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88)
너희들은 변호됐다-188화(188/641)
2010년의, 이 삶에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
그날은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예상치 못한 비 소식에 차가 밀렸고, 나는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질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형사부 전원이 오랜 시간 밤낮을 새 가며 가까스로 구속했던 범죄자의 구속적부심이 있는 날이었다.
법원 앞에 도착했을 때 개정 시각까지 고작 10분 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나는 서둘러 자료를 안고 내렸다.
마음이 급하니 걸음도 사나워졌고, 그러다 주위를 살피지 못해 깊게 파인 웅덩이를 밟았다.
바지 밑단이 젖고, 구두에 물이 들어가 불쾌했다.
절로 작은 욕지기를 뱉으며, 서둘러 법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만원 엘리베이터에 가까스로 몸을 싣자, 일회용 우산 커버를 씌우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옷이 더 축축해졌다.
계속 불쾌한 마음을 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평소라면 전화를 받아서, 지금 재판 들어가야 해서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을 텐데.
그날따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 있었던 터라,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지금 바쁘다는 말씀을 드릴 때마다 어딘가 서운해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괜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가뜩이나 부모님을 잘 찾아뵙지 않고, 연락도 잘 받지 않는 불효 막심한 아들이었다.
마음은 늘 부모님을 걱정하고 염려하면서도, 이상하게 말과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는, 그런 자식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무음으로 바꾸고 주머니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재판에 들어갔다.
피고인이 계속해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해 달라 강력하게 요청하는 터라, 재판은 좀처럼 빨리 끝나지 않았다.
나는 축축한 바지 밑단이 왜 이렇게 안 마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적부심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재판이 몇 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법정 문이 열리고, 오 계장이 허리를 숙인 채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잘 접힌 쪽지를 건네고, 다시 법정에서 나갔다.
피의자의 변호인이 열띤 변호를 펼치는 동안, 나는 책상 밑에서 조용히 쪽지를 펴 보았다.
[검사님, 평택에 계신 어머님으로부터 방금 아버님께서 운명하셨다는 전화가 들어왔습니다.]그때 내가 느낀 심정은, 솔직히 구체적으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메모 속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누굴 말하는 건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평택은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었고, 순식간에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검사.
판사의 목소리는 귓가에서 옅게 흩어졌다.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검사.
판사가 마이크를 두드리며 한 번 더 소리 내어 나를 부르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방청객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법정 안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이 사건의 피의자는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아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구속적부심을 끝까지 마쳤다.
다행히 구속 영장은 기각되지 않았다.
다음 적부심 대상자를 호명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나 법정을 뛰쳐나갔다.
법정 바깥에는, 오 계장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검사님, 어서 가 보시죠. 평택 혜민 장례식장이라고 합니다.”
“…….”
“검사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는 나에게, 오 계장이 크게 소리쳤다.
“제가 운전할 테니까, 차 키 주세요.”
오 계장은 여전히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채근했다.
그러다가, 내 법복을 벗기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차 키를 꺼내들었다.
그는 나를 끌고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 어디에 하셨어요.”
“제가, 제가 운전해서 가겠습니다. 계장님은 남은 일을,”
“지금 이렇게 얼빠져 계시면서 비도 오는데 어떻게 운전해서 평택까지 가신다는 거예요. 제가 모셔다드릴 테니까, 얼른요. 어디 주차하셨어요?”
오 계장은 내비게이션에 장례식장을 입력하고 출발했다.
나는 그동안,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전화가 20통 넘게 와 있었다.
아버지에게 2통, 나머지는 어머니와 친척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이제 받아, 이놈아. 어흐흑, 이놈아…….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흐느낌이 이어졌다.
나는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로 어머니의 원망을 듣고만 있었다.
통곡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버지가 전화를 걸었던 게 나였다는 사실도.
아버지가 공장의 본인 사무실에서 쓰러진 게 발견되었던 것이라, 어머니 역시도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듯했다.
나는 지금 장례식장으로 가는 중이라는 말만을 남긴 채, 도망치듯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 통증으로 가슴팍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며 생각하셨던 것이, 하나 있는 아들인 나였고.
그리고 그 도와 달라는, 혹은 마지막으로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전화를, 나는 오늘 짜증이 났다는 이유로, 재판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했다는 것이.
그러한 사실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오 계장은 나 대신 아버지의 부고를 돌렸다.
