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72)
너희들은 변호됐다-172화(172/641)
국정원은 냉장고에서 박카스 네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슬쩍 눈치를 보다가, 한편에 놓인 물티슈를 뽑아 테이블 위를 박박 닦기 시작했다.
검은 먼지가 잔뜩 묻어났다.
조봉준의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아니, 미리 말씀을 좀 하고 오셨으면 치워 놓기라도 했을 텐데 이거 참.”
그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 친구 이름이 국정원이라고요?”
국정원의 행동을 샅샅이 할 듯이 지켜보던 최종현이 입을 열었다.
“이름이 국정원인 건 아니고요, 그냥 다들 그렇게 불러서 저도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하.”
“별명이 국정원인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국정원처럼 뭘 엄청 잘 알아봐서? 혹시 여기 흥신소인가?”
최종현은 노래 주점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폐업한 지 3년 정도 지난 노래방처럼 생긴 이곳이 흥신소일 리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 흥신소는 변호사님이 아시는데 있을 건데? 그건 아니고요. 저는 그냥 컴퓨터 관련 전문간데……. 아까 변호사님이 저 보고 댓글 알바 쪽 전문가라고 하신 거 보면, 댓글 알바 필요하신 것 같은데. 맞아요?”
국정원의 물음에 조봉준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컴퓨터를 잘 다뤄서 별명이 국정원인가 보구만. 근데 그쪽 전문가가 댓글 알바도 해요?”
조봉준은 여전히 의심의 끈을 놓지않았다.
그러자 국정원이 얼른 자신을 그에게 소개해 달라는 듯 나를 향해 눈짓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 별명이 국정원인 이유는 컴퓨터를 잘 다뤄서가 아닙니다.”
“그럼?”
“정말 국정원 출신이거든요.”
두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리며 국정원을 바라보았다.
“정말 저 친구가 국정원 출신이라고요?”
“아, 아니. 수염 난 형님. 제 어디가 어때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국정원은 조봉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러자 조봉준은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리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나는 그냥……. 국정원 직원 하면 딱 양복 입고. 어? 그런 걸 생각했으니까 그랬지. 근데 국정원씩이나 들어갔으면 잘 다닐 것이지 왜 나왔어요?”
그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국정원은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이마를 짚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 긴 이야기가 되겠군요.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전 노량진에서 3년 동안 나 죽었소 하고 뒤지게 공부해서 국정원 시험에 붙었죠. 그땐 정말 기뻤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하, 내가 국정원 직원이 되다니. 멋지잖아요? 전 첩보 요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역군이 될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허공 한 지점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입사하고는 열심히 트레이닝을 받았죠. 격투기는 물론이고 사격도 배웠고요. 암호학과 컴퓨터까지, 아아, 정말로 저는 당장 현장에 투입되어도 조금의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저에게 기회가 왔죠.”
“……그래서요?”
어느덧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 최종현과 조봉준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귀를 기울였다.
국정원의 어조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듯 긴급해지고, 또한 낮아졌다.
긴장감이 한 층 더 올라갔다.
최종현은 마른침을 삼킬 정도였다.
“드디어 저와 동료들에게 현장에 투입될 거라며 팀장님이 슬쩍, 주소 하나를 적어 주셨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곳으로 가면, 너희들과 함께 일할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저희는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거긴 어느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저희는 전부 컴퓨터 쪽이 주특기였기 때문에, 어쩌면 북한과 컴퓨터로 사이버 전쟁을 치르러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죠! 그 긴장을 안고 오피스텔로 들어갔는데!”
“들어갔는데!”
“댓글 알바를 시키더라고요, 씨발!”
국정원은 빈 박카스 병을 쓰레기통을 향해 집어 던지며 울부짖었다.
“내가 댓글이나 달려고 국정원에 들어간 건 아니었는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두 사람은 국정원의 감정에 동화되어 울분을 터트렸다.
“씨발, 정말 너무하네!”
“그러게 말이야. 너무하네!”
