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209)
너희들은 변호됐다-209화(209/641)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 어휴.’
인터넷 방송과 뉴스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졌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이나 아는 것이다.
흔하게 생긴 최종현을 알아볼 사람은 몇 없다.
일식집에 청소부로 면접을 보았을때도, 사장과 마주쳤을 때도 누구도 최종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차피 정보를 얻는 대로 나갈 생각이니 며칠만 참자 싶었지만,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이정찬의 자택과 가까운 데다, 정치인들이 많이 이용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사장이 보통 깔끔 떠는 것이 아니었다.
잘 나오지도 않는다더니, 유명 정치인이 예약을 잡았다 하면 바로 외제차를 몰고 출근해서 잔소리를 어찌나 해대는지.
심지어 그 방에 서빙하는 직원도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며 직접 지정하기까지 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직원들 사이에서 악평이 자자했다.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주 관둔다는 것을 보면 사장이 보통 진상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이제 한 번 봤을 뿐이지만 최종현도 알 것 같았다.
“아저씨, 여기도 좀 닦아요! 어휴, 참. 일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인간들이 없어. 남의 돈 받기가 쉬운 줄 알아, 어디?”
아무리 봐도 깨끗한데도, 대리석 바닥에 먼지 한 톨이라도 보이면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최종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대걸레를 바닥에 열심히 문질렀다.
그는 구두를 정리하는 척하며, 이정찬이 들어간 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이정찬과 약속이 잡힌 것은 퇴임을 앞둔 판사.
입당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 같지만, 저 판사는 최종현의 관심 밖이었다.
“아저씨! 주차장 쪽도 좀 쓸어요! 알아서 하는 게 없네, 하는 게 없어. 지배인은 무슨 이딴 사람을 뽑은 거야?”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목소리에, 최종현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사장이다.
“아, 예. 예.”
진짜 미친 아줌마 아닐까?
“어휴, 씨벌.”
주차장을 쓸고, 뒤쪽에 난 작은 수두가에서 대걸레를 빨던 최종현은 저도 모르게 욕을 하고 말았다.
아차 싶긴 했지만 듣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떤가.
“정신 나간 여편네. 아오.”
점점 대걸레를 빠는 손이 거칠어져 갈 무렵,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힘드시죠?”
직원들이 흡연공간으로 사용하는 듯한 골목 공간에, 일식집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이 혼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잠시 쉬러 나온 모양이다.
“사장이 진짜 너무 난리예요. 진짜 스트레스 엄청 받아요.”
“목소리가 되게 날카롭더라고요.”
“꿈에 나올 것 같아요, 정말. 아니, 전 진짜 꿈에 나오기까지 했다니까요. 저 아줌마 목소리 알람으로 쓰면 아침에 강의 지각하는 일도 없을 텐데. 그만두기 전에 녹음이라도 떠놓아야 하나 싶다니까요. 저 아줌마가 딸랑대는 정치인들은 저 아줌마 성격 파탄자인 거 알려나 몰라.”
“대학생이에요?”
“네. 여기 앞에, 성문여대 다녀요. 국장 탈락해서 등록금 벌려고 저녁타임에만 나와서 일한 지 한 일 년됐나?”
“오래 일했네요?”
“그쵸. 근데, 뭐. 오늘 때려치워요. 저 아줌마 얼굴 더 이상 안 봐도 돼요. 이번에는 국장 성적 기준 맞췄거든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최종현의 머릿속에는 국장 성적 기준 맞췄다는 이야기보다 그녀가 일 년이나 이곳에서 일했으며, 저녁 타임에 나왔다는 이야기만 맴돌았다.
이곳에 온 까닭은 이정찬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점인 이곳에서, 식약청장과 만나지는 않았을까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안 그래도 포섭할 직원 몇 명 추리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곧 그만둔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사장에게 안 좋은 감정도 가지고 있으니, 뭔가 쓸 만한 정보들을 물어보면 대답해 줄 것도 같다.
또, 아까 사장이 이 직원에게 이정찬 방 서빙 들어가라고 지시하는 것도 직접 봤다.
“저기, 학생.”
“네?”
“그럼 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나?”
“그럼요. 물어보세요.”
“지금 이정찬 와 있잖아요. 자주 와요?”
“아, 이정찬이요? 엄청 자주 와요.”
말도 말라는 듯 여대생이 손을 저었다.
“혼자?”
“아뇨,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많이 오죠. 여기서 민우당 회식도 하는 것 같던데.”
“그래요?”
여대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종현은 묘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 있는 동안 식약청장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이정찬에 관한 수상한 점들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마침 대선도 가까워져 오는 데다, 지금 검찰에서 명화제약 관련 수사를 하는 상황이라 이정찬과 한 번쯤은 만나지 않을까 싶어서 한 달만 있어 볼 작정으로 시작한 건데, 며칠 만에 괜찮은 정보원을 얻었다.
그만둔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연락처라도 받아 놓을까 싶다.
“근데 아저씨.”
“응?”
“아저씨, 최종현 기자 맞죠.”
방심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고 뉴스에 출연했을 무렵 최종현은 연예인 병에 걸렸었다.
그래서 괜히 불필요하게 사람 많은 곳으로 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려나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 일식집에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다니?
심지어 며칠 동안 아는 체도 안하던 이 학생이?
