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00)
너희들은 변호됐다-200화(200/641)
평창동에 위치한 강관웅 전 대통령의 사택에 발을 들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강관웅과의 연락은 아주 가끔씩 수족처럼 부리는 강 실장을 통해 간단한 메시지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지켜보겠다던 그가 이번 명화제약 사건을 진행하는 동안 나를 불러 볼 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열린 차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들어오시죠. 날이 많이 덥죠?”
차고에도 에어컨을 켜 놔서 조금도 덥지 않았지만, 나는 적당히 ‘그렇네요’ 하고 대답했다.
“이럴 때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져야 할 텐데요.”
강 실장이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큰일 날 소리다.
2010년은 나에게 여러 가지 기억을 남겼지만, 그중 하나는 서울을 직격으로 강타한 태풍 곤파스였으니까.
사상자가 여럿 나왔고, 지자체에 수천억의 피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창문이 흔들리다 못해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가 일어났고, 대로변에 있던 커다란 간판이 바람에 날려 골목 안쪽에서 발견되는 일도 빈번했다.
“어르신께서는요?”
“정원 산책하고 계십니다.”
차고에서 나와 돌계단을 올라가자, 널따란 정원이 펼쳐졌다.
너른 푸른 잔디 위에 조성된 다과 공간에, 강관웅이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르신. 차 변호사 왔습니다.”
“어서 오게.”
강관웅은 책을 내려놓으며 비스듬히 콧잔등이 걸쳐 놓았던 안경을 추어올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그래. 앉아.”
강 실장은 강관웅의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고, 자신 역시 착석했다.
내가 이 집으로 들어오면 강민재가 가장 먼저 나와 호들갑을 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것 같아서 말이야. 올 사람이 더 있기도 하고. 차나 한잔하다가 들어가자고.”
“올 사람이라면, 강 변 말씀이십니까?”
“아니, 민재는 나가서 놀라고 했어. 자네가 집에 왔을 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나가서 놀라니, 마치 애를 다루는 듯하다.
나 역시 강민재와 있으면 애와 놀아주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올 사람이 또 있다니.
강민재가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예전 강관웅을 처음 만난 날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몇몇 인물들을 떠올려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강 실장은 황토색 다기를 들어 강관웅의 빈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내 앞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따라 주었다.
이렇게 날도 더운데, 바깥에서 뜨거운 차라니.
벌써부터 등에 땀이 나는 기분이다.
“명화제약 사건 자네 작품이지?”
강관웅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왔다.
아니라고 잡아뗄까 하다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는 강관웅을 내 뒷배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만났을 땐 어느 정도 얌전 뺄 필요가 있었지만, 이젠 본격적으로 본론에 들어가야 할 때다.
강관웅 역시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나를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일 테니까.
“결과는 마음에 드나?”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이걸로는 만족이 안 된다?”
그는 끌끌 웃으며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안트로졸 알파가 완전히 폐기되기까지는, 아직 남은 절차들이 있으니까요.”
“그렇구만.”
강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고 그가 입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
“솔직히 많이 놀랐어. 자네는 여론을 아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더군. 도화선에 불을 댕겨서, 큰불을 낼 줄 아는 사람이야.”
“과찬이십니다.”
시작은 의학 전문 기자에게 안트로졸 알파의 부작용을 의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의약품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그 약을 복용할 당사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주식 쪽 전문가인 조봉준을 섭외했다.
그쪽에서 어느 정도 화력이 붙자, 인터넷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이러한 사실들이 퍼 날라졌다.
그리고 언제나 소재가 없어 허덕거리는 방송국을 겨냥했다.
그다음에는 명화제약의 기업으로서의 명예를 건드려 법정 공방으로 사건을 키웠다.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을 때, 본격적으로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질 증거들을 공개했다.
과정이 스펙타클했기에 그 일은 스토리가 되었다.
재미없는 시사 이슈가 아닌, 흥미로운 ‘썰’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재미에 반응했다.
그 결과, 이렇게 검찰까지 움직였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파악한 사람도 알겠지만, 사실 이 사건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차주한’이라는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엮어 나간 스토리텔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주한이라는 존재는 그저 조봉준의 변호를 맡다가 검찰의 부름을 받아 촉탁 수사관이 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강민재는 내가 이 사건에 임하는 까닭이 그거 조봉준과 아는 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이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니, 강관웅이 하는 모든 말은 그의 통찰력이 도출한 결론인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증거들을 적재적소에 등장시키고, 또 그걸 찾아내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더군. 그건,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민재를 통해서 충분히 전해 들었지만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자네는 이번 사건으로 상당히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어. 법조계에서는 당연히 예전부터 유명인사였다지만, 이제는 그 지평이 늘어났지. 그래서 자네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받게 될 거야.”
