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199)
너희들은 변호됐다-199화(199/641)
검찰 수사의 시작은 명화제약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지한철과 김진형, 그리고 이보연이었다.
나머지는 학연, 지연, 혈연 따위로 뭉쳐진 관계였기 때문에, 물질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할 수는 없어서였다.
금감원에서는 우리가 인터넷 방송에서 공개했던 것과 같이, 저 세 사람이 안트로졸 알파 허가 전부터 명화제약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확인 자료를 검찰에 넘겨주었다.
심지어는 인터넷 방송에서 그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튿날 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팔아 치웠다는 사실까지도.
이에 법원은 이 세사람에 대한 가택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였고, 나 역시 촉탁 수사관으로서 함께 현장에 가게 되었다.
내가 몸을 실은 곳은 지한철의 집으로 향하는 승합차.
저 중 지한철의 죄질이 가장 무겁고, 또한 가장 큰 증거가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지한철의 집으로 가는 길, 잠자코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정창윤이 입을 열었다.
“굳이 안 오셔도 됐는데요.”
왜 네가 여길 따라오느냐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건 정창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압수수색은 수사관들이 나가서, 검사가 직접 나가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세 군데로 나누어 나가는 것이니 직접 검사도 움직이는 모양이긴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습니까.”
지한철의 집은 사대문 안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였다.
정치인과 재벌, 그리고 연예인들이 모여 산다는 지대 비싼 동네.
강민재 역시 이곳에 산다.
오늘 아침에도 여기에 함께 오고 싶다고 어찌나 떼를 쓰던지.
애를 키우는 기분이다.
“서부지검에서 나왔습니다. 2010년 7월 21일 자로 발부된 압수수색 영장 집행하겠습니다. 여사님,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거 그대로 여기 내려놓으시고요, 지한철 씨, 다른 데로 이동하지 마시고 여기 그대로 계세요.”
정창윤 방 수사관의 말과 동시에, 수사관들이 일제히 그의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목표한 물건은 장부였다.
특히 지한철 같은 경우, 명화제약 주식의 0.1%를 보유하고 있었을 정도라면 기존에 명화제약 대표 김형중과 어느 정도 주고받은 것들이 있었으리라 예상된다.
특히 주식을 받은 것이라면, 무언가 하나 정도는 문서로 남겨 두었을 것이다.
아무리 서로 불온한 목적으로 의기투합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이일수록 물질적으로는 확실히 해 두려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니까.
“으, 물고기 엄청 징그럽게 생겼네.”
거실 벽면에 위치한 거대한 수조 앞에 선 수사관들이 수조 덮개를 열며 말했다.
그들은 소매를 어깨까지 걷고 장갑을 낀 채로 수조 바닥을 손으로 일일이 헤쳐 보기 시작했다.
요즘 그런 문서를 누가 이렇게 보관하냐, 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컴퓨터는 하드를 들고 가서 복구하면 나올 것은 다 나오는 데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기계는 못 믿는다며 수기로 쓰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이렇게 압수수색이 나올 경우를 대비하여 생각지도 못한 곳에, 평생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숨겨놓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흔하게는 변기와 화장실 천장이고, 특이하게는 딸의 곰돌이 인형 배 속에 넣어 놓은 경우도 보았다.
나는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간접 조명을 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인테리어에 꽤나 힘을 준 티가 난다.
한국식 전통 가옥 인테리어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서 삼청동 기와집에서나 보일 법한 장치가 보였다.
오히려 서양식 인테리어보다 돈이 더 많이 들었을 텐데, 명화제약 주식 0.1%로 이만큼의 부를 축적한 것일까.
“…….”
그렇게 계단을 밟아 오르던 나는, 중간에 멈춰 섰다.
벽면을 가득 채운 큰 그림에 문득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그림 옆에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양진화, <혼돈>유화, 캔버스.]
마치 미술관이라도 되는 듯 멋지게 작품 정보까지 적어놓았다.