“저는 너무나도 열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댓글만 3개월 동안 달다가 결국 팀장님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까지 댓글만 달아야 하는 건가요! 그러자 팀장님이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 라고……. 씨발, 초딩 같은 댓글만 다는 게 무슨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입니까. 저 같은 고급 인력을 그런 하찮은 일에 낭비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때려치우기로 결심했죠! 저는 장렬하게 사표를 던지고, 이렇게 컴퓨터 전문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고생했네, 고생했어.”
“정말 고생 많았구만, 이 친구. 그래서 이렇게 씹다 버린 멸치처럼 삐짝 말라 버린 거구만.”
“……원래 말랐었는데요?”
잠깐 분위기가 싸해지긴 했지만, 최종현은 왜 내가 그를 댓글 알바 쪽으로는 전문가라고 했는지 납득한 듯했다.
그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사람을 잘 골랐다며 나를 칭찬해 주기까지 했다.
“어쨌든, 댓글 알바 쪽으로는 뭐, 아픔이 있긴 하지만 이젠 국정원 소속도 아니니 돈 벌려면 뭐든 해야죠. 그래서, 무슨 댓글을 달아 드리면 되는 겁니까?”
“흠, 댓글을 그럼 이 친구 혼자 달고 다니는 건가? 뭐, 국정원 출신이니까 일당백일 것 같긴 하지만…….”
드디어 현실로 돌아온 조봉준이 여전히 미심쩍은 눈치로 물었다.
그러자 국정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고요. 팀이 있습니다. 보안 유지는 당연히 장담 드리고요. 한 열댓 명 되는데, 하루 종일 노트북 잡고 댓글 달아 드립니다. 대신, 사람이 많은 만큼 단가가 좀 있다는 건 알아 두셔야 하고요.”
그렇게 말하며, 국정원은 끈질기게 나를 주시했다.
그것은 최종현과 조봉준도 마찬가지였다.
쩐주인 내가 승낙해야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는 듯, 강렬하게 나를 향해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
“일만 확실하게 해 주면 돈은 문제 될 것 없지.”
“쨔스! 그건 당연하죠. 저한테 일맡겨서 제대로 안 된 거 있었습니까. 흐흐.”
“일단 이쪽은 조봉준 씨가 맡으시는 걸로 하시죠. 저나 기자님은 그쪽 생리에 빠삭한 건 아니니까. 작전 설명도 조봉준 씨가 직접 하시는 걸로 하고.”
“좋습니다. 어차피 작전 수립에도 시간이 필요하실 수 있으니까, 일단 저희가 주로 활동해야 하는 사이트들을 알려 주시죠. 그 사이트들의 성향을 분석할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요. 저항 없이.”
국정원이 매끄럽게 설명하자, 조봉준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필요한 정보들 먼저 목록 주면, 내가 집에 가서 바로 쏠게. 명함 있어요?”
* * *
그로부터 보름 뒤, 의학 신문에 기사가 올라왔다.
[명화제약 야심작 안트로졸 알파…심혈관계 질환 가능성 3배 높여]기사를 쓴 사람은 최종현이 일전에 대충 프로필을 공유해 주었던 의학전문 기자로,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도 가지고 있다.
병원 생활에 지쳐 평소 관심 있는 언론 분야 일을 건드리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쪽에서는 꽤 신망을 얻고 있는 듯하다.
기사의 내용은 이미 우리가 공유했던 대로였다.
안트로졸 알파의 주성분인 아필라타일렌과 로페타민이 함께 만나면 심장 질환 발생 확률을 3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식약청은 무슨 생각으로 이 약을 허가했으며, 명화제약 역시 어떻게 이런 약을 개발할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의학 전문 기자는 이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기사를 냈을 뿐, 우리의 ‘작당 모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최종현은 이 내용을 처음 터트리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그 기자를 골랐고, 그에게 안트로졸 알파의 공개된 성분과 독일의 연구 결과를 제보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올라오고 얼마지나지 않아, 다른 의학지에서도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기사에 반응한 것은 역시, 온갖 주식 커뮤니티였다.
물론, 반쯤은 댓글 알바들의 발 빠른 행동력 때문일 테지만.
