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0)
너희들은 변호됐다-180화(180/641)
“……아는 사이예요?”
나와 김찬영이 서로를 알아보자, 최종현과 조봉준이 놀란 듯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흐음, 그러고 보니 명화제약 내부자라고 하기에는 좀 어린 친구 같은데.”
최종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김찬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우리가 생각했던 내부자의 모습과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김찬영은 내부자가 맞다.
아버지인 고상준으로부터 증여받은 명화제약의 주식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명화제약의 지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이전 삶의 지식과 더하여 알게 된 것이지, 김찬영이 알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바로 아는 척을 하는 건 좀 곤란하겠지.
“……설마 장난친 거야?”
조봉준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김찬영이 답하게 할까 하다가, 조봉준 성격에 해명도 듣지 않고 속단할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이 친구가 정말 명화제약 직원이라고? 대학생처럼 보이는데.”
“대학생이긴 하지만, 내부자는 맞습니다.”
나는 김찬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명화제약을 저격한 조봉준을 돕겠다고 먼저 나섰다면, 김찬영은 이때부터 고상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염탐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는 것인데, 그건 아닐 것 같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조봉준과 최종현에게 말했다.
“이 친구랑 잠시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둘이서만?”
“확인할 게 있어서요.”
조봉준은 불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최종현이 조봉준의 팔을 잡으며 한 발 나섰다.
“그렇게 해요.”
“아니, 그래도 둘이 얘기하는 건 좀,”
“원래 알던 사이라잖아. 차 변도 이 친구도 서로 여기서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한 것 같은데. 얘기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
최종현의 마크 덕에, 나는 김찬영을 데리고 스튜디오 안 쪽 사무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바깥으로 창이 나 있진 않아서, 문만 닫고 바로 그를 테이블 맞은편에 앉혔다.
“변호사님을 지금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김찬영은 침착하게 나와 눈을 마주치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일로 조만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
“어느 정도는요. 그리고, 변호사님이 명화제약 소문 제대로 확인하고 연락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저 연락 기다렸는데, 변호사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명화제약 사건은 이렇게나 커지고. 저 좀 서운했어요.”
김찬영이 눈웃음을 살살 치며 말했다.
어쭈.
대학생답지 않은 원숙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주 나를 찜 쪄 먹으려고 하는데.
“그래? 왜?”
“왜냐니요.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저 세뱃돈 털어서 명화제약 주식 산건데, 잃고 싶지 않았다고요.”
[거짓]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맹랑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이전 삶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이 능력이 없었더라면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 너희 아버지 재력이 대단하신 만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모은 세뱃돈이라면 어마어마하겠는데? 꽤 큰돈을 잃었겠어.”
내 대답에 김찬영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변호사님, 저에 대해서 알아보신 거예요?”
“글쎄.”
“……무서운 분이네요. 생각한 것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부터 늘어놓는 너보다는 덜하지.”
김찬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제가 내부자가 맞다고 저분들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대답하기 전에 뭐 하나 묻고 싶은데.”
“말씀하세요.”
“클럽에서 강 변하고 시비 붙었던 거. 공사 친 거니?”
사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조금 우습지 않은가.
우신 그룹을 저격한 대가로 검찰 소환까지 당했던 나와 같은 사무실 변호사가, 우신 그룹 총수의 혼외자의 친구들과 우연히 클럽에서 시비가 붙는다?
아, 물론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치만 그날 보았던 김찬영의 철두철미함을 생각했을 때, 그가 작정하고 나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뭐, 나 역시 우연히 만난 김찬영과 인연을 만들어 놓기 위해 굳이 같이 해장을 하러 가서 명화제약 이야기까지 흘렸으니, 속인 건 피차 마찬가지려나.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신 거예요?”
“전부터.”
“변호사님은 못 속이겠네요.”
김찬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머리 위에는 당연히, 진실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그가 나에게 공사를 친 이유는, 사실 직접 듣지 않아도 뻔했다.
내가 보인 행보를 보고, 인연을 만들어 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으로 날 이용할 생각이었겠지.
이전 삶에서, 삼십 대의 김찬영이 자신의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을 몰락으로 이끌 자료를 자연스럽게 발견되게 만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때도, 우신은 그 문건이 김찬영의 손에서 나왔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담당자를 징계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서 오래 굴렀는데, 이 정도는 알아채야 면이 서지?”
“저에 대해서 아실 만큼 아실 테니까, 길게 설명은 안 드릴게요.”
“어머님도 네가 이런 행동 하는 거 알고 계시니?”
어머니를 언급하자, 김찬영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어머니는 일종의 트리거 같은 것이다.
“……엄마는 모르시죠.”
그는 화를 참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엄마는 제가 아버지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거든요.”
