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02)
너희들은 변호됐다-202화(202/641)
표정 관리는 잘했지만, 놀란 기색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강관웅은 식탁 앞에 앉으며 나를 보고 끌끌 웃었다.
“차 변이 많이 놀란 모양인데.”
“제가 그럴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박영기 역시도 허허 웃었다.
“얼른 앉아, 차 변.”
박영기가 여전히 굳은 채로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아직도 서 있음을 깨닫고, 자리에 앉았다.
“음식이 식겠습니다. 어서 드시죠.”
“그래, 자네도 많이 먹어. 차 변, 자네도 많이 먹고.”
나는 수저를 움직였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분주했다.
박영기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혹시 이번 사건이 있은 뒤에 강관웅이 그에게 연락을 넣은 것일까.
강관웅은 나를 돕기로 했고, 박영기도 이번에 나를 도왔으니 같은 목적인 사람끼리 의기투합해 보자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두 사람은 너무나도 절친해 보였다.
두 사람이 원래 잘 아는 사이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가뜩이나 친밀한 관계인 박영기가 나를 돕자, 본격적으로 자리를 주선해서 나와 친분을 쌓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닐까.
“차 변 머리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밥을 못 먹겠구만.”
강관웅이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박영기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차 변. 생각은 그만하고 일단 식사부터 해.”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모르는 나를 앞에 두고 유유자적했다.
“어르신과 대화 중에 강 변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랐습니다.”
“아, 차 변은 강 변호사가 선생님 손자라는 걸 모르고 있었던가? 지금 강 변이 차 변 밑에 있는 거 아니었어?”
“네. 강 변이 알리고 싶지 않은 눈치라, 따로 알아보지 않고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려심 넘치는구만. 강 변은 좋겠어. 차 변 같은 상사를 다 만나고.”
그의 배경은 나와는 전혀 상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강민재를 사무실에 받아 준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었으니까.
“민재는 직장 만족도가 아주 높아. 예전에 태광 다닐 땐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늦장을 부려대더니, 차 변 밑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콧노래도 부르더라고. 하하.”
그랬던가.
강 변은 휴가와 휴일을 너무 좋아해서 퇴근길에도 콧노래를 불렀는데.
“식사 다하셨으면 차 한잔 어떠십니까. 제가 선생님 드리려고 좋은 차를 가져왔습니다.”
박영기는 의자 밑에 놓아두었던 작은 종이가방을 들어 올렸다.
“좋지.”
강관웅의 거실에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전 대통령과 현 서부지검 차장, 그리고 검찰을 떠나 굉장히 밉보인 돌연변이 변호사가 한데 모여 차를 마시는 풍경.
전부 검사거나 검사 출신이지만, 선후배 사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경력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이제 슬슬 차 변 궁금증을 풀어줘야겠구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연수원에 있을 때 교수님이셨어. 대통령으로 취임하시기 한 10년 정도 전이었죠, 아마?”
“그랬지. 잠시 정계를 떠나 있던 시기였으니까.”
강관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런 인연이 있었던가.
강관웅에게 사법연수원에서 수업을 들었다니, 박영기도 꽤나 소중한 경험을 했다.
강관웅은 검사 출신이지만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검찰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고, 민법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아마 그가 사법연수원에 출강했다면 민사집행법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민법을 그의 책으로 공부했던 나로서는 민집을 그에게 직접 배운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 영광스럽게도 이렇게 선생님과 가끔 뵙고 있지.”
“그런데 이 친구, 내가 청와대에 있는 동안에는 절대 연락 한 번을 안 하더라고. 그전까지는 귀찮을 정도로 인사드리러 오겠다면서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 말이야.”
“그야, 검사가 대통령하고 사사롭게 연락하는 건 그리 보기에도 안좋고, 선생님께도 괜히 다른 뜻이있는 걸로 비쳐질까 봐 염려해서 그런 겁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초임 검사 때, 내가 연수원에서 교수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동안에도 맨날 찾아왔잖아. 내가 그런 오해를 왜 하겠어.”
“남들 보는 눈도 생각해야죠. 그게 그렇게 서운하셨습니까?”
“그래, 이 사람아.”
두 사람은 처음 받았던 인상대로, 상당히 친분이 두터운 관계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강 변이 차 변 밑으로 들어갔으니, 강 변 입사 즈음에 이미 차 변이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강민재가 누구의 손자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태광에서도 이미 윤원형이 그를 특별하게 대우해줬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으니.
