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0)
너희들은 변호됐다-20화(20/641)
양 검사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증거입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희도 방금 휴정 중에 입수한 증거라 사전에 신청할 수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이니 허락해 주십시오.”
“휴……. 양측, 앞으로 나오세요.”
고일국 판사는 벌써부터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고 있었다.
법대 앞에서 마주한 양 검사는 침 튀기며 소리쳤다.
“재판장님,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증거입니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증거를 채택할 수는 없습니다!”
“변호인. 증거물의 성격과 그 내용이 어떻게 됩니까.”
“피고인이 무죄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동영상이고요.”
“동영상?”
양 검사는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니, 오금이 저린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우선 증거를 보고 채택할지 말지 재판부의 합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재생을 기다리는 동안 법정에 무거운 침묵이 흘렸다.
김형준은 덜덜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눌러 막았고, 김연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위이이잉-
컴퓨터가 USB를 인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결코 크지 않은 소리였음에도 증폭기를 달아 놓은 듯 법정 내에 시끄럽게 울렸다.
모니터에 동영상 플레이어가 팝업 되었다.
재생 버튼이 눌리자, 조금의 지체도 없이 어떤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얘기 좀 하자니까!”
어딘가에 숨겨 놓은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영상이었다.
영상 상하단의 일부가 검게 가려져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쿵쿵! 쿵쿵!
안방 문을 걷어차는 소리, 무언가로 부수려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들썩거렸다.
“문 안 열면 집에 있는 거 씨발, 다 때려 부술 거야!”
그 말에 놀란 여희숙이 문 쪽으로 다가가자, 김철환이 그녀를 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지 말라는 것 같았지만, 여희숙은 눈을 질끈 감고 잠긴 문을 열었다.
“얘기 좀 하자는데, 왜 말을 안 들어. 어?! 얼굴 보고 똑바로 얘기하라고!”
그리고 문 사이로 나타난 것은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김형준이었다.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고, 외조모는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형! 하지 마! 말로 해, 어? 말로 해!”
김연준이 뒤따라 들어오며 김형준의 손에 들린 야구 배트를 붙잡았다.
얇은 라텍스 장갑을 낀 김형준의 손이 우악스럽게 김연준을 뿌리쳤다.
힘에 떠밀린 김연준은 서랍 모서리에 등이 찍혀 고통스러워했다.
“비켜, 이 고아 새끼야!”
“형준아, 정말 왜 이러니……. 야구 배트 내려놔라. 흥분 가라앉히고, 아버지랑 얘기하자. 응?”
김철환이 패닉에 빠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희숙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친자식이나 잘 키울 것이지, 왜 이딴 고아 새끼를 입양해서 헛돈을 쓰냐고, 씨발!”
“형준아, 네 사업,”
“닥쳐!”
김형준이 김철환을 걷어차며 그를 침대 밑으로 쓰러트렸다.
그리고 야구 배트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억! 윽!”
제대로 신음을 토할 틈조차 주지 않고 구타가 이어졌다.
“여보!”
여희숙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고, 김연준이 다시 김형준을 향해 돌진했다.
“그만해, 제발! 하지 마! 이러다 큰일 난다고!”
“놔, 씹새끼야! 근본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끼어들어!”
김연준이 그에게서 다시 야구 배트를 빼앗으려 했다.
각도가 맞지 않아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김형준이 김연준의 명치를 팔꿈치로 찍은 것 같았다.
김연준이 몹시 고통스러워하며 다시 나자빠졌다.
장애물을 치운 김형준은 다시 야구 배트를 쳐들고 바닥에 쓰러진 김철환을 패기 시작했다.
“형준아, 제발……. 제발 그만해! 여보, 여보!”
여희숙이 절규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는 김철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김철환을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그만해, 형준아……. 그만해!”
“뭐라는 거야, 이 쌍년이. 비켜!”
김형준이 여희숙을 걷어찼다.
여희숙은 그대로 넘어졌고, 그는 엎어진 채 경련하는 김철환을 강타했다.
삐억! 뻐억!
야구 배트가 휘둘러질 때마다 핏물이 튀었다.
“제발, 그만해, 형! 제발! 엉엉, 그만해!”
김연준이 김철환을 향해 튕기듯 달려갔다.
그리고 김철환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았다.
“아빠, 아빠 정신 차려 보세요……. 아빠!”
김연준이 오열하며 김철환을 흔들었다.
그는 다급히 김철환의 맥박을 확인해 보려는 듯 이곳저곳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엄마, 구, 구급차……. 구급차 불러요, 엄마.”
패닉에 빠진 김연준이 더듬더듬 말했으나, 김철환은 이미 숨이 끊어진 듯했다.
여희숙은 김연준의 말에 따라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김형준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뭐해, 씨발년아.”
김형준이 여희숙의 머리채를 쥐어잡았다.
그리고 바닥에 그녀를 내팽개쳤다.
“개좆같은! 년이! 지랄을! 하네!”
