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1)
너희들은 변호됐다-181화(181/641)
“얘기는 다 했어요?”
안쪽 사무실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봉준은 여전히 김찬영이 못마땅하다는 듯 수비적으로 팔짱을 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친구, 내가 생각한 대로 대학생 맞아?”
조봉준은 김찬영을 패스하고, 대답하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대학생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명화제약 내부자일 수가 있어요?”
최종현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우선 그들이 앉아 있던 회의 테이블에 자리하며 내 옆 의자를 김찬영에게 빼 주었다.
김찬영은 선선히 그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저희 외삼촌이 명화제약 이사예요. 물론, 연구원 신분은 아니긴 하지만 경영진 중 하나고요.”
조봉준은 김찬영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 다시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그 방에서 이 얘기를 하고 나온 참이다.
김찬영은 내부자랍시고 이 일에 나섰지만, 나는 대학생 신분에 지분을 가지고 있을 뿐인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이것이었다.
김찬영의 어머니, 김화영의 남동생이 지금 명화제약 이사진이라고.
그는 누나가 잘 나가는 여배우라, 어린 시절부터 용돈 타 쓰는 것이 버릇이 되어 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이 살았다고 한다.
고상준 역시 그런 사정을 잘 알고있어서, 김화영의 남동생에게 그때 막 상장을 준비하던 명화제약의 이사 자리를 내준 모양이었다.
물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실무를 맡기진 않았고, 그저 명예직 수준에 그치긴 했다.
그래도 임원이니 내부 자료 열람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우습게도, 외삼촌 역시 한창 잘 나가던 배우였던 누나를 첩실 신세로 눌러앉힌 고상준을 증오하는 듯했다.
게다가, 우신 그룹에 굵직한 계열사도 많은데 상장도 되지 않은 명화제약에 꽂아 줬다며 투덜대기도 하고, 또 이렇게 꽂아 준 것도 다 시혜의식 가득한 태도라서 꼴 보기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게 생각하는 부류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카인 김찬영을 꽤 예뻐하는 모양이라, 한심하긴 해도 김찬영에게는 고상준보다 더 아버지 같은 존재인 듯했다.
어쨌든, 김찬영은 외삼촌은 자신에게 갖다 주는 자료가 어디에 쓰일지 모를 것이며, 자신이 달라는 자료는 전부 갖다 줄 것이고, 또한 비밀을 지켜 줄 거라고 말했다.
“흠, 뒤탈은 없으려나?”
“그건 제가 확인했습니다. 없을 겁니다.”
“리스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가 감당할 일이죠. 어쨌든, 아폴론님…… 뭐라고 불러야 하죠?”
“그냥 삼촌라고 해.”
“아저씨라고 할게요. 아저씨랑 기자님, 변호사님은 이 사건 맡는 순간부터 명화제약 입장에선 공공의적이 이미 된 거잖아요. 문제가 생긴다면 내부 자료를 빼돌리는 삼촌이랑, 그걸 부탁한 저한테 생길 겁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감당하면 되는 거고요.”
“얘 좀 봐라. 맹랑한 거 보소. 야, 인마. 근데 왜 나는 아저씨고 이 형은 기자님이야?”
“……직업이 투자 전문가라고 하셨는데, 투자 전문가님이라고 부르긴 좀 그렇잖아요.”
김찬영의 대꾸에, 조봉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참나, 할 말 없게 만드네. 하여간, 차 변이 보증 서는 거죠? 이 친구 믿을 만하다고. 어차피 이 판 전부 차 변이 짠 건데, 차 변이 직접 다 된 밥에 코 빠트릴 리 없으니까 난 그렇게 믿고 갑니다?”
조봉준의 입에서 ‘이 판 전부 차 변이 짠 건데’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김찬영이 나를 홱 돌아보았다.
배신감을 느낀 듯한 표정이었다.
김찬영에게 신뢰를 기반으로 일한다고 해 놓고, 숨긴 꼴이 되었으니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이건 숨긴 게 아니라 굳이 말하지 않은 것이다.
“……와, 이 변호사님 안 되겠네, 진짜.”
