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2)
너희들은 변호됐다-182화(182/641)
보통 검사실 문을 열고 기웃거리면, 실무관이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물론 피의자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얼굴을 미리 확인하기는 하지만, 실물과 다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도 검사가 아닌 이상 한 방에는 검사가 한 명만 있는 데다, 출석 요구서에 시간이 적혀 있기 때문에 검사실에 들어서면 단박에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출석 요구서에 적힌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꽤 많다.
일찍 오는 사람이든, 늦게 오는 사람이든.
하지만 오늘 실무관은, 자연스럽게 조봉준을 향해 ‘조봉준 씨?’라고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끈질기게 나를 향해 있었다.
아까 차장이 이 사건을 내가 맡았다는 소식이 퍼졌다고 하더니, 그 때문에 알아본 모양이었다.
“검사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요. 곧 돌아오실 겁니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실무관은 우리를 검사 책상 앞의 의자에 안내해 준 뒤,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사건들이 배당된 듯, 실무관은 마트에서나 볼 법한 카트 안에서 굵직한 서류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저렇게 실무관들이 카트를 끌고 검사실 문을 열면, 모든 방에서 신음이 들리곤 했다.
나 역시 한숨을 쉬던 사람 중 하나고.
잠시 과거 기억에 젖어 있을 무렵, 검사실 문이 열리고 검사가 들어왔다.
“아, 조봉준 씨?”
정창윤은 조봉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에게서 미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던 수사관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던 모양인데.
검사실에 출석하기로 한 시각이 정각인데, 담배 한 대 피우겠다고 10분을 지각한다니.
이걸 검사의 권위주의라고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검사도 좀 늦어도 되지 않냐는 보상 심리가 작용했다고 해야 할지.
“조봉준 씨. 기존에 안내드렸던 허위 사실 유포 외에, 업무 방해로 추가 고소되신 상황입니다. 명화제약 측에서는 사건 병합을 요청한 상태라, 그렇게 진행 중이고요.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 나가셔서 발언하신 것과 개인적으로 진행하시는 인터넷 방송에서 발언하신 것 때문에 명화제약 측에서 상당히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네요.”
정창윤은 무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사무적인 말투로 읊었다.
그 뒤로 으레 하는 형식적인 절차와 문답이 오갔다.
“합의를 요청하는 방법도 있는데, 조봉준 씨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네, 따로 합의할 생각은 없습니다.”
“으음. 검찰로 사건이 넘어왔다는 건 우선 혐의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거든요. 변호사를 대동하고 오셨으니 이미 들으셨겠지만, 형사처벌까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예컨대 소상공인들 간의 분쟁이 아니라 아무래도 상장된 기업 본사에서 직접적으로 고소한 거라서요. 만일 혐의점이 인정되어 기소된다면, 민사 소송까지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명화제약에서 청구할 손해배상액은 천문학적일 거고요.”
말이 길었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고집 피우지 말고 합의를 보라는 뜻이다.
조봉준이 대답하지 않자, 정창윤은 고개를 들어 흘긋 조봉준을 바라보았다.
마치 대답을 채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봉준은 그제야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정창윤은 대답이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마우스에 손을 얹었다.
한참 동안 펄럭, 서류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한 검사실 안에 퍼졌다.
같은 검사라고 해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검사마다 피의자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다 다르다.
친근감 있게 다가가서 자백 또는 합의를 유도하거나, 엄하게 꾸짖거나, 지금 정창윤처럼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타입까지.
나는 조용히 정창윤을 주시했다.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과, 쉬지 않고 서류를 읽으며 굴러가는 눈동자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창윤이 중립적인 검사라고 예단할 순 없다.
이미 명화제약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내밀었을 텐데, 검사실에 온 지 30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가져오신 거 있느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검사님. 업무 방해죄 성립 요건 중, 조봉준 씨에게 해당하는 것은 허위 사실 유포입니다. 허위 사실유포를 통한 명예 훼손 혐의와 연결되는 부분이죠.”
침묵 끝에 나는 입을 열었다.
“네, 그래서요?”
“만일 저희가 허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면 업무 방해죄는 무혐의 처분을, 그리고 명예 훼손 역시 사실 적시로 돌려야 할 겁니다.”
정창윤은 모니터에 고정했던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검사가 판단할 사안입니다. 그래서 입증 자료를 가져오셨나요?”
그가 처음부터 신문 진행을 똑바로 했다면 내가 먼저 입을 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답 대신 서류 가방에서 파일 몇 개를 꺼내 들었다.
“명화제약에서 조봉준 씨가 유포했다고 주장하는 허위 사실은, 축약해서 말하면 안트로졸 알파가,”
“부작용이 큰 의약품이라는 점이죠. 다 아는 얘기는 넘어가시고 본론부터 말씀하시죠. 변호사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바쁜 사람들입니다.”
나도 바쁜데.
벌써부터 사건을 휘뚜루마뚜루 처리하고 싶은 무성의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드린 자료를 보시면 연구를 의뢰한 미국 연구 기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명화제약은 식약청 심사 전에 이미 인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화제약이 주장한, 조봉준 씨가 공개한 사실 중 하나입니다. 즉, 그건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김찬영이 외삼촌을 통해 확보한 자료 중 하나다.
여태까지는 현물 증거 없이, 조봉준이 심증만으로 언급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명화제약은 미 연구 기관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료가 어떤 것을 증명하는 건가요? 그게 조봉준 씨가 유포한 허위 사실중 하나가 될 순 있겠지만, 궁극적인 허위 사실은 안트로졸 알파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본론만 얘기할까요?”
그놈의 본론, 본론.
