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5)
너희들은 변호됐다-185화(185/641)
태식에게 건넨 2억은, 곧바로 그 효과가 나타났다.
그에게 유민혁의 행방을 찾아 달라고 한 지 3일째 되는 날, 태식이 사무실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형니이이이임!”
그때 우린, 예약되었던 내담자를 앉혀 놓고 상담 중이었고 말이다.
내담자는 갑자기 나타난 근육 돼지의 우렁찬 목소리에 위협을 느낀 듯했다.
강민재 역시 깜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이며 태식을 노려보았고 말이다.
“아, 죄, 죄송합니다.”
태식은 자신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민재와 내담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던 오 사무장이 일어나, 태식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타이밍도 참 나쁘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던 중이라, 5분만 늦게 왔어도 환대받았을 텐데.
그가 가져올 소식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가장 잘 아니까.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 드릴게요.”
“네, 살펴 가세요.”
내담자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오 사무장이 다시 태식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누가 네 형님이야?”
쭐래쭐래 오 사무장의 뒤를 따르는 태식에게 한마디 해 주었더니, 태식이 비식비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 마음속 영원한 형님이십니다.”
“어쨌든, 기분 좋은 거 보면 찾았나 보네.”
“당연하죠. 애들한테 지금 보는 업무 올스탑하고 유민혁 먼저 찾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도 3일이면, 사실 오래 걸린 거긴 합니다.”
태식은 내 책상 앞으로 다가와, 어떤 주소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유민혁은 지금 약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그 주소고요.”
“약국?”
약대를 나와 명화제약에서 책임자급으로 재직하던 유능한 연구원이, 이직하지 않고 약국을 차렸다라.
나는 포스트잇 속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진성군? 여기 땅끝 아닙니까?”
어느덧 내 옆으로 와 함께 지도를 확인하던 강민재가 물었다.
약국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만 보아도,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더 많이 표시될 정도였다.
“멀리도 갔더라고요. 거기 어촌인 것 같던데. 휴대폰 번호도 찾긴 했는데, 모르는 번호라 그런지 안 받고요. 약국 전화번호는 주소 아래 적어 놨습니다.”
연락처도 바꾸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어촌에 자리 잡았다면 어느 정도 답은 나왔다고 본다.
쫓기듯이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리 전화를 걸어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고 해도 만나주지 않을 공산이 크다.
오히려 전화를 걸어서 미리 약속을 잡으려 하면, 또 사라질 수도 있다.
직접 내려가서 예고 없이 부딪쳐야한다.
“사무장님, 오늘하고 내일까지 일정 잡힌 거 있습니까? 지금 여기 내려가 보려고 하는데요.”
“다 미룰 수 있습니다. 강 변 데리고 가실 거죠? 강 변 스케줄도 미루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땅끝에 위치한 진성군까지는 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금이 정오니까, 도착하면 이미 오후 5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장거리 출장을 가게 된 강민재는 선글라스 여러 개를 바꿔끼며 분위기를 잡았다.
신난 강민재에게 태클을 걸고 싶지않아서, 나는 그저 창밖을 보며 지루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갔을까.
강민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나야. 지금 출장 가고 있어. 전화 가능해. 아, 알아봤어? 응. 오, 그래?”
기다리던 전화였는지, 그는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20분가량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따사로운 햇살에 노곤해져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변호사님!”
물론, 전화를 끊은 강민재가 큰 소리로 불러서 잠들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정창윤 검사 알아보라고 하신 거요. 방금 연락받았습니다.”
이런 소식이라면, 잠을 수십 번 방해받아도 상관없다.
“확실히 정 선배가 태광에서 러브콜을 받은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네. 그런데 이렇다 할 대답은 안한 모양이에요. 어차피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정 선배가 의사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몇 년이 지나서 태광에 들어가겠다고 해도 그쪽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하고요. 그리고 태광 쪽 인사들하고 잘 지내지도 않는대요.”
“또 그 밖에는?”
“위에 사바사바 하는 편도 아니고, 활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눈에 띄는 성격이 아니라고 하네요.”
한때 옆방을 썼던 연수원 동기인데도 내 기억에 남지 않은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정창윤 자체가 원래 존재감이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근데, 합의가 가능한 건은 웬만하면 기소 안 하고 합의 보게 만드는 편인 것 같아요. 다른 방에서 진상으로 이름 날리던 것도 그 방만 들가면 합의 보고 나온다고 하니까. 별명이 비둘기래요.”
“비둘기?”
“네. 평화의 상징 비둘기.”
겉으로 보기엔 합의가 가장 아름다운 해결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겪은 정창윤을 보았을 땐 그저 사건을 덮는 것에 불과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을 수사 기관에서 명확히 가려야 하는 상황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번 사건이 그런 사건이다.
