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4)
너희들은 변호됐다-184화(184/641)
진혜경에게는 휴대폰 연결 상태가 나쁘다고 대꾸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
그리고 보고 있던 자료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안트로졸 알파의 전신인 안트로졸 개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 단계로 제출된 연구 보고서.
첫 연구였던 안트로졸 최종 보고서와, 두 번째 연구였던 안트로졸 알파의 중간 보고서까지 이름을 올렸던 유민혁이라는 연구 팀장의 이름이, 세 번째 안트로졸 알파 최종 보고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 두 보고서에는 가장 처음에 이름을 올렸던 것을 보면, 연구 책임자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왜 최종 보고서에는 이름이 없을까.
안트로졸은 명화제약을 상장하게 만들었던 히트작이다.
그런 안트로졸을 처음 개발했던 사람이고, 안트로졸 알파의 뼈대인 아필라타일렌과 로페타민의 작용을 알아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큰 공을 세운 유민혁이, 왜 안트로졸 알파 최종 보고서에는 쏙 빠져 있단 말인가.
다른 연구원들은 다 그대로 있고, 유민혁의 자리는 윤수영이라는 못보던 이름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나는 바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네, 변호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김찬영은 아직 잠들지 않았는지, 쌩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아까 네가 준 자료 말이야.”
-네.
“그걸 보고 있었는데, 조금 걸리는게 있네.”
-뭔데요?
“너도 자료 가지고 있어? 자료 보면서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드리기 전에 사본 만들어 놨죠.
굳이 자료를 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한번 떠봤다.
역시.
그저 자료 셔틀은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사본을 만들어 놨다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거나 자신에게 공유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파악하기 위함이겠지.
“안트로졸, 안트로졸 알파 중간 보고서, 안트로졸 알파 최종 보고서. 편의상 1, 2, 3차 보고서라고 할게.”
-네
“1, 2차 보고서에 연구 책임자급은 됐을 것 같은 연구원 이름이 3차에서는 안 보여.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어.”
-……어어, 그러네요. 사라진 사람은 유민혁이고, 새로 나타난 사람은 윤수영. 맞죠? 수상한데요?
“그렇지?”
-왜 빠졌는지 알아볼까요?
“그래.”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삼촌한테 말해 둘게요.
일사천리로 진행된 대화를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베란다로 향했다.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어떤 결과가 있으려나.
* * *
“찬영이 왔어?”
이틀 뒤, 스튜디오에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김찬영이 모였다.
그제 발견한 것에 대해서는 어제 두 사람과도 공유를 마친 상태라, 우리는 김찬영이 가져올 정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지금 시험 기간이라 늦었어요.”
“시험 기간이야? 기말고사?”
“네. 그래도 이번 주만 버티면 방학이에요.”
“시험 기간인데 이런 일에 가담해도 되는 거야?”
“제가 원해서 한 일인데요. 걱정마세요. 여태까지 시험은 다 잘 봤어요.”
김찬영이 내려놓은 가방 안에는, 아닌 게 아니라 전공 서적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과 수석이라면서, 이번 일로 삐끗하면 좀 아깝지 않겠어?”
“와, 찬영이 수석이야? 명운대 다닌다면서? 대단하네. 거기 공부 잘하는 애들만 있잖아.”
“아, 변호사님. 왜 그런 걸 말씀하시고 그래요. 쑥스럽게.”
김찬영은 머쓱한 듯 뺨을 긁적이다, 우리 앞에 홀더를 밀어 놓았다.
“어제 삼촌이 집에 갖다 놓으신 건데, 제가 학교에서 밤 새느라고 오늘에서야 챙겼어요. 죄송해요.”
“아냐. 이렇게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최종현의 말에 씨익 웃으며 김찬영은 L자 홀더의 내용물을 꺼냈다.
유민혁의 인사 기록이었다.
“퇴사했네? 그리고 차 변 추측대로 책임자 맞는 것 같고. 확실히 이상하긴 해.”
“네. 3차 보고서가 나온 게 2009년 중순인데, 2009년 3월에 퇴사했더라고요. 연구 책임자가 윤수영으로 변경된 게 이 사람 퇴사 때문인 것 같아요. 왜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안트로졸 알파가 식약청 승인을 위해 임상에 들어간 것이 2009년 중순이다.
3차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임상에 들어갔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2009년은,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하이졸람 연구가 끝난 시기이기도 하다.
자료를 확인하니, 역시.
2009년 1월에 하이졸람에 관한 최종 논문이 나왔다.
“시기를 맞춰 보니, 유민혁 이 사람. 원래 안트로졸 연구를 맡아 진행하다가 하이졸람 연구 결과가 나오고 두 달 뒤에 퇴사한 거네.”
최종현이 상황을 정리했다.
“하이졸람 연구가 조작됐다는 사실은 이 사람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커.”
“만일 그렇다면 증인으로 쓸 수도 있겠는데.”
퇴사 사유는 개인 사정이라고 적혀있었지만, 권고사직인지 스스로 퇴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 연락처로 전화 한번 해 보죠.”
“아, 변호사님. 사실 제가 아까 전화를 해 보긴 했는데요. 그냥 여전히 이 연락처를 쓰는지 확인만 할 생각으로 건 건데…….”
“그런데?”
“다른 사람이 받더라고요. 그리고 유민혁 씨 전화 맞냐고 물어보니까, 유민혁 찾는 전화가 작년부터 종종 온다고 승질을 내던데요.”
작년부터 종종 온다는 걸 보면, 퇴사 이후 전화번호를 바꾼 모양인데.
“흐음. 도망치듯이 사라진 건가?”
“그랬을 수도…… 어?”