김찬영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린 채로 ‘와, 와’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이 판을 짠 게 나라는 사실은 어차피 김찬영도 알게 될 일이었으니 상관은 없지만, 조봉준은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필요하신 서류 뭐뭐 있는지 알려주세요. 내일 바로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없으면 못 드리겠지만,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명화제약이 미국 연구 기관에 임상 기록 조작 의혹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증빙할 수 있는 자료, 그리고 이준성이 미국 연구 기관에 갈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있으면 좋겠고. 제일 중요한 건데, 미국에 의뢰한 연구에 신뢰도가 낮다는 분석 자료가 있으면 가장 좋지.”
최종현이 줄줄이 읊는 말을 메모한 김찬영은, 펜을 내려놓으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일단 말씀하신 가장 마지막 거, 그건 저도 이미 삼촌한테 확인해 달라고 말해 뒀었어요. 하지만 그게 없었다고 하신 거 보면, 정말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삼촌이 열람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조작 의혹 보고된 거랑, 이준성 연구원. 그 두 가지는 바로 확인 부탁드릴게요.”
“든든하네.”
최종현이 미소짓자, 김찬영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슬쩍 숙여 보였다.
김찬영이 감추고 있는 그의 실체는 그리 성격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이 이상 싹싹할 수 없다.
강민재의 속이 시커메지면 김찬영 같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안트로졸 연구 보고서도 받아 올게요. 거기서 뭔가 나을 수도 있잖아요.”
“캬, 똘똘해. 좋지. 대외 보고 자료랑 내부 자료랑 분명히 다를 테니까”
“네.”
“언제까지 되겠어?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조봉준에게 날아온 출석 요구서에 적힌 장소는 경찰서가 아니라 검찰이었다.
검찰에 직접 고발했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핫라인을 통해 빠르게 절차를 넘긴 것 같았다.
즉, 우리는 바로 검사와 맞닥뜨려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 출석까지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게 남은 건 아니라서.”
“아, 검찰 출석. 저 기다리고 있어요. 후기 방송.”
자료가 검찰 출석 이후에 도착하더라도 따로 증거를 첨부하면 되긴 하다.
하지만 되도록 출석날까지 확보하는 게 좋다.
바로 검찰로 넘어갔으니 만일 기소가 된다면 약식 기소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재판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다.
재판으로 넘어가면 몇 년 동안 이것만 붙잡고 있어야 한다.
국민적 관심이 이어져야 하는 사건에선 스피드가 생명인데, 그래서야 곤란하지 않은가.
절차에 뺏기는 시간을 줄이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계속 새로운 떡밥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단순 허위 사실 유포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방해죄까지 세트로 간다.
출석 요구서에 업무 방해죄에 대한 서술은 없었지만 말이다.
뭐, 그 이유는 역시 추측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아무리 검찰에 핫라인이 있다고 해도, 처음 접수한 뒤 고소인 진술까지는 아무리 짧아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시기를 따져 봤을 때, 처음 명화제약이 조봉준에게 허위 사실 유포로 고발했을 때는 뉴스나우에 출연하기 이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즈음, 조봉준이 뉴스나우에 출연하는 바람에 사건이 보다 커져 버렸다.
거기에 더해 인터넷 방송까지 시작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검찰에 업무 방해죄까지 추가해 달라 요청했을 것이다.
곧 수사관이나 실무관에게서 전화가 올 테니, 그때 확인하면 알 일이다.
* * *
서울서부지검.
한때 몸담았던 곳이다.
처음 검사가 되었을 때는 중앙지검에 발령받았고, 두 번째 발령지가 이곳이었다.
세 번째 발령지는 내가 검사 생활을 마쳤던 중앙지검이라, 다시 돌아갔고 말이다.
물론, 그때 내 중앙지검 복귀를 가장 반긴 것은 다름 아닌 황영찬이었다.
“차 프로?”
정면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차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했지, 당연히. 소식은 많이 들었어. 차 프로 아주 유명 인사가 다 됐던데?”
“과찬이십니다.”
