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92)
너희들은 변호됐다-192화(192/641)
진성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정확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강민재가 조심스럽게 유민혁에게 했던 말에 대해 물어봤던 때였다.
“……혹시 그런 아픔이 있으신 거예요?”
“아니, 없는데.”
“……그럼 그거 다 연기였어요?”
“응.”
“와, 진짜……. 와, 와……. 변호사님, 진짜 사기꾼 해도 되겠어요. 와, 나는 진짜 깜빡 속았네. 와, 진짜…….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변호사님이 진짜 그런 아픔이 있으신 줄 알고 가슴 아파하고, 막, 말도 못 꺼내고 그러고 있었는데!”
강민재는 배신감에 가득 차 몸부림쳤다.
차체가 흔들리는 느낌에,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확인했다.
“아니, 와. 이거 유민혁 씨한텐 절대 들키지 마세요. 그럼 유민혁 씨 엄청 열 받아서 우리한테 자료 넘기기로 한 거 없던 걸로 할걸요?”
“…….”
“어차피 열쇠 받아 왔으니 어쩔 수 없겠다고 하시려고 했죠? 그래도 유민혁 씨가 끝까지 나는 거짓말하는 변호사는 못 믿겠다면서 반대하면, 변호사님도 어쩌실 도리가 없을 거잖아요.”
“강 변.”
“아니, 제 말이 틀렸습니까? 저도 이렇게 배신감이 느껴지는데?!”
“강 변, 뒤차 말이야.”
내 시선은 여전히 뒤를 향해 있었다.
강민재는 내가 말을 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했는지 어림도 없다며 계속 떠들어 댔고, 나는 결국 큰 소리를 내었다.
“좀 조용히 해 봐!”
“……넵.”
강민재는 순식간에 입을 꽉 다물었다.
“뒤차 말인데. 아까부터 우리 따라오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검은색 SUV.
내가 저 차를 처음 인식한 것은 진성군에서 빠져나오는 길목에서였다.
그리고 한 번 더 인식한 것은 전라북도 부근.
그때는, ‘또 저 차네? 저 차도 우리랑 행선지가 같은가 보다.’ 정도의 가벼운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로부터 한 시간 가까이 흘렀다.
아무리 행선지가 같다고는 한들 이렇게까지 붙어 오는 차가 있다는 건 충분히 수상하지 않은가.
“……그러게요? 저도 아까 저 차 본 것 같은데. 흠, 근데 같은 차 맞아요? 차종은 같은 건 맞는 것 같은데, 번호판을 외워 둔 건 아니라서.”
강민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국산 차인 데다, 가격도 잘 나와서 확실히 보급률이 높은 차종이긴 했다.
도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차지만, 아무래도 수상한데.
“중간에 차선 한번 바꿔 봐.”
“넵.”
강민재가 차선을 바꾸자, 뒤차 역시 자연스럽게 뒤로 따라붙었다.
“다른 쪽으로 빠져 봐.”
“저기 상천 방향으로 빠져 볼게요.”
강민재는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로 상천 방향으로 난 길로 빠졌다.
뒤차는 우리가 그쪽으로 빠질 걸 예상하지 못한 듯,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며 끈질기게 쫓아왔다.
“따라붙은 거 맞네.”
“……뭐죠?”
“명화제약 쪽인 것 같은데.”
“명화제약이요? 그럼 우리를 진성에서부터 계속 따라왔다는 겁니까?”
“진성에서 유민혁을 지켜보다 우리를 따라온 건지, 아니면 서울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서 진성으로 내려왔던 건지는 모르지.”
“어떡하죠? 혹시 우리 때문에 잘 숨어 있던 유민혁 씨 위치 탄로 난 거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유민혁의 위치를 확보한 것은 태식이었다.
물론, 태식의 정보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화제약의 개국공신이었고, 또 안트로졸 알파의 치명적인 문제를 알고 있는 유민혁을 명화제약이 그냥 놔뒀을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안트로졸 알파의 문제가 불거진 이 시점에서.
처음엔 유민혁이 숨어 있던 곳을 몰랐을지 몰라도, 이번 이슈가 생긴 이후 그들은 유민혁의 동향을 체크하고 있었을 것이다.
태식이 며칠 내로 알아냈던 것처럼, 명화제약에게도 유민혁의 위치를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
그런 와중에 나와 강민재가 유민혁을 만난 것을 알고, 유민혁이 우리에게 무언가 알려 주지는 않았을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의 뒤를 쫓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요?”
“명화제약 쪽이 맞다면, 계속 우리 뒤를 따라붙을 거야. 서울에 올라가서도.”