아무리 강관웅의 집권 당시 노선이 태광과는 반대였다고 해도, 지금은 민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아닌가.
그들도 강관응의 책으로 민법을 배웠을 테고, 또한 강관웅이 우리 사회에서 자리매김한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태광도 강관웅에게 나쁘게 보여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태광은 나의 주적 중 하나다.
강관웅 역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힘을 보태 주겠다고 한 것은, 언젠가는 태광과 척을 지게 되더라도 감안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광이 그에게 잘 보여 나쁠 것이 없듯이, 그 역시 태광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것이 없을 텐데.
“선생님께서 이번 사건에서 자네를 좀 밀어줄 방법을 찾아 보라고 하셨을 때도 난 당연히 그래서인 줄 알았지.”
박영기의 말에, 강관웅은 나를 보며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박영기가 나를 촉탁 수사관으로 삼고, 나를 브리핑 자리에 세운 까닭이 무엇인지 이제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박영기가 대놓고 나를 밀어주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나 나에게 다른 목적이 있어서 잘해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박영기의 본심을 확인하기 위해 능력을 쓰기도 했고.
‘이러면 좀 말이 되네.’
그의 말에 연달아 거짓 판정이 뜬 까닭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안트로졸 알파 사건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 말이다.
우신을 잡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정의 구현에 일환이 될 순 있겠지만, 순수한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가 이 사건에 힘을 준 이유 역시 정의 구현이라고 했던 말에 거짓 판정이 뜬 것도 마찬가지다.
정의 구현이 목적이 아니라, 강관웅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밀어주겠다는 말에 진실 판정이 뜬 것이다.
박영기와 그러한 대화를 나눴을 땐, 나는 강관웅의 시험을 받던 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개입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거짓 판정을 보고, 내가 알던 박영기를 재평가했는데.
“오늘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하십니다, 어르신. 저를 시험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도움을 주고 계셨군요.”
“선생님께서 마음을 정하신 건 조금 더 전이었어. 나한테도 차 변에 대해 많이 물어보셨고. 나야, 뭐 차 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쁘게 말씀드릴 이유가 없었지.”
“감사합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차 변의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라 놓치기 아쉽잖아.”
“서부지검에서 명화제약 사건 끝나는 대로, 이 친구가 중앙지검으로 가게 될 거야.”
나와 박영기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관웅이 문득 입을 열었다.
서부지검에서 명화제약 사건을 끝낸다는 것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 상황에서 박영기가 중앙지검으로 가게 된다면, 당연히 영전이다.
검사장이 되는 것은 이르고, 아마 3차장 정도의 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앙지검 3차장이라면 웬만한 검사장 수준이고, 차관급의 대우를 받는다.
“영전 축하드립니다, 차장님.”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박영기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박영기가 손사래를 쳤다.
“명화제약 수사가 탈 없이 잘 끝나야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차 변 덕분에 식약청장과의 관계를 털어 냈으니, 이변이 없는 한 잘 되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차 변 덕분이고.”
“아닙니다.”
“박 차장이 중앙지검으로 가면, 자네를 많이 도와줄 거야. 이왕 내가 자네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이로써 지금의 박영기가 이전 삶에서 내가 알던 박영기와 달라졌다는 내 추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박영기가 중앙지검 3차장이 되는 것은 이전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앙지검 3차장 자리는 황영찬이 내년 즈음 갈 보직이었다.
이 시점에서 황영찬은 이미 지방지청장을 지냈고, 이제는 대검과 법무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 부장으로 발령받아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박영기가 꿰차게 된다면 황영찬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감사합니다.”
황영찬이 고꾸라진다면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게다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이전 삶에서는 황영찬이 물 밑에서 음침하게 우신의 뒤를 봐주며 영전에 성공했다지만, 이번에는 결국 고윤성 사건을 덮지 못했다.
우신 쪽에 황영찬이 밉보이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이전 삶에서 황영찬은 1차장을 거쳐, 검사장이 되고, 두 계단을 넘어 바로 검찰총장으로 영전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물을 먹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걸 만일 이대로 박영기가 검사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면, 박영기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 한, 훗날 우신 특검이 벌어졌을 때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극히 내 바람대로의 예상일 뿐이다.
황영찬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박영기가 이렇게 예상에 없던 영전을 하게 된 이상 그 역시 최소한의 정치는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박영기가 어떻게 될지알 수 없는 노릇이고.
어렵다.
어쩌면 이제는, 내가 알던 지식만 가지고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곳에서는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고, 마찬가지로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