괜히 기소율이 어떻고, 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낸 합의가 진정한 평화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또 다른 불화의 씨앗이 될 뿐이다.
“그리고 서부지검에서 미제가 제일 적은 걸로 유명한가 봐요. 형사부 소속인데도요. 엄청난 기록이죠.”
미제의 수는 보통 검사의 능력치로 치환된다.
그렇다는 것은 정창윤이 어느 정도 인정받는 검사라는 뜻이다.
의사 출신에, 평화의 상징이라는 별명, 그리고 최저 미제.
검사로서 자부심이 꽤 있을 테고, 고집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변호사님, 휴게소 들러서 기름 좀 넣고 갈까요. 슬슬 배도 고프고요.”
* * *
우리가 진성군에 도착한 것은 저녁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진성군은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인구수는 서울에 속한 구, 그 안의 한 개의 동 주민 수보다 적고, 노인 비율이 높다.
아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시내에도 너무 흔해서 ‘바퀴베X’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커피 체인점조차 없었다.
약국은 그 조그만 시내의 2층짜리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상가는 낡았지만, 약국 간판만은 반들반들 깨끗했다.
유민혁이 서울에서 내려와 차린 곳이니, 약국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않았을 것이다.
나는 창 너머로 약국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등이 굽은 노인이 약사에게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며 인사한 뒤, 꾸깃꾸깃한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저 약사가 바로 유민혁이다.
“할머니, 조심해서 가세요.”
“잉, 어여 들어가 봐.”
유민혁은 재빨리 달려 나와 문을 열어 주었고, 등이 굽은 노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노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유민혁이 그 앞에 서 있던 나와 강민재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진성군 시내에 있다 보면 만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일 터였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곳이니, 이렇게 양복을 갖춰 입은 젊은 두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은 생경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유민혁 씨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차주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강민재 변호사입니다. 이쪽은 차주한 변호사고요.”
강민재는 능숙하게 말하며 유민혁에게 명함을 건넸다.
경계심 가득할 유민혁에게 처음 말을 붙이는 건 나보다는 자신이 나을 거라며 큰소리를 치더니, 썩 효과가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는 명함을 한번 훑어보더니, 방어적으로 약국 안을 향해 한 걸음 몸을 물렸다.
“서울에 계신 변호사님들이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실례인 줄은 알지만, 화급을 다투는 문제라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요.”
“최근에 화제가 된 사건 아실지 모르겠는데요. 명화제약에서 개발한 안트로졸 알파에 큰 부작용이 있다는 게 지금 문제가 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 사실을 처음 문제 삼으셨던 분이, 아폴론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계신 조봉준이라는 사람,”
“유민혁 씨. 2009년 3월까지 명화제약에서 근무하셨었죠?”
나는 강민재의 말을 끊고 나섰다.
어떻게 하든 유민혁의 경계심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강민재가 특유의 서글서글함으로 응대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명화제약 안트로졸 알파에 큰 부작용이 있었다는 걸 유민혁 씨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맞죠?”
“…….”
유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떨리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희 의뢰인이 안트로졸 알파 부작용의 심각성을 공론화했다가, 명화제약에게 허위 사실 유포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안트로졸 알파의 유통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요?”
“유민혁 씨는 안트로졸 개발에 직접 참여하셨고, 안트로졸 개발 도중 아필라타일렌과 로페타민의 작용과 부작용을 밝혀내신 분입니다. 또한, 하이졸람에 대한 것까지 일부 연구하셨더군요. 하지만 안트로졸 알파의 최종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유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이졸람에 대한 연구를 미국에 의뢰한 뒤, 그 결과 보고서가 도착한 2달 후 명화제약에서 퇴사하시고 종적을 감추셨더군요.”
“……그 일에 대해선 할 말 없습니다.”
유민혁은 약국 문을 닫으려 했지만, 나는 그 틈에 손을 넣어 붙잡았다.
“하실 말씀이, 많아 보입니다.”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뜬 [거짓] 글자를 보며 천천히 강조해서 말했다.
“없다고 했잖아요.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죠. 저는 그 연구에서 빠진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빠지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개인 사정입니다. 그것까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촉망받던 연구원이, 그 시기에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이 시골까지 내려와 약국을 차렸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안트로졸 알파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안트로졸 알파 문제는 개인 사정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미 크게 공론화된 사건이고요.”
“……안트로졸 알파와 관련 없습니다.”
[거짓]유민혁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약국 문을 닫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젊은 몸이기에, 그것을 저지할 힘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약국 문을 다시 한번 세게 붙잡으며 말했다.
“안트로졸 알파가 이대로 출시되면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안트로졸 알파의 원안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유민혁 씨입니다. 그런 참변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도, 그저 관망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