여희숙을 향해 야구 배트가 휘둘러질 때마다 또다시 혈액이 낭자했다.
“아악! 악!”
김연준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막을려 했으나, 김형준은 그를 발로 걷어찼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흐윽, 흑.”
김연준이 김형준에게 힘없이 달라 붙었지만, 김형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구 배트를 휘둘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움직임을 멈췄다.
미동조차 없었다.
김형준은 조용히 부부에게 다가가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했다.
김연준은 망연자실하게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김연준은 넋이 나간 듯 같은 말만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김형준은, 곧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라 거실로 달려 나갔다.
멀리서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김형준이 다급하게 안방으로 들어와 들고 있던 배트를 김연준에게 건넸다.
“잠깐 들고 있어.”
“…….”
완전히 혼이 나간 듯한 김연준은 그가 들려 주는 대로 야구 배트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김형준은 끼고 있던 라텍스 장갑을 벗으며 자신의 바지에 손을 쑥 넣었다.
속옷 안에 숨기는 듯했다.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김형준이 잽싸게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화면은 계속 두 부부의 시신과 멍하니 야구 배트를 들고 서 있는 김연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멀리서 김형준이 경찰에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흐윽, 제발 저희 부모님 좀 살려 주세요! 연준이 좀 말려 주세요! 끄으으윽…….”
영상 재생은 거기서 끝났다.
법정은 싸늘한 침묵에 휩싸였다.
판사마저도 할 말을 잃은 듯했고, 양 검사도 당황을 감추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방청석을 바라보았다.
강민재가 나를 향해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공판 4시간 전, 6:00 AM>
“어, 변호사님?”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재판 준비를 하던 나는, 해가 뜨기도 전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민재와 마주쳤다.
“일찍 나오셨네요? 아니, 옷이 똑같네. 안 들어가신 겁니까?”
“재판 준비도 하고,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후. 카메라 때문에 그러시죠?”
강민재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커피포트로 다가갔다.
“저도 집에 가서 생각해 봤는데요. 일단 김형준 사업에 문제 있었던 거 얘기하고 강력한 범행 동기라고 주장하면 2차 공판 기일 잡힐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카메라를 찾든, 어떻게든 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담배를 피우며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았다.
동영상 증거가 있는 걸 아는데 그걸 찾지 못해 이렇게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나저나, 여희숙 씨 너무 안됐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풀 창구가 필요한데. 취미가 영화 보는 거였다는데, 욕하는 소리 만들어도 패닉에 빠져서 그것조차 못하게 됐다는 게요. 결국 쌓이는 스트레스조차 풀지 못했다는 거잖습니까. 게다가 일상생활도 못 하게 됐다고 하고.”
그는 내게 커피 잔을 건네며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스트레스가 굉장한 채로 죽었을 겁니다.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렇지.”
“집에 가서 여희숙 씨 나왔던 프로그램 돌려 봤는데,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활기차고 잘 웃던 분이.”
강민재는 베란다 펜스에 기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그도 나처럼 마음이 편치 않아 일찍 사무실에 나온 것 같았다.
뭐라도 더 해 보고 싶어서, 뭐라도 더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것이라도 찾아보려고.
“의사는 욕하는 소리만 들어도 패닉에 빠져서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찾았다고 했었지.”
“네, 그랬죠.”
“그래서 일상생활도 힘들었다고.”
“네.”
“여희숙 씨는 진료보다 방송 스케줄이 더 많았어. 매니저가 필요할 정도로.”
“그런데요?”
“욕하는 소리만 들려와도 패닉에 빠져서, 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어진 건데. 방송에서는 욕을 하지 않잖아. 주변에 욕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면 방송 생활은 계속 할 수 있었을 거야.”
나는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어질 듯 말 듯 묘한 생각 찌꺼기가 머릿속을 부유했다.
“방송국 스태프들은 방송 준비하면서 욕 많이 하나?”
“글쎄요. 방송에 안 나가 봐서. 근데 욕 많이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러잖아요.”
“<행복한 우리 집> 감독이 조연출한테 욕을 하고 있었어.”
나는 문득 처음 방송국에 탐문 갔을 당시를 떠올렸다.
조연출은 감독에게 욕을 듣는 것이 익숙해 보였고, 편집실 바깥까지 욕설이 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행복한 우리 집> 촬영할 때, 여희숙 씨 요청으로 테이크 끊어질 때마다 여희숙 씨가 화면을 확인하고 메이크업을 고쳤다고 했어. 촬영 시간이 평소의 배는 걸렸을 테고, 감독은 짜증을 냈겠지. 아마, 조연출을 그 자리에서 쌍욕하면서 다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럼.”
“촬영 당시 카메라를 집안 곳곳에 설치해 놨을 테고, 조연출이 감독한테 욕을 먹고 있을 때. 그때 여희숙 씨가 패닉에 빠졌다면 어땠을 것 같아?”
“반사적으로 녹화 버튼을 누르러갔겠죠?”
“그럼 그 장면이 촬영 때문에 설치해 뒀던 카메라에 잡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