“검찰에서 식약청에 요청한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임상에서도 문제가 없었,”
“식약청은 기계가 아닙니다. 식약청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식약청에서도 문제가 있는 미 연구 기관의 하이졸람 연구를 인용해서 허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낸 상태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민단체에서도 식약청의 안트로졸 알파 허가 처분에 대해 행정 심판을 요청하고 있고요. 식약청에서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아……. 변호사님. 말 끊지 마세요.”
권위주의가 맞는 것 같다.
나는 말을 끊어도 되지만, 너는 안된다는 것을 주지시키려는 유치한 기 싸움이다.
“자, 조봉준 씨가 지금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단순한 추측만으로 발언했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에요. 의혹을 제기한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합의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강조 표현일 뿐, 기정사실화한 것은 아닙니다.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고,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한 겁니다.”
“변호사님. 지금 조봉준 씨는 명예훼손과 업무 방해죄로 조사받으러 오신 겁니다. 수사가 미비했음을 주장하시려면 다른 데서 하셔야죠. 그리고 명화제약이 제출한 자료를 열람 등사하신 것으로 확인됩니다만, 그렇다면 조봉준 씨도 확인하셨겠죠?”
자료를 열람 등사한 것은 출석 요구서가 나온 직후였다.
어떻게 입건된 것인지 절차는 확인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는 명화제약이 피해를 받은 사실에 대한 정리가 대부분이었다.
주가와 기업 이미지 하락, 그리고 명화제약에서 개발한 타 의약품까지 판매량이 하락했다는 보고서였다.
물론,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명화제약은 해당 연구가 본인들이 직접 연구원을 보내 연구에 참여하며 관리 감독했기 때문에 하이졸람에 대한 연구까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전에 주신 자료, 명화제약이 안트로졸 알파 임상 들어가기 전에 연구 기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자료를 끝까지 보시죠. 그 아래 파일이 명화제약에서 보냈다는 이준성 연구원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미국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와 대조해 봤을 때, 이준성 연구원은 관리 감독을 목적으로 파견된 것이 아니라 기술 수입을 목적으로, 견학의 형태로 파견되었습니다. 이준성 연구원의 파견 사실은 하이졸람 연구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정창윤은 내 말에 그다음 파일을 꺼내 들춰 보았다.
한참 동안 서류를 읽어 내리던 그는, 곧 파일을 덮었다.
이만 조사를 끝내고 싶다는 뜻이다.
나 역시 조사를 받으러 온 것인데, 재판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검사는 제대로 사실 파악을 할 생각이 없고, 그저 합의하라는 말을 길게 돌려서 하고 있을 뿐이다.
합의하고 싶은 것이 명화제약인지, 정창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라리 그가 명화제약의 지령을 받아서 이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검사가 ‘명화제약 문제없는 것 같은데 너도 그만하고 그냥 합의해’ 식의 태도라면, 우리의 주목적인 팩트 체크를 하기도 전에 불기소처분하고 사건을 종결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명화제약은 민사 소송을 걸거나, 혹은 더 저열한 방법으로 조봉준의 입을 막으려고 하겠지.
오늘은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데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선 돌아가서 정창윤에 대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는 국가입니다. 조봉준 씨는 기자 신분은 아니지만 기자에 준하는 방식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조봉준 씨가 그로 인해 얻을 이익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조봉준 씨는 처음 명화제약에 대한 글을 올렸던 주식 게시판에서, 이미 본인이 아는 지식으로 사람들을 상담하고 돕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일 역시 그러한 행동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겠죠. 공익을 위한 일입니다.”
피의자가 검사실까지 와서 무죄 주장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적당히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무혐의 처분보다는 팩트 체크가 더 중요한 입장이라, 굳이 길게 일장 연설은 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추가로 제출하실 자료 있으시면 제출하시고요. 오늘 주신 자료와 함께 참고하도록 하죠. 그럼 조사 마치겠습니다.”
정창윤은 빠르게 자리를 마무리했다.
조봉준은 그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고, 우리는 함께 검사실을 나섰다.
“씨바, 검사 새끼 진짜 좇같네. 다 엎어 버리고 싶은 거 차 변이 닥치고 있으라고 해서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허벅지를 3만 번 정도 꼬집은 것 같아.”
차에 타기가 무섭게 조봉준이 짜증스럽게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그놈의 합의, 합의. 명화제약이 합의하고 싶어서 저 새끼한테 합의 유도해 달라고 봉투 찔러준 거 아냐?”
“차라리 그거면 낫죠.”
“……그것보다 더 좆같을 수가 있어요?”
“검사가 사건이 복잡해서 합의 보게 하고 빨리 종결시키고 싶어 하는 게 제일 좇같은 경우입니다.”
“씨발, 그러네. 명화제약하고 합의 보면, 앞으론 지랄 안 하겠습니다 땅땅 되는 거 아니야. 그럼 뭐야, 방송 접어야 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합의 보고 계속 전처럼 해도 상관은 없죠. 같은 이유로 고소를 두 번 할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명화제약은 손배소는 아직 걸지 않았습니다. 형사 결과 보고 걸려고 대기 중인 거겠죠. 만일 가짜로 합의 본 뒤에도 계속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민사를 걸 겁니다.”
“하, 민사……. 까짓것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냐?”
“아닙니다. 민사야말로 시간 뺏기고 지루한 싸움입니다. 민사 금액이 엄청날 거라, 준비를 안 할 수도 없으니까요.”
“민사 이겨서 명화제약의 개수작을 증명할 수도 있잖아요.”
“민사 시작하면 몇 년 갑니다. 그 사이에 국민들은 관심을 잃겠죠. 그건 어디까지나 플랜B입니다. 우린 이번에 깔끔하게 끝내야 합니다.”
“검사가 저 지랄인데,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야죠. 저런 검사도 외면 못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