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06)
너희들은 변호됐다-206화(206/641)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나도, 강민재도 할 말을 잃었다.
구체적인 사연은 아직 듣지 못했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대기업 때문에 소기업이 도산하는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니까.
“……형님이 아버님 주검을 발견하셨다고요?”
강민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조봉준은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 큰 기계가 있었는데. 그 기계에다가 밧줄을 묶어서, 목이 매인 채로 이렇게 축 늘어져 계시더라고.”
조봉준은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직접 몸으로 표현해 보였다.
강민재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한숨을 쉬었고, 조봉준은 잔에 따른 소주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거 아냐? 사람이 목을 매고 죽으면 혀가 이만큼 축 늘어져. 그리고…….”
“형님, 그만 말씀하세요. 너무 슬픈 기억이잖아요. 그런 거 떠올리지 마세요.”
강민재는 행동을 모사하는 그의 팔뚝을 붙잡아 내리며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우신의 악행으로 아버지를 잃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운이 좋아 이렇게 시간을 돌려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나 학생 때야. 다 옛날얘기지.”
조봉준은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버님이 그런 선택을 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아, 우신이 우리 아버지한테 한 개짓거리? 흐흐, 그건 별거 아냐. 지금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는 술에 취해 축축 늘어지는 몸을 가누며, 다시 한번 소주를 맥주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강릉으로 오는 길에 사 온 술이 상당히 많았는데, 어느덧 몇 병 남지 않았다.
그중 주당인 조봉준이 마신 술만 해도 거의 소주 대여섯 병에 맥주 두 병은 될 텐데.
이젠 말려야 할 것 같다.
“그만 마셔요.”
“가만있어 봐 봐. 내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마시려는 거니까……. 아부지이! 우리 아부지 잘 계십니까아!”
조봉준은 지금이라도 바닷가로 달려 나갈 기세로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나는 또다시 술을 따르려는 그의 손을 붙잡았지만, 그는 내 손을 뿌리치며 술병을 탈탈 털어 잔을 채웠다.
그마저도 잔이 다 차지 않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새 병을 따서 마저 따르고 쭉 들이켰다.
“우리 아버지 공장은 우신 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였지. 하도급 업체라고 하면, 딱 느낌 오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과 하청 업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 중, 사업주를 자살로 몰아갈 정도의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원청이 도급비를 후려쳤군요.”
“맞아. 거기다가 체불까지……. 말도 아니었지. 우리 집 앞에는 아버지 공장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번을 섰어. 혹시 우리 아버지가 끝까지 임금을 못 주고 도망갈까 봐 그러는 거였지. 나는 아침마다 그 아저씨들 시선을 받으면서 학교에 갔고. 내가 하루라도 좀 좋아 보이는 옷을 입거나,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날이면, 자기들끼리 쌍욕을 해 댔어.”
조봉준의 아버지 집 앞에 번까지 해가며 감시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당장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데, 일을 계속 해줘야 돈을 줄 수 있단 말에 불신이 머리끝까지 찼을 것이다.
혹시 우리에겐 돈 없다고 말하고, 사장 혼자 본인 챙길 것은 다 챙기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어린 조봉준에게 많은 상처가 되었겠지.
적어도, 어린 자식이 보는 앞에서는 그런 태도와 눈빛을 해서는 안되었다.
“처음에는 난감해하시던 어머니도 그 사람들이 오죽하면 그러겠냐면서, 돌아가지 않을 거면 뭐라도 먹으라고 그 사람들한테 간식거리를 줄 때도 있었어. 근데 그럴 때마다, 이딴 거 됐으니 돈이나 내놓으라고 다 엎어버리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하, 옆집에서는 저 사람들 언제 가냐고 성화지, 다른 집에서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지. 경찰들이 오면, 우리 아버지 입장에선 다 당신 실수로 돈 못 받고 그러는 거니까, 다 자기 직원들이니까, 늘 무마시키려고 노력하셨고…….”
그들이 걱정했던 바처럼, 정말로 중간에서 사장만 본인 몫을 챙기고 직원들 앞에서는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며 우는 소리를 내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조봉준의 부모가 취한 태도로 보았을 때, 그랬을 것 같진 않은데.
아마 그렇게 한때 의좋게 공장을 꾸려 나가던 동료들이 돈 앞에서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없는 자신을 보면서 많은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은 직원들 월급을 조금이라도 주겠다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다니기 시작했어. ……엄마는 이모하고 삼촌한테 돈 빌렸고. 아버지는 거래처들도 찾아가 보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찾아가 보고했지만……. 아무도 안 도와줬다고 하더라고. 심지어 큰아빠하고 고모들마저도. 물론 그땐 나도 몰랐어. 나중에 크고 나서 엄마가 말해 주더라.”
그는 점점 축축해지는 눈가를 손으로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강민재는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았고, 나 역시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우신에 앙심을 품게 된 계기를 알고 싶어서 자세히 물은 것인데,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면 내가 괜한 상처를 건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봉준 씨, 힘드시면 그만하셔도 됩니다.”