친척들은 실신할 듯이 우는 어머니를 달래느라 바빴고, 나는 여전히 죄책감에 사로잡힌 채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퇴근 후 하나둘 평택까지 내려와 아버지의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나는 죄인 된 처지로 그런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죄책감에 매몰되어 있을 때, 큰아버지가 나에게 이런 말을했다.
“……주한아. 네 아버지 부검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냐. 제수씨 말 들어 보니 평소에 영호 심장 쪽에는 문제 하나 없었다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라니…….”
나는 어리석게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부검을 의뢰한 뒤, 새벽 내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아버지가 옮겨졌던 응급실의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평소에 아버지에게 심장 질환이 있었느냐 물었고, 나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다음 의사가 물은 것은, 아버지가 드시던 약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한참 생각한 끝에, 나는 아버지가 관절염 때문에 비싼 약을 맞아야 한다며 괜찮겠느냐 물어보셨던 게 생각났다.
한 번 주사하는 데 몇백만 원이나 들지만, 효과가 좋다고 했다고.
나는 아버지가 아프신데 당연히 맞으셔야죠, 하고 대답하며 카드를 드렸다.
의사와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PC방으로 달려갔다.
지금이 상중이라는 생각도 없었고, 그저 그 약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하기가 무섭게, 상단에 카페가 떴다.
[안트로졸 알파 부작용 피해자 카페]그 카페에는 아버지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안트로졸로 인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안트로졸 알파에 대해 알아보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안트로졸을 맞다가, 안트로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왔다는 의사의 권유에 안트로졸 알파를 맞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안트로졸 알파를 맞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부터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거나, 심혈관계 질환이 생겨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해가 뜰 때까지 카페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었다.
“주한아, 어디 갔다 왔어?”
장례식장에 다시 돌아온 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멍하니 상주 자리에 앉아 내가 PC방에서 읽은 글들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아버지가 맞은 약이 안트로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버지도 안트로졸 알파를 맞으신 것일까.
나는 방 안쪽에서 실신하듯 울다지쳐 쉬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안트로졸 알파였어요?”
“……응?”
“아버지가 맞으신 약이요. 그냥 안트로졸 아니고, 안트로졸 알파였어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안트로졸 알파에 부작용이 있대요. 안트로졸 알파 부작용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데……. 아니죠? 아버지는 안트로졸만 맞으신 거죠?”
“…….”
“아버지가 맞으신 약은 안트로졸이었잖아요. 저한테 그 약 맞으실 거라고, 그래서 제가 그거 괜찮은 약인지 동진이한테도 물어보고 해서 알아봐 드렸잖아요. 제가 괜찮다고 해서, 그래서 그 약 맞으신 거잖아요. 근데 저한테, 안트로졸 알파 얘기는 안 하셨잖아요. 아니죠? 그냥 안트로졸만 맞으신 거죠?”
내 물음에 어머니는 사색이 되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맞으신 약이 안트로졸 알파였다는 것을.
그 카페에서 보았던 피해자들처럼, 안트로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말을 듣고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는 것을.
주사 한 대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약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카드를 받아 가시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던 게 자꾸 생각났다.
나는 아버지의 관절염이 나을 수만 있다면, 적어도 고통이 덜어질 수만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죽고만 싶어졌다.
만일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더라면, 아버지가 맞으시는 약을 안트로졸 알파로 바꾸기로 하셨을 때 내가 알지 않았을까.
그럼 처음 안트로졸을 맞겠다고 하셨을 때처럼 그 약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러면, 맞지 말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자책감에 매몰되어 국화꽃에 둘러싸인 아버지의 영정조차 바라볼 수 없었다.
“차 프로, 이게 무슨 일이야.”
그리고 두 번째 날, 황영찬과 형사부 식구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나는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안트로졸 알파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황영찬은 나보다 더욱 분노했다.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냐고, 그런 약을 개발하고 유통한 명화제약의 잘못이 아니겠느냐고,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었다.
“우신 새끼들, 양심도 없지. 그딴 약을 팔아서 사람 몇을 죽일 생각인지 원.”
“…….”
“차 프로, 힘내. 이런 말 정말 많이 들었겠지만, 힘내라.”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만일 명화제약이 그런 약을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약을 맞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고, 의사들이 하는 말이면 다 맞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위험천만한 약을 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천인공노할 범죄였다.
그 약을 처음 개발한 사람들, 그 약을 팔기로 결정한 회사.
그들이 모두 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