심내려고 해요?
“그런 목적이 아니라, 우신 관련해서 작업 하나 해 보려고요.”
-작업? 무슨 작업? 무슨 재미있는 애기를 하려고 그래. 우리 보살님, 또 장군님한테 계시 받은 거야?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에, 나는 웃음을 흘렸다.
“재밌을 겁니다. 내일 시간 되십니까? 긴히 할 얘기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