“놀라지 마세요. 저, 명화제약 관련 방송 몇 개 봤었거든요. 저 화학과 다니는데, 약대 준비했었어서. 혹시 면접에 명화제약 이슈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뭐, 근데 얼마 전에 약대 포기했지만요.”
“그럼 처음부터 내가 누군지 알고있었어요?”
“당연하죠. 근데 알리기 싫으신 것 같아서 아는 척 안 했죠. 아, 그리고 걱정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그건 고맙네요.”
“근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설마, 이정찬 때문에? 다음 주제예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최종현은 대답 대신, 마찬가지로 그녀를 향해 몸을 낮추며 속삭였다.
“그럼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 * *
“차 변!”
대어를 건졌다며 퇴근 후에 스튜디오로 와 달라는 최종현의 연락에, 나는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이미 조봉준과 최종현은 도착해서 테이블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었다.
“라면 한 젓가락 할래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대어라는 건 뭡니까?”
최종현은 흐흐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그건 뭡니까?”
“이정찬 자주 가는 일식집 직원한테 전 식약청장 사진 보여 주고, 이정찬이랑 같이 온 적 있냐고 물었거든?”
[어, 이 사람!-본 적 있어요?
-네. 몇 달 전에 엄청 자주 같이 왔었는데?
-그래요?]
“같이 왔었대.”
최종현이 기분 좋게 녹음기를 일시정지하며 말했다.
“흐음,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대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이정찬과 김형중이 동향이라 개인적으로 만난 걸 수도 있고.”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아직 일러.”
[-둘이 하는 얘기 들은 건 없죠?-그건 당연히 없죠. 방음도 잘 되어 있고, 그리고 서빙하러 들어가면 바로 말을 멈춰서요.
-흐으음, 그럼…….
-어, 잠깐만요. 방금 넘긴 사진 다시 보여 주세요.
-어 사진?
-네. 이 사람하고 아까 말씀하신 식약청장이랑, 이정찬이랑 셋이 몇 번 왔었어요.
-요즘에도 같이 와요?
-아뇨. 음, 작년 말쯤인가? 이정찬 멤버 바뀌었네, 이런 생각했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이 누굽니까?”
또다시 녹음기를 멈춘 최종현에게, 내가 물었다.
“누구겠어?”
그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명화제약 대표지.”
“대어 맞네.”
조봉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역시 인정했다.
대어 맞다.
하지만, 이거 하나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물론 세 사람이 함께 만난 것이 안트로졸 알파 심사 시기와 어느 정도 맞물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화 내용을 알 수 없으니,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만났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사람들은 명화제약 대표 – 전 식약청장 사이의 커넥션을 먼저 알았고, 식약청장 – 이정찬의 커넥션은 관심 많은 사람들만 아는 상황이다.
이정찬 쪽에서는 이 사안이 이슈가 되었을 때, 단순히 식약청장이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만났을 뿐이라고 하면 본질이 흐려진다.
이정찬이 명화제약 대표에게 식약청장을 소개해 준 것인데도 불구하고.
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아예 쓰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정찬과 그 아들 이세형의 자작극을 터트릴 수만 있다면.
그 일로 이정찬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을 때, 이 커넥션을 함께 터트리면 그다음은 검찰이 알아서 진행해 줄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태식은 나에게 직원 편으로 서류 하나를 보내왔다.
여태까지 이세형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자잘한 정보들이었다.
상길의 글씨체로 이런저런 코멘트도 달려 있었다.
[집에 차고가 딸려 있어서, 차고에서 나오는 차를 쫓아다녔어야 했는데 이세형이 운전을 못해서 기사가 붙음. 근데 차가 썬팅돼 있어서 누구 차인지 모르겠어서 좀 오래걸렸습니다 ㅈㅅ평범하게 그냥 아침에 복지재단 출근했다가, 집에 들어오고. 강 다른 활동은 없고 집에 처박혀 있는 편임.
그래서 딱히 뭐가 없음…….
그리고 변호사님이 알아보라고 하신 재활 다니는 병원은 서울 명운 대학 병원입니다. 더 알아보고 또 연락드리겠음…ㅠㅠ]
명운 대학 병원이라.
재활 받으러 가는 척하며 다니는 곳이니, 당연히 진료는 재활의학과에서 볼 것이다.
하지만 이세형은 척수 손상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했으니, 이세형 같은 경우에는 신경외과와 합진이 필요할 테고.
명운 대학 병원 신경외과.
이거 참 공교롭지 않은가.
나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어, 나야. 바빠?”
-어, 주한이냐? 잘 지냈어?
“나야 늘 똑같지. 너 바쁜 건 좀 어때.”
-그럭저럭 괜찮아. 그런데 어쩐 일이야?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시간 좀 돼?”
-물어볼 거? 시간이야, 뭐. 오프 날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병원으로 가면 잠깐 시간 낼 수 있어?”
-병원으로 온다고? 급한 일이야? 그럼 오늘도 상관없는데.
“그럼 저녁 먹을 시간은 돼? 저녁이나 한 끼 하면서 얘기하자.”
-병원 내부에서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면 오든가.
“오케이. 아, 참 동진아.”
-엉?
“어머님한테 사과 잘 받았다고,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
-그거야 말 없어도 당연히 전하는 거고. 지금 바로 오냐?
“지금 갈게.”
-오냐. 그럼 지하 식당가에서 보자.
이래서 인맥이 중요한 건가 보다.
나는 동진의 얼굴을 떠올리며 홀로 남아 있던 사무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명운 대학 병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