“아버지를 거스르면 아무리 아들인 너라도, 어떻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하하, 정확해요. 음, 어머니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디까지나 저랑, 변호사님의 거래니까요. 당연히 어머니도 모르시고, 앞으로도 모르실 거예요.”
“어차피 드러나는 건 나고, 너는 드러날 일이 없으니까, 어머니한테 들키지 않을 거다?”
“변호사님 앞에선 내숭도 못 떨겠네요.”
“나를 장기말처럼 쓰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내숭을 떨겠다는 거야.”
내가 팔짱을 끼며 말하자, 김찬영은 경찰 앞에 선 도둑처럼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진짜. 저 어디 가서 말로 못 이긴 적 없는데, 절 여러 번 당황하게 하시네요.”
“어린 친구한테 그런 칭찬 듣는 건 처음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하하,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김찬영은 확실히 지능적이다.
이 거래가 성사되면, 나와 김찬영 모두가 이득을 본다.
그는 직접 나서지 않고 아버지와 이복형제들을 옥죌 수 있고, 나는 그를 정보원으로 쓰면서 내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가 나에게 공사를 친 까닭 역시,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일 터.
아무리 내가 그간 우신에게 거슬리는 짓을 해 왔다곤 하지만, 그런 내가 정말로 우신을 저격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여태 내가 맡은 사건을 깊이 고찰했어야 한다.
이 말은, 반대로 나를 깊게 관찰했다면 내가 우신을 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찬영은 자신의 목표를 함께 이뤄나갈 사람을 오랫동안 물색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오래전부터 조용히 나를 관찰하고 있었던 사람이 강관웅 외에 하나 더 있었다니, 이것 참 놀라운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확인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어서. 네가 왜 아버지를 거스르려 하는지는 내가 알아야겠는데.”
“알고 계시잖아요.”
“네 입으로 들어야 의미가 있겠지? 네가 나와 거래라는 걸 하고 싶어한다면 말이야.”
거짓말만 하던 김찬영이 나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또, 내 정보력을 어느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기도 하다.
이것까진 모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어쭙잖게 숨길지, 어떻게 할지.
“고 회장 때문에 어머니는 당신의 꿈을 다 버리고 누군가의 첩으로 살아야 했어요. 누구보다 빛나던 사람이, 한순간에 정실의 눈총을 받으며 숨어 살게 된 거죠.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자식인 저 역시, 고 회장의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원죄를 갖고 태어난 거나 다름없어요.”
김찬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남편이 누구인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걸 선택했죠, 전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 역겨운 인간을 위해 숨어 사는 건, 정말 토 나오는 일이거든요.”
선선히 대답을 마친 김찬영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마치 원망하듯이.
“제 치부를 제 입으로 들으니 속이 시원하세요?”
“너는 성인이지만, 분명히 학생 신분이야. 사회에선 아직 너를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하진 않지. 하지만 나는, 나와 거래하는 사람이 1인분도 못하면 곤란해.”
“…….”
“네가 가진 상처는 유감이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네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는 없다는 뜻이야. 너는 분명히 또래에 비해 똑똑해. 네 주변 사람들은 네가 의도한 대로 움직였겠지?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만만하진 않아.”
김찬영은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침음을 흘리는가 싶더니, 길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제가 변호사님한테 접근한 방식이 무례했다는 뜻이군요.”
“영리하네.”
“그러게요. 변호사님은 확실히 제 주변 사람들하곤 좀 다르네요.”
“그게 나뿐만은 아닐 거야. 네가 정말 나랑 거래라는 걸 하고 싶다면, 네 근거 있는 오만함이 언젠가는 널 곤경에 빠트리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둬야겠지.”
“……그런가요.”
“난 신뢰를 기반으로 일해. 너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고.”
그가 고상준에게 가진 증오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이전 삶의 나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증오가 얼마나 크고 오래 묵은 것인지를.
내가 가진 능력과 배경을 모르는 그는 내가 의외로 쉽게 믿어 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짧은 대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그를 믿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신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나 역시 아직은 확언할 수 없다.
그가 가진 증오가 여전하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것 같으면 잘라 내야 하니까.
애초에 김찬영이 내 계획에 포함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의 깊이는 아니었다.
그러니 나도, 그가 아직 이런 일에 가담하기에는 어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전한 성인의 몫을 해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는 잔인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만은 실패하고 싶지 않다.
“김화영 씨는 고상준의 첩으로 묻혀 살기엔 너무 빛나는 배우였어.”
“…….”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그게 진심이라는 것도.”
김찬영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이 흘러나오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자, 그럼 명화제약 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내가 이번 사건에서 명화제약 내부자를 원했던 것처럼, 우신 그룹을 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우신 그룹의 내부자가 필요하다.
엇나가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김찬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