[명화제약이 바이오주의 희망이라는 ㅂㅅ 보아라 (글쓴이 : 주식만이살길이다)http://www.medinews.co.kr/pencil/bkl0925 이 기사 보셈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명화제약 좆ㅋ망ㅋ했다는 거ㅋㅋㅋㅋ 안트로졸 알파 생산 시작하기도 전에 비상 걸림ㅋㅋㅋ 바이오주 살거면 그냥 닥치고 안승바이오에 걸어라ㅋㅋㅋ
또 어디서 듣보한테 이상한 소리 듣고 와서 안승바이오 훌리 짓한다고 할까 봐 링크까지 준다
유명한 의학전문기자가 낸 기사임ㅇㅇ
ㄴ이새끼 유명한 안승바이오 훌리인 무시하셈
ㄴ내 전글 검색해봐라 바이오주에 대해 정리한 글 있음ㅋㅋ 바이오 주 환상에 미친놈들은 안승바이오 사라고 한거지 다른 데로 시야 넓히면 살거 많음ㅋㅋ 이새기들은 좋은 정보를 줘도 훌리래ㅋㅋㅋㅋ 그러니까 니 주식이 맨날 종잇조각행인거임ㅅㄱ
ㄴ이거 진짜같음 하루종일 주식 오르내리는 것만 보는 우리 과장도 저 기사 보더니 명화제약에서 발 뺐다ㅋ 얘들아 장 마감까지 20분 남았다 빨리 팔아ㅋㅋ
ㄴ지금 명화제약에 탑승하는 새끼 지금 금산 주식 사는 놈이랑 똑같음ㅋㅋ
ㄴ명화제약 대박날까봐 견제하는 거 봐라ㅉㅉ 안승바이오 직원이냐? 그럴 시간에 연구에나 집중해라ㅋㅋ]
명화제약은 아직도 갖고 있을 만하다, 빨리 팔아라, 온갖 주식 사이트들은 명화제약을 화제로 시끌시끌해졌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이야기가 올라오는 게시판임에도, 한 페이지의 절반이 명화제약 이야기로 도배되는 수준이었다.
[명화제약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아서 한 마디 한다 (글쓴이 : 아폴론)오랜만에 사이트 들어왔더니 명화제약 얘기로 핫하네.ㅋ
일단 내 얘기부터 하자면, 나는 명화제약 주식 갖고 있던 거 전부 처분했다.
물론 견제하기 위해서 일부러 안티바이럴 기사 낸다는 얘기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기사 내용 사실 확인해 보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의료 계통 지인한테도 보여 줬더니 안 그래도 지금 그 바닥 많이 술렁인다고 하더라.
큰손들도 조금씩 명화제약 손 턴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 다 떠나서, 저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거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사실 너희 같은 개미들한테 가장 중요한 건 원금을 잃지 않는 거 아니냐?
일단 이렇게 정보 풀린 시점에선 당연히 주가가 하락세를 탈 수밖에 없다.
만일 안트로졸 알파가 문제 없이 출시된다면 주식이 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를 늘 생각해야 한다.
투자할 만한 기업은 세상에 많다.
괜히 명화제약에 매달렸다가 돈 잃지 말고 지금이라도 매도 타이밍 잡는 게 현명한 거라고 생각한다.
뭐 이렇게 말해 줘도 아닌 놈들은 끝까지 말 안 듣겠지만, 나중에 돈 잃고 엉엉대는 글 싸는 놈 있으면 죽인다.ㅋㅋ
글 쓰고 한 번 더 확인했더니 명화계약 그새 만원 떨어졌네.ㅋㅋ
ㄴ오 폴론 형님 오셨다
ㄴ폴론 형님 저 명화제약 100만원 어치만 남겨 놓고 팔려고 하는데 이 정도도 별로인가여? 100만 원은 잃어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혹시나 대박 칠 거 생각해서 냅두려고 하는데ㅠㅠ
ㄴㅂㅅ아 아폴론 형님이 팔라면 파는 거 다ㅋㅋㅋ
ㄴ아폴론이 명화제약 버리라고 하니까 명화제약 훌리들 다 사라졌네ㅋㅋ]
그리고 거기에 조봉준이 가세했다.
아폴론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은 내 생각보다 대단했다.
물론 댓글 알바들이 열심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영향이 있긴 할 테지만, 장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고 명화제약 주식은 전일 종가의 70퍼센트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