“아냐. 하나도 안 힘들어. 왜냐?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거든. 그냥 씨발, 좀 좆 같아서 그렇지. 하여간……. 그래서 아버지는 은행 대출도 알아보고, 여기저기 발 빠르게 움직이셨다곤 하는데 전부 거절당했어. 공장에도 이미 빚이 산더미였으니까. 결국 집 팔아서 우리는 셋방으로 옮기고, 이것저것 어떻게든 해서 임금 문제는 어떻게든 덮나 싶었어.”
그는 과거를 떠올리는 듯, 풀린 눈으로 허공 한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아버지는 우신 자동차라는 큰 거래처가 없으면 공장을 굴릴 수가 없으니까, 계속 우신 자동차 일을 받아서 했지. 그래서 그 한 번이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던 거야. 그땐, 우신 자동차에서는 거의 원가 수준으로 도급비를 산정하고, 인건비를 하나도 매기지 않았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합니까? 이거 소송이라도 걸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민재가 소리쳤다.
“모르는 소리. 그랬다가는 당장 먹고살 게 없잖아.”
“…….”
“하, 그래서 아버지는 결국 본사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면서 쇼도 하시고……. 난리도 아니었지. 신문에도 조그맣게 났을 거야.”
“아이고…….”
“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었지. 이제 아버지는 돈을 빌릴 곳도 없었고, 우리가 옮겨 온 셋방도 정말 열악한 곳이라 이것마저 팔아치우면 우리는 정말 길바닥에 나앉는 신세가 되는 상황이었거든. 그래서…….”
“……결국 그런 선택을 하신 거군요.”
강민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조봉준은 그런 강민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지. 하여튼, 이게 내가 우신이 좇같은 이유다. 이쯤 되면, 무지 좇같을 만하지?”
아마, 조봉준은 그런 울분을 혼자서 삼키며 살았을 것이다.
우신에 대한 분노는 컸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결국 저 깊은 곳에 묻어 두기로 했겠지.
하지만 최종현을 통해 어떠한 기회가 생겼고, 그는 그 기회를 잡은 것이다.
단순히 그를 ‘우신 싫어하는 놈’이라고 표현했던 최종현의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종현이 형은 우연히 본인 선배가 우신 캐는 걸 보고, 거기에 관심이 생겨서 팠다고 하던데.”
“네,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꾸 위에서 막으니까 오기가 생겨서 쑤시고 다니게 됐다고요.”
“그 형은 진짜 오기밖에 안 남았어, 지금. 우신 못 잡으면 사연 있는 나보다 열 받아서 관 뚜껑 덮어도 눈 못 감을걸.”
조봉준은 킥킥 웃으며 방 안쪽에서 오 사무장과 함께 사이좋게 코를 골며 잠든 최종현을 향해 턱짓했다.
“민재는 차 변 꽁무니 쫓아 왔다고 했고.”
깔끔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해 버리는 조봉준을 향해, 강민재가 버럭 소리쳤다.
“아니, 형님. 왜 그렇게 해석됩니까, 저의 큰 결심이?”
“사실 나, 종현이 형이 같이하자고 했을 때 덥석 오케이 한 거. 차 변 때문도 있었어.”
조봉준은 강민재의 항의를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사연을 털어놓는 분위기가 되어 버린 듯하다.
술이 있는 자리라 가능한 거겠지.
“제가 부동산하고 주식 때문에 검찰 조사받는 거 보고 말입니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 고윤성 사건 때문에 우신 물산 임금 체불 문제 터졌잖아. 그것까지 차 변이 말끔하게 해결했다는 종현이 형 말 듣고, 거기서 느꼈어. 이 사람이라면 뭔가를 같이 해도 될 것 같다. 적어도, 싫으면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시작은 해도 될 것 같다. 뭐, 그런 생각 말이야.”
고윤성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관련자들 모두가 피해를 입었던 사건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저 조언을 해 주었을 뿐이다.
“그건 제가 뭘 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허, 또 겸손 떤다. 어쨌든, 기분 좋구만!”
조봉준은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이제 잔에 일일이 소주를 따르는 게 성가셔졌는지, 병째로 소주를 들이켰다.
그는 병을 다 비우고, 또 새 병에 손을 댔다.
이건 과음을 넘어선 폭음 수준이라, 나는 결국 그의 손에 쥐어진 병을 낚아채 내 입에 털어 넣었다.
“아. 뭐야, 차 변.”
“그만 드시라고 했잖습니까. 내일 어쩌려고요.”
조봉준이 폭음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그는 술 마실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다음 날이 되면 숙취 때문에 하루 종일 변기 붙잡고 오바이트만 하는 스타일이다.
심지어는 병 난 사람처럼 끙끙 앓기까지 한다.
내가 그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냥 둔단 말인가.
내 인생의 취객 시중은 강민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 됐어. 저거 저 병이나 줘봐. 마지막 병인 것 같은데. 다 마셔 버려야지.”
나는 그가 그리도 탐하던 마지막 병마저 전부 마셔 버렸다.
소주 두 병을 연달아 병나발을 불었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이라도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역시, MT가 나에게 남기는 것은 술과 숙취와 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