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98)
너희들은 변호됐다-198화(198/641)
박영기 차장의 말에 연이어 거짓 판정이 뜬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이전 삶에서 그가 개인의 영달에 욕심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더 높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보다 기수가 높은 후배에게 검사장 자리를 내주고 학자로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사실은 그저 겉으로 포장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영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래 기수 후배에게 밀려 실패하고, 절망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아까 내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이 삶에서 많은 것이 바뀌어서 그가 다른 마음을 품게 된 것일 수도 있이 사건이 서부지검으로 떨어지자, 기회를 잡고 싶어진 것일까.
나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군요.”
설령 그가 명예욕 때문에 안트로졸 알파 사건에 욕심낸다고 해도, 그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서부지검의 차장검사다.
기수로 따지면 아직 퇴직과는 거리가 멀고, 얼마든지 더 위로 올라갈 자격과 능력이 있다.
그 정도 되는 위치에서,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더 신기한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의 진의를 확인해 본 까닭은 한 가지였다.
처음엔 어쩌면 박영기 차장과 인연을 조금 더 깊게 만들면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욕망이 큰 사람을 어쩐지 경계하게 된다.
황영찬이라는, 권력을 쥐기 위해 애쓰던 괴물을 이미 한 번 겪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난 이제 차 프로 생각이 궁금한데. 도와줄 수 있겠어?”
나는 박영기 차장을 바라보았다.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면, 차장님께서는 영전하시는 겁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박영기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말에도, 거짓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
역시 영전을 바랐구나.
뭐, 그렇다고 해도 박영기와 이번 한 번 합심한다고 해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이후에도 그와 주기적으로 관계를 가지며, 그와 지금 이상의 친밀함을 쌓을 때다.
어차피 나에게도 검찰과 공조하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
이름을 알리기에도, 논공행상하기에도.
“공조하겠습니다.”
“좋아. 차 프로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 우리도 차 프로와 공조 사실을 밝히고, 차 프로 밀어줄 테니까. 선배들이 해야 하는 일이 그런 거 아니겠나. 후배들 길에 꽃잎 뿌려 주는 거 말이야.”
[진실]허, 이런.
이건 또 무슨 조화지.
이 사건 담당 검사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제치고 나를 밀어준다?
박영기, 혹시 자신의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를 거기에 넣고 싶은 걸까.
“저야, 검사도 아닌데요.”
“그래도, 이 일을 처음 빌드한 건 차 프로잖아. 안 그래? 그럼 그 사람이 공로를 차지하는 게 맞아. 차 프로, 내가 불렀을 때 내가 차 프로 이겨 먹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예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 사무장의 말도 있고 해서 어느정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건 아닙니다.”
“아니긴. 하하. 그럼 담당 검사를 소개해 줘야겠구만. 이 사건 수사하면서 서로 도울 일이 많을 테니까. 우리 후배들끼리 서로 으싸으싸 하는 모습 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지.”
그는 인터폰 버튼을 누르며, 간단하게 말했다.
“들어오라고 전해 줘요.”
박영기 차장의 말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 육중한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차장님.”
그리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조봉준 명예훼손 사건의 담당 검사인 정창윤이었다.
“어, 정 프로. 이리 와서 앉아.”
박영기는 내 맞은편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창윤은 표정 없는 얼굴로 착석했다.
박영기는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정창윤 앞에도 찻잔을 놓고 따뜻한 물을 따라 주었다.
“차 프로, 이번 명화제약 사건 맡게 된 정창윤 검사야. 서로 이미 잘 아는 사이지?”
박영기의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이번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꽤 의욕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담당 검사를 정창윤으로 배정한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내가 보았던 검사 중에 가장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태광과의 커넥션이 있을 거라 예상되는 인물이기도 하지 않은가.
한 번 태광의 컨택을 받으면, 그 소문은 여기저기 파다하게 퍼진다.