“……그럼, 우리 사설 금고 가서 자료 가져와야 하잖아요. 그건 어떻게 하고요. 서울에 가자마자 태식 씨한테 열쇠 주고 대신 가지러 가달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방법이 될 순 있겠지만, 우리가 태식과 접촉한 것을 알면 그에게도 사람이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설 금고에 무언가 있다는 것은 그들이 확실히 알게 될 테고.
물론 열쇠가 없으니 우리보다 먼저 자료를 빼낼 순 없겠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자료를 가지고 나오는 걸 덮친다거나, 아니면 애초에 사설 금고에 무슨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나는 팔짱을 끼며 침음했다.
“강 변, 여기가 어디지?”
“여기 음, 조금만 더 가면 면천 휴게소라는데요. 면천 부근인가 봐요.”
“서울하고 면천 중간 정도가 어디지. 양신?”
“네, 그쯤.”
나는 바로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형님, 유민혁은 잘 만나셨습니까? 하하하. 저는 덕분에 차도 두 대 새로 뽑고, 직원 면접도 몇 봤습니다. 전에 제가 몸담았던 데있던 놈인데 입도 무겁고 아주 쓸만한,
“시끄럽고, 내 말 잘 들어.”
-예? 아, 예.
“지금 바로 서울 방향 양신 휴게소로 애들 둘 보내.”
-지금요? 서울 방향이요?
“우리가 거기 도착하려면 한 2시간쯤 걸리지 싶은데. 그 안에 올 수 있지?”
-야, 상길아. 여기서 서울 방향 양신 휴게소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봐라.
태식도 덩달아 급해졌다.
-한 시간 반 걸린답니다.
“오케이. 나랑 강 변하고 체격하고 키 비슷한 놈들로 보내.”
-……변장입니까?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태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천하의 장태식에게 걱정도 듣고, 이것 참 옛 생각 많이 나는데.
“무슨 일 있긴 한데,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고. 미행을 당하고 있어서 따돌리려고.”
-아하. 그건 또 저희 전문이죠.
“간단하게 설명한다. 너희가 우리보다 일찍 도착할 테니까, 주차 위치하고 차 번호하고 차종 나오게 찍어서 문자로 사진 보내. 그거 확인하고, 우리가 휴게소에 도착하면 전화할 거야. 그럼 바로 화장실에서 만나는 거야.”
-넵. 그다음에는요?
“화장실에서 옷 바꿔 입고, 차 키 서로 넘겨주고. 그리고 우리는 너희 애들 타고 온 차, 너희 애들은 우리차 타고 올라 가는 거야. 유인 제대로 해야 하니까, 날쌔고 연기 잘하는 놈들로. 알았어?”
-넵. 휴게소에서 빠져나온 다음에는 어디로 가라고 할까요?
“우리 집 주차장으로. 어차피 등록된 차량 아니면 못 들어오니까 거기서 따돌려질 거야. 그러고 나서 옷 갈아입고 알아서 퇴근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럼 애들한테 중간중간 위치 보고하라고 하겠습니다. 상길이 보낼 테니까 연락해 주세요.
“상길이 빡빡이잖아. 우리처럼 보여야 한다니까?”
-아, 우리 상길이 머리 길렀다고요. 딱 강 변 정도 길이로 길렀어요. 머리 길러서 잘생겨졌다고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걸 그새 까먹으시나, 정말 상길이 서운하게.
그는 꿍얼꿍얼 말이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다 들어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강민재에게 말했다.
“강 변도 얘기 들었지?”
“넵. 그럼 저희는 태식 씨네 직원분들하고 옷 바꿔 입고, 차 바꿔 타서 어디로 갑니까?”
“바로 사설 금고로 가서 자료부터 가져와야지.”
“알겠습니다. 휴, 저 이런 거 예전부터 엄청 하고 싶었어요. 검사 때도 정말 이런 거 약간 제 로망이었거든요. 후, 하. 근데 할 일이 전혀 없었죠. 그 꿈을 내가 여기서 이루는구나. 후후후.”
……겁먹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한데 말이다.
양신 휴게소에 도착하기 직전, 상길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시킨 대로, 주차 위치와 차 번호판이 한꺼번에 나오도록 사진 찍은 것이었다.
나는 상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길아, 나다.”
-넵, 변호사님. 문자 받아 보셨어요?
“그래. 우리도 지금 도착했어. 주차 위치는 너희 차 바로 뒤야. 지금 화장실로 갈 건데, 지금 줄 길어?”