여태까지 유명 인사가 됐다는 말은 숱하게 들어 왔지만, 말 속에 씨가 있다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고 편하게 들은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차장은 두루두루 친하고 인망이 두터운 편이다.
서부지검에 있었을 당시, 나를 꽤 아껴 주기도 했고 말이다.
그는 권력이나 돈에는 큰 욕심이 없어서, 퇴직 이후에는 학자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따금 만나면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로 지냈었다.
특히, 내가 서부지검에서 또다시 중앙지검으로 발령받았을 때 가장 축하해 줬던 사람이기도 하고.
첫 발령지가 중앙지검이라고 해도 서울에서만 도는 일이 잘 없다 보니, 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런 그를, 여기서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발령 때 북부지검도 아니고, 남부지검도 아니고, 다시 중앙지검으로 빽하길래 계속 검찰에서 쭉 잘 나갈줄 알았는데 사직해서 놀랐어. 어디 큰 회사 들어갈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혹시 지방 지청에 발령 떨어졌던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된 겁니다.”
“뭐, 하긴. 조진태까지 잡아넣었는데 갑자기 지방 지청 발령 떨어질 리는 없었겠지.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로…… 아, 명화제약 건 때문에 왔구나?”
“알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형사 5부장한테 들으니까 변호인 선임서에 차 프로 이름 적혀 있는 거 보고 다들 사건 안맡으려고 했다던데? 하하. 명화제약 건이 아마, 정창윤한테 갔었지?”
“맞습니다.”
“맞아, 그랬던 것 같아. 정 프로가 그나마 우리 중엔 전문가니까.”
담당 검사까지 아는 걸 보면, 이 사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 정 프로랑 차 프로 옆 방 쓰지 않았나?”
그랬었나.
차장에게는 고작해야 5년 전의 기억이겠지만, 나에게는 15년 전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 프로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니었다.
그는 내 연수원 동기였으니까.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의대 출신 검사라, 대학 재학 중에 패스했던 나보다는 한참 연상이기도 했고.
그가 미래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은 사람은 아니라서, 공략 방법을 떠올리려 해도 생각 나는 게 없었다는 점이다.
전략을 미리 세우진 못했지만, 내 기억에 나쁘게 남지 않은 것을 보면 적어도 우신의 개 노릇은 안 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검사의 중립성을 기대해 봐도 되려나.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나 먼저 가 봐야겠어. 나중에 사건 끝나면 차나 한 잔 하자고.”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차 프로도 사건 잘 해결하고.”
차장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왔다.
“차 변!”
조봉준이었다.
모친께서 출석 전에 삼계탕을 해주신다 했다며 본가에서 따로 출발하겠다고 하더니, 몸보신을 해서 그런지 얼굴이 번들번들하다.
“좀 점잖아 보여? 이 정도면 합격이야?”
옷도 가진 옷 중에서 최대한 점잖게, 장례식장 간다고 생각하고 입으라고 말해 둔 참이다.
뭐, 나쁘지 않다.
수염을 안 깎은 게 조금 거슬리긴하지만, 평소에 비하면 훨씬 깔끔하고 얌전하다.
“좋습니다. 제가 주의 사항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죠?”
“아, 기억하지. 웬만하면 차 변이 다 할 거니까, 검사가 직접 대답하라고 할 때 아니면 닥치고 있으라고 한 거 말이지?”
“닥칠 것까진 없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좋겠죠.”
“그게 닥치라는 거잖아.”
그와 함께 검찰청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전략은 좀 세웠나?”
“전략이랄 것까진 없습니다. 어제 공유드린 그대로예요. 그래도 검사가 제 연수원 동기라, 아예 모르진 않습니다.”
“……담당 검사가 차 변 연수원 동기야?”
“네.”
“그걸 왜 말 안 했어?”
“지금 했잖습니까.”
“미리 했어야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조봉준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 무언가 납득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차 변 같은 성격에 아무리 동기라도 친하게 지냈을 리가 없지. 차 변 솔직히 말해 봐. 평생 왕따였지?”
……그냥 이 인간 변호하지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