고개를 기울이던 최종현은 그의 학력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서울대 83학번인데? 나랑 동기야. 물론 이 사람은 약대긴 한데.”
“그땐 약대 연건 캠퍼스에 있지 않았습니까? 같은 학번이었어도 기자님은 신방과셨으니 교류가 있기는 조금 힘들 텐데요.”
“아니, 나 기억 나. 저때 약대 관악 캠퍼스로 넘어온 지 꽤 됐었어. 그리고 같은 동아리하던 형이 약대 83학번이었거든. 알 것 같은데?”
“어, 그럼 형이 알아볼 수 있나?”
“그 형 연락처는 있어. 내가 연락해 볼게.”
최종현은 그 자리에서 아는 형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심각한 얼굴로 ‘응’이라는 대답만 여러 번 하더니, 곧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나려고 연락했는데, 연락이 전혀 안 된대요. 2009년 초 이후로.”
시기가 여러모로 맞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작정하고 잠수 탄 것이 아닐까 싶다.
퇴사 이후 전화번호 바꾸는 것이야 전 직장에서 연락받고 싶지 않으면 흔히들 취하는 조치지만, 지인들과도 연락 두절이라니.
“이 사람이 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 차 변. 그때 국정원 하는 얘기 들으니까 흥신소 아는 데 있다며? 거기다가 의뢰해 보면 어때.”
조봉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야죠.”
태식의 말에 따르면, 전화번호와 생년월일을 알고 있으면 가장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도 여의치 않다면 생년월일을 알고 있는 게 좋다고 했고.
인사 기록에 생년월일은 나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믿을 만한 친구예요?”
최종현은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요.”
사실 두 사람이 이전 삶에서는 같이 목욕탕 가서 등 밀어 주는 사이였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과 헤어진 후, 나는 바로 태식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시간이 조금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 밤 9시가 넘었다.
건물 앞에 내려서 창문을 올려다보니, 다행히도 불은 켜져 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태식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고 문자 왔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답장을 안 했었지.
왠지 만나자마자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지 않을까 싶은데.
“아? 이게 누구신가. 내 문자는 껌 씹듯이 씹어서 풍선까지 불어 버리는 변호사님 아니신가?”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무섭게, 소파에 앉아 있던 태식이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상길과 형식이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오셨습니까, 변호사님.”
“야, 인마. 인사하지 마. 하여튼 본인 필요할 때만 찾고. 얼마 전에 들어 보니 국정원하고 술도 마셨다면서요? 국정원하고 마셔 주는데, 나하고는 못 마셔 주신다?”
아무래도 태식이 단단히 삐친 듯하다.
“다음에 마시면 되잖아.”
“맨날 다음에, 다음에. 그러면 제가 믿을 줄 아십니까?”
“너 내 여자친구냐? 문자 한 번 답장 안 했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 그리고 내가 언제 맨날 다음에 마시자고 했어? 그냥 싫다고 했지.”
“……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태식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상길이 재빨리 내 앞에 음료를 내려 놓았다.
“잠깐 자리 좀 비켜 줘.”
나는 상길과 형식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던 듯 당황하더니, 태식을 흘긋 바라보았다.
태식은 나가 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두 사람이 나가고, 사무실에 나와 태식만 남았다.
“무슨 일이신데 그렇게 각을 잡으세요?”
“별건 아니고.”
유민혁을 찾는 일을 의뢰하러 온 것이긴 하지만, 다른 용건도 있었다.
나는 들고 왔던 종이 가방에서 비타 5000 상자를 꺼내 그의 앞에 내려 놓았다.
“뭘 이런 걸 또 사 오셨어요? 마침 바이라민이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잘됐다. 하나 마셔야지.”
태식은 실실 웃으며 비타 5000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허억? 허어어억?”
태식은 그 안의 내용물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험한 것을 봤다는 듯 상자를 도로 닫아 버렸다.
그러다 잠시 뒤, 다시 상자를 슬쩍 열었다.
“이, 이거 돈이잖아요? 비타 5000 큰 상자에 들어가는 돈이면, 한 2억될 텐데? 지, 지, 지금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건데요?”
“5만 원 권이 나와서 참 편하지. 예전엔 이만한 돈 담으려면 사과 박스 사이즈는 돼야 했는데.”
태식은 눈을 껌뻑거렸다.
“내가 나쁜 짓은 청산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지?”
“……아, 네. 이제 나쁜 짓 안 합니다. 진짜로요.”
“알아.”
“그, 근데 이건 왜 주시는 거예요?”
“이제 사무실 규모 좀 키워 봐.”
태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 정도로 필요하다고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이만큼 가져 왔는데. 부족하면 말하고.”
“…….”
“쓸 만한 애들도 뽑고. 믿을 만한 놈들 추려서 내보낼 놈은 내보내고, 데리고 있을 놈은 월급 올려 줘. 차도 몇 대 갖추고. MOU란 이런 거다.”
흥신소에 투자 형식으로 돈을 건네주는 것은 훗날 드러나면 그리 보기 좋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
뭐, 이 정도는 살짝 눈 감고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태식은 그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용건으로 넘어가자.”
“다른 용건이 있으셨어요?”
“사람 좀 알아봐 줘야겠어. 지금 사용하는 연락처, 혹은 지금 지내는 곳. 어디든 상관없어. 만날 수만 있으면 되거든.”
나는 유민혁의 인사 기록을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태식은 그 기록을 한번 훑어보다가, 곧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인사까지 했다.
작정하고 숨은 사람이라 찾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큰돈 안겨줬으니 의욕이 넘칠 거다.
“그래.”
“그리고 저, 정말 깊게 감동받았습니다. 변호사님이 이렇게까지 저를 믿어 주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이라고 해도 될까요?”
“아니.”
“……앗,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