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97)
너희들은 변호됐다-197화(197/641)
식약청 위원회 구성원 대다수가 명화제약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방송이 송출된 후, 일주일가량 흘렀을 무렵이다.
“변호사님, 전화 오는데요?”
한창 사무실 식구들과 점심 식사 중이었던 나는, 강민재의 목소리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식당 바깥으로 나갔다.
“차주한입니다.”
-어, 차 프로. 나야.
“실례지만, 누구시죠?”
-하하, 서운하게 하네. 서부지검 박영기 차장이야.
“아, 차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서, 몰라뵀습니다.”
서부지검 박영기 차장.
일전에 조봉준 명예훼손 고소 건으로 서부지검에 갔을 때 마주쳤었다.
그때 조만간 차 한잔하자고 했었는데, 그 일 때문에 전화한 걸까.
하지만 지금 조봉준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라, 변호사가 사사롭게 차장을 만나면 보기 안 좋을 것 같은데.
-나야 당연히 안녕했지. 차 프로는 요즘 어때.
“저야 늘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차 프로한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해 주려고 연락했어.
“좋은 소식이요?”
박영기 차장이 나에게 전해 줄 좋은 소식이란, 그리 많지 않다.
조봉준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기로 했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 명화제약 수사 들어가기로 했어. 우리 쪽으로 떨어졌더라고, 그게.
이건 내가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식이다.
“아, 그렇습니까.”
-좋은 거 맞아? 왜 이렇게 덤덤해?
“좋은 거 맞습니다. 저희 의뢰인이 계속 그 사건 공론화하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빛을 발하게 되었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정확히는 우리는 명화제약 쪽 수사할 거고, 식약청도 수사 들어갈 것 같은데, 이건 어떻게 될지 정해진 게 없어. 아마 특임 기구를 만들 것 같은데. 일단 그냥 도는 이야기야. 아직 식약청 관련해선 정해진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식약청에서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일이 많다.
식약청 역시 국가 기관이라, 서로의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식약청 내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서, 외부 기관에서 수사해야 한다면 박영기 차장의 말대로 특임 기구를 만들 공산이 크다.
만일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된다면,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식약청이 법무부의 수사를 받는 상황이 되니까
“그런데 지금 아직 허가 취소가 발표된 상태가 아닌데, 수사가 가능한 겁니까?”
-아, 식약청에서 허가 보류 결정으로 돌릴 거야.
“하지만 식약청에서는 내사 결과 문제없었다고 이미 한 번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식약청이 허가 보류를 결정하고 검찰이 수사한다고 해도, 조금 순서가 맞지 않는 게 아닌지 염려됩니다.”
-그렇긴 한데, 지금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까 조사 결정 먼저 내린 거지. 지금이 몇 시지?
“한 시 좀 못 되었을 겁니다.”
-한 시에 발표 있으니까, 뉴스 한번 틀어 봐. 아, 그리고 차 프로 오늘 시간 좀 되나?
“네, 시간 됩니다.”
-그럼 청으로 좀 들어와. 자세히 얘기도 해야 하고, 또 긴히 할 말이 있고 해서.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찾아뵐까요?”
-차 프로 볼일 보고, 시간 될 때 와.
“그럼 3시까지 가겠습니다.”
-그래. 이따 보자고.
지금 들은 소식을 이 사안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문자로 전송한 뒤,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 사무장과 강민재가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는데, 그들은 내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텔레비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식약청은 명화제약에서 개발한 안트로졸 알파의 허가를 잠정적으로 보류하고, 명화제약의 임상 과정을 실사하고 청문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검찰 역시 명화제약의 안트로졸 알파 부작용 은폐와 관련하여, 김형중 대표 이하 임직원에 대한 수사를 실시할 것이라 발표하였……]문득 시계를 보니 1시다.
차장이 미리 언질을 준 것과 동일한 내용의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호사님!”
강민재가 나를 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거 된 거죠? 안트로졸 알파 출시 막힌 거죠, 이제?”
“그렇다고 봐야지.”
“그럼 우리 의뢰인도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겠네요. 오히려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니 상이라도 줘야 할 판이니까. 와, 진짜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강민재는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출 기세로 소리쳤다.
나 역시 기쁘기 한량없지만, 아직은 마음을 완전히 놓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또 어물쩍 조사 결과 안트로졸 알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약 이름만 바꾸고 새로 출시할 수도 있으니까.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사건 서부지검에서 맡은 것 같던데요.”
오 사무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화도 서부지검 박영기 차장입니다.”
“박 차장이요? 이 타이밍에 뭐 때문에 변호사님한테 전화를…….”
“식약청 결정하고 검찰 조사 개시 알려 주더라고요. 그런데 긴히 할 말이 있다면서 잠깐 청에 들어오라네요.”
“흐음…….”
오 사무장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음했다.
“목소리가 밝았던 걸 보면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조심하셔야죠. 이거 어쩌면 검찰이 변호사님 등에 빨대 꽂으려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 최종 목적은 어쨌든 안트로졸 알파가 유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빨대를 그냥 꽂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가를 톡톡히 받아 내야지.
* * *
“차 프로, 어서 와.”
차장실로 들어가자, 그는 찻물을 데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어서 앉아.”
소파에 앉자, 그가 내 앞에 놓인 잔에 뜨거운 물을 따라 주었다.
