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
너희들은 변호됐다-2화(2/641)
2008년.
작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전 세계에 금융 위기가 불어닥친다.
얼마 전에는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노인이 방화를 저질러 국보 1호 문화재 숭례문이 소실됐다.
화마에 석반만을 남긴 채 모조리 잿더미로 변해 버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한미 FTA 비준 공방도 2008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슈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을 든 시민으로 뒤덮이고, 특히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가 온갖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고, 북한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병에 걸려 오늘내일한다는 소식이 맞물려 전해지는 해다.
그리고 나에게는, 미궁에 빠질 뻔한 <은천동 묻지 마 연쇄 살인>의 범인을 극적으로 검거하여 법정에 세웠던 해였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인면수심의 살인 사건.
용의자 조진태는 13명의 여대생을 납치, 강간 후 살해했음에도 반성하는 기미 없이 실실 웃으며 구속되었다.
그 모습이 전파를 타자,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나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했고, 오늘은 그 선고 기일이었다.
“판결 선고합니다.”
하늘색 미결수 수의를 입은 피고인이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다.
구속 때부터 첫 재판 당일까지 실실 웃고 있던 놈이 표정을 바꾼 것은, 국선 변호사의 변호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주문,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와아아아아!”
“선고가 끝나지 않았으니 정숙해 주십시오.”
방청석에서 피해자 유가족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이기에,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2018년 당시까지 놈은 교도소에서 썩어 가고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검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드려 죄송할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연신 허리를 숙이는 유가족들의 모습.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광경이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눈 뒤, 검사실로 돌아왔다.
“휴.”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마터면 중요한 재판을 망칠 뻔했다.
다행히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차마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고, 사흘 전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지이이잉-
검사실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윤세연 기자]윤세연 기자.
거대 신문사인 일중일보 기자다.
아마 조진태 사건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전화했을 것이다.
이미 형사부에서는 인생 열심히 살기로 유명한 여자였다.
심지어는 형사부 회식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서 술 취한 검사들을 상대로 정보를 빼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윤 기자 또 전화 왔나 보네요?”
오 계장이 내가 휴대폰을 뒤집는 것을 보며 물었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오계장이 흐흐 웃는다.
“어쨌거나 형량 안 줄이고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오늘 꿈자리가 좋았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검사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십니까?”
오 계장이 소주잔 넘기는 시늉을 하며 눈짓했다.
“꼼장어 어떠십니까. 제가 쏘겠습니다. 왠지 이번에는 감이 와요. 흐흐 ”
“이런, 어쩌죠. 선약이 있습니다.”
‘감이 온다’는 것은 좋은 꿈을 꾼 뒤 로또를 샀을 때 오 계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오 계장은 매주 놓치지 않고 로또를 샀다.
그러나 그는, 2018년까지 단 한 번도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로또가 당첨될 팔자가 아닌 것 같다.
1등 번호에서 하나씩 뒤로 밀려서 안 된 적도 있었으니, 로또의 신이 고의적으로 그를 비켜 가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말해 주면 실망하겠지.’
로또는 그가 사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벌써부터 빼앗고 싶지 않다.
‘믿지도 않겠지만.’
모든 미래를 아는 채로 과거를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검찰청 복도를 걸어 다니는 것조차 정신이 사납다.
나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
“이야, 차 프로! 사형 선고 떴다며? 크으. 통쾌하다, 통쾌해.”
“안녕하십니까.”
“아주 피곤에 절어 있구먼. 큰 사건 맡느라 고생이 많았지?”
“아닙니다.”
“허허, 그래. 오늘도 수고.”
커피 자판기 앞에서 만난, 현재 2008년 기준 공판 1부 부장검사.
한때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대기업 아들내미들 병신 짓 한 거 뒤치다꺼리하고 줄 서서 여의도 갔었지.’
검찰청 짬밥 15년 먹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자부심이 아닌 환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신 회장을 법정에 세울 때까지는 자부심이라는 게 남아 있긴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우신 공화국이라는 이 나라에서도 우신 그룹 총수에게 철퇴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내 인생 전부를 걸었던 마지막은 어땠는가?
권력 없는 범죄자 잡는 것은 쉬웠어도, 권력을 쥔 범죄자는 눈 뜨고 놓아주어야 했다.