나는 2층까지 꼼꼼히 둘러본 후, 1층으로 내려가 수사관들이 가져온 노트북을 폈다.
지한철과 아내, 그리고 가사 도우미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사관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 부엌에 앉아 노트북에 그림을 검색했다.
[우미 갤러리]검색 결과, 가장 위에 나오는 곳은 익숙한 이름의 갤러리였다.
우미 갤러리라.
겉보기에는 재벌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 장소로 보이지만, 겨우 그 정도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재벌들의 자금 세탁소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니까.
우미 갤러리에 있던 이 그림이 왜 지한철의 집 한복판에 있을까.
‘양진화 화백.’
포털에 화가 이름을 검색하자, 그의 그림이 어느 정도 가격대에서 거래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개 2억에서 3억 사이.
이 정도 금액이면 안트로졸 알파 허가에 도움을 준 대가로 받아 낼만한 돈이다.
더 큰 돈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이상으로 욕심내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명화제약 주식을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한철에게는 주가 폭등이라는 또 다른 뇌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정 검사님.”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정창윤을 데리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랐다.
그리고 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이 그림, 우미 갤러리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우미 갤러리라면,”
“가회동에 있는 자금 세탁소 말입니다. 그림은 대충 2억에서 3억 정도 될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 그림이 여기 언제 들어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이 그림이 안트로졸 알파 허가 대가로 받았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지한철이 원래부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 집 전체에 그림이라고는 이거 하나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미 갤러리의 존재를 알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건 서양화인데, 지한철의 취향은 전혀 달라요.”
그의 집안을 메우고 있는 것은 동양식 앤티크 가구들이었다.
이 그림은 이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지한철의 취향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다.
그런 그림을 여기에 들여놨다는 것은, 스스로 매입했다기보단 선물 받았을 공산이 크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그림이, 우미 갤러리에서 나온 거라면 더욱 그렇다.
“이 그림, 올해 1월까지는 우미 갤러리에 있었던 걸로 확인됩니다. 인터넷에 버젓이 나옵니다.”
“우미 갤러리에 자료 요청해야겠군요.”
우미 갤러리에 자료를 요청한다고 해도 곱게 자료를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이런 일에 이름을 더럽히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재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 혹시라도 이렇게 세탁에 실패한 사례가 공개되면 고객을 잃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하시죠.”
* * *
[오진식 식약청장은 안트로졸 알파 허가를 위해 열린 중앙 약사 심의 위원회의 위원들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또한, 식약청은 안트로졸 알파의 허가를 잠정 보류하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명화제약 측은 식약청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행정 소송을 통하여 안트로졸 알파의 누명을 벗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안트로졸 알파 허가 사건 이후, 식약청에서 약품을 허가할 때 직접 임상을 실사하지 않고 서류로 심사하는 방법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직접 임상에 관여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서류로 허가 여부를 가리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며, 기관의 투명성이 문제가 아니냐는…….]
“아니, 대체 어떻게 했길래 식약청이 바로 청장을 팽해?”
최종현은 뉴스를 보며 감탄을 반복했다.
내가 원하던 완벽한 결과였다.
이제 명화제약은 식약청에 안트로졸 알파 허가 취소에 대한 행정 소송을 걸 것이고, 지루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다.
서로 물고 뜯는 과정에서, 명화제약은 식약청의 약점을 캐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식약청 역시 명화제약의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할 것이다.
특히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민우당에 갈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책임을 지고 사퇴한 오진식 식약청장만 봐도 답이 나온다.
민우당은 절대로 명화제약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엮이고 싶지 않다고 발을 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긴밀한 사이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금감원에서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으니, 상장 폐지도 그리먼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최종현과 조봉준이 더욱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웃차, 됐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하겠다며 껑껑대던 조봉준이 손을 털며 거실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 봐요. 촉탁 수사관 잠깐 하더니 비밀이라고 말도 안 해주고. 우리도 이 사건에 지분이 있다고!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비밀을 유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입을 닫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현과 조봉준 역시도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본인들은 쉬겠다며 놀러 다니기 바빠서 말할 겨를도 없었다.