사사롭게 계속 만나며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쩐지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조봉준 씨 사건 때문에 서로 조금 불편했겠지만, 결국 불기소 처분 결정됐으니까 앙금 같은 건 없겠지? 뭐, 둘 다 프로니까 그런 사건 하나하나에 감정 가질 이유는 없겠지만.”
“네.”
정창윤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차 프로도 알겠지만, 정 프로가 의사 출신이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보다야 훨씬 그쪽 지리에 밝을 것 같아서.”
“차장님.”
“응?”
“차 변호사는 이제 검사 신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창윤의 말에, 박영기가 머쓱하게 웃었다.
“아, 내가 옛날부터 차 프로, 차 프로 불러 버릇해서 입에 붙었나봐. 그래, 차 변. 차 변도 불편했으면 사과하지.”
“아닙니다.”
“자. 그럼 두 사람 서로 소개도 해줬으니, 얘기 잘하고. 늙은 선배는 이제 자리를 비켜 줘야겠지?”
박영기의 말에, 정창윤과 나는 그에게 인사한 뒤 차장실을 나왔다.
정창윤과 공조 수사라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진실을 알아내려고 하기보다 합의만 바라는 그가, 과연 그 무엇보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한 이 수사에 적합한 인물일까.
“차 변호사님.”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데, 등 뒤에서 정창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잠깐 제 방에 들렀다 가시죠.”
불편한 초대다.
“커피 뭐로 드십니까? 믹스? 블랙?”
“물로 부탁드립니다.”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정수기 앞으로 다가간 정창윤은, 느긋하게 커피와 물을 가져왔다.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나요.”
그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뭘 말입니까.”
“결국 원하시는 대로 됐잖습니까. 조봉준 씨도 불기소 처분 났고, 이렇게 사건을 키운 보람 있게 검찰조사까지 진행하게 됐고.”
“그런가요.”
대충 박영기에게 들은 모양이라, 굳이 부인하고 싶진 않았다.
아무렇게나 대답하자, 정창윤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맨 처음 안트로졸 알파에 문제 있다고 기사를 낸 의학 전문 기자 말입니다.”
“네.”
“그 사람에게 제보한 게 차 변호사님이십니까?”
“그런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이 사건 맡기 전에도, 조봉준 씨 사건 담당 검사였으니까요.”
“관심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그럴 리가요.”
정창윤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학교 선배입니다. 그 기자.”
아, 이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다.
정창윤에 대한 조사를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이미 그의 약력은 알고있어서 태광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팠으니까.
“그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조봉준 씨하고 최종현 기자가 방송을 하는 걸 보고, 그 제보자가 두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요. 제보는 익명으로 왔다고 하니까. 근데 그 두 사람이 결국 차 변호사님하고 함께 움직이는 분들이니, 제보한 분도 차 변호사님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차 변호사님.”
“네.”
“사회성 부족한 건 여전하시네요.”
그의 말에, 나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조봉준과 함께 그를 만났을 땐, 나와 옆방을 쓰던 과거를 잊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 역시 해묵은 기억이라 잘 떠오르진 않았다고 해도, 그가 그리 기억에 남는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사회성 부족한 건 여전하다는 소리는 뭐지.
“제가 사회성이 부족했습니까.”
“아무래도요. 대화가 뚝뚝 끊긴다는 느낌이니까요.”
“그건 정 검사님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사돈 남 말도 이런 남 말이 없었다.
“제가 조봉준 씨 사건에서 합의를 보라고 말씀드린 게 기분 나쁘셨군요.”
“기분이 나빴다기보단, 검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는 커피를 홀짝이더니, 한쪽에 산처럼 쌓인 서류를 뒤적이다 파일 하나를 꺼내 놓았다.
거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정도의 굵은 파일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알아볼 만큼 알아봤고. 그 의학 전문 기자와 차 변호사님 얘기를 했던 것도, 조봉준 씨 소환 전이었습니다.”
“의학 지식이 풍부하시고, 아실 만큼 아신 분이 그렇다면 왜 저희 주장을 계속 넘기고 합의 보라고 하신겁니까.”