그것도 그냥 놓아주는 게 아니라, 감히 ‘권력자’를 건드린 대가까지 치러야 했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15년간 쌓아왔던 명예와 목숨이었다.
아무리 책 잡힐 일 없이 대비했더라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흠이 없다면, 흠처럼 보이게 메이드 하면 된다.
결벽증에 가까운 중립성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공직자 신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검찰 조직에 속한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만간 사표를 써야겠군.’
2008년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조진태 사건까지 마무리 짓고 검찰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10년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검찰의 힘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
돌아가신 부모님.
그밖에 내가 잃은 수많은 것들.
그 모든 고통의 원인인 우신 그룹까지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조진태 사건 끝장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나를 향한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아, 유 프로. 오랜만이네.”
“네? 어제도 뵈었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그랬나.”
“정신이 없으신가 봅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죠. 흐흐. 그런데 설마 조진태 그 새끼 항소하진 않겠죠?”
“안 하겠지.”
조진태는 항소하지 않는다.
항소해 봤자 여론만 나빠진다는 걸 놈도 알고 있으니까.
모범수로 어찌어찌 감형이라도 받아 보려면, 지금부터 미진하게라도 여론에 밉보이면 안 된다.
물론, 감형받아 봤자 크게 소용은 없을 테지만.
“하하, 그럼 다행이고요. 저는 선배님과 달리 컨디션 좋습니다! 방금 피의자 자백 받아냈거든요.”
“그래?”
“자랑하는 겁니다, 선배님. 칭찬 좀 해 주십시오. 하하.”
‘이 사람은 통영지청에 발령 나서 결국 사표 썼지.’
그는 현재 형사부 검사.
몇 년 뒤 대기업 채용 비리를 털게 되는 그는, 적당히 덮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이후 자그만 사무실을 개업했다고 듣긴 했는데, 잘 안 됐던 거로 기억한다.
“그래, 수고했어.”
“하하, 감사합니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나는 멀어지는 유 검사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지었다.
검찰에 내 남은 정마저도 뚝 떨어져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큰일이었다.
사표 낼 결심을 했는데도, 이곳에 1분 1초도 있고 싶지 않다.
* * *
“검사 형님, 선처 좀 해 주쇼.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화려한 셔츠를 펄럭이며 피의자가 능글거렸다.
구속 수사가 아니었기에 여유만만이었다.
예전엔 저런 놈들 보면,
-누가 네 형님이야, 이 새끼야. 여기가 니들 안방이야? 어린 새끼가 인생 조진 게 불쌍해서 좋게 대해줬더니, 정신 안 차려?
하고, 함께 소리치곤 했는데.
“입 다물고 보내 줄 때 가세요.”
“검찰 조사 별거 없구먼!”
피의자가 배를 앞으로 불쑥 내 밀고 팔자걸음으로 검사실을 나갔다.
짬을 오래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저런 걸 봐도 한심할 뿐, 기분이 나쁘진 않다.
“검사님, 웬일이십니까? 저런 새끼들 곱게 보내 주시고?”
피의자가 나가기가 무섭게 오 계장이 다가와 물었다.
“저런 놈들 훈계하며 소모할 기력이 아깝습니다.”
“크크. 검사님, 며칠 사이에 스타일이 엄청 변하셨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부장님 메신저 못 받으셨습니까? 방으로 오라고 하시던데요. 좀 화나신 것 같았습니다.”
부장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황영찬 형사 3부 부장검사.
미래에는 서울 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영전하는 인물.
그리고 검찰총장으로의 영전을 약속받고 내 뒤통수를 친 그 개새끼다.
“안 오면 직접 오겠다고 하시던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사흘간 부장의 문자를 무시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뿐인가?
길 가다 마주칠 것 같으면 일부러 돌아갔고, 검찰청 내부 인트라넷인 이프로스 메신저도 읽지 않았다.
평검사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검사실로 쳐들어와서 뭐 하는 거냐고 노발대발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인데, 그는 사흘이나 참았다.
인내심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 테지만.
“없었습니다.”
더는 무시하면 안 되겠지.
나는 부장검사실로 향했다.
“차 프로. 얼굴 보기 참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