-줄 엄청 깁니다. 저희는 지금 화장실 안이에요. 화장실 들어오자마자 가장 왼쪽 똥 칸, 맨 마지막 칸이랑 마지막에서 두 번째 칸에 저희 들어와 있어요. 차 변호사님은 마지막 칸으로 가시면 되고, 강 변호사님은 그 옆 칸 가시면 됩니다. 문에 고장 표시 붙여 두고 들어와 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사람이 붐비는 휴게소 화장실이라면, 그렇게 크게 시선이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강민재와 함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우리 뒤를 따라붙었던 차가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대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우리가 차에 돌아을 때까지 기다릴 심산인지, 내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사람 많은 휴게소에서까지 미행하겠답시고 따라다니면 놓치기 십상이라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
그게 자신이 둔 악수라는 것은 결코 모를 것이다.
“줄 엄청 기네요. 빨리 가죠.”
강민재가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 아까 뭘 잘못 먹었나. 배가 너무 아픈데요.”
남자는 듣지 못하지만, 강민재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했다.
아랫배를 문지르며 나 배탈 났다고 광고하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강민재가 지금 상당히 연기에 몰입해 있는데 훼방을 놓고 싶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받아 주었다.
그리고 차례가 돌아왔을 때, 우리는 약속한 칸으로 들어갔다.
“……이게 다 뭐야.”
“쉿. 쉿. 얼른 갈아입으시죠, 변호사님.”
칸 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태식의 똘마니가 시끄럽게 쉿쉿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태식의 똘마니는 단순히 옷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어디 소품실을 털어 왔는지, 분장할 만한 것들을 변기 뚜껑 위에 늘어놓아 두었다.
큰 뿔테 안경과 벙거지 모자, 그리고 탈부착식 콧수염과 마스크까지.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겠지만, 별걸 다 하는구나.
“차 키는 상길이가 가지고 있을 거야. 나머지는 태식이한테 들은 대로인데, 자세한 건 전화로 얘기하자고.”
그에게 내 옷을 벗어 주고, 나는 먼저 칸 바깥으로 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로 세면대 쪽으로 걸어가자, 나와 비슷한 꼴을 한 강변이 먼저 나와 손을 씻고 있었다.
“절대 안 들킬 것 같은데요.”
그는 거울 속의 자신과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나는 대충 젖은 손을 털며 화장실 바깥으로 나오는 길에 주위를 스캔했다.
“차 앞에 서서 담배 피우고 있어요.”
나보다 강민재가 먼저 그를 찾아냈다.
저 멀리 주차장에서, 그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차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차 키는?”
“받았습니다.”
“타자마자 바로 출발해.”
“넵. 하, 알감자 냄새 죽인다.”
강민재는 스낵 코너에서 풍기는 버터 냄새에 잠시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상길의 차에 도착했다.
차에 오른 뒤, 나는 뒤를 돌아 남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가 언제 올지 가늠하는 듯 화장실 주변을 흘긋거리고 있었다.
* * *
“열쇠요.”
카운터에 앉아 있던, 터질 듯한 근육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퉁명스립게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유민혁에게 받은 열쇠를 꺼내 그에게 넘겨주었다.
남자는 열쇠를 한참 동안 확인하더니, 곧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한 명만요.”
나의 뒤를 따라오려던 강민재는 남자의 두꺼운 팔에 가로막혔다.
방공호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보이는 철벽 너머에는, 금고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남자는 열쇠에 적힌 번호에 맞는 금고 앞으로 다가갔다.
열쇠로 금고를 연 뒤, 지문 인식까지 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작은 녹음기와 문서들이었다.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강민재를 퇴근시킨 뒤, 나는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다시 사무실로 나왔다.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쉴 수 없다.
할 일이 남았다.
강민재에게 말했듯이 사본 만들어 놓고, 사무실과 집에 분산시켜 보관할 생각이었다.
명화제약은 우리를 미행했고,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테니까.
막말로, 내가 자는 동안 내 집을 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놈들이다.
나는 불이 꺼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복사기 앞으로 다가갔다.
창고에서 가져온 문서를 복사기에 넣어 놓고, 자리를 비운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일을 확인하려 책상 앞에 앉았다.
“……아, 배터리가 없네.”
자리를 비운다고 노트북 배터리를 빼놨더니, 그새 방전되었다.
나는 책상 밑에 쭈그리고 앉아 코드를 찾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불을 켜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책상 밑으로 들어가 코드를 꽂으려고 할 때였다.
책상 밑을 짚고 있던 손바닥에 무언가 툭 튀어나온 것이 느껴졌다.
그리 크지 않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네모난 무언가.
나는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그 주변을 불빛으로 비추어 보았다.
‘이야, 대단한데.’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감탄사를 내뱉을 뻔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청기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