뭐, 그래도 그 덕에 나는 이번 수사에 온전히 힘을 쏟아부을 수 있었고, 그래서 결과도 생각보다 빠르게 나오지 않았던가.
“별거 없습니다. 식약청장이 명화제약한테 돈 먹은 게 들통났어요.”
“어떻게?”
“지한철 집에서 그림이 나왔습니다. 우미 갤러리에서 들어간 그림인데, 그게 억대를 호가하는 그림이에요.”
처음 그 그림에 대해 지한철에게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구매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는 구매 영수증을 보여주지 못했고, 우미 갤러리에 돈을 지급한 사실 역시 입증하지 못했다.
그래서 검찰은 안 그래도 주식 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로 징역을 살판인 그에게, 그 그림으로도 문제를 삼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지한철은 결국 그 그림을 명화제약 대표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고 털어놓았고, 그 그림이 그 집으로 들어오던 날 차고 CCTV 영상을 넘겨주었다.
그의 집에 설치된 CCTV 전체는 당연히 압수수색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영상 중에 그런 내용은 없었던 터라 우리는 꽤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의심 많은 지한철은 혹시라도 김형중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뗄 것이 염려되어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한배를 탔다고 해도 사람을 그냥 믿으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쨌든, 검찰은 우미 갤러리에서 지한철의 집으로 온 트럭이 나간 길을 따라 도로에 설치된 CCTV를 전부 분석했다.
그리고 그 트럭이 지한철의 집에 들렀다가 식약청장 오진식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포착하여, 결국 오진식의 가택에도 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오진식의 집에 있었던 그림은 10억을 호가하는 해외 화백의 그림이었고, 역시 오진식도 지한철처럼 스스로 구매했다고 잡아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증빙할 수 없어 그대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차 변 나온다.”
그리고 검찰 브리핑을 맡은 박영기는 그 자리에 나를 함께 세웠다.
물론 나는 뒤에 다른 검사들과 함께 서 있기만 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촉탁 수사관이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검찰 소속이 아닌 내가 그런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꽤나 눈에 띄는 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 중에서는, 내가 수사 과정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것도 꽤 많았으니, 내 이름을 알리겠다는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한 셈이다.
“차 변 끝까지 숨으려고 하더니, 결국엔 공개해 버렸구만.”
“그게 맞는 거지. 차 변이 다 했는데 이 공이 차 변한테 안 돌아가면 억울하잖아.”
억울하진 않았지만, 공개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예상했던 대로 우신에게 보복하기 위해 명화제약을 걸고넘어졌다는 억지 비난 여론도 조금 있긴 했지만, 이미 안트로졸 알파의 허가가 취소된 마당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차 변은 이제 뭐 할 거야?”
“진실을 밝히는 건 국가 기관에 맡겨야죠. 하지만 두 분은 계속 방송 달리셔야 합니다. 어차피 식약청하고 명화제약이 소송으로 붙게 생겼으니, 여전히 화수분처럼 계속 뭐가 나올 테니까요.”
“우리야 당연히, 명화제약 상장 폐지까지 달려야지.”
최종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이따 저녁에 소주나 한잔할까? 어쨌든 사건 마무리 단계에 왔으니까, 팀 회식 한 번 해야지.”
“회식하는 건 좋긴 한데, 오늘은 곤란합니다.”
나는 소파에 쓰러지듯 앉으며 말했다.
“아, 왜! 차 변은 맨날 시간 안 된다고 하네. 혼자 세상에서 제일 비싼 척한다니까.”
“……오늘은 정말 약속이 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번번이 거절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하니 웬만하면 오늘 함께 회식하고 싶지만, 선약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다.
다름 아닌, 강관웅 전 대통령으로부터의 호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