강관웅은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제 말할 수 있겠지. 내 앞에서 고상 떠느라 숨기고 있었던 자네의 진심을 말이야.”
한 마디로, 네 목적이 무엇이길래 이 모든 일을 벌였냐는 것이다.
이번 사건 전까지는 단순히 정의구현을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불의에 항거했다고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만 안트로졸 알파 사건은 내가 만들어낸 사건이다.
내가 이전 삶에서 안트로졸 알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는 것을 모르는 강관웅은, 우신의 흠을 잡기 위해 이것저것 파다가 안트로졸 알파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 주는 편이, 나에게도 좋고.
“어르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날 떠보는 건가?”
강관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내가 자네의 속내를 완전히 파악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게야?”
나는 이미 알게 모르게 그에게 여러 번 시험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 즉, 내가 그를 시험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된다.
그는 정치계의 거물이고, 나는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인이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만남이라면 모를까, 나는 그를 이미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굳이 시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더는 숨길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의 힘이 필요하다.
그의 시험이 끝났다면 이제는 그것으로 결론을 내야 할 때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 목표를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표현할 방법?”
“네. 자칫 어르신께서 들으시기에 허황된 꿈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 어르신의 마음에 들고 싶지, 헛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진 않습니다.”
내 대답에 강관웅은 웃음을 흘렸다.
“뻣뻣한 친구라고 생각했더니, 아부도 할 줄 아는구만.”
아부가 아니라 진심이다.
하지만 아부라고 생각해도 상관은 없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은 빈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자칫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창윤도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고.
“허황된 꿈일 순 있겠지. 하지만 그건 능력이 받쳐 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아. 만일 내 눈에 차 변 자네가 수작 부리는 데에만 능하고 능력은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친구 같았다면 나는 애초에 자네를 이렇게 두 번이나 만나진 않았을 거야.”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매를 휘며 자글자글한 주름을 잡았다.
“이제 표적을 정확히 해 볼까. 자네 목표는 고상준인가, 아니면 우신 전체인가.”
“허황된 꿈으로 비쳐질까 두렵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 대답에 강관웅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후자라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청사진은 있고?”
“있긴 하지만, 아직 추상적입니다. 필요한 인물들이 그 일에 적합한지도 검증이 더 필요합니다. 청사진을 공유드리기에는 아직 이른 듯합니다.”
“필요한 인물들이라. 그 청사진에 민재는 있나?”
강관웅의 물음에, 나는 빠르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은 ‘없다’에 가깝다.
그것은 강민재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의 의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그를 이 험한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관웅이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강관웅이 아무리 인간관계에 초탈했을 연배라고 하더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내 손주를 위험에 빠트리려 하냐며 역정을 낼 수도 있다.
아니라고 하면, 내 손주의 능력을 믿지 못하냐며 또 역정을 낼 수도있다.
하, 어렵다.
새삼스레 남들 말마따나, 내가 얼마나 남 눈치를 안 보고 살았는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고민하지 않고 필요한 대답을 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어렵다.
“어르신께서 처음 저를 도와주신 까닭은, 물론 강 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저를 봐서 도와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까.”
“그날 자네를 보고 도와줄지 말지 결정한 건 사실이지.”
“그렇다면, 어르신께서 제게 힘을 보태주실지 대답을 해 주시는 데 강 변이 제 청사진에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맞아.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강관웅은 의외로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자네의 힘이 되어 주는 데 민재는 전혀 상관없어. 자네가 민재의 상사라서가 아니라,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니까. 하지만 차 변 자네, 얄미운 구석이 있구만. 끝까지 대답을 안 하려는 걸 보면 말이야.”
강관웅은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 모습이 강민재와 묘하게 겹쳐졌다.
유전자는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우리나라는 급격한 경제 성장 때문에 많은 희생을 치른 상태였지. 중요한 가치인데도,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게 당연하던 시대였어. 나는 그 많은 가치들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허황된 꿈을 꾼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
강관웅은 옛날로 돌아간 듯, 아련한 눈빛으로 씁쓸하게 말했다.
“난 그래서 자네가 꾸는 꿈이 허황되다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 아까 전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사실 능력이 없어도 누구든 꿈을 꿀 순 있다고 생각하거든.”
“…….”
“그리고 내가 바로 그 능력이 부족했던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