“뉴스는 봤어?”
“예, 전화 끊고 바로 봤습니다.”
“차 프로가 맡은 조봉준 씨 건도 불기소 처분 나갈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당연한 거지. 차 프로하고 조봉준 씨가 만들어낸 거야. 스스로를 구제한 거지.”
차장이 허허 웃으며 내 잔 안에 찻잎을 몇 개 넣었다.
“좋은 향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마시면 돼.”
“감사합니다.”
“나한테 물어볼 게 많을 텐데, 말이 없구만.”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제 궁금증은 당연히 아까 유선상으로 말씀 나눴을 때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입니다. 지금 식약청은 사건을 조사할 계제가 되지 못합니다. 식약청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식약청이 직접 실사를 실시하고, 청문회를 연다는 방침이라고 발표가 나왔던데……. 저는 이 점이 조금 의아합니다.”
“아직 식약청의 잘못이 명백히 밝혀진 건 없으니까 식약청이 하는 일까지 못 하게 할 순 없는 거겠지.”
그는 찻물을 머금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위원회 구성원이 명화제약과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그 위원회는 어쨌든 약사위와 식약청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합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약사위에서 추천한 3명 외에 식약청장이 임명한 모두가 다 명화제약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었고요. 이걸 명분으로 삼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마는……. 그래도 저는 식약청이 실사와 청문회를 진행하는 데는 부정적입니다.”
“차 프로 말 이해해. 하지만 상황이라는 게 그래. 알잖아.”
“…….”
“검사장님 말로는 이래. 이번에 수사를 진행하면, 차 프로 말대로 명화제약이 위원회 구성원에게 돈을 먹인 사실이 드러나게 될 거 아냐. 아무리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였다고 해도 뭔가 물질이 오갔을 테니까.”
“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식약청의 문제가 대두될 거라고. 우리가 그걸 발표하면, 식약청도 사건 당사자가 돼서 수사 대상이 되겠지. 그럼 실사나 청문회 들어가기도 전에 걔들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어. 그러면, 당연히 아까 말했던 대로 특임 기구가 편성되고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거고.”
차장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식약청의 입장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충분히 이해된다.
어쨌든 국가 기관이니, 그 위신이 상하지 않도록 끝까지 배려하겠다는 심리가 아닌가.
우리 같은 입장에서야 그런 거 다 봐 주면 언제 썩어 문드러진 기관을 정화할 수 있겠느냐며 따지고 들고싶어지지만, 이런 사건을 맡으면서 그런 역학관계조차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검찰이 하루라도 빨리 식약청의 문제를 잡아내야 해.”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인 것 같다.
박영기가 나를 서부지검까지 부른 이유 말이다.
“듣자 하니, 차 프로가 이번 일에 혁혁한 공이 있다고 들었는데. 유민혁 씨를 직접 설득한 것도 차 프로라면서.”
내가 대답하지 않자, 박영기 차장이 말을 이었다.
“명화제약한테 도청당한 것도 차프로 자네라고 하고. 난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그게 왜 의아하셨습니까?”
“조봉준 씨가 주축이라면 당연히 조봉준 씨를 도청해야 하는데, 도청 대상이 차 프로라는 게.”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명화제약이야, 당연히 우신 계열사니 내가 조봉준의 변호를 맡은 시점부터 이 사건의 주축이 나라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내가 내세운 주역은, 어디까지나 조봉준과 최종현이었다.
명화제약에 개인감정을 두고 보복했다는 억지 여론이 생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기가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면, 보복을 비난하는 여론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내가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면서는 무조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사람에게 적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임을 가장 잘 안다.
차라리 이번 참에, 우신 전문 변호사로 이미지를 한 번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일단 얘기를 더 들어 볼까.
“난 이번 검찰 조사에, 차 프로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제가 말입니까.”
“그래.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고, 자존심도 조금 상하지만, 차 프로가 검찰보다 수사력이 더 좋은 것 같아서 말이야. 하하.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선 우리보다 차 프로가 전문가잖아.”
자존심도 내려놓고, 일단 스피드 레이싱의 승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식약청이 본격적인 수사의 주체가 되기 전에, 식약청을 완전히 배제하고 싶은 욕망 말이다.
그러한 욕심이 자신의 출세욕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 박영기 차장과 손을 잡았을 때의 가장 큰 메리트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있다.
이전 삶에서 내가 알던 박영기 차장은 정말로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 삶에서는 많은 조건들이 바뀌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 일으키듯이, 그런 자잘한 조건들이 박영기를 어떻게 바꾸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분명히 다음 인사 때 박영기 차장이 영전할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걸 욕심내는 것은 아닐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정말로 명화제약의 악행을 단죄하고 싶은 검사로서의 욕심일까, 아니면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일까.
“저야 여러 가지 여건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공조할 의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해 봐.”
“……차장님께서는 제가 무엇을 위해 이 사건을 이렇게 키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내 물음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자네의 정의감이 아니라면 뭐겠어.”
이런.
나는 박영기 차장의 머리 위에 떠오른 글자를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그는 나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굉장히 이상적인 법조인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차장님께는 이번 수사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실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구만.”
“그냥, 궁금했습니다.”
“나 역시 같아. 정의 구현이 아니면 뭐겠어.”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