정창윤은 무어라 말할지 망설이는 듯 잠시 고민하다가, 곧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확히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저도 열심히 파보겠지만……. 상대가 우신이고, 우신은 은폐의 선수가 아닙니까. 그러니 결국 이 사건도 묻히고 말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사건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검사는 아주 많이 바쁘니까요. 게다가 조봉준 씨가 기소된 건 경범죄였기 때문에, 떠들썩하게 조사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요.”
검사는 한 달에 수백 개의 사건을 처리한다.
그날, 우리에게 자신은 바쁜 사람이라며 면박을 주었던 것도 떠오른다.
나도 한때 형사부 검사였기 때문에 이해한다.
사건은 중범죄와 경범죄로 나뉘고, 경범죄는 중범죄에 비해 깊게 파고들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경범죄까지 깊이 팠다가는, 배당된 사건을 해결할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좋은 대처였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우리가 제보했던 의학 전문기자와 아는 사이였고, 우리가 조사를 받으러 오기 전에 이미 그 정보를 입수했다면 우리가 왜 그랬는지 파악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사안에 무엇이 걸려 있는지는, 한때 의사였던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묻히고 말 사건 같아서 합의를 종용했다는 게 합당한 말인가.
“저와 공조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게 탐탁지 않으실 것 같아서 일단 변명을 하려고 말씀 나누자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진 알겠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검사가 있습니다. 땅개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검사도 있고, 정치 검사도 있지만……. 그 모든 검사의 공통점은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그 업무를 전부 소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으로 일 처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간 안에 일을 끝낼 수가 없으니까요. 한 사건, 한 사건 전부 공들여 파는 거, 당연히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시간에 쫓겨 하지 못한 일들은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고스란히 사건 피해자들에게 갑니다. 그렇게 감당하지 못한 사건들의 피해자는 그 시간 동안 더 고통 받을 겁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며 천천히 말을 늘어놓았다.
“차 변호사님은 처음 입사 때부터 유명하셨죠. 천재라고요. 본인 사건도 다 해결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남의 사건도 해결해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시간이 남진 않았습니다. 날마다 야근이었고요.”
“모두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야근을 해도, 본인 것도 다 소화하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하죠. 남의 사건? 밥 먹을 때 물어보면 의견 조금 말해 줄 순 있지만, 대신 수사하는 일은 절대 못 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차 변호사님 같은 이상을 품고 검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결국 시간에 쫓기고 체력에 쫓기고, 업무 환경에마저 쫓기고 나니 타협할 수 밖에 없었죠. 그건, 다른 검사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변명이군요. 타협하지 않은 검사들도 많습니다.”
근무 환경이 극악 수준이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검사들도 많다.
나 역시 그랬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바보라서 타협하지 않은 것일까.
“이것 보십시오. 차 변호사님은 범재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합니다. 타협하지 않은 검사들, 당연히 있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의 업무 평가를 확인하면 개판일 겁니다. 미제 사건이 수두룩할 거고요. 결국엔 땅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겠죠. 차 변호사님하고는 다르게요.”
“정 검사님이 범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경력이 화려하시지 않습니까.”
“전 그냥 공붓벌레입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알고 있을 뿐이죠. 차장님께 차 변호사님과 공조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던 건 저였습니다. 물론, 차장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마는.”
이것도 다소 놀라운 사실이다.
“옛날엔 차 변호사님을 보고 있으면 질투가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차이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알고 있으니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고, 차 변호사님은 본인 능력이 출중하니 현실과 타협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역시,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는 좁힐 수 없군요.”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차 변호사님. 제가 태광 컨택을 받았다고 해서 우신의 뒤를 봐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차 변호사님 역시 태광의 컨택을 받았지만, 이렇게 우신 그룹과 싸우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내가 그 부분을 두고 염려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생각해 보면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자신과 동기인 데다, 옆 방을 썼던 사람이 담당 검사가 된다면 당연히 그에 대해 조사해 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공조 수사, 잘해 봤으면 합니다. 이번 사건